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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Aug 17. 2018

뜨거워도 결국 식어요. 그게 사랑이잖아.

식을 줄 알면서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

편지 여덟) 누군가에게도 그리고 스스로도 '생화'로 존재하기를. 


생화는 살아있으니까.. 살아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존귀해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설국'이라는 소설을 읽었을 때의 첫 문장은 정말 강렬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때의 마음도 시간이 지나 없어지더군요.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읽었었는지 책 속 이야기도 어느새 희미해졌죠. 그래도 이 문장을 여전히 기억하는 걸 보면, 아마 당시 제 마음을 파고들 만큼 다가왔었나 봅니다. 어쩌면 사랑도 이런 게 아닐까요 엄마. 빨려 드는 듯 빠져드는 무언가의 마음. 


애쓰지 않아도 어느새 마음이 앞서 나가버리는 것 같아요. 사랑한다면. 

지금 곁의 그이와 마주했을 때에도, 어쩌면 저 소설의 첫 문장에 빠져버리게 되고 만 것처럼 이상하게 마음에 깊이 남았던 사람으로 존재했던 것 같아요. 하루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고 또 빠져나오면서 지냈던 어떤 시기에 마주하게 된 '설국' 같은 존재 말입니다. 아니. 말이 그럴듯했지 사실은 타이밍이 좋았던 걸지도 모릅니다... 하긴. 모든 사랑은 타이밍일지도. 


당신 앞에서 사랑 운운하는 게 왠지 사치스러워서 이런 대화는 자주 못 나눴었네요. 

먹고 살아가는 일종의 생존이란 것이 더 필요해 보였던 예전이라서. 또한 살면서 어떤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 나와의 관계이든 타인과의 관계이든 그 누구든-  스스로의 마음도 제대로 간수 못한 채 휘청거릴 만큼 여전히 표현에 서투른 저였기에. 우리는 가족이라는 가까운 사이였음에도 오히려 타인들보다 이야기할 기회가 적었었네요. 그래서 이렇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잠깐 꺼내보고도 싶어 집니다.  



투명해지고 싶었어요. 그 사람 앞에선. 그래서 거침없이 표현했었던 같아요. 그땐 그런 날 좋아해줬었는데....



당신과 웃으며 농담 삼아 주고받았던 말들이, 한편으론 서글퍼졌었어요. 

무뎌진다는 말 때문이었나 봅니다. 그게 정상이고 자연스러운 일일 텐데 왜 씁쓸했을까. 시들어갈 걸 알면서도 생화를 찾고 싶은 제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언제나 사랑 앞에서는 생생하게 살아주기를 바라서. 시들고 언젠가 없어질 걸 알면서도 여전히 사랑을 주고 또 받고도 싶어서. 무뎌지지 못하지만 결국 무뎌져 버리고도 마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마음들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에게도 나름의 제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던 저였나 봅니다. 어떤 피곤함이나 건조함이 당신 얼굴에 드리웠을 때, 곧잘 우스개 소리를 하거나 과하고 노골적인 어떤 감정을 건넸던 그 시간들 속에서, 당신은 어이없어하면서도 결국 웃고 말았잖아요... 그게 제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마음이자 사랑의 드러냄이기도 했었다는 걸, 당신은 알았을까요.



"엄마는 아빠 사랑해? "
"뭔 소리야." 
"아니 그냥..."
"사랑이 밥 먹여 주더냐. 너네들 키우고 정신없이 살아서... 잊었다. 그런 거"
"응. '그런' 거였구나..."
"... 무뎌졌어. 그런 거. 묻지 마."
"무뎌지면 안 되지. 미모가 버젓이 살아 계시는데. 사랑은 반찬으로 다 드시고 없어진걸까.쳇.. "
"쓸데없기는..크" 
"쓸데가 왜 없어. 이렇게 쓸데있게 종알대니 안 외롭잖아. 거 봐. 지금 웃잖아. 웃어 엄마. 그래야 진짜 예뻐." 




