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편지
헤븐이 마음에게, 마음이 헤븐에게
"헤븐"
편지를 쓰기 시작한 지금. 오늘의 너는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을까.
시간이 흘러 오늘이 되어 언젠가 이 편지를 다시 꺼내 보게 되었을 때 부디 웃고 있는 너 이기를..
말하고 싶었어. 잘 견뎌내고 있다고.
그럴 힘이 아직 남아 있다고.
결국 지금의 고통스런 시간이 지나가고, 너의 하루는 다시 반복될 거야.
새벽에 다시 눈을 뜨면 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거야.
여기서 나가면, 회사도 다시 다니게 될 거고...
돌아가면 아마 10년차를 바라보겠지.
한 곳에서 오래 일했다는 것은 그 인고의 시간들 자체만으로도 기특해...
시간이야 물론 더디게 가겠지. 한동안은.
원래 아픈 기억은 약하고 순수한 사람일수록 꽤 오래 남는 법이니깐.
사실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걸 안다.
지긋지긋하지. 좀 편하게 살아도 됐을 법 해도, 악착같이 살아야 겨우 살아지는 삶.
넌더리가 날 법도 하니깐.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네 속을 알 수 없겠지.
그러나 나는 잘 이해하고 있어. 아니 이해하고 싶어.
내가 바라보고 있다고, 계속 네 곁에 있을 거라고...
"마음"
고통이란 횟수를 떠나는 법일까.
한번은 견딜 수 있었어. 그러나 비슷한 아픔이 반복되면
왜 하필 나한테 계속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회사에서도 나를 다 외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내 몸 속으로 들어온 이 아이들도 나를 외면하는 거야…..왜 견디지 못하는 거야 도대체 왜.
네 탓이 아니야. 라는 말을 기대했었어.
그러나 그는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어.
침묵이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라면, 사실 이제 그 침묵이 넌덜머리가 나기도 해.
몇 년을 울리기만 할 거면 도대체 왜 나를 선택했을까..
"헤븐"
오해야. 자꾸 그를 탓하지 마.
사랑해서 결혼한 건 그 사람 뿐 아니라 너도 마찬가지인 네 선택이잖아.
물론 선택을 급하게 했었다는 걸 알아.
새로운 현재를 맞이해야 할 수 있는 현실의 절박함이 있었다는 걸 안다.
그때 네 곁에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단 것도 말이지.
어쩄든 그도 너만큼 상처 받고 있다는 걸 알면서 모르는 척 하지 마.
그도 너의 독한 한마디, 비수를 꽂는 한마디들을 견디면서 살고 있다는 걸 왜 모르니.
"마음"
글씨가 안 써져. 자꾸만 글썽여져.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눈물만 나와.
한 단어도, 한 문장도 앞으로 나가지지가 않는다.
알잖아. 내가 살려고 이러는 거. 미친 사람 마냥 원고까지 붙들고 앉아서, 이 상황에 그런 책을 낸다는 게 말이나 되는지. 이런 짓까지 하고 있는 거 내가 살려고 그런다는 거 누가 알까.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
"헤븐"
그냥 그대로 나아가보자.
그리고 당분간은 네 속이 진정될 때 까지 내가 들어 줄 테니, 멈추지 말고 계속 내게 편지를 써줘.
항상 기억해. 너무 그 마음에 빠지지 말아줘. 부탁이야…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걸 기억해.
돌아갈 사람이 있고 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를 제발 기억해줄래
오늘은 이쯤에서 너를 보낸다.
정리되지 못한 생각으로 나를 괴롭히는 때가 있었다.
불면증으로 약 일년을 시달리고 나면 온 몸이 때론 무감각해져 그 시간이 익숙해진다. 그리고 항상 비슷한 시간인 새벽 세시와 네 시의 어느 언저리 자연스레 눈이 떠진다. 지금이야 물론 많이 치유(?)되어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나는 의식은 깨어 있으나 일부러 잠을 청하려고 억지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지냈다.
누구나가 한번씩 고통의 트라우마를 마음에 담고 산다. 상처가 생기고 난 이후엔 늘 주변의 무심한 듯한 위로와 침묵이 뒤따른다. 우리 스스로는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려 해도 사실은 피폐한 삶을 유지하기 시작한다.
