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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04. 2018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당신은 잊었을지 모르는 어떤 기억에 대한 단상

 "얼마나 사랑해줄 수 있나요."

".... 아낌없이."

그는 잊었을지 모르는 어떤 기억은, 종종 나를 건드린다.
아낌이 없다 했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고 두 사람 사이엔 어느새 아껴야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사랑도 그랬다. 아끼다 보니 어느새 감춰지거나 드러내지 못하는 시간들이 생겼다. 결혼 이후에 찾아온 새로운 세계를, 그와 함께 통과해 나가면서, 외로움과 공허함이 남겨지기도 했다. 내가 사랑했던 그는 온데간데없어졌었다고. 한때 그렇게 믿었다. 그와 나는 조금씩 멀어져 갔다. 뜨겁게 달궈져 있었던 마음은 그렇게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세상에 휩쓸리고 삼켜지고 끝내 너덜너덜해졌을 때.
그에게, 그녀에게. 우리는 달려가 안겨야 한다. 그래야 한다. 현실이 피폐해져 바닥에 가라앉았을 때. 치유를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바로 '사랑하는 대상' 이 존재하는 그곳뿐일 테니까.


지는 석양을 같이 보고 싶은 사람. 당신은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는걸. 우린 이제 잊고 지내는 것 같아서 가끔 외로워지기도 해..


상처 입은 '나'를 받아 줄 누군가가 곁에 있어 주기를. 언제나 바랐었다. 어리석게도.
사랑해 주기를. 그리고 '주고 또 받기'를. 그러나 우리는 때로 망설이고 주춤거린다. 사랑을 향해 막상 발걸음을 떼었어도 어느새 방향을 잃고 그대로 멈춰 서며 때론 어느 곳에도 갈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사랑을 하다 보면 그렇다. 한쪽의 사랑이 강하다 보면...


내가 먼저 잡고 연결해야 겨우 이어지는 사랑도 있을 테니까.




그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거슬렸었다. 어딘지 모르게. 나를 의식하지만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는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은 의식해 주기를 바랐던 걸지 모른다. 나를 발견해 주는 누군가를 그토록 바랐던 적이..있었다.  그러다 어느새. 보고 싶고, 듣고 싶고, 만지고 싶고. 우린 서로가 그랬던 걸까. 아니면 누가 더 먼저랄 것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고 있다는 건 내겐 바로 저것들이니까. 고 싶고 그리워하며, 목소리를 듣고 싶고 결국 마주했을 때 만지고 싶게 만드는 것들. 그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일 테니까.






그에게 기대고 싶었던 어떤 날이 다가왔고 나는 그를 선택했다.  

결혼제도에 들어감으로 인해 내 곁에 계속 함께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외롭지 않을 거라고 난 착각했었을지 모른다. 그로 인해 때로 찾아올 외로움도 생길 거라는 걸 그땐 몰랐으니까. 쓸쓸함을 감내할 각오가 부족했던 걸까. 일상의 반복 속 익숙함이 쌓여서 생긴 무덤덤한 반응, 때로 침묵과 부재까지도. 힘겨워 그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정작 곁에 없었던 그와의 시간을 통과할수록 그제야 깨닫는 것이 생겼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약자가 된다는 것을. 정말 약해진다는 것을.




그렇게 멀어졌다가도 우리는 다시 가까워졌다.
아니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른다. 아이들.. 아이들이 생겼으니까. 한 명도 아닌 둘씩이나. 그러니까 난, 정말이지 잘 '지내야' 했다. 사랑보단 그저 그 시간을 '잘 흘러가야' 하는 것에 한껏 긴장을 하며 온 신경과 마음을 두루 쓰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한때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로 사랑 타령을 하며 고민했던 내 시간이 무의미하게도 느껴질 때도 생겼다. 한 사람이 아닌 세 사람과 부대끼며 살다 보니. 이제는 그들을 사랑하기에도 버겁고, 그만큼 벅차오르는 일상이 쌓여가고 있다.


완전한 한 사람으로서의 사랑을, 진하게 갈망하지 않지만.. 잊은 것은 아니다.
도 욕망할 수 있는 사람이고 여자라는 걸 외면하려 하지 않는 이런 '나' 때문에... 외롭거나 서글퍼지거나 때때로 밀려오는 비겁한 상상마저도 여전히 하고마는 어리석은 나이지만. 다만 이 마음 모두 부둥켜안고, 또 다른 사랑의 크기를 경험해 나가볼 뿐 일테다. 세상의 어떤 텍스트로도 감히 표현 못 할 부모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을. 남녀 간의 욕정이나 욕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깊이와 커다람을. 이제야 조금씩... 하루가 다를 만큼 애잔한 무언가도 느끼고 있다.

맨 정신으론 한 번도 못한 말이고 이젠 쉽게 할 수도 없는 말일지 모르지만.
그때 내가 당신을 더 많이 좋아하고 사랑했다는 걸. 이젠 그 사랑의 느낌이 달라진 게 서글프지만 대신 가족이라는 연결고리로 맺어진 새로운 우리 둘의 사랑 또한 난 계속해서 열심히 사랑하려 한다는 것을.  매년 그이의 생일에 맞춰 편지를 적으며 자랑스레 내밀곤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조용히 말해 본다.


당신과 곧... 떠나게 될 여행을. 난 오늘도 그린다. 자유롭겠지. 미국에서의 우리 두 사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인간만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거라고도.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고 했다.
그러니 우리 둘은 죄가 없다.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표현의 결이 다른 게 죄라면 죄일 뿐... 때론 서로의 관계에서 상처 입히고 또 상처받는 것도 어쩌면 다행이고 반가운 시간일지 모른다. 그로 인한 일상의 작고 큰 삐거덕거림이 있다는 건. 결국...



내가 당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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