사랑은 생화 같아요. 결국 시들다가 지고 마니까
그래도 생화가 조화보다 좋습니다. '진짜'..잖아.





엄마에게 아빠라는 생화는 어떤 식으로 시들고 또 재탄생되었는지 사실 궁금했어요. 

그 궁금했던 마음 언저리엔 '사랑은 변한다'라는 전제가 숨어 있네요. 당연한 건데 왜 가끔 그게 서글프게 느껴지는지... 당신도 이런 시간을 겪으셨을 테죠. 아빠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서로 살 맞대며 살아가는 그 과정들이 늘 행복하고 기뻐서 날뛰는 연속은 분명 아니었겠지만, 분명 두 사람이 네 식구가 되고 그러면서 서로 의지하고 필요한 존재로서 살다가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러왔겠죠. 

 

뜨거움은 점점 식어가면서. 



어쩌면 지금 이런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뜨겁게 타오르던 남녀 간의 끌림은 어느새 천천히 사라져 갑니다. 다만 그 대신에 되려 짠하고 미안한 어떤 마음들이 밀려오는 시간들이 생겨납니다. 어쩌면 이런 감정선은 같이 살며 먹고 자고 뒹굴고 부대끼지 않았더라면 절대 생길 수 없는 가족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생겨나는 또 다른 사랑의 형태겠죠. 


사랑이 없다면 미워하지도 않겠죠.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라는 마음이 남아 있어야 생기는 또 다른 마음, 예컨대 미움 같은 감정 안에도 사실은 사랑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떤가요. 상대를 향한 크고 작은 걱정, 그리고 일상의 별 대수롭지 않은 것들의 궁금함. 때로는 그런 일상들로 인해 생기게 되는 미움마저도...


.마음이 없다면 있는 힘껏 안지도 못할 거예요. 그런거 아닌가... 아닌가. 없어도 안을 수 있을까.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건, 그런 미운 마음조차 들지 않은 채 쳇바퀴 돌듯 무미건조하게 지내는 시간들 일지 모르겠습니다. 그야말로 '무감정'의 마음들이 오히려 더 무서워져요. 서로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오늘을 지내고 있는지 조차 무관심하다면 그건 사랑 조차 남아있지 않은 것만 같으니까요. 제가 간혹 그이와 다투는 이유들은 바로 이런 것들 때문입니다. 그는 제 일상이 궁금하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죠. 저만 떠들어 대기 일쑤일 때가 여전하거든요. 아니면 그냥 안물 안궁이려나... 물어보는 내가 이상한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함께 있지만 외롭기도 하죠. 


"자기 오늘 뭐 먹었어?"
"그냥 점심. 회사 식당." 
"난 안 먹고 글 썼는데."
"응.. "
"... 자긴 내가 안 궁금하지?"
"왜 또"
"아니 그냥. 이제 나한테 별 관심이나 마음이 없는 것 같아서... 딱히 안 물어보니까."
"또 또 그런다"
"그러게. 나 또 그랬네. 그런데... 나빠... 당신. 좀 가끔. 그래서 미워.. "
"아이 같기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초코파이'로 살기엔, 제가 여전히 사랑을 '주고받고' 싶어서 그런가 봅니다. 

그는 제가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조차, 어떤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우는지, 혹은 하다못해 오늘은 어떻게 하루를 지냈는지조차. 별로 묻지 않아요. 서운함이 밀려와도 요즘은 그 감정조차 일과 육아, 그리고 나머지 시간엔 제 꿈을 이루려 노력하는 시간에 에너지를 소비하다 보니 어느새 사그라드는 저만의 감정들이 되기도 합니다. 예전엔 진하게 싸우기도 했지만 이젠 감정조절에 노련미(?) 가 생겼나 봅니다. 그럼에도 가끔 찾아오는 공허함이나 허기진 어떤 외로운 감정은 완벽히 없어지진 않더라고요. 다행스럽게도 책과 글 덕분에 반대로 그 공허함을 채우곤 하지만요. 