난 두 번의 유산을 겪었었다.
아이를 잃었을 때 마다 그 쓰디 쓴 마음을 어디 뱉어 놓을 곳이 마땅히 없었다. 궁지에 몰려서 더 이상 출구가 없는 어둠 속에 갖힌 그 느낌. 공포스럽고 무서운 그 순간, 흐르는 눈물만이 유일한 내 친구였다. 그때 난 필사적으로 펜을 들었다. 노트북을 켰다. 그렇게 내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 마음의 시작이 내가 글을 쓰며
‘일상명상’을 시작하게 된 처음이었을 듯 싶다.
내게 말을 걸기 시작하는 순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던 그 순간은
여전히 생생하다.
산다는 건 기쁨과 슬픔을 갖고 무엇을 하는 것의 일상일 것이다.
별것이 없다. 3년 전에 시작한 나의 편지는 지금 다시 돌이켜 읽어보면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암호가 가득한, 의문투성이 문장들로 가득하다. 허나 공통된 것은 대부분의 단어와 문장들이 두서가 없고 절묘하게도 어두운 단어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유산의 충격과 동시에 날 그렇게 만든 모든 원인을 외부 세계에서 찾았었다. 그래서 더 힘들었었던 나였으니 힘든 사람이 쓴 글은 힘들 수 밖에 없다.
마음의 독백
혼자 남겨졌다는 생각에 휩싸여 한시도 끊임없이 마음의 독백을 잇곤 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바로 지금, 속에서 이런 말 들린다면 우린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마치 이렇게 지껄이는 읊조림도, 사실은 나이고, 당신이고, 듣는 것 또한 내 자신이고 당신 자신일 수 있다. 마음속으로 외친 말들을 듣는 상대는 이 세상에 없다. 사실 유심히 살펴보면 내 마음속의 독백들이 원하는 건, 단지 좀 마음 편안한 어디 쉴 만한 공간을 찾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내 스스로가 편해지고 싶어서, 엉뚱하게도 왜곡되지만 마음의 소리가 시끄럽게 내 안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이런 게 아닌데…’
마음의 소리가 외치는 현실 세계의 모든 부정을, 막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할 지 모른다. 이 끊임없는 속을 향한 어두운 지껄임에서 조금씩 자신을 해방시키는 최선의 길은, 어쩌면 거기서 물러나서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일 뿐일 지 모른다.
생각하지 말고 그저 지켜 보는 연습
결혼 해서 유산을 하고, 설상가상으로 회사에서는 부서가 바뀌고 다시 나름의 일상을 겨우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겉으론 멀쩡했다. 때로는 참 완벽히 일도 처리해 나갔다. 집안과 집밖에서 꽤 스스로 흐트럼 없이. 그러나 사실상 그 하나하나를 해 내고 있는 내 자신의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어 바닥을 긁어 내려가는 듯한 삭막한 느낌. 그건 지울 수 없었다. 그 모든 감정들을 끌어 앉은 채 지속하는 일상이라는 시간은 사실 고통스러웠다.
남들과 주고 받는 일상의 상냥한 말도, 내 스스로 정나미 떨어지는 말을 하든 거칠고 저속한 말을 하든 우아하고 고상한 말을 하든, 사실은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모두 내가 하는 말과 행동들이었다. 괴리가 찾아오고 분리된 삶을 사는 느낌이었다.
그 무렵 수취인 불명이 되어버린 편지를 참 많이도 썼다. 그에게 그녀에게 내 자신에게...그렇게 누군가들에게 보내는 나의 마음 고백을 그렇게 글을 쓰며 버텨냈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연습이라는 걸 뒤늦게 지금은 생각된다.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또 다른 어두운 나의 내면과 마주했을 때, 이게 정말 내 모습인지 믿을 수 없었으니깐. 앞으로 이 고통에서 벗어나서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의문으로만 가득 찼을 때, 그 무렵 30대에 들어선 내가, 가장 책과 가까운 시간을 보낸 이유도 그 때문일 지 모른다.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한 고전과 철학서들과 함께 보낸 밤시간들 덕에, 지금도 명확히 정의할 수 없으나 나는 그 안에 숨겨진 단 하나의 진리가 보이는 느낌이었다. 이는 말로도 글로도 명확히 정의 내릴 수 없다.
