12월의 시간들
여태껏 이곳에서 지면을 통해 기록된 정음의 이야기는 사납고 거칠고 난폭했던 장면의 연속이었겠다. 그래도 써 내려가는 이야기가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흐르기를 바랐다. 울면서 글을 써 내려가는 두어 시간의 마음은 변함없이. 매일의 무사를 바랐고 여전히 바라는 마음으로. 100번 정도의 고통을 견디면 1번 정도는 운이 따르기를 바라는 마음이랄까. 그렇게 지내다 보니 '이런 날' 과도 마주하는 지금, 여전히 벅차오르는 무언의 '감정'에 조용히 동요된다. 12월 정음이를 둘러싼 시간의 기억은 좀 더 오래 두고두고 회자될 기억으로 남겨질 것 같다...
12월 4일 입원을 하고 5일 중심정맥관의 히크만 제거술을 했다. 1년 반 만의 일이다. 처음 항암 치료 시작했을 때 삽입한 히크만은 솔직히 간병자 입장에서도 환우 입장에서도 초기 투병 시절 여간의 걱정과 고생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문제적 트리거였다. 감염될까 봐 노심초사. 매번 정기적으로 소독해 주고 헤파린을 넣어줘야 하며 샤워를 할 적이면 언제나 방수를 튼튼히 해내야 하는 그런 보이지 않는 수고스러움을 만들어 내던 곳. 그러나 한편, 이 히크만 덕분에 수백 번.... 정말이지 수백 번의 채혈을 해 내는 동안 찌르는 고통 없이 무난히 채혈을 해낼 수 있게도 했던 장치.... 히크만에 균 발생이 되면 말초라인 잡아서 약제가 들어가는데 특히 반코마이신 들어갈 땐 혈관통이 상당하기도 했지.........
고생 많았어 정음아......... 우리 이제 샤워 조금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겠다.
히크만 제거 한 그다음 주, 12월 12일에 정음이는 학교를 다시 찾아갔다. 투병 589일 차만에 다시 찾아간 학교였다. 물론 다니는 의미가 아니라 다시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감사 마음을 전하는 인사차의 짧은 방문이었다. 단 30분 정도였지만 아마 이 날은 정음과 내게 오래 기억될 하루의 명장면이 될지도 모르겠다. 정음이는 친구들로부터 열렬한 환대와 응원을 받았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넌 할 수 있어'
친구들은 플래카드를 들어서 응원을 해 주고 노래도 불러 주었다. 편지 선물을 해 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정음이를 기억해 주는 친구들과 전화번호를 교환하기도 했다. 정음이는 준비해 간 소박한 선물을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 나눠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는 마스크 안으로 입술을 꾹 깨물어야 했지만 기어코 눈물이 줄줄 터져 나오기 일쑤였다. 도무지 울지 않고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아이들이 주고받는 절대고결한 마음 앞에선 무장해제 되어버리고 만 것일 테다...
휠체어를 타고 학교에 다시 가게 될 줄은 몰랐지 정음아........... 휘청거리며 학교를 조퇴하자마자 시작된 뇌종양 투병. 그리고 1년 반이 지나서 휠체어를 타고 다시 방문한 학교. 여전히 학교 곳곳에서 과거의 정음이가 툭툭 튀어나와서 엄마는 솔직히.... 여전한 고통과 힘겨운 기억과 싸워야 했지만. 아무렴....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오고 갔던 하루...
선생님 친구들. 모두 고맙습니다....
언제가 될지 아직 기약은 없으나 다시 이곳에 돌아갈 날을 기원하며.
항암 치료 계획을 모두 달성하고 조혈모세포이식 6개월이 지나면 의학적으로 우선 '치료 종결'로 분류가 되나 보다. 정음이도 엄밀히 따지면 5월 8일에 2차 조혈모세포이식을 했으니 따지자면 6개월이 훨씬 지난 '종결 환아'에 속한다... 그리고 치료종결 파티 행사에 초대받았다.
6번의 표준치료 항암. 25회의 양성자 방사선 치료. 2번의 고용량 항암과 조혈모세포이식술.
