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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pr 04. 2018

그럴듯해진다는 것

내가 만든 내 삶의 '그럴듯해진다는 것'

편지 열일곱) 타인에게 그럴듯한 삶이 아닌 나로서 그럴듯해지고 싶나 봅니다. 여전히...



잘 지내고 있었어요?

그동안 편지가 뜸했죠. 미안해요. 요즘 신나고 긴장되는. 뭉클한 어떤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그랬어요. 시간이 없다는 핑계는 둘째고 '마음' 이 그럴 세가 없었다는 게 어쩌면 진짜 이유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뜸하고 쉽게 당신께 편지를 쓸 수 없었어요. 그러다 이제야 이렇게 손을 움직여 봅니다. 정신을 좀 차린 모양입니다.


엄마. 전 끝없이 누군가의 부러움을 쫒는 그런 아이였던 것 같아요. 아니 그랬어요.

 질투가 많고 욕심도 많은. 타인들의 인정과 이해를 넘치게 받고 싶어 했던.. 그런 아이. 그런 여자. 그런 사람. 엄마는 짐작하셨을까요? 우리가 간혹 부딪히거나 사소로운 것들로 싸우는 것들도 알고 보면 제 '자아 근성'이 너무 강해서 부딪히는 것들이었을 테죠.


책 나왔다며
아... 엄마 어떻게 알았어?
내가 왜 몰라 네 일인데. 말 안 해도 알지.
....
고생했다. 애 보랴 일하랴 그 와중에 책까지


딱 여기까지의 대화였으면 정말 눈물 나도록 좋았을 텐데. 그렇죠 엄마. 그러나 역시 엄마는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세요. 아요. 당신의 그 걱정 어린 마음. 거기에 담겨 있는 애정을.그치만...


이제 그만하면 됐으니 일하고 육아에 집중해. 좀 덜 바빠지겠지?그만 쓸꺼지?
...한 권으로 끝낼거면 시작. 안했어.
네 생각해 니 몸 생각.
엄마.....


사랑이 내 상상대로 전해지고 전한다는 건. 역시 쉽지 않아요 그렇죠 엄마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아무 이유도 조건도 스스로의 잘못된 해석 없이 오로지 그냥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순수히 전하고 또 전해진다는 것. 일종의 표현하는 것? 뭐 이런 것들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 어렵구나,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이 세계에 정말 아무것도 없구나 라고 느꼈던 순간이었죠. 실 엄마. 사실은 말이죠. 너무하셨어요.네.  제가 아플 법한 중요 치부를 또 그렇게 건드려 주셨잖아요. 그렇지만 알아요. 모녀는 그렇게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따갑게 하면서도, 결국이 다쳤을 때 서로가 찾는 그런 존재.... 치부가 치부를 위하는 그런 관계라는 걸.


엄마. 전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바라는 장면'이 다가오지 못할 때..

 무언의 절실함을 언제나 느끼곤 하죠. 아이 낳고는 '시간'과 '자유'에 대한 결핍이 생겨서 그런 걸까요. 요샌 좀 더 심해지는 느낌마저 들 때가 있어요. 예컨대 이런 마음이에요. 퇴근하고 길을 가다가 차에 치여서 뇌사 상태에 빠졌는데, 그것이 덜 후회되는 삶을 살기 위해 '현존'하고 싶다는 마음. 혹은... 만약 누군가 회사에서 제게 '너 해고야'라고 했을 때 (극단적이긴 하다만) '그러시든지요'라는 기세로 다소 초연한 마음으로 업을 대할 줄 아는? 즉 하루살이라는 단어가 미안할 정도로 그 '하루'들이 최선과 최대로 덜 후회하고자 마음에서 바라는 모든 것들을 최대로 이뤄내는 24시간이기를... 뭐 이런. 얼토당토한 저만 이해될 법한 가치관들이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 있어요. 시들게 하려 해도 이젠 쉽게 사그라들지도 않을거예요. 마음이 이미 움직임으로 변하기 시작했으니까.


언가를 이뤄낸다는 건 그 감정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착과 강박은 좋지 않죠. 좋은 플러스 기운은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약간의 긴장되는 집착. 그리고 결핍을 해소하려는 애씀의 강박... 아주 약간은 지니는 게, 저 같은 사람에겐 또 다른 동기 부여와 실행력을 되려 얻게 해 주는 듯해요.


그래서 때론 그 애씀이 강해지기 위해 가면을 쓰기도 하죠... 마음이 좀 덜 요동치라고. 단단해 지라고..


 때문에 저는 엄마가 생각하는 '그럴듯한, 혹은 평범한' 그 기준에서 자꾸 엇나가려 했었나 봐요.

 사실 누구나 그럴듯한 학교를 나오고 그럴듯한 직장을 얻고 그럴듯한 차를 굴리고 그럴듯한 배우자를 얻으려 하죠.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신물이 난다 해야할까요. 아니면 배가 부른 탓도 있죠.  딱 '그럴듯한' 삶에서 좀 나오고 싶었나 봅니다. 그럴듯한 인간이 되고 싶은 시절이 없다고는 수 없지만... 엄마.


그럴듯한 사람은 많지만 정작 내게 '그럴듯한 삶'이 드문 이유는 어쩌면..
그럴듯한 것은 결코 온전한 그런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미안. 말장난 같죠.. 표현이 쉽게 되지 않네요.

올해도 꽤 큰 소설 공모전에 도전을 해 볼 작정이에요. 그래서 아쉽게도 엄마의 기대와 그럴듯한 안정적인 삶(?)에서 벗어날 듯해서. 미안해요 엄마.


그래도 이렇게 살아보려고요. 그러니 조금만 더 이해해 줘요. 아니 누군가의 인정과 이해를 여전히 바라는 나약한 마음의 저는, 조금 더 당신에게 그럴듯한 게 아니라 '나에게 그럴듯한'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엄마..


글은 유일하게 가면을 벗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니까..


죽음이라는 게 다가오기 전에. 가급적 살아있는 이 순간만큼은 그렇게 살아보고 싶습니다. 아직은..

 미안해요. 여전히 이렇게 어리고 여려서. 가끔 감정이 주체하지 못해서 여전히 약하게 남아있는 우울증 탓에, 예전만큼 잦진 않지만 오늘 같이 심장이 두근 거리는 어떤 날 어떤 순간을 맞이하면 이상하게 울렁거리면서 먹은 것들을 게워내기 일쑤네요. 거식증이 완벽히 치유되지 않은 듯 합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이렇게 당신과 제가. 연결되어 있으니. 살아있어서. 그래서 표현할 수 있어서. 이 아무 말 대잔치의 그럴싸한 자기 합화적인 변명과 표현일 지라도... 당신에게 이렇게 전할 수 있는 살아있는 시간이 뭉클한 요즘. 그리고 오늘입니다.


봄이 왔어요. 흘러넘치는 이 마음. 이 주체할 수 없는 이상한 마음. 실체든 체든 찾지 못한 채, 그저 시간의 흐름에 맞춰 흘러가듯 따라가 봅니다.

당신도, 물 흐르듯. 좀 더 편안하기를... 언제나 당신의 안녕과 편안함을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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