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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ug 24. 2018

수면 위로 올라가, 금기에 닿았을 때.

인간계의 실체를 들여다본 인어공주는 행복했을까.

편지 아홉) '상냥한 폭력의 시대'지만, 괜찮습니다. 믿어 준다면. 그리고 믿는다면.


가려진 내면을 들여다 보면 또 다른 '나'를 볼 수 있죠.  아주 깊숙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르는 어떤 실체들을.





한때 챙겨 보던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일하는 기혼녀의 - 아이는 없고 - 서스펜스 심리극인데, 영상과 캐릭터들 대사 하나하나는 가히 압권이었어요. 현실 속 수면 밑에 가려진 어떤 것들을 대신 '보여주는' 것 같았거든요. 당신과 같이 드라마를 봤다면 제게 어떤 말을 해 주셨을지 사뭇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엄마도 나도 '일하는 기혼자' 니까. 물론 아이가 있는 우리들은 주인공과는 다른 환경이었겠지만. (차이가 꽤 크죠. 아이의 존재 유무는..)


주인공은 방송국 아나운서입니다. 사회부 말단 기자를 시작으로 9시 뉴스의 메인 자리를 꿰찬 그녀의 뉴스는 곧 팩트라고 믿을 만큼의 신뢰와 명성을 쌓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녀가 쌓아 올린 완벽함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고 아슬아슬하게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지를.


하루가 다르게 치고 올라오는 젊고 유능한 후배들을 견제하려면 함부로 늙을 수도 없답니다.

게다가 부장검사 승진을 코앞에 두고도 국선 변호사 명함을 파온 남편과는 각방을 쓴 지 수 년째. 설상가상 아이도 낳지 못하는 며느리라는 시어머니의 질책도 견뎌야 하고요. 주인공 이름 석자엔 성공한, 그 나이에도 아름다운, 모든 걸 가진 여자. 그래서 닮고 싶은 여자라는 수식어가 언제나 붙지만 정작 실체는 이럴지도 모르겠어요.


행복을 가장하며 스스로를 속이고 사는  사람



그녀는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삶의 가치관을 고수하지만, 정작 모순적 삶을 선택합니다.

때론 정의롭지 못한 비열한 방법을 감내하니까요. 적폐. 악의 축들을 상대하려 소위 '악녀'를 자처해요. 심지어는 가족들에게도요. 신혼초, 임신을 했지만 그 사실을 숨긴 채 배우자 몰래 임신중절 수술을 했던 탓에, 남편을 비롯한 그녀의 최측근 가족들에겐 그야말로 악녀가 되고 마는 셈이죠.


대한민국에서 배부른 상태로 뉴스 진행하는 여자 봤어? 시청자들도 기대 안 해. 오히려 화내지.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아. 근데 임신하면 모두 끝이잖아. 어쩔 수 없었어.


그녀의 대사가 이상하게 공감되더라고요. 임신하면 끝이 될지도 모를 거라는 말.. 엄마는 이런 이상한 말.. 이상해야 하는 말. 그러나 어딘지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는 이 대사 속 마음을 이해하실까요.






수면 밑 어떤 진실들과 마주하게 되면 말이죠. 어제의 편안함은 오늘의 불편함으로 다가옵니다.

비록 드라마지만 주인공의 고통과 내면에 깔린 우울함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왜일까.. 아무래도 같은 여자여서일지도 모르겠어요. 일, 성공, 꿈, 사랑, 자아, 출산, 양육, 등등.. 이런 키워드들에 성별 가릴 건 없겠지만요. 최소한 대한민국에서 '아이가 있는 기혼녀'가 자신의 본업이나 꿈을 위해 세팅한 목표나 성공을, 다른 동년배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이루려 한다면? 과연 얼마나 '동등하게 평행한' 기회와 환경이라는 게 주어질까요.


드라마 속 주인공은 그 기회와 환경을 박탈당할까 봐 고통을 감내하고서도 선택이라는 걸 합니다. 아이를 지우거나, 성적 - 희롱이든 추행이든 - 발언을 자연스레 해대는 동기 남자동료에게도 당당히 사이다 멘트를 날리며 일을 합니다. 임원 구성 비율이 1:9 인 남초 현장에서, 그녀의 '남동료'들은 술자리 몇 번으로 해결될 일을, 오로지 일로 승부하려 더 애쓰고요. 치사한 방법을 쓰면서도 말이죠. 결국 더 치사한 명분이나 대의 같은 것들에 맞서기 위함인데, 좀 아이러니하죠.


엄마는 치마보다  거의 바지를 더 입었었어요. 그때 몰랐는데, 지금은 알 것 같아요. 입고 싶어도 '불편'했을 어떤 시간들을..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정작 그녀의 일상은 정의롭지 못해요.

