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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05. 2018

길버트에게

그리운 너에게 그리고 그 시절의 나에게 

안녕. 나의 오랜 벗. 그리고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는 너...

넌 지금 어떤 시간을 흘러가고 있을까. 나의 지금은 밤 11시를 지나가고 있어. 언제나 이 시간을 지나 새벽에 닿을 무렵에도 내가 잠들지 못했다면 그건 어떤 선명한 그리움을 상상하다 빠져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 지금 이 시간처럼. 


네 생각이 났어. 비도 오지 않는데. 차 안에서 음악이 흘러나오지도 않는대. 

허튼 변명을 하며 읽히지 않을 편지를 잠깐 이렇게 혼자 적어 보고 있어. 손이 움직이는 대로. 아니 마음 가는 대로. 네가 그 시절 말해준 대로 난 여전히 이렇게 '제멋대로' 흘러가 보고 있어. (라고 거짓말을 했네. 이젠 마냥 제멋대로 살진 못하는 '역할' 이 주어졌지만 여전히 좀 '멋대로 '이기는 해.) 흐트러지듯 어설픈 문장이어도 넌 알아줄 것만 같아서. 


너에게만큼은 때론 들켜보고 싶어서. 어떤 어설픈 마음들을 말이지. 

그건 네게 아직도 어떤 '믿음'이라는 게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믿는 사람에겐 어떤 마음이라도 통할 것만 같은 어리석은 신뢰 같은 것 말이지. 



누구들에겐 자유로워보였을지언정 정작 자신은 그러지 못할때도 있었다는 걸. 네게는 들키고 싶었나봐..그래서 상처줬었나봐...



넌 내가 유일하게 마음을 들키고 싶었던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을까. 아니 몰랐을 거야. 천하의 '빨간 머리 앤'이라고 해도 말이야. 외로운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닐 테니까. 그렇지만 말이야. 이런 흔들리는 마음을 들키지 않고 감추다 보니 어느새 정말 외로움이란 것도 모른 채 다만 '오늘'을 어떻게 더 잘 보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더 가득했던 것 같아. 그게 날 살게 만들어 주는 이유기도 했고. 정말 다행이지 않니. 


나의 약함을 많이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게 오히려 널 끌어당길 수 있었던 거라면.

잠깐 고백하건대 그건 강한 게 아니라 '용기' 였었어. 그래. 용기 말이야. 되도록 '나'의 감정에 솔직하게 살고 싶었던 나는, 내 마음에 스크래치 팍팍 내며 개수작 부리려고 하는 이들을 보면 참기가 쉽지 않아서 말이지. 때론 머리를 빠그라뜨릴 만큼의 분노 또한 여실 없이 드러내 버리고 말았었잖니. 네 앞에서 책을 집어던지거나 화냈을 때를 기억하니. 나 여전히 지랄 맞고 성질 더러워. 그렇지만 넌 이런 내가 좋다고 했었어. 빌어먹을 네 취향도 나 못지않게 지독히 특별했다는 걸 알아주면 감사할 뿐이고. 


근데 있잖아. 세상에 영원한 건 없는 것 같아. 나도 변했어. 그리고 지금도 변해가는 중이야. 

아쉽지만 어쩔 도리는 없어. 변해야 살 수 있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거든. 물론 때론 '갑툭튀'처럼 똑같은 걸 봐도 좀 뒤틀어진 시선으로 세상이나 상대를 대하는 어딘지 모르게 '이상' 한 건 여전하지만. (그래서 '회사에서의 사무인간' 으로 사는 것도 요샌 좀 지쳐가. 한계치다. 11년이면.. 다 해 먹었은걸까도 싶고) 그 여전함이 조금씩 흐려지기도 해. 



살다가 나도 모르게 가끔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자유와 방종 사이에서 흔들리다 보니,  혼자일 때가 가끔 더 편하더라.. 젠장R


현실을 살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 

삼포 시대를 거쳐 1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아보기도 했고. 그놈의 꿈이 뭔지. 그 꿈 이룬답시고 10년이 넘도록 애간장 녹이는 문학 공모전에 닥치는 대로 도전해 보다가도 늘 예의 바르게도 기분 나쁜 불합격 메시지에 익숙해지기도 했어. (이런 썩을!) 집 떠나서 무일푼에 외국에서 살아보기도 했고, (난 공항이 언제나 설레. 여전히 촌티나. 비행기 보면 심장바운스가 2배속이야) 아 참. 나 그 와 중에 사랑도 했어. 너 같은 사람, 너 같지 않은 사람... 비교의 기준이 어느새 '너' 가 되어 버렸네. 그만큼 네가 내게 소중했었나 봐. 


지나 보니 모든 게 사랑이었을지도 몰라. 아니 그건 정말 사랑이었어. 

사랑을 하고 있을 때 나는 겉으로의 가면을 벗어 버리고 기대서 울고 싶었고 위로받고 싶었고 사무치게 외로운 감정 조차 발가벗겨지고 싶었어. 그런데 그런 모습을 들켜버리고 싶은 상대를 만난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것 같더라. 바닥까지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그런 면에서 길버트 '너'는 내게 그런 존재였던 것 같아...라고 믿고 있는데. 내가 네게만 들려줬었던 나의 헛소리 대잔치를 넌 말없이 들어줬었어. 기억하니.. 


