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이 비참과 비극의 세계라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일까. 그렇다면 나는 편견이 여전히 대단히 강하다고 밖에는... 달리 말할 수가 없겠다. 참 못나고 부끄럽지만. 현재의 현실은 여전히 바닥을 갱신 중이다. 바닥 그 너머의 또 다른 바닥. 그리고 아닐 것이다 싶었다가도 다시 마주하는 바닥.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던 바닥의 모습... 마녀로 돌변해서 늘 바닥을 치고 마는 인간. 분함과 환멸, 그리고 나아가 타자로 인해 어떤 모멸감까지도 건드려지고 말 땐 이렇듯 바닥을 뚫고 뚫고 또 뚫어서 지하 저 먼 어느 곳까지 지나가야 바닥조차도 '끝'이라는 게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만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것 또한 바닥일지 모를 테지만.
솔직해져 볼까...
'그날'이 여전히 PTSD 마냥 기억의 잔해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대로 참척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 때문에 심장이 그렇게 요동칠 수가 없었고 눈앞에서 철철 피가 지혈되지 못한 채 계속 몸이 꺾이고 말아 버리는 정음... 그러면서 잔인하게도 나는 돌연 이런 생각을 했었다. 뭐가 지옥일까. 이 순간은 분명 생지옥인데 사실은 여태 살아낸 현실 시간도 사소한 작은 지옥들이 많았다. 작은 지옥이 많은 게 지옥일까 아니면 큰 지옥 하나를 마주한 것이 지옥일까. 어떤 쪽이 진짜일까. 어떤 쪽이 더 큰 지옥일까. 지옥 배틀을 하고 마는 진짜 정신 빠진 년이..... 나였다......
참척의 순간을 코 앞에 두고, 기어코 잃을 뻔했던 큰 지옥에서 구사일생처럼 빠져나왔지만 좀 더 솔직해져 보자면 여전히 그렇다고 지옥을 면한 건 아니다. 그럴리가. 아주 작은, 눈에 보이지 않은, 남들은 전혀 상상조차 못할, 정음과 나만 아는 작은 지옥들을 여전히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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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는 모멸감을 느끼고 만다. '그녀'의 말 한마디들에는 냉소와 연한 조롱이 묻어나있기 때문일 테다. 그녀는 나의 친정어머니. 너무나도 손이 깔끔하고 나 못지않게 정음이를 생각하는 그녀의 '가끔' 퍼붓는 저주의 말들이 들리는 날이면 나는 하루 종일 어떤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끔'이라는 부사를 쓰고 싶다.... '종종'이 아닌 가끔이니 괜찮다고.
못 먹는 것인지 안 먹는 것인지 이제는 도무지 분간이 잘 되지 못하지만.... 아무튼 여전히 극소량을 먹는 정음이를 달래다가도 설득하다가도 그 마저 되지 않고 말 때엔 반 협박을 해서 먹게 만든다... 오늘도 그랬다. 12시 정오가 다 돼서야 겨우 일어난 정음이는 늦잠을 잘 잔다.... 일부러 깨우지 않는 데엔 그 만한 이유가 있다. 스트레스가 더 안 좋을까 봐 늘 노심초사하면서도 결국 깨우지 못하고 마는데 그렇게 되면 오전은 그냥 SKIP 이 된 채 점심때나 돼야 뭘 먹일 수가 있다.
꿀떡 한 알. 바람떡 반 개. 사과 반 조각 혹은 귤 한 개. 요구르트 많아봤자 50ml. 아주 후할 때는 사과즙 100ml 정도.... 한 끼에 저걸 다 먹는 게 아니라 한 끼에 한 개.... 즉 점심엔 꿀떡 한 알이 끝. 그런 식............. 그런 식의 연속..... 회유는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회유해야 함이 마땅하겠으나 성질 더러운 나는 회유가 아닌 반협박을 한다.....
CCTV의 우리 모습을 그녀가 지켜보고 있었겠다. 홈캠을 어머니와 같이 연결시켜둔 건 예전부터였다. 믿을 사람이 엄마 뿐이었기에.... 그러나 그건 사소한 트러블을 생성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아무렴. 그러니 바로 전화가 오고 그 전화마저 너무 듣기가 힘들어서 - 그대로 전화받고 있으면 정말 다 그만 둬 버리고 싶었을 만큼의 심정이었기에- 끊으면 바로 카카오톡으로 장문의 톡 메시지가 그대로 연신 주르륵 도착하기 일쑤. 그런 반복의 연속...........
이해는 한다. 정음이는 아이이고 나는 어른이고, 그러니 나는 어른의 품위랄것을 지켜가면서 엄마의 '노릇'이랄것도 제대로 하려면 협박과 분노가 아닌 설득을 하고 달래고 품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그게 되지 못한 채 기어코 징징 대던 정음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내고 날카로운 문장을 뿜어내고 마는 모습을 공교롭게 지켜보신 그녀가 내게 쏘아붙이는 것도 이해는.... 한다. 나만큼 정음이를 사랑하시니까..................... 나만큼. 나만큼.... 정말 나만큼...?