이 과정을 통과해 내면서도 숱한 변수와 말로 다 할 수 없을 비참과 싸워야 했던 정음이었음을 나는 안다...................... 어떤 문장도 그 순간들을 적확히 표현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정음인 한 번도 지지 않아 주었다. 질 뻔했던 순간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건 정음의 끈질긴 생명력과 의지 덕분이었을 테다.... 나는 그저....... 너보다 더 나약했던 나는 네게 배우며 꾸역꾸역 같이 곁을 지켰을 뿐.... 여전히 어떤 순간들을 생각하면 여러 감정이 치솟아 오른다. 울분. 분함. 절망. 낙담. 비참. 그 과정 속에도 작은 희망과 믿음을 지키려고 애를 무척 써야 했던 시절들.
그럼에도 그저 '감사 '하나로 버티고 버텼겠다. 내내 시혜를 구하는 입장으로 살면서 불안해도 감사합니다를, 좌절하고 울화가 치밀어도 '고맙습니다'를 연신 외치면서......... 나아가고 나아갔다.... 그래서 이 날과 마주하게 된 것일 테다. 결국 정음은 '이 날'과 만났다.
웃을 줄 아는 교수님이라는 걸 사실 처음 뵈었다.... ; 늘 근엄한 모습으로 정음의 치료를 곁에서 진두지휘 하신 분.... 곧 은퇴를 앞두고 계신다지만 그저 평생 나와 정음 마음속에서 살아가실 분... 성기웅 교수님... 무엇보다 감읍합니다...........
집에 누군가 찾아오는 게 거의 드문 일인데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유튜버 분과 만나서 레고 선물을 받기도 하고. 집에서 훈민은 레고를 만들면서 정음이와 시간을 보내고. 정음은 보드게임을 하면서 일상재활 겸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게임을 하고 먹는 연습을 하고. 여전히 구토를 하지만 다행히 12월에 L튜브가 이탈하는 일은 많이 없어서 응급실 방문은 하지 않아서 그저 다행이고 감사했던 시간들....
크리스마스는 '집콕'이었다. 사실 비위관을 달고 기저귀를 차고 휠체어 생활을 하는 정음이를 데리고 어딜 외출하는 건 정말이지 여간 고민을 하지 않으면 쉬이 행할 수가 없는 여전한 일상이다... 독감도 걱정이고. 이러저러한 핑계로 아주 근처나 외할머니댁 아니면 크리스마스엔 그저 집에서 '일상'을 보냈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싶다... 작년엔 그저 모든 나날을 병원에서 지내야 했기에.... 집에서 쌍둥이 같이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내겐 크리스마스 선물 같기만 하다..... 누군가의 평범이 누군가에겐 선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음을. 나는 여전히 정음을 통해 배워나간다... 비참과 절망을 극복하는 어떤 방법들에 대해서.
(집콕엔 케이크 만들기를 해 봤고 '지옥불에서 나온 황천의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는 이름이 붙여진...ㅎㅎ 나름 우리만의 재밌는 기억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
사실.... 욕심이 없다는 말은 완벽한 위선에 가깝다. 왜 아니겠는가. 욕심은 여전히 가끔 생긴다. 좀 더 먹어주면 좋겠고 구토도 그만했으면 좋겠고. 제발 기저귀 떼고 화장실 갈 수 있는 수준의 하체 근력이 생기길 바라고. 딱 한 걸음이어도 좋으니 튼튼히 서 있고 걸어주면 좋겠고.... 남들처럼 우리도 여행 한번 제발 마음 편하게 가 보고 싶기도 하고. 너희들을 데리고 다시 워터파크에서 신나게 물놀이도 하고 싶고...... 외식하러 나가보고 싶기도 하고... 왜 아니겠냔 말이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하지 않는 것과 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끙끙대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 조차 어떤 순간 앞에서는 모두 무력해진다. 그저 평온히 집에서 내 곁에 있는 정음. 같이 있는 쌍둥이. 그 존재 자체가 선물이고 감사인데 나는 무엇을 욕심내고 있는지...
누군가의 화려하고 즐거워 보이는 일상 앞에선 아직 눈과 귀를 닫는 연습을 여전히 한다... 그래야 살아진다... 그리고 다만 우리의 현재에 감사하는 노력을 한다... 욕심도 바람도.... 안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열렬히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정도로도 어디인가. 병원에 입원한 채 떨어져 지내지만 않으면 그게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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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는 데 숨은 공로자는 친정어머니. 그리고 단연코 어쩌면 훈민이 일지 모른다. 소아암 환우가 가장 힘들다지만 사실은 그 환우 곁의 형제도... 눈에 띄지 않는 여러 피해를 보며 지내야 한다는 걸 나는 안다... 내내 인내하고 모든 걸 양보하고. 그럼에도 마음은 한결같이 정음이의 치유와 함께함을 바라마지 않았던 아이. 엄마 없이 할머니 손에 맡겨져 자라주었는데 어느새 집에 와서 보니 너무나도 많은 기특함과 의젓함이 생겼고... 그래서 너무 안타깝고 미안한 순간이 많았고.... 그 또래 아이들에 비해 철이 듬뿍 들어 버린 아이... 해맑음을 잃지 않아 주어서 너무 고마운 쌍둥이...
