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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19. 2018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기억할게요. 나는 당신의 고유한 그 이름을. 

편지 열여섯) 적어도 나는 기억하고, 또 지켜주고 싶어요. 당신의 그 '이름'을.. 


엄마. 속은 좀 괜찮나요. 

 엉겁결에 아이 둘을 데리고 주말에 친정으로 대피한 덕분에, 당신의 친목 모임에서 연거푸 맥주를 들이켜 마시곤 소위 떡실신이 되어 귀가하신 그 모습, 거의 몇 년 만에 보는 듯했어요. 덕분에 당신의 내면 속 구슬픈 현실을 알게 된 것 또한 새삼스레 다행이란 생각을 잠시 해 보았습니다.


여전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큰삼촌을. 아니 당신의 하나뿐이 없다는 그 피부치들을. 

 당신이 큰삼촌의 근황으로 속상해하실 때, 전 반대로 그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외할머니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어요. 아직도 용서가 되지 않는 걸요. 아니 제가 감히 용서를 하고 자시고 없겠지만 솔직히 저 또한 속상한걸요. 당신이 내게 해 준 말 때문이었나 봐요. 그 목소리가 원체 슬프게 들려서 그런가 봐.. 


그 날이 그랬어.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사고 쳐서 들어갔다고 하고. 전화는 계속 끊임없고. 
.... 
뭔 일이 그렇게 꼬여서 다가온다니. 아빠도 차 사고 때문에 작지만 수리비 물어야 한다고 또 전화 오고. 
엄마... 
도대체 다들 나 없으면 어쩌려고 나한테만 이러는 거야. 
속상했겠네.. 그래서 목소리에 힘이 없었구나. 엄마.
넌 힘들 때 이렇게 비빌 친정이라도 있지. 난 없어. 항상 없었어.. 
엄마..... 
그래서 내가 결심한 거야. 너한테만은 비빌 구석 제대로 만들어 주자고 
미안해지네. 내가 미안해요 
.... 네가 뭐가 미안해. 우리 엄마가 나한테 미안해야지. 누가 그렇게 빨리 가버리래! 
...........


당신 눈에 눈물이 핑 고였을 때 엄마. 난 차마 당신 앞에서 울 수가 없었어요 

눈물은 나오려다가 일부러 크게 웃었다니까요. 정말 일부러 더 크게 웃었어요. 속상한 그만큼. 울먹이고 싶은 딱 그만큼..


심장이 내 멋대로 쿵쿵 뛸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꼭 울게 된다니까요. 그러면 안되는데.


내가 울면, 당신도 무너질까 봐. 


 도대체 당신이 전생에 무슨 죄 아닌 죄가 있었기에. 이런 대단한 짐들을 기꺼이 다 끌어안고 지내셔야 하는지. 제가 다 이상하게 속상 해지는. 오버해서 속상해서 내가 대신 울어주는 그런 날이 있어요. 저번 주말에 오랜만에 다가온 그런 날 중 하나였고요. 아기들을 재워두고 모임이 있으시단 당신에게 '엄마 마음껏 즐기고 오셔'라고 내심 말은 해뒀지만, 어째 불안했다니까요. 역시 불안은 현실로 다가오기 마련인 셈이죠. 친구분들과의 모임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셨겠지만 사실 그 시간 내내 엄마의 마음 한 구석에는 씻기지 않을 얕고 깊은 우울이 깔려 있었을 거예요. 그러지 않고서야 생전 약 드시는 탓에 술 잘 안 드시는 당신이 그렇게 많이 마셨을 리가 없잖아.. 


그때 엄마의 생은 그랬었어요.  

 몇백 원 더 비싼 브랜드가 붙어 있는 국산콩 두부를 사드시지 못하잖아요. 두 배는 비싼 유기농 소재의 브랜드 유제품이나 생필품은 나와 동생에게만 건넸을 뿐, 당신은 값싼 PB 상품의 가성비를 따지기 일쑤였죠. 생필품을 절약하고 씀씀이는 줄이고. 그렇게 가계부를 쓰고 정리정돈 살림의 여왕으로 일까지 척척...


 그 모습은 물론 늘 두고두고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엄마..

 당신은 정말 열심히 살아낸 본보기만은 분명할 테니까. 그 덕에 지금 우리들이 있다는 걸 알아요. 그렇지만 엄마. 요즘 들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가 있어요. 아주 선명하게 조금씩 더 수면 위로 드러나는 감정은, 어쩌면 제가 당신 같은 엄마가, 여자의 모습을 일상에서 발견했을 때 이상하게 저리는 마음이 들어서 그런가 봐요. 그런 치열한 생이 다 무슨 소용일까 싶은 그런 표현할 수 없는 마음 말이죠. 


 당신이 원하는 모든 걸 하면서 살았더라면. 

