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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r 08. 2018

믿어요.  

그것도 사랑이라고. 

편지 열넷) 꿈을 더 이상 슬퍼하지 않고 싶어요. 그러니 엄마. 조금만 더 믿어줄래요. 


엄마. 잘 지내고 있어요? 저도 잘 지내고 있어요. 아니, 이게 잘 지내고 있는지는 사실 모르겠어요. 

 사실 시간을 그냥 흐르고 또 흘러가 보고 있다는 게 더욱 실감이 나는 요즘이거든요. 무슨 일 있었냐고요? 무슨 일 없어요. 아니, 거짓말. 미안. 지금 거짓말했어요. 뭐 일이야 늘 있기 마련이죠. 크고 작게. 다만 일일이 그걸 어떻게 다 말하거나 보여주면서 살겠어요. 그냥 사는 거지. 그렇게 살아보는 거죠. 그렇죠..


어제 아이를 데리고 부득이하게 회사까지 오고 말았어요. 네. 그랬다니까요. 

 큰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다가 갑자기 아프니 데려가는 게 좋겠다는 선생님 호출에 하던 일을 멈추고 부리나케 택시를 타고 찾아갔다니까요. 근처 소아과에 가서 대기하던 중에 검지 손가락으로 찡해지는 코끝을 연신 눌러야 했어요. 언제 아팠냐는 듯이 휴게실에 사자 인형과 으르렁 거리며 놀고 있는 첫째 둥이를 보니 이상하게 눈물이 나려 하는 걸 그렇게 겨우 참아냈죠. 


당신 생각이 났어요. 

 내가 아팠을 때. 쓰러졌을 때.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덜컹거리는 철제 침대에 딱딱하게 마른 목석처럼 그렇게 누워 있었을 때. 당신도 그랬을까요. 별거 아닌데. 참 별거 아닌 그저 흘러가면 추억이고 기억이 될 법한, 사라지는 기억 중 한 부분일 텐데. 다만 그때의 '현재'라는 시간은 지나간 '과거'가 아직 아닌지라, 어느새 빨개진 눈의 당신도 코끝을 눌러야 했을까요. 그랬을까요. 


별 거 아닌 것이 그때는 별거 같이만 느껴져요.
마주하는 그 순간은 다 그런가 봐요.


걱정 말아요. 아이는 무사했어요. 

 모세기관지염이래요. 언제나 그랬듯이. 목과 코가 부어있어서 그렇게 울고 불고 새벽에 잠을 못 잔다 했더니, 다행히 열은 없고 약을 먹고 잠시 쉬면 나아질 거라는 의사의 무심한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제서 안심이 좀 됐죠. 그러나 그 이후에 바로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어요. 보고해야 했던 회사 일을 미처 처리하지 못하고 그냥 나와 버렸고, 아이는 어린이집에 데리고 갈 수 없고, 집엔 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그 진퇴양난의 상황. 


택시를 타고 냅다 회사로 아이와 함께 갔어요. 

 네. 그런 적은 또 처음인지라 나름의 시트콤을 연출해 내야 했죠. 회사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사무실에서 노트북을 챙겨 가지고 약 1시간 정도 아이를 옆에 두고 일을 했다니까요. 바로 어제의 일이지만 그 1시간이 어찌나 진땀 나던지. 그래도 참 다행이었던 건 역시 회사도 사람 사는 곳(?) 인가 봐요. 절 아시는 동료들이 대충 지나가면서 십시일반 몇 분씩 안아주고 달래주고 보여주기도 (그놈의 핸드폰) 하시면서 무사히 보고를 마치고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타고 다시 집으로 올 수 있었답니다. 


정말 별 거 아니죠 엄마. 네. 별 거 아니었어요. 근데 엄마. 제가 마음이 아팠던 건 이상하게 나를 가장 마음 아프게 하는 방법을 잘 아는 당신의 한마디 때문이었어요. 네. 전 사실 당신에게 내심 서운했답니다. 


애나 잘 볼 것이지 자꾸 쓸데없는 거 하려니까 그런 거잖아.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그렇지만 미안했었나 봐요.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그렇지만 엄마 사실 난 쓸데없는 걸 하려는 게 아닌 걸요. 흘러가는 시간을, 마음을, 삶을. 그 안에 내가 깨닫고 해내고 싶은 것들을.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미처 하지 못했던 사라지는 목소리들을.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이젠 좀 더 정성껏 적어 내리고 싶을 뿐인걸요.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죠. 책이 곧 출간될 예정이고 그 덕분에 원고를 교정해 나가는 시간이 빠듯하고... 네. 모두 제가 저지른 일이라는 걸 알아요. 시간과 체력이 여의치 않지만 강렬하고 절박한 무언가에 사로잡힌 이 살아있는 마음 하나만 잡고서 그렇게 비틀대면서도 웃어도 보며 울어도 보며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이 고마운 요즘인걸요. 아프기도 하지만... 당신의 차가운 한마디들이 쌓일 때면. 그렇지만 엄마 이게 저인걸요. 이해해 주실 순 없을까요. 이건 바로 제가 원하던 바라던 꿈이었으니까요. 


꿈이라는 녀석이 그래요. 조금만 더 , 조금만 더, 손 뻗다보면 곧 다가올 것만 같아서....바보 같아도 그럴 거 같아서.