명성을 얻었다고 해서 마냥 좋지만도 않죠. 그만큼 주인공은 외롭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요. 막강한 권력과 돈, 젠더적으로 부딪혀야 하는 성차별에 맞서려면 모순적이나 그녀로서는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스스로 덫을 놓거든요. 상대를 대항하려면, 그들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며 비열하다 싶을 만큼 치열하게 싸워내야 하니까. 그래야 살 수 있을 테니까요. 드라마 속 허구이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현실의 어떤 모습들이 대비되죠. 그녀와 같은 위치에 있는 우리들의 또 다른 모습이 투영돼요.



 착하게만 살아서는 더 악한 것들에  이길 수 없을 테니까요.

 


50대 남자 앵커가 뉴스를 주도하고 그보다 젊은 여자 앵커가 멘트를 덧붙이며 거드는 진행을 하는 풍경.

생각해 보면 현실에서도 그렇죠. 그 장면이 당연했고 지금도 여전하니까요. 여자는 젊고 아름다워야 하며 남자는 나이가 조금 든 중후한 매력이 '멋'으로 보이는. 뉴스의 프론트 데스크.

 

남자의 주름은 연륜이나 여자의 주름은 퇴물로 보기 쉽죠.

 


때로는 일상들이 점점 이상한 모순으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싶어요. 드라마 속 그녀가 사회에 대항하는 모순적 행동이 바로 우리의 가려진 현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드라마지만, 아이를 낳았으면 그녀는 9시 뉴스를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단독으로 끝까지 무탈히 해낼 수 있었을까요? 공명하고 정직한 뉴스를 보도하기 위해 밤낮 가릴 것 없이 일에 몰두하고 자신을 부단히 관리해 나갈 수 있었을까요? 슈퍼맘이라는 신조어가 왜 생겼을까요? 슈퍼맨도 있는데 뭐 그리 대수라고요? 아니요 엄마. 슈퍼맨도 물론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결국 어떤 문제나 일이 터졌을 때 - 최소한 아이에게 - 양육으로서의 책임감은 여전히 '엄마'들에게 더 무게가 실리진 않던가요. 일에서 실수가 일어나도 '엄마'가 더 잘못해서 현업에서 밀려나가는 현상은 대다수일지도요. 똑같은 시간을 흐르는 게 아니지만 똑같이 잘 해내야 하니까요.





 주인공에겐 여러 사건에 휘말리다 급기야 과거의 남자까지 등장하기도 해요.

 자신이 버렸던 남자가 성공한 골프 선수로 돌아와 그녀에게 복수를 다짐하거든요. 결혼했지만 바람을 피우는 중이던 전 남자 친구는 주인공에게 과거의 동거 사실을 현 남편에게 밝히겠다고 협박까지 해 요. 한마디로 유부남이 바람을 핀 것보다 처녀가 결혼 전 동거한 게 더 큰 약점으로 보는 셈이죠. 이렇게 사회의 시선은 유독 '여자의 행실'에 좀 더 엄격한 것 같아요. 특히나 '처녀성'을 알게 모르게 신성화하죠.


남자에게 유독 관대한 나라..라는 생각을 문득문득 하게 됩니다.

 여자에 비해 남자의 섹스는 최소한 결혼 전후로 여전히 관대한, 대단한 나라 같습니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런 면이 없지 않겠지만 다른 나라 사정 따위야 관심 없고요. 그저 제가 태어나고 자라고 아마 죽을 때까지 큰일이 없는 이상 이 나라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겠죠. 그래서 그래요.


같이 잤으나 동의 하이든 그렇지 않든 추후 헤어지겠다는 선언에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에게 과거 동거 사실이나 관계 동영상을 가지고 자신에게 불리할 때 협박하는 일들은 이미 세상 곳곳 지금도 신문 헤드에 떠오르지 않은 채 수면 밑에 가라앉는 사건 사고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요즘이란 말입니다. 피해자는 결국 죽기도 하고요. 죽은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말할 수 없이 그렇게 묻힙니다.


때로는 그런 사건 사고들이 하도 많이 나타나니 초연해지기도 해요. 어쩌겠어요. 이게 현실인것을..

 

 '일터'에서는 또 어떨까요.

 어쩔 수 없이 밤 영업과 접대 노동이 여전한 실태도 한 몫하죠. 중요하고 은밀해야 하는 일선의 비즈니스는 공공의 회의실보단 담배를 피우는 옥상과, 그들만의 또 다른 리그인 밤의 시간에 이뤄지곤 한다는 걸. 저는 모르지 않는 어른이 되어 버린걸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을 해 나가면서 어쩔 수 없이 알게 된(?) 이런 것들을 당신께 일거수일투족 열을 내가며 말하고 싶지 않지만요. 다만 서글픈가 봅니다. 성 접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여전히 난무하니까. 다만 조용히 사그라드는 척할 뿐. 떠오르지 않을 뿐. 요즘 같은 '미투 운동'이 거세지면 더더욱.  없어지진 않을 거예요. 그러지 않겠어요? 성매매 업소가 여전히 여러 곳에서 '겉포장'되어 여실히 존재하는 현재인걸요.