 맞아요. 어쩌면 지금의 내가 우리 집이, 당신이, 지금의 현실이 있지도 않았을지도 모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 제가 엄마에게 이러저러 말할 자격, 어쩌면 일절도 없을지 몰라요. 그럼에도 엄마. 이상하게 속상해집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대가가 고작 지금 와서 여전히 식구들의 뒤치다꺼리가 끊임없는 고달픈 시간들을 경험해 낼 때마다. 꾹꾹 참고 별 대수롭지 않게 흘러가다가도 한 번씩 터져 나오고 마는 그 슬픔과 인내의 한계들.. 왜 모르겠어요. 엄마. 나는. 나만큼은 그 마음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버린걸요. 나도 아주 조금은 그랬던 적이 있었던 만큼. 왜 모르겠어요. 그 서글픈 시간들을. 내 이름을 잊어버리고 살아야 겨우 살아지는 그 시간들을.. 


그래도 꽃은 꽃일거예요. 가려지고 어두워 지는 그 시간들 속에서. 당신도 내겐 '꽃'이었어요. 언제나 늘...


 당신은 그렇게 일상 속에서 자신을 위한 설렘이나 만족을 버려야 했었겠죠. 

그래야 살아지는 시간도 있었을 테니까. 분명 그랬을 테니까. 만약 그런 당신에게 남들이 '바보'라고 왜 '자신을 나답게' 살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 타인들이 참 잔인한 걸 거예요. 


'나'라는 이름을 잃어버리고 누군가를 위해 사는 삶도 있는 법이죠. 
나다운 걸 강조하는 누군가의 말들이 그래서 때론 얄밉고 잔인한걸요. 


 그렇지 못하는 삶이 있다는 걸 부정하고 다짜고짜 도와주진 못할 망정 얕은 비아냥을 할 뿐일지도 모를 테니까. 그러니 엄마. 이제야 고백하건대 내가 한때 당신에게 얼마나 잔인했었는지, 전 이제야 두고두고 후회합니다. 엄마에게 언제나 엄마답기를 강요했었던 나 같아서... 아마 평생 죽었다 깨나도 다 씻을 수 없을 거예요. 내가 당신에게 건넸던 잔인한 그 비수 돋는 말들을. 


고단했었으니 이제부턴 괜찮아져요.. 당신 그럴 자격 있어요. 

 태어날 때부터 누가 그렇게 지긋지긋하게 가난한 집에서 남동생 둘을 가장처럼 건사하라고 시키던가요. 그 어린 나이에 배우고 싶은 거 배우지도 못하고 다 '남'동생들한테 양보하라고 시키냔 말이에요. 가르치면 뭐하든가요. 결국 악착같이 혼자 학교 나온 당신만도 못한 채 큰삼촌은 그리고 작은 삼촌은. 누나를 위하던가요? 당신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병문안 한번 제대로 찾아오신 적이 있으시던가요. 치매 걸린 부모 봉양하는 건 결국 팔은 안으로 굽었던 딸들이 아니라 큰며느리였던 당신이잖아요. 죽어서도 부모 제사에 며느리만 진수성찬 상다리 휘어지는 그 상들을 다 차려내고도, 어디 고모들이 제삿날 찾아와서 고마움 한번 비춘 적이 있던가요. 그런 당신의 수십 년 삶에 누구 한 명 나서서 손 잡아주던가 안아주면서 따뜻하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주는 사람이 있냔 말입니다.. (미안해요. 감정이 좀 격해졌네요) 


애석하게도. 미안해요 엄마. 저는 그래서 그 누구도 쉽게 용서하기 아직 힘들 듯합니다.

 끝까지 외할머니를, 친할머니를, 그리고 아빠를 쉽게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아니 일찍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도. 그냥 다 미워져요. 미안해요 아직 이렇게 못난 딸입니다. 당신이 이름을 잊고 산 그 세월들이 요즘 들어 이상하게 서글퍼 지니까. 몸 여기저기 고장 난 부품들로 가득한 것 마냥 이젠 약봉투 달고 살고 그럼에도 여전히 식구들 뒤치다꺼리 해 내야 하는 당신의 여전한 그 삶이... 그렇게 살아온 힘겨운 생. 이제야 자식들 다 키워내 별 일 없이 잘 지내야 마땅한 당신은 여전히 가끔 속상해서 눈물 바람에 불쑥 날 아프게 만드는 기억을 가지며 사니..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곁에 있길 바라요 

 엄마는 태어날 때 엄마가 아니었어요. 당신도 잘 알고 있다시피. 물론 감추고 살았던 딱 그 정도의 인내심으로. 역할극을 그 정도 다 짊어지고 살았으면 이젠 됐어요. 타고난 이름이 버젓이 있으나 그 이름 석자 그대로 오롯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한 생, 이제부터라도 당신의 이름이 좀 더 많이 묻어 나오는 '오늘'이기를 바라요. 


희미해진 이름이어도, 다시 찾을 수 있어요. 마음이 있다면. 언제나 마음이 먼저니까... 


오늘의 이름은 '당신'이었으면 좋겠어요. 


엄마. 당신 생각을 하다가 결국 두 번째 책 제목을 이제야 마음에서 굳게 결심 내려 봅니다 

 오늘의 이름이 '나'이고 '당신'이기를 바라는 이 감춰진 제 마음을. 이렇게나마 여전히 어리석고 어린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저 또한 당신의 도움이 여전히 필요한, 무거운 가족이겠지만. 그럼에도 엄마 난 당신의 이름을 지켜주고 싶어요. 이제부터라도. 나 하나는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겠다고. 


 속 편하게, 숙면 취하기를. 당신이 오늘은 더 그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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