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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ug 31. 2018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내가 기억할게요. 당신의 그 이름을.

편지 열) 아껴주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고유함, 그 이름대로의 삶을.


서로의 이름을 불렀을 때. 심장이 뛴다면,  여전히 아끼고 또 기억하기 때문일 겁니다..






당신은 언제쯤 편안해질 수 있을까

내가 뭐라고. 멋대로 그런 생각을 가끔 합니다. 당신의 삶을 내가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게 아니고, 반대로 내 삶 또한 누군가 대신 지내줄 수도 없는 노릇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몸이 아팠어도 치러야 하는 집안 여러 대소사를 씩씩하게 해치워 놓고는 '숙제 마쳤다' 했던 쓸쓸함이 묻어 있는 당신의 목소리. 그리고 혼자 들이켜 마셨던 맥주 한 잔을 기억합니다. 자주 같이 마셔주지 못해서 미안했어요. 엄마.. 요샌 어리석게도 이런 뒤늦은 후회를 자주 합니다. 술친구든, 여행이든, 대화든,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일상이든. 정작 쉽게 하게 되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는 걸 그땐 몰랐었죠.



마음은 미루면 안 되는 거였어요.
그때만 할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은 특히 더..



그렇지 않아도 슬픈 일이 많았던 당신이었단 걸. 그땐 몰랐습니다.

고단했던 밤이 그치지 않았다는 걸 나는 잘 몰랐었나 봐요. 그랬으니 말은 언제나 쉽게 나왔었겠죠. 씩씩하다가도 문득문득 약해졌던 당신의 모습이 내게 들켰을 때. 곁에서 해 줄 수 있는 건 고작 이런 것들이 전부였습니다. 들어주거나, 같이 마셔주거나, 혹은 맞장구쳐 주거나. 그렇지만 그것도 계속하다 보니 지치더라고요. 나도 천상 이기적인 사람이다 보니까...



"그만 좀 하셔. 그렇게 화내는 거. 지겹지도 않아?"
"네가 뭘 알아."
"그놈의 제사는 좀 못 끊나... 구닥다리야 정말. 언제까지 진수성찬 차려놓고 조상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데. "
"됐다. 그만해. 제사? 그런 거 별거 아냐. 너네 키우는 거? 일도 아니다... 다... 견딜 수 있어."
"그럼 뭐가 제일 힘든데. 힘들어서 지금 이러는 거잖아. 식구들이 다 엄마 눈치 보고 있잖아."
"... 내 눈치 본 사람들이 한다는 게 왜 이모양이야. 정작 나 위해준 적 진짜 있기나 해 다들?"
"엄마..."
"..... 망할 놈. 니 큰삼촌..."
"....."
"지긋지긋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식구들 뒤치다꺼리하면서 지내야 하는 건지..
".... 엄마.. "
"왜 사는지 가끔 모르겠어."
".... 이제라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되지... 내가 도와줄게!"



잠깐의 위로가 당신의 무거움을 해소시켜주기에 충분하긴 했었나.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새치 혀로 나불대는 말은 단지 스쳐가는 위로. 딱 그뿐인 것을요. 심적인 도움이 될지언정, 물리적인 본질적 해결방안이 되어주진 못하잖아요. 한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거야'라고 시건방지게도 입버릇처럼 말했던 저를 후회합니다. 당시에도 들어주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한 모습 또한.


그래도 엄마. 그럴 때 당신한테 꽃 한 송이 건넬 수 있었던 식구. 여기 있었는데. 기억해요? 울먹이면서도 좋아했었잖아. 어쩌면 이걸로 충분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우린 서로에게 그렇게 필요하고 또 쓸모 있는 존재들 아닐까. 그만큼 싸웠어도 그만큼의 마음이 서로에게 있으니 다 가능한 것들일 테니까.


꽃 한송이는, 누군가에겐 그 이상의 역할을 하기도 하죠. 소박해도 마음만 제대로 담긴다면..



"그날도 그랬어.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사고 쳐서 들어갔다고 하고. 수습하라는 전화는 끊임없고."
"..... 못났다. 엄마 동생.."
".. 일이 꼭 그렇게 한꺼번에 몰려와. 네 아빠도 차 사고 났어서 작았지만 수리비 필요하다고 전화 또 오고."
".... 사람 안 다쳐서 다행이지 뭐. 엄마... "
"도대체 다들 나 없으면 어쩌려고.. 그런다니..."
".... 아니 그러게! 일은 참 그렇게 지랄같이 한꺼번에 찾아와서 우리 엄마 괴롭히고 난리야. 혼내줘야겠네!."
".... 난 힘들 때. 누구 찾는다니. "
"..... 엄마....."
"... 너한테만은 비빌 구석 제대로 만들어 줄 거야. 친정이 잘 살아야 해."
".... 괜히 미안해지네."
".... 네가 뭐가 미안해. 우리 엄마가 나한테 미안해야지. 누가 그렇게 빨리 가버리랬냐구."

 


당신 눈이 빨개졌을 때, 차마 당신 앞에서 울 수조차 없었습니다.

가뜩이나 울보였던 내가. 그 와중에 울면 정말 두 여자가 궁상의 극치를 달릴까 봐. 애써 다른 농담들 해 가면서 일부러 크게 웃었다니까요. 그래. 일부러 더 크게. 정말 크게 웃었어. 내가 속상한 만큼. 당신이 울고 싶은 딱 그만큼만...



내가 울면, 당신도 무너질까 봐.




 


자신의 이름을 생각할 겨를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걸 하면서 살았더라면. '지금'은 없었을지도요. 사실 우리 삶이란 완벽히 내 힘으로, 내 이름만으로는 절대 이뤄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저도 누군가를 '키우고 보듬고 살리는' 입장이 돼 보니 말이죠. 누군가의 포기나 희생으로 인해 귀한 현재가 생겨나기도 한다는 걸 알수록 삶을 대하는 태도가 더 겸손해지기도 합니다. 특히 당신에게 더 미안해지기도 하고요. 열심히 살았던 결과가 여전히 식구들의 뒤치다꺼리로 인해 고달픈 시간을 통과하는 당신을 가끔 마주하면 더더욱. 마음이 아파집니다...


나만큼은. 당신의 그 마음. 아주 조금은 이해하고 있다고, 감히 전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리고 이 말도 해 주고 싶었어요.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 대신 누군가를 위해 사는 삶도 근사하고 멋지다고.



 

외로움은 두려움을 동반해요

그래서 당신이 외로웠고 두렵기도 했다는 걸 압니다. 알았음에도 씩씩하게 모른 척도 했었습니다. 강한척했었죠. 우리 둘 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에 괜찮다는 말로 늘 감추기 일쑤였었죠. 그렇지만 이제 우리, 살다가 잠깐씩은 풀어져보는 건 어떨까요 엄마. 아주 잠깐 동안은 말입니다. 약해질 권리, 잠깐 멈출 권리, 숨 고를 권리가 우리 삶에 있다는 걸. 쓸데없는 소리 또 한다고 핀잔하실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쉴 틈이 좀처럼 없었던 당신에게, 휴식같은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



누군가의 이름을 서로 불러주고 기억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될 테니까.



당신이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괜찮습니다. 내가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당신의 이름을 오늘은 불러봐야겠습니다.

외할머니 대신에. 더 넘치는 사랑을 담아서.. 성에 찰 지 모르겠으나 그로 인해 미소 한번 짓는 당신을 그립니다. 그러면 충분할테죠.


우리. 되도록 잊지 말고 지내보는 걸로 해요. 엄마.

당신의 이름. 그리고 내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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