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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ug 21. 2018

지금, 좋아하는 것들

꺼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좋아하는 것들의 감사함. 

좋아하는 것은 변한다. 
시간에 따라, 노출된 환경에 따라. 늘 그랬던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 제사상 위의 음식들 전부가 미웠고 싫었던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어느새 그 음식들이 내게 익숙해졌는지 아니면 입맛이 변했는지, 언젠가부터 제사상 위의 약과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는 거다. 나도 모르게 싫어했던 것들을 좋아하게도 되다니. 사람은 그래서 간사하다. 마음은 좀처럼 알 수가 없다. 일관성도 없고. 그래도 꺼내 본다. 지금. 현재. 오늘 내가 좋아하는 것들 다섯 가지를. 




하나, 아이들의 잠든 얼굴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들을 재우고 난 이후 약 밤 9시부터 잠든 두 녀석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 시간이 좋다. 그 곁을 마주했을 때 들리는 작은 숨결 소리도. 바라보다가 요즘은 자주 눈물을 흘리곤 한다. 예전 생각이 나서 그런가 싶다.  마냥 '좋다'라는 이런 감정조차 들지 못했던 피폐한 나날이 있었으니까. 절대 좋아할 것 같지 않았던, 여기가 생지옥인가 싶을 정도로 두 녀석은 잠을 자지 않았었다. 심신은 망가졌고 나 자신을 괴물이라고 생각하며 차갑고 무심하게 지나간 날들. 그러나 어느새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렇게 잠든 모습이 아름다울 줄이야... 참 좋다. 너무 좋다. 너무 좋아서 마음이 애달파질 만큼, 그래서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흐를 만큼.


둘, 저녁에 혼자 듣는 음악 
귀에 꽂아놓은 이어폰에서는 무한 반복으로 세팅해 놓은 음악이 들려온다. 밤 10시에서 12시. 잠들기 전까지 들리는 저녁에 혼자 듣는 음악이 좋다. 딱 한 소절이면 충분하다. 좋아했던 음악이 들려오는 그 저녁 시간이 날 찾아오면 애써 닫아둔 감각과 마음은 결국 열린다. 빠져든다. 어느새 머릿속엔 상상 속 그리운 어떤 장면들이 나도 모르게 그리고 만다. 음악과 상상에 빠져드는 저녁 시간. 어쩌면 음악이 좋다기보단 그 음악이 흐르는 시간이 좋은 걸지도. 다행이다. 들을 수 있는 두 귀가 존재함에. 


셋,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 
목소리에 약하다. 약하다는 건 그만큼 나로선 좋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 귀가 듣기에 좋은 음성과 화법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겐 10이면 10번 대부분 빠져든다. 특히 내겐 이름을 불러주는 누군가들의 목소리가 그랬다. 울리게도 웃게도 그립게도 만들곤 했었던 그 목소리.. 이건 변치 않은 듯싶다. 오래 좋아하고 있는 것들 중 하나다. 애석하게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요즘이기도 하지만. 괜스레 슬퍼지다가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나의 목소리에 조금씩 빠져들어 보기도 한다. 이런 내 목소리마저 이젠 사랑하고 싶어서. 좀 더 열심히. 한편으론 그리워서. 부재로 인한 그 목소리가.. 


넷, 책과 글 
말이 필요 없을 테다. 책과 글은 이젠 삶의 도피처이자 힐링 그 자체이며, 그로 인해 나를 살리는 또 하나의 좋은 동반자가 되었다. 때론 미친 듯이 격정적인 감정을 다스리기도, 한편으론 온통 쏟아내기도. 그러다가 다시 잠잠해지기도. 책과 글을 좋아한다. 요즘은 더 힘차게 좋아하다 보니 약간의 강박을 느끼기도 하지만, 여전히 좋아할 것이고 좋아하고 싶다. 


다섯, 지금, 글을 쓰는 잠깐의 시간 
유한해서 그만큼 소중한 걸지도 모르겠다. 뭐든 결핍을 해소하려다 찾게 된 무언가에 빠져드는 애정이 좀 더 진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지금 글을 쓰는 이 잠깐의 시간들. 예컨대 이른 아침 출근하고 한 시간, 점심시간, 저녁 육아 퇴근과 동시에 집안일을 다 마치고 난 이후에 식탁 의자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며 손가락으로 문장들을 적어 내려가는 그 시간들... 정말 좋다. 좋아한다. 감사할 만큼. 얼마나 오래 지켜질 수 있을까 싶다마는 되도록 오래 지켜나가고 싶다. 난 그럴 수 있을까... 요즘은 자신이 없어진다.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소란스러웠던 마음은 진정된다. 
예민해져 있는 요즘인가. 별거 아닌 것들이 모두 별거처럼 다가오고 있다. 작은 타인의 시선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때론 제멋대로 해석하여 상처를 받기 일쑤다. 여전히 모자란 나는, 그럼에도 이 좋아하는 다섯 가지들을 떠올리며 애써 마음을 다독여 봤다. 좋아한다는 건, 그만큼 마음이 살아 있다는 뜻일 테니까. 그래서 나는 지금 이렇게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을 뿐이라며. 


좋아해.

나의 너희 둘을. 저녁 시간의 음악을.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를. 책과 글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그리고 사실은 시원한 밤바람의 저녁 시간도. 그 언젠가의 장소들 모두. 사실은 여전히 모두 좋아해. 좋아서 가끔 슬퍼져. 


그래도 좋다. 

좋아 한다. 


꺼내어 마주했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어떤 감사한 빛남 들이 있다. 가령 오늘 처럼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며 떠오른 것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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