그 추상적인 느낌은 단지 우리들의 삶 속에
‘경험’을 통해서 ‘느껴야’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지금 당신이 외쳐대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의 고백들이, 사실은 어느 것이 진짜 자신이 원하는 목소리인지를 알아내려고 끙끙대는 그 순간 조차, 내면의 목소리가 하는 말이 부질 없는 것이라고, 그것이 말할 때 사실 무엇을 어떤 이유로 하는 지 그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라면을 끓이다가 끓는 물에 넘쳐서 계란 물이 흘렀을 때를 떠올려 보자. 끓는 물을 적시에 꺼 내지 못했기 때문에 흘러 넘치는 것들. 즉 내 안에 진정으로 발산해 내야 하는 마음의 근원적 에너지가 조용히 숨어 있다는 증명일 테니깐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나갔을 때, 내 꿈에 한발 짝 다가가려고 악착같이 노력했는데, 그 꿈이 저 멀리 자꾸만 도망가 버릴 때. 배가 고픈데 돈이 없을 때. 이렇게 모든 삶의 경험들을 유지해 나가며 부딪히는 현실 세계에서의 이벤트 들을 맞이하다 보면 우리는 그때 비로소 불안과 두려움, 고통을 느끼기 마련이다.
유산을 하고 결혼을 했으나 그 생활이 가히 행복한 시간의 연속이 아니었고, 아니라는 걸 인정해 버렸던 나 또한 마음 속의 에너지와 진짜 살고자 하는 삶을 향한 욕망의 에너지가 쌓여있었었다. 그런 순간 우리 마음의 목소리도 꽤 활발해 짐을 느낀다. 또한 특별히 힘들다거나 평범하고 편안하다고 생각되는 삶을 지속하고 있을지언정 뭔가 마음의 씁쓸함을 느낀다면, 사실은 당신 목소리는 여전히 지껄이고 있는 걸 지 모른다
‘사실 네가 진짜 원하는 건 그게 아니잖아…’
어떤 생각이든 마음 속에서는 이룰 수 있었다.
그 무기가 내가 가진 특기였고, 그건 다름아닌 '상상'이었다. 상상하는 걸 참 사랑하는 편인 나란 여자는, 내가 만들어 놓은 그 상상이 때론 결핍된 삶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음을, 그래서 나를 더 힘겹게 했음을 안다.
‘난 소설을 쓰고 싶어. 그런데 아무도 내 글을 알아봐 주지 않아.
지금 그가, 그녀가 너무 보고 싶어. 그런데 그는, 그녀는 날 봐 주지 않아....'
그렇게 내 마음의 놀이터에서 어디 가지도 않고 죽치고 앉아서 생각을 만들어 내고 주물럭거리는 일에 매우 익숙했던 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알 것 같다. 세상을 원하는 대로 바꾸지는 못할지언정, 내 마음 속에서의 세상을 나는 얼마든지 바꾸어 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그래서 글을 쓰기도 하는 이유는 어쩌면 내 마음이 이렇게라도 하지 안으면 당장 불안에 빠짐을 느끼기 때문일 지 모르겠다.
편지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땐 아직 살아갈 날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그게 사실 그게 틀린 생각이었음을 몇 십장의 편지를 써 내려가면서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왜 사람들이 책이 성공해봤다는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사랑하는 것들을 향해 몰입'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프롤로그에도 밝혀두었지만, 앞으로 이 공간에서 여러분께 공개될 약 서른 세 장의 편지는 바로, ‘나를 찾아가고자 했던, 그래서 진정한 자아를 향한 성장을 갈구하는 한 사람이 추구하는 비밀’ 에 대한 이야기가 될 지 모르겠다.
이제 나의 두 번째 편지가 곧 시작된다.
그건 가짜 감정과 이별을 하기 위한 연습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난 그때 알 지 못했다. 그 연습이 훗날 나를 변화시키는 참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연습이었다는 것을.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