나만큼이라는 것에 자격이 붙으려면 가령 이런 것들을 동등하게 해야 한다고 나는 우습게 생각해버리고 만다.
- 아침 7시가 다 되어서 겨우 꺠우자마자 병원을 데리고 가야 하기에 어르고 달래는 데 익숙해야 함
- 거동이 되지 않는 꽤 무거운 몸을 바닥에 눕혔다 세웠다 앉혔다 일으켰다 반복 또 반복.
- 양손에 똥 묻히는 건 다반사. 설사 갈다가 그대로 설사 해 버리는 그 대참사도 능숙하게 처리하는 것
- 이식방에 갇히는 생활 두 번 정도는 할 것.
- 피가 철철 나고 사경 헤매고 있는데 대응이 미진할 때 별 짓 다 할 줄 아는 미친 똘끼.... (사진과 영상을 제대로 남기고 그 상태를 기록해 가며 의료진과 확실하고 시의성 있는 소통하기 위해, 나간 정신을 반 차리게 만들 줄 아는 그 와중의 이성력과 행동력?)
- 휠체어 끌고 다니며 약국 병동에서 타 온 400ml 12팩 들이 엔커버 한 박스는 거뜬히 어깨에 메고 이리저리 다닐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
- 사용자경험 최악인 진료과에서도 능숙하게 참아가며 진료 다 보고 올 줄 아는 잔머리와 인내력
- 시종일관 징징대는 정음이의 칭얼댐을 침묵으로 인내하며 다른 화제로 돌려서 감정을 휘발시키는 일...
- 중심정맥관 소독이라든지 L튜브 관리 및 TPN이라도 하게 된 날 외래 갈 땐 TPN 마감시키고 헤파린 넣고 유유히 병원행 준비를 하는 익숙한 어떤 노련함
-가끔 입에서 욕 나올 정도로 UX 가 형편없는 이동장애자형 장애인 콜택시 시간을 눈치 게임 해 가며 미리 사전 예약 시키고 time to market 과도 같은 느낌으로 적시에 타고 가고 할 줄 아는......... 사소한 부침들......
-긴장하며 외래 오고 가는 시간들
- 긴장하며 의료진과 '대등' 하게 소통하고 묻고 또 물어가며 '확인' 해 가는 시간........
-그 와중에 훈민 모든 학업 생활 tracking 하면서 최대한 홀 없이 팔로업 해 나가는 일상
-수유방을 따로 쓸 수 없는 '다 큰 사람' 기저귀 갈아줄 공간이 없는 곳에서 기저귀를 갈 줄 아는 행동력.....(우리나라 그 어디에도 '어른용 기저귀 갈이 공간'이 없다는 걸.. 최소한 빅 3 나 빅 5의 병원은 알고 있을까........................................................ 체구나 신장이 작지 않은 아이 혹은 어른이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 그들은 과연 어디서 해치우는가..... 와상 환자들이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 보호자분들도 나처럼 '소파' 비슷한 어딘가를 겨우 찾아서 거기에 눕혀서 디팬드를 가는 생활을 하실까................................................
- 기타 등등...... 그 외 기타 등등의 24시간.... 투병 페이스 러너이자 주 간병인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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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어머니도. 나의 남편도....... '나만큼' 정음이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은 하신다. 물론 일정 부분 말뿐 아닌 '행동'이 수반되는 것도 안다. 그나마 그들이 있어서 이 정도 산다고도 생각한다.... 외면하거나 늘 말 뿐이었거나, 그 말조차도 참 못나게 하는 시댁 사람들과 비교하자면 친정어머니의 은혜와 사랑은 비교할 수 없을 테니.
그럼에도. 그럼에도 말이다............................. 내가 거의 '못돼 처먹은 학대하는 엄마' 수준으로 치부되어 정음이를 케어하지 못하는 이기적이고 못난 엄마라는 식의 조롱이 다분히 묻어나는 비난의 화살을 가족에게 받아야 할 때면 내 억울함과 분함은.................... 고스란히 정음에게 흘러들어 가게 된다. 참지 못하는 날엔 그렇게 되고 만다. 왜? 나는 신이 아니니까. 나는 부처가 아니니까. 나는 그저 한낱 인간에 불과하기에.... 엄마도 인간이기에. (하긴 생각해 보면 그럼 우리 엄마도 인간이니까 딸인 나한테, 간병하는 딸인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지? 본인은 귀가하시면 그만이고 본인은 맘 편히 술 한잔 걸치고 내게 허튼소리 하는 것도 나는 다 받아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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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이 말씀하신 그 시가 유독 생각이 난 건 여러 이유가 있는 요즘이지만 그저 내 요즘이 다시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 정호승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 中, 바닥에 대하여, 창비 -
시인은 위로를 주려 하셨던 걸까. 시궁창 같은 인생에서 그럼에도 '바닥'을 딛고 이겨내려 안간힘을 써도 잘 일어서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사는 데 이유가 딱히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내고 살아가는 것과 비슷한 결에서. 바닥도 그냥 바닥 그 자체일 뿐. 바닥엔 죄가 없겠다. 하긴. 바닥에 죄가 있을 리가. 그저 바닥을 미워하거나 바닥에 처참히 고꾸라진 자신을 참지 못해서 바닥을 비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의 탓일 테지.... 바닥 그 자체엔 이유가 없을 테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바닥' 같은 감정에도 사실은 그리 부정하거나 미워할 이유가 없을진대.