나는..... 단련되고 무뎌지는 법에 익숙해지고 있다... 압도적 참담과 속절없는 슬픔에 맞서 싸우려면 변해야 했기에. 또한 정음 덕분에 아마 평생 끊김 없는 불안을 끌어 앉은 채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안다. 참으로 지치게 만들지만 또한 굳건히 지치지 않게도 만드는 모순적 존재. 내가 느끼는 여러 고통과 비참함이 아마 투병하는 너만 할 텐가 싶은 부끄러운 매일의 자백과 반성.
도무지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뇌종양'이라는 병 앞에서. 그래도 여기까지 왔고 여전히 나아가고 있다. 나아갈 수 있음과 우리가 우리로 함께 하는 이 순간에 감사하려는 노력으로.
너희들의 성년의 날에 부디 와인을 같이 마실 그날을 다시 이 지면에서 쓸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정말이지 여한이 없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날을 위해 오늘도 힘을 내는 하루... 12월이 지나간다... 정음의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다. 오래오래. 그리고 좋은 이야기들을 더 많이 쓸 수 있는 2026년이기를...
2024년 5월
5/1 : 보행장애, 동네 병원 뇌 MRI 및 정밀 검사 소견서 입수
5/2 : 분당차 MRI 및 긴급 입원 (소아청소년과 - 신경외과 이동)
5/3 : 1차 개두술, 수두증, 션트 (스트라타 1.0)
5/8 : 수모세포종 진단, 2차 종양제거 개두술
5/9 : 중환자실, PICC 시술
5/10~22 : 일반실, 병동생활
5/22 : SMC 대리 진료, 긴급 전원, 퇴원과 입원 수속
5/22-23 밤부터 새벽까지. MRI, CT, X-ray 등 모든 재검사 진행
5/24 : MTX 항암제 1차 투입, 히크만, 골수검사, 요추천자
5/27~6/3 : 1차 항암 A플랜 입원
2024년 6월
6/6~15 : 응급실 재입원.... 열남, 균배양검사 - 중심정맥관 포도상구균 발현
6/20~25 : 2차 항암 B플랜 입원
2024년 7월
7/4 : 혈소판 수혈, 그라신 수치주사
7/7~10 : 조혈모세포 이식을 위한 조혈모 채집 입원
7/19 : 양성자 마스크 제작 및 모의 치료
2024년 8월
7/29~9/2 : 양성자 25회 차 (전뇌전척수 : 13회 차 / 이후 부분 양성자 12회 차)
이후 일주일 간격 피검사-수치주사-헤파린 주입 등 기타 중심정맥관 관리
2024년 9월
9/25~28 : 3차 항암 A플랜 입원
2024년 10월
10/2 : 빈크리스틴, A플랜 주입 끝
10/6~10/12 : 급 응급실 입원 (균배양검사 2회, 기타 항생제 및 수치주사, 적혈구, 혈소판 수혈 등)
10/28~11/1 : 4차 항암 B플랜 (낮병동)
2024년 11월
11/4 : 잔여 빈크리스틴, 피검 ANC 870
11/8~12 : 재입원, 뇌 CT, 션트 재조절 (원복, 1.5 -> 1.0)
11/15 :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초진
11/26~30 : 5차 항암 A플랜 입원 (MRI, 뇌 CT, 션트 조절 2.0 -> 0.5)
2024년 12월
12/4 : 잔여 빈크리스틴, 뇌 CT
12/13,16 : 뇌 CT, 신경외과 외래 (리비전 수술 보류, 현재 스트라타 0.5)
12/26~31 : 6차 항암 (입원, 이식 전 검사 진행)
2025년 1월
1/3 : 잔여 빈크리스틴, 피검 ANC 520
1/6 : 외래, 수혈 (혈소판, 적혈구, 수치주사 등)
1/9~14 : 응급실 재입원, 이식 전 MRI
1/20 : 신경외과, 혈종과 외래, 조혈모 이식 전 교육
1/27 : 조혈모세포이식병동 입원
1/28~2/2 : 1차 고용량 항암
2025년 2월
2/5 : 1차 조혈모세포이식술
