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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ug 29. 2018

안녕, 스트레스.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없어질 것을 알기에. 

숨길 수 없는 눈물은 끝내 흘러나왔다. 
그날은 하루 종일 중요한 외국 바이어 미팅이 잡힌 날이었다. 혼자 제품 샘플을 들고 회의실을 들락날락, 고객 의전을 위한 하나부터 열까지의 모든 세팅까지. 혼자 해내고 있는 날이었다. 모든 걸 마치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점심시간. 모두 식사를 하러 나갔을 때 오후 회의 준비를 위한 사소한 것들을 챙기고 있을 즘이었다. 


전화가 울린다. 이상하게 떨린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어머니. 여기 어린이집인데요. 정음이가 계속 토하고 미열이 나서요..
아... 
혹시 일찍 하원은 불가하실까요 
네.. 제가 바로 다시 전화드릴게요.



처음은 아니지만 매번 겪을 때마다 심장은 세차게 뛰기 시작한다. 
비빌 구석이라곤 친정 아니면 신랑. 그러나 그 둘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잠깐 머문 걸렸던 내가 보인다. 아껴두었던 연차는 거의 동이 날 지경이며 무엇보다 하필 오늘이 중요한 고객 회의라니. 


그때부터였을까. 모든 감정들이 밀려오기 시작하며 어느새 차분함을 상실하기 시작한다. 그리곤 눈물이 떨어지려 하는 찰나. 한편으론 정신이 말짱해진다. 우선 전화기를 든다. 어린이집에든, 친정엄마에게든, 신랑에게든.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들에게 각각의 양해를 구한다. 모든 중요 회의를 취소하고 오후 반차를 내어 신랑이 달려갔다. 이로서 상황 종료인 줄 알았으나 여전히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마음은 새어 나온다. 그러다 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친정엄마다. 



나 안 가봐도 돼? 너 또 지금 질질 짜는 거 아냐? 
... 엄마 병원 가야 하잖아. 괜찮아.. 신랑이 휴가 내기로 했어. 
그래. 김서방이 연차 낼 수 있으면 내야지. 언제까지 너만 아등바등할 거야.
... 그이. 나보다 바빠....
김서방만 바쁘냐 너는. 
... 의사 결정권 자니까. 챙겨야 할 팀원들도 있고... 그 사람 팀장이잖아.
별 수 있냐. 
응....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걱정 마요.
알았다. 밥 먹어 이것아. 점심시간이야. 






오후 6시 30분. 회의가 끝났다. 무사히. 그리고 아무도 모를 것이다. 
얼마나 혼자 아등바등 대며 숨 가빴었는지를. 알 턱이 없고 알아주기를 바라서도 안된다. 이곳은 '개인'이 중요해선 안 되는, 그저 딱딱한 심장을 가지며 이익집단 무리에 속해야 버틸 수 있는 '회사'라는 공간이니까. 


헐레벌떡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 문을 연다. 욕실 안 욕조에는 쌍둥이들과 그이가 깔깔대며 신나게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둘째 아이와 눈이 마주쳤고 아이는 웃어주었다. 그 찰나의 순간 역시 주체할 수 없는 뜨거움이 목구멍을 타고 바깥으로 터져 나왔다. 결국 다시 주저앉아서 울고 말았다. 요즘 이렇게 눈물이 많다. 아니 요즘이 아니라 늘, 울보였다. 나란 인간은 울보로 태어났나 보다. 


둘째가 장염에 걸렸었단다. 병원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지만 그전까지는 몰랐다. 몰랐으니까 아침에 소파에 온통 토를 해놓았던 지라, 소파를 비롯한 거실 전부가 토사물로 가득했었다. 그것을 일일이 치우고 환기를 시키다 보니 어느새 출근 시간은 지나 있고 회의는 준비해야겠고 그야말로 엉망진창으로 시작해 버린 하루였었다. 


누군가에겐 살고 싶은 하루라고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걸 생각하며 살 겨를이 줄어들고 있다. 

그러고 싶지 않지만 어느새 그렇게 된다. 타인에게 너그럽고 유약한 인정을 베풀고 싶어도 결국 내가 힘들고 아픈 게 제일 견디기 힘들다. 역시 참 이기적이고 못됐다. 사람이란..