나는 왜 그렇게 통곡했을까. 안방에 나도 모르게 들어가 딱 5분.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신나게 울어재꼈다... 홈캠을 껐고, 동시간대 거실에서는 정음이의 먹는 행위를 회유하다 실패했기에 그저 먹다 남은 떡이 남겨진 접시가 식탁 위에 있었고 아이에겐 원하던 갤럭시 탭을 세팅해 주고, L튜브론 경장영양제를 깔끔히 공급해주고 난 이후.
통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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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바닥일까.
그러나 '그날'에 비하면 바닥은 아닐 것이다.
나는 큰 지옥을 면했기에....... 그 사실을 안다. 단지 작은 지옥을 건너고 있을 뿐
남들은 - 설령 가족으로 맺어진 인연들일지언정 - 절대적으로 알 수가 없는................. 정음을 살피는 나의 시간은.......... 작은 지옥불을 너라는 사랑을 짊어지고..... 꾸역꾸역 건너가는 일..................... 첩첩산중 노심초사 전전긍긍이 일상이어서... 만성피로와 이제는 나 자신조차도 가끔 걱정이 되고 마는 정형외과적 - 허리, 어깨, 경추 부분 등 - 통증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만신창이 되고 마는 심적 피로함이 1년 이상 누적되다 보니 이젠 이상하게 생겨버리고 만 희미한 이명과 선명한 환청. 애 우는 소리와 구토하는 소리. 그래서 화장실에 있다가도 볼일 못 보고 신발 벗어젖히고 토 바가지 가지고 소파로 가 보면 정음이는 토하지 않고 얌전히 갤탭을 보고 있는 현상...... 내 환청은...... 더 심해지는 중이다....... 반년 이상 정말이지 매일 구토하는 아이를 매일 토바가지 몇 번이나 갖다 대면서 토사물을 치워대는 일상을 지내본 사람만이.................. 이 심정을 알까......
가장 여전히 참지 못하고 마는 현상은 구토다......
구토의 횟수나 토사물의 볼륨 혹은 밀도적(?)으로 객관적 관찰을 해 보자면 아주 많이 좋아졌지만 그렇다고 말끔히 없어진 건 아니다. 오랜 항암과 강도 높은 치료는 정음에게 아주 많은 후유증을 남겼기...............................오죽하면 우린 콧줄을 달고 퇴원했을까......
바닥에 대하여.
나의 바닥을 사랑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버리고 만 정오 그리고 지금......... 오늘.
카카오톡을 열어보기가 참 무섭지만 - 또 어떤 비난과 조롱이 섞인 문장이 내게 다가왔을까..... 하긴 그 조차 다 이해해야 할 테지. 내가 잘못한 것이라면. 아이에게 회유를 실패하고 인내에도 실패한 냉소적이었던 엄마였던 내가 다 잘못한 것일 테니............................
휠체어 생활자인 우리 정음이는.. 재활을 시작했다.
그래.........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니 또 울어버렸다... 사실 그랬다. 여전히 그렇다.
내 통곡은 여전하구나... 덕분에....
그래도 훈민이 덕분에 웃고 산다.
그래도 나아지는... 정음이 덕분에 살아낸다.
남편은 더 아파져서 아산을 예약해 뒀고... 친정엄마는 여전히 못마땅하게 날 바라보고 계셔도.....
소아암 투병은.... 여전히 길고..................... 일상을 완벽히 복구해 내긴 불가에 가까울지언정 그 언저리 근처라도 꾸역꾸역..... 정음이는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정음이는 양껏 먹고도 토하지 않을 수 있다는, 콧줄 빼고 살아갈 수 있다는.... 그런 오늘내일의 꿈을 품은 채................
그 어떤 비난도 이겨낼 수 있기를....
스스로 비관하지 않기를....
여전히 많은 비난과 비관과 냉소와 무관심과 싸워내는 현실임을 알기에.
바닥을 쳐도 그냥 바닥임을 이해하고 나아가면 된다..
큰 지옥을 면하기 위해
작은 지옥을 건넌다. 오늘도...
따봉정음아. 고마워.... 그래도 너희들 덕분에 산다...오늘도. 다시. 이겨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