 

여자가 그럴 만했겠지. 그러게 왜 그런 놈을 만나서. 처신을 잘 했어야지.

앞 뒤 사연 생략하고 그저 맥락 없이 피해자에게 따갑기만 한 시선은 사실상 제 주변에서도 매일같이 반복됩니다. 사실 암묵적으로 엄마도 제게 다그치셨잖아요. 물론 걱정하에 말씀해 주셨다는 거 알아요. 제가 밤늦게 야학봉사 활동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왜 그렇게 늦게 돌아다니냐고 치마 입고 다니지 말고 편하게 바지 입고 가라고. 입술 색깔이 너무 빨갛다고. 처신 잘 하라고 말씀하곤 하셨죠.

 

제 주변의 수많은 '오빠'역할의 사람들의 목소리도 그리 달갑지 않았습니다.

여고 졸업하고 남녀 공존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수없이 느꼈답니다. 그들의 그 '오빠'언행이. 언짢았고 여전히 달갑진 않아요. 여자를 '아랫사람'이고 '보호해야 할' 약한 존재로 걱정해 주는 그 말들에 이상하게 기묘한 반항심을 가지고 있는 저는 그때부터 잠재된 프로 불만러가 되어버렸나 봅니다.


제 입에서 '오빠'소리 한번 들어 보려고 그렇게 애썼던 대학 동아리 "오빠"들은 결국 '선배' 소리 들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싸가지 없이 잘난 척 해 대는 까칠한 여자애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유독 제겐, 독특하고 때로는 예민하고 '쉽지 않다'라고 했던 걸 지도 모릅니다. 따지고 보면 내 피로 맺은 혈연이 아닐뿐더러, 왜 사회 나와서도 남자 동기 '동료'들은 모두 당최 '오빠'여야 했었 는 지 여전히 의문이긴 합니다. 이것도 제가 예민해서 그런 걸까요.


그래서 전 요즘 페미니즘 화두가 떠오르는 뉴스를 접할 때면, 그저 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 감정을 어딘가에 생생하게 표출하고도 싶었나 봐요. 최소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당신과 함께 바라보고도 싶고요. 정면으로... 또렷하게. 당신이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것들, 늦었지만 제가 대신 드러내 주고 싶은 묘한 이기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참지만 말고, 때론 제대로 분노할 필요도 있어 보여요. 정말 쉽지 않지만 말입니다....좋은게 좋은 건 아니니까. 때로는.


당신이 부동산에서 그 나이 많은 남자 동업자와 일을 해 내며 숱하게 겪었을 차별과 얕고도 오랫동안 불편했던 처우와 시선, 억울했던 시간들. 호의로 가장한 무례함과 예의로 포장된 가벼운 언행 속 하찮은 희롱들. 내가 보고 들었던, 그에겐 대수로웠을 그 역겨운 말들.... 피해자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가서 오리발을 내미는 입으로만 페미니스트를 운운했던 요즘 핫한 모 철면피 국회의원과 결국 그의 편을 들어주는 법까지.


때론 지독하게 평범했던 일상이 지독히도 무섭게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선과 악, 참과 거짓,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 그 모든 가치들이 전복되고 실종돼버린 오늘 같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도 세상은 치열하게 달리고 그 안에서 우리들은 더 많은 것을 쥐고, 더 높은 곳에 올라 남보다 잘나고, 남보다 잘 살고 싶어 하죠. 나쁘진 않아요. 성공을 향한 노력과 열정은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것일 테니까요. 다만 성공을 향한 모든 동기는 선의로 시작되지만, 그 선의는 결코 인간에겐 만족하는 법이 없어요. 특히나 한 번이라도 성공의 단맛을 본 사람들은 그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잖아요. 어떤 뻔뻔한 거짓말도 어떤 파렴치한 위선도 당당하게 사용할 줄 알죠. 교묘하게. 자신의 무기를 살려서. 타인의 핸디캡을 이용해서.


어떻게 살아가느냐보단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가 중요한 세상이니까



엄마. 오늘은 그냥 의문과 약간의 서글픔을 담은 채 두서없이 이야기를 당신께 털어놓았음에 죄송한 마음입니다. 다만 묻고 싶었어요. 스스로에게도. 어쨌든 이런 세상에서 이렇게 태어난 이상, 내가 지금 잡고 싶은 게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앞으로 괜찮아질 거라는 보장은 장담 못하는 '상냥한 폭력의 시대' 속에서도 선하고 나약한 누군가들이 섣불리 도망치지 않기를. 감히 바라기도 합니다.


저 또한. 이런 마음이 단단해져 가니... 저도 아직은 괜찮습니다. 요즘의 일터에서 느끼는 고충도 별거 아니에요. 다 견딜 수 있습니다. 당신만, 우리 아이들만, 내 사랑하는 사람들만.


날 믿어 준다면. 또한, 내가 나도 믿는다면.


#믿어요_당신을_그리고_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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