그런 시절이 있었다. 비루한 세상이 한없이 빛나 보이고 누군가를 웃게 만들고 싶어서 기운을 내던 시간. 

그러면서 또 하루를 살아가던 시절. 용기가 없어지려 하거나 끝이 없는 무기력함에 빠지려고 할 때쯤엔 잠깐 그런 시간을 마음에서 꺼내서 추억해 보곤 해. 뭐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빌어먹을) 그렇지만 그래 보고 나면 괜히 웃음이 나와서 기분이 가 좀 괜찮아져. 추억을 상기시킬 수 있다는 건 여태껏 살아온 시간이 그리 헛된 시간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해 주니까. 마릴라와 매튜 할아버지. 다이애나, 그리고 길버트... 내 곁에 이런 소중한 사람들이 분명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볼 수 없고 쉽게 닿을 수도 없는 거리에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다 그리운 순간에 정지되어도. 

눈물 어릴 만큼 어떤 장면들은 오감이 생생할 정도로 여전히 상상이 되곤 해. 잔인하게 슬퍼서, 혹은 뭉클하게 고마워서 무한 반복시키고 싶을 만큼. 이런 마음을 여전히 마음에 품고 지내는 나는.... 응. 어른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사회가 기준하는 어른이기를 거부하는 건강하고 건전한(?) 미친놈으로 여전히 흘러가 보고 있어. 돌 I로 내 삶을 미친 듯이 살아보기로 결심한 게 얼마나 커다란 기적이고 행운인 건지 넌 아니. 그게 우리를 덜 불행하게 만들 테니까. 완벽한 행복에 닿진 못하더라도. 불행하지 않은 기쁨이 사실은 더 큰 행복 아니겠냐며. 


행복이라는 절대권력. 그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져서 억지 행복을 짜는 행동을 이젠 거부하기도 해. 

변했다면 이런 걸 테지. 예전엔 우울한 마음도 속인 채 그저 '오늘 하루 즐겁게 앗싸'라고 외쳤던 나였을지언정, 요즘은 바닥을 파고 들어가는 우울감을 내비칠지언정 진심이 통하는 이들 앞에서만큼은 가끔 들켜보고 있어. 마음을. 그러다 보니 들쭉날쭉할지언정 거기에서 찾아오는 또 다른 마음의 행복들을 경험하며 다시 살아있는 삶에 감사함도 진하게 느껴보고 있고. 아 나 정말 많이 변했다. 그렇지. 


사실은... 보고 싶어서. 

널 사랑했던 나를. 정확히 표현하자면 사랑에 빠져 있는 나의 모습을. 그리고 나의 일상과 안부를 궁금해서 뒤틀듯 비꼬아서 물어봐주었던 퉁명스러운 너의 투명함이. 그만큼 나의 모난 모습마저 사랑스럽게 바라봐준 그 선하고 진실된 눈이. 사람을 대하는 온전하고도 완전한 마음이 때로 애달프게 그리워져서 눈물이 저절로 흐를 만큼... 


사랑에 빠진 나를. 보고 싶어서. 그러다 보니 어느새 빠져버린 내가 되어버리기도 한다는 걸. 넌 알았을까. 


넌. 그리고 난. 지금 각자의 시간을 평행선처럼 흘러가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모른 체 하고 싶어져. 그만큼 직선이 곡선이 되어 닿고 싶은 어떤 순간엔.... 매만질 수 없는 거리와 서로가 가지는 다른 삶의 시간차를 다 뛰어넘고 싶어 지는 마음이 부풀어 오르면.. 이제 나는 그럴 때 무언가를 적곤 해. 이렇게 닿지 않을 편지나 어떤 마음의 목소리들을 활자로 남겨 보는 거야. 그러면 때로 흘러나온 마음이 현실에서 펼쳐지기도 하다는 걸. 이젠 그냥 믿게 됐나 봐. 이런 어떤 기적들을. 


길버트에게. 

닿지 못했던 나의 숨겨진 몇 가지의 이야기들을 네게 들키고 싶다는 마음을 언젠가 네가 알게 되는 기적에 가까운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땐 나의 구질구질과 비루함, 때론 삶을 살며 겪어 냈던 역겨운 분노와 마저도 가감 없이 펼쳐내 보려 해. 그래도 너무 긴장하지는 말기를. 베이스가 이젠 좀 후지게 변했어도 '나'라는 본 재료가 가진 솟구치는 에너지와 어딘지 모르게 독특한데 빨려 드는 촌티 나는 유머는 여전할 테니.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는 날..

그런 날이 다시 올까. 언젠가 다시 왔으면 좋겠어. 11월의 어느 날. 누군가의 생일파티가 이루어지는 날. 혹은 누군가와의 시원한 캔맥주 한 잔에 술에 취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무의미한 대화들의 연속에서 한마디로 흘려버릴 묻혀버릴 진심마저도. 그런 어설픈 상상도 이렇게 흘리듯 드러내 보며. 



소원을- 빌어야지. (feat. 치즈케이크) 


안녕 나의 벗. 

어디서든 어떤 시간을 흘러가고 있든, 덜 아프고 더 기쁘기를. 

네가 그러하기를. 그리고 나 또한 오늘이 그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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