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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14. 2018

기억해요. 아낌없이.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기억'들에 대해서... 

편지 열다섯) 아낌없이 기억하고 싶은 '영원한 존재'가 당신에게도 있기를..


엄마. 올해 3월은 제가 또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은 기억이 생길 듯해서 벌써부터 설레요. 

 무슨 일 있냐고요? 네.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곧 생길 것 같아요. 걱정은 마세요. 나쁘지 않은 일입니다. 저로서는 설렘과 기쁨이 충만한. 그러면서 이상한 애절함과 애틋함에 잠 못 이루는 그런 일 말이죠. 


 글 쓰는 요즘의 시간을 '잠시 멈추고 현실에 충실하기를' 바라는 당신과의 작은 실랑이가 있었던 속상했던 지난주의 밤도 무색하리만큼 지나가고 있네요. 여전히 저는 이렇게 생겨 먹은 듯 당신껜 송구하나 쉽게 멈출 수 없답니다. 아니 아마 당분간은 멈춰지지 않을 것 같아요. 


뇌가 말하는 것보다 언제나 심장이 먼저였어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게 '나'인걸요..

에필로그와 프롤로그를 계속 보고 있는 요즘입니다. 

 오늘은 디자인 작업도 같이 출판사와 병행해 나가며 의견을 주고받았어요. 당신에겐 별 시답지 않은 그리 대단치 않은 일이겠지만. 엄마. 이건 제게 '일'이 아니라 '꿈'이고 '바랐던 상상'이었고 '끌어오고 싶었던 장면'이었답니다. 그러니 이 시간들 조차 기억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소중하고 애절했던 딱 그만큼이요. 4년 전 몸과 마음이 아프기만 했던 해의,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이성적인 내용의 첫 번째 책 작업과는 사뭇 또 다른 뭉클한 감동의 시간이 요즘 저와 함께 합니다. 아마 당신은 모르실 거예요. 그 해 제가 어떤 마음으로 그 책을 써 내려갔는지...  한데 이번 에세이 작업은 그보다 몇 십배는 더 뭉클한 애절함으로 가득해요. 왜냐면 바로 '기억' 때문이에요. 


오늘을 흘러가다 만난 당신과 나의 어떤 날들에 대한 기억 때문이에요. 


 사랑과 이별, 사람에 대한 기억들에 대한 기록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당신이 그랬듯이. 그리고 제가 그랬듯이. 어쩌면 당신도 아주 작게나마 '내 딸이 그랬었구나' '그때 그런 마음이었구나' '그 속이 그런 마음으로 가득했구나'라고 말씀해 주실 수 있다면... 엄마. 저는 죽기 전까지 당신께 못다 한 말들. 살아 숨 쉬는 이 생 중 반절만큼은 당신께 제 진심을 간접적으로라도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간절한 마음 하나만 가지고 지금 써 내려간 글들을 퇴고하고 정리하고 꾸며보고 있는 시간이니 말이죠.


“이혼… 할까? 하고 싶어.” 
“정말 원해?” “(모르겠어)….” 
“이러려고 결혼하지 않았어. 아직 그럴 수 없어. 우리….”


이 대화들이 오고 갔던 예전 시간 속 기억들 덕분일지 몰라요. 

어쩌면 그 아팠던 날들로 인해 조금은 성숙한, 아니 어쩌면 여전히 당신이 보기에 한참 미숙한 제가 흘러넘치는 감정을 글로 쓰면서 여기까지 와 닿은 것 같아요. 좋게 보면 그 시간들도 모두 제겐 글감이 되고 상상의 원천이 되며 언제나 감각이 살아있는 예민하고 세심한 생생함을 유지하는 캐릭터로 오늘을 흘러온 덕에. 지금도 있는 거겠죠.. 그렇겠죠 엄마. 이왕이면 되도록 좋게 생각하려 하는 요즘이네요. 그래야 좀 더 편하게 살아지니까. 


흘러가는 이 시간들이 예전엔 참 싫었어요. 멈추고 싶었죠. 그러나..흘러가보길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이기적인 요즘이예요. 


이혼이라는 단어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강력한 무기이자 최선의 방어수단이었어요. 

당신에게 차마 그런 날들이 꽤 있었다는 걸 글을 쓰면서 넌지시 당신께 고백했어요. 초고와 퇴고를 거치며.. 얼마나 그 안에 숨겨진 제 이야기들이, 당신을 향한 내 시간들의 고백이 전해질 지 모르겠지만요. 