한편으론 그이를 미워하면서도 반면에 걱정 - 요샌 특히 건강 같은 -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이상한 안도가 밀려옵니다. 안쓰럽기까지도 한 어떤 연민과 동정도 더불어 생겨나기도 하고요. 아직 제가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믿는 요즘이기도 하고.. 당신에 비하면 고작 7년을 함께 살았을 뿐인데 그와 나의 이런 시간들. 이제는 아이 둘을 함께 고군분투해가며 키워가며 어느새 함께 늙어가는 요즘의 시간들... 어쩌면 이것은 결혼을 한 이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뜨거움은 사라진 채 다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더 단단한 사랑의 또 다른 과정이겠죠. 그렇겠죠. 엄마.. 


시드는 만큼 다른 어떤 감정들도 생기곤 하죠. 예컨데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하다는 존재라는 이상한 어떤 안도감... 

 

서로가 필요한 존재로 여전히 곁에 살아 있다는 것.
사실 그 자체로도 고마운 사랑일 텐데 말이죠.

 

그런데 말이죠. 사실 가끔 그런 것들이 반대로 공허하거나 외로움으로 다가옵니다

고마운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외롭기도 한 건 왜일까 싶어요. 아마도 제 스스로의 자존감이 여전히 성장 중인가 봅니다. 그래도 다행이죠. 성장 중이라는 사실이.. 고마움을 느끼고 제 스스로도 이젠 쓸데없는 사랑싸움(?)이나 기싸움에 에너지를 쏟지 않고, 스멀스멀 기어오르려는 어떤 소란스러운 마음에 신경을 덜 쓰는 법을 연습 중이라서.. (그야말로 연습... 실전엔 또 왜 그리 약한지. 눈물은 여전히 가끔 흐른다니까요)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약해지는 것 같아요. 

거기에 강함이라는 건 사실 없는 것 같아... 진짜 주는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상대에게 연연하게 되니까. 그리워하게 되니까. 혼자서는 도저히 버텨지지 않으니까. 


그렇게 약해져도 여전히 사랑이라는 감정을 있는 힘껏 품고 살고 싶은가 봅니다. 한 사람을 향했던 뜨거운 사랑은 조금씩 식어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대신에 이젠 축복처럼 생겨 버린 아이 둘이라는 그들, 다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금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저와 남동생을 보며 느꼈을 그런 마음을.. 저도 이젠 미숙하지만 엄마라는 프레임 안에서 열심히 해내 보고도 있습니다. 


그런 제 마음에 화답하듯 요새 아이들은 그이에게 듣지 못하는 말들을 대신 건네주듯, 어설프지만 귀엽게 새는 발음으로 제게 말해주곤 해요. 이 귀한 시간들도 지나면 돌아오지 않을 걸 알기에. 지금의 충만한 기쁨과 뭉클한 감동을 최대한 간직하고 싶어요. 아마 제 삶의 최고의 목소리로 기억될 테죠. 이런 말들을 듣고 있는 순간엔 언제나 마음이 앞서서 어느새 눈물이 나 버리거든.. 


엄마, 괜찮아? 

내가. 지켜줄게.  

잘 자. 축하해. 

응. 나도 사랑해 엄마. 


 

사랑이 식는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누군가에게 생화이기를

이렇게 사랑의 존재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저는 말이죠. 사실은 늘 그리운 한 문장을 그리며 삽니다. 이젠 먼저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면 그의 목소리로 쉽게 들을 수 없게 되어 버렸지만... 그럼에도 말입니다. 늘 마음에 맴돌아 결국 제 입술이 먼저 꺼내고 마는 이 단 한 문장을. 


오늘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마음을 실어 보냅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받아 마땅한,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 존귀한 당신에게도. 


보고 싶어. 사랑해.


조금씩 바람이 선선하다는 건 가을이 다가온다는 뜻이겠죠. 이렇게 시간이 흐릅니다. 잘 흘러가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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