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게 아니었어. 때로는..
글자로 남겨두지 않으면 잊혀 버릴 것 같았다.
그런 쓸데없는 강박이 있었다. 붙잡아 두고 싶은 시간, 갖고 싶은 사람, 바라던 장면마저도. 한때 그 모든 것들이 소설이 되었고, 나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였으며 누군가에게 보내는 연서이기도 했다.
지배하기 위해 쓴다고 했다.
그녀의 전작이었던 '혼자서 본 영화'를 잘 읽었었다. 여성학자이지만 그 이전에 작가의 삶을 엿본 것 같아서 그래서 더 좋았던 책. 사실