당신은 차마 세상을 향해 말하지 못한 마음과 감정선들을, 저는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걸지 모르겠습니다. 결혼 전에도 여전히 사랑하고 이별하고 사람에 상처받고 세상에 휘둘렸던 모지고 후졌던 제 시간들의 고백을... 그만큼 못났고 기대고만 싶었던, 여전히 기대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나약함을 말이죠. 


 데이트를 할 때 결혼이라는 단어를 이용한 것처럼 결혼 후엔 이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니까. 

 그 단어는 이상하게도 그 어떤 협박보다 강해서 상대를 더 아프게 내리 치는 걸 저는 알고 있었던 걸까요. 심신은 지쳐 있었고 정확히 말하 자면 내가 지치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무튼 그랬었죠. 아프지 않은 연인과 부부, 그런 사람 관계는 사랑하는 데 사실 흔한 게 맞아요. 때때로 보는 당신과 아버지의 모습에서도. 우리 두 사람도 그 흔함의 영역에서 어긋나지 않았었죠. 서로가 상처를 안고 사는 평범한 부류였으니까.. 


 여하튼 엄마 이런 기억을 이야기 하자는 건 아니지만, 성급히 치러낸 결혼의 대가는 쓰고 무거웠다는 걸. 

넌지시 그렇지만 홀가분히 원고의 한 챕터인 '사랑의 시간'을 쓰면서 몇 개의 기억들 덕분에 요즘은 겸손하고 또 이만큼이나 다친 상처가 아물어져 이렇게 살아가고 있구나 라고 새삼스러운 경이로움마저 느낀답니다. 온 심신은 이미 감정싸움으로 지쳐 있는 상태였던 그 기억들에 비해서.... 


두고두고 꺼내보고 싶은 기억은 분명 있어요. 

 엄마의 그 기억이 사실 전 요즘 더욱 궁금해져요. 당신이 표현하지 못했던, 감추고 싶은 은밀한 당신만의 비밀 혹은 어떤 소중한 기억들... 가족을 향하는 것이라는 어떤 사회적 프레임에 갇혀진 기억들 말고. 온전히 당신만 알고 있을 기억들 말이죠. 사실 저는 그 기억들의 절반은 (살아온 겨우 고작 이 나이 까지겠지만) 이번 책에 온전히 다 담아내 보았어요. 자 그러니 제가 40개의 이야기를 해 드렸다면 제게 최소한 한 개쯤의 당신의 고백을 저는 듣고 싶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격, 감히 주어질까요... 


듣고 싶어요. 당신만의 이야기를. 
그전에 제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음으로 그 감춰진 은밀한 내면들이 펼쳐졌을 때. 너그러움이 부디 함께 하기를.. 

그건 어쩌면 당신과 진심을 주고받을 줄 아는, 우리가 꽤 깊은 사이가 되었다는 무언의 느낌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엄마. 이제 곧 몇 주 후면 정말 쓰고 싶었던... 진심으로 담아내고 싶었던, 죽기 전에 털어놓고 싶었던 몇 가지의 에피소드들을 포함한 모든 이 생까지의 고백들이 담긴 책이 나와요. 제게는 참 간절했던. 그러나 당신에게는 그다지 별 일 아닐지도 모르는. 그렇지만 무언의 진심과 울림으로 다가가기를 바라는. 그런 이야기들의 모음입니다. 


4년전 혼자 비행기를 탔던 그 시간에, 상상했던 게 나타나서..그래서 더 뭉클해요. 그 마음과 감각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어서.


이 편지만큼... 이번 책의 이야기가, 그리고 출판 이후의 기부까지도... 

기부에 대한 감춰진 이야기는 다음 편지에서 들려 드릴게요. 엄마. 네. 저는 제 코가 석자임에도 이젠 '세상의 가려진 나머지 절반의 삶'에 대해 생각하며 살게 되었어요. 다 이유가 있다니까요. :) 


“여전히 사랑하고 있어. 이렇게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원고 속 이 문장을 보다가 문득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서 몇 자 적어 대는 밤 11시가 넘어가는 지금입니다.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그렇지만 무언의 간절함과 뭉클함으로. 감사한 몇몇 이름들과 존재들에 대한 이 사라지는 기억도.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어요. 


아낌없이 기억할 것 같은 3월. 당신에게도 이런 기억이 있다면. 꼭 말해줄래요. 기다릴게요.. 당신의 이야기를. 

그전에 기다려 줄래요. 곧 당신에게 다가갈 저의 이야기도.. 


잘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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