2/16 : 조혈모세포이식병동 퇴소, 일반병실 이동
2/26 : 퇴원
2/28 : 혈종 외래 (5h 수액), 이비인후과 청력검사, 1차 보청기 권고 소견 접수 (4월 재검사)
2025년 3월
3/5 ; 외래, 폐렴약 처방
3/17 : 외래 (혈종)
3/24 : 신경외과
3/31 : 뇌 CT (션트 1.5 처방), 신경외과/혈종 외래
2025년 4월
4/7 : 뇌 CT, 션트 1.0 변경 (뇌압)
4/15~17 : 이식 전 MRI 검사 등 (입원) , 션트 0.5
4/21 : 혈종, 신경외과
4/29 : 2차 고용량항암/조혈모세포이식 무균실 입원
2025년 5월
4/30~5/6 : 2차 고용량항암
5/8 : 2차 조혈모세포이식술
5/21 : 조혈모세포병동 퇴실, 일반병실 이동, 머리 X-ray
5/26 : 퇴원
2025년 6월
6/6~8 : 입원 (TPN)
6/16~17 : 입원
6/27~30 : 입원
2025년 7월
7/5~ : 입원, 중증 간정맥폐쇄증 주사 치료 시작 (데피텔리오)
2025년 8월 : 소아중환자실 입원
8/1 : 에쿨리주맙 투여 시작, 고혈압성 망막병증
8/8 : 에쿨리주맙 2회 차
8/13: 뇌척수액 뺌 (30cc)
8/15: 에쿨리주맙 3회차
8/15-18 : 수두증 증세 심각 악화
8/18 : 저녁 9시 VP 션트 리비전 응급수술 1차
8/19 : 오전. PICU 긴급 전동, 응급수술 2차 (배액관, 뇌척수액 감압)
8/20 : 의식불명
8/22 : 의식 찾음, 뇌압 감압 중, 배액관 뇌척수액 200/daily. 중환자실 입원 중 (에쿨리주맙 4회 차)
8/29 : 뇌CT (뇌실 확장 확인. 뇌척수액 250 max치 / daiy , 에쿨리주맙 5회차)
8/30 : 수술 보류, 음압 지속
9월
9/1 : 뇌CT
9/4 : Brain MRI
9/6 : 환청. 환각. 망상.. 음압 -10 (CSF 평균 250-290 배출)
9/11 : 3차 흉강션트술
9/15 : PICU-일반실 전동
9/21 : 퇴원.... (드디어)
10월
10/8 : 응급실 (혈소판 수혈)
매주 L튜브 이탈/교체
11월
주 1회 재활 시작 (90min)
11/24-26 : MRI, UGIS
12월
12/4 입원, 히크만 제거
12/22 치료 종결. 수료
정음이 기억해 주시고 응원 주시며 계속 미진하고 부족하지만 글을 기다려 주시는 구독자 분들. 그저 감사합니다....어느새 12월이 다 지나가 있네요....시간이 참 속절 없고 무심하면서도 시간 만큼 위대한 의지처도 없는 것 같단 생각을 자주 하며 삽니다.
정음의 투병 일기는 인스타 통해서 좀 더 시의적으로 스토리로나마 매순간을 기록하고 있어요. 학교를 다녀온 순간이나 치료 종결의 순간도 좀 더 빠르게 소식을 전할 수 밖에 없었네요;;
https://www.instagram.com/happyheaven21/
올해가 지나기 전에는..... 투병과 간병의 소회문을 써 보고 싶단 생각을 감히 하고 있습니다... 핑계일 수 있겠으나 정말 노트북 열고 두 손을 키보드 위에 올리는 시간적 여유가 너무 없는 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거동을 하지 못하는 정음이를 간병하는 게 무엇이라고, 혼자 있는 시간은 가당찮으며 글을 쓸 엄두 조차 내지 못하는 요즘입니다만.
그래도 쓰고 싶다는 정념은...나날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힘들 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 곳에서 정음이의, 더 밝고 유쾌하고 기쁜 일상의 소식을 더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글, 읽어 주시고 응원 주시고 기억해 주시는 여러분께 정말 고개 숙여 감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내내 강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