모두가 나만 쳐다보게 되는 것 같은 이상한 무거움. 그것이 요즘 나의 주요 스트레스의 원인이다.  
부여된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당연한 무거움. 그게 내가 감당하기에 때로 버겁고 벅차올라서 결국 감정은 쉽게 무너진다. 아이가 아픈 것도 몰랐던 채 토 했다고 화를 냈었던 나 자신에 대한 분노. 양육과 보육에 있어서 언제나 펑크 나 버리기 일쑤인, 일하는 엄마로서의 죄책감. 곁의 그이에게 잠깐의 짜증을 내 보지만 역효과로 사소한 싸움이 번지기 일쑤... 


이성이라는 신경과, 긍정이라는 감정으로 아무리 마음 챙김을 하며 단단하게 무장하고 있다 한들 동시에 몰려드는 사소한 일상의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삶이 흔들려 버린다. 여전히 이렇게 약하다. 스스로 주체할 수 없는 불안과 위협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히기라도 하면 결국 터져 나오는 건 눈물뿐이다. 


예전엔 몰랐다. 예전이라 함은 정확히 말해서 미혼 혹은 아이 없는 기혼 시절엔 정말 몰랐다. 

이런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를... 어떤 텍스트로도 감히 표현해내기가 쉽지 않다. 그 오묘하고 복잡한 감정선을. 나도 모르게 떨리는, 뛰고 싶지 않지만 어느새 뛰어 버리는 심장을. 누군가에게 '어머니'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다만 이런 스트레스와 불안의 상황이 종종 발생하다 보니 어느새 나라는 인간은 상황에 적응을 해 버린 걸까. 약간의 대처 근육이 생기기도 한다. 예컨대 이런 것. 눈물을 흘리는 것도 10번이면 5번으로 줄어들기 시작하며 어떤 날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리기도 한다는 사실. 


혼자 모든 걸 해 내려하다 보니 이런 스트레스가 생기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침묵'과 '감사'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마음에 수시로 달고 산다. 특히 고마움에 대해서. 표현은 서투르나 이 와중에 날 도와주는 - 심적으로, 물리적으로 - 사람들을 향한 감사함을 표현해야 그나마 살 수 있어지는 것 같아서. 


나의 미안함과 동시에 쌓여가는 이상한 억울함이 정화되는 것 같아서. 



어쩌면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나의 강력한 무기는 바로 이런 사소한 말 한마디들이겠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 물론 그것도 현재의 나에겐 고마운 스트레스 정화 도구가 되었지만, 사실 그것들은 '시간'을 요한다. 현업을 해나가며 양육을 수행하고 더불어 출간을 위한 원고 작업이라는 사이드 프로젝트까지 수행하려 하는, 꿈 또한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여러 사람 귀찮게 하고 피곤하게 한다는 소리를 듣고 살면서도 꾸역꾸역 해내려 하는 나에겐 쉽지만도 않은, 그것들이 오히려 다 버든으로 느껴지기도 일쑤인 것을....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낮이 지나면 밤이 되는 게 순리인 것을.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서 우리는..힘든 건 아닐까...


그래서 선택한 가장 쉽게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스트레스 대처법은 바로 이것. 마음 속이든 입 밖으로든 이 말을 꺼내 보는 것. 이것뿐이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괜찮아. 고마워. 미안해 용서해..'


새벽녘, 실눈을 뜨며 서서히 일어나는 내 얼굴을 누군가 쳐다보고 있다. 
첫째 아이다. 만 세 살이 채 되지 않은 훈민이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리고 '엄마' 소리를 한다. 눈물이 또 나려 한다. 요즘은 이상하게 아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뭉클해진다. 어제까지의 모든 스트레스는 이미 말끔히 해소된다. 


충분할지 모른다. 

이렇게 오늘을 살아가며 따로 또 같이 시간을 각자의 곳에서 흘러가고 있는 현실을 여전히 '살고' 있다면. 그래 이것으로 정말 충분하다고 중얼거리며 아이의 작은 손을 조몰락 거려 본다. 그리곤 다시 반복되는 일상의 하루를 시작한다. 스트레스에게 안녕을 말하며. 


안녕, 스트레스. 네가 있음으로 언제나 긴장을 달고 살지만 한편으론 그 덕분에 나 또한 좀 더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믿어 본다. 그럼에도 널 자주 마주하고 싶지도 않다. 


시간이 흐르면 네 존재도 없어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러니 오늘도 그저 무사히 하루가 '잘' 흘러가고 있기를..  되도록 좋은 순간들이 많으면 좋겠지만. 굳이 그러지 않더라고... 이젠 괜찮다며.




#퇴사할때가되어가는걸까     #점점더자신이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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