내게 하찮아 보이는 것이 누구에겐 '꿈'처럼 절박하기도 하잖아요. 
남에겐 별 거 아닌 것이 나에겐 별 것이 되기도 할 테니.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 져요. 꿈을 꾸는 게 그렇게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인지. 

 물론 이루지 못할 꿈을 꾼다는 건 때론 허무하고 지루하죠. 힘겹기도 할 테고.. 그래도 엄마. 없는 것보다 저는 늘 있는 편이 좀 생생했어요. 살아있는 느낌이랄까요. 쳇바퀴 같은 일상, 누군가들이 정해 놓은 규칙과 일상에 맞추어 그렇게 나를 꾸역꾸역 프레임에 맞추려 나가는 그것들에 반항하고 싶은가 봐요. 반항의 가장 큰 무기가 다름 아닌 글쓰기였고. 그래서 좀 더 나만의 반항 무기를 잘 해 내고 싶었고, 바보 같지만 누군가들과 함께 보여주고 같이 공감하고 또 무언가를 이뤄 보기도 싶었고..


그래도, 아이가 아프다 하면 모든 건 다 정지 모드예요. 

 엄마라는 역할을 해내기 시작했을 날부터 저의 뇌는 엄격하게 통제를 받나 봐요. 뇌에서 통제받은 의식은 곧장 입술로 다가가 목소리로 번져요. 그러니 어린이집 선생님께 대뜸 지체도 하지 않고 말했겠죠. 지금 곧 가겠다고, 조금만 기다려 주시라고. 곧 간다고. 어느새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요. 하던 걸 뿌리쳐내고.. 


  당신은 나를 가장 마음 아프게 하는 방법을 여전히 잘 알아요.
나 역시 그렇겠지만.. 


 우리는 그래서 모녀인가 봐요. 

그래도 알아요. 진심이 있다는 걸. 거기엔 '걱정'이라는 또 다른 사랑의 형태가 살아 있다는 것을. 그러니 기를 쓰고 마음에서 잠시  일어났던 나의 끈질긴 서운함과 애석함은 사그라져요. 비록 시간이 걸릴 테지만. 당장은 은 없어지지 않아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제발 중요한 게 뭔지 깨달으라고, 아이를 먼저 생각하라'라고 잠시의 핀잔을 주신 당신에게 저는 할 말을 잃은 채 그저 미안하다고 죄송하다는 말 뿐이었죠. 모든 정당화된 저녁시간을 허락받았음에도. 주체하지 못하는 이 죄책감을 당신으로부터 다시금 인정받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저는 오늘 제가 꾸는 꿈이, 그로 인한 이와 같은 모든 행동들이 잠시 슬퍼졌어요. 


그래도 엄마. 비록 부질은 없을지언정 오래도록 외워왔던 주문을 생각하면 또 괜찮아져요. 

 지금 당장 보이지 않는 길이라고 못 가는 건 아니라고. 그래 못 가는 게 아니면 된다고. 그냥 가려하면 되는 거야 라는 작고 힘없는 주문이요. 이러면서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여전히 훅 파고드는 매서운 목소리에 툭 하고 쓰러질듯한 저는, 참 여전히 스스로 어이없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충분히 아는 모양인지 금세 눈물은 쏟아지고 말아요. 요즘 왜 이런 거죠. 왜 이런 걸까요... 


눈이 가끔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떠 있지만 보지 않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당신도 그럴 떄 있어요? 


 아이의 감기를 두고 지금 하는 생각이 너무나도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해도 언제나 마음이 주인인걸요. 저 또한 살다 보니 이런 표현할 수 없는 '엄마의 딜레마'를 여전히 경험해 내고 있고요. 당신이 그러셨듯이. 당신이 내게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숱한 목소리들이 그랬듯이.  


그래도 엄마. 결국 내 것일 수밖에 없는 온전히 내 책임인 이 삶을
되도록 덜 후회하고 싶어요. 그래서 그래요.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어쩌면 저는 자유를 언제나 원하지만 사실은 여전히 끊임없이, 어쩌면 끝끝내 자유롭지는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집착이라는 걸 이러저러 형태로 하고 있으니 말이죠. 알량한 딸의 이름으로, 미안한 엄마의 자리에서. 꿈이었던 작가의 시간으로.. 


잠깐 찾아와서 속이 울렁거리고 배꼽 밑에서부터 무언의 통증이 훅 하고 다가오지만 저는 이 느낌에 대고 '안녕'을 말해봅니다. 이 순간 그럼에도 따스하게 감겨오는 모든 나의 떨림을 그저 이렇게 미약하게나마 전해 보면서 말이죠. 


당신에게도 떨림이라는 게. 끌림이라는 게 있었다면. 이해할 수 있나요 
제가 걷고 있는 이 길을. 이 삶을. 이 시간들의 떨림과 끌림을...
그래서 그냥 걸어가 보는 시간들을. 



곧 책이 나와요. 

 엄마.. 또 한 번, 에필로그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 당신과 주고받은 짧은 전화를 뒤로 한 채, 그럼에도 써 내려가는 지금.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싶은 저는. 이 말로 오늘의 편지를 대신해요. 


당신이 날 믿는 만큼 대신 흘러나오는 그 차가운 말속에 담긴 뜨거운 걱정과 사랑. 그보다 더... 나는 당신을 믿어요. 믿고 싶어요. 당신이 나를 그럼에도 믿어주고 있다는 걸. 잘 걸어가고 있는 저를 믿어주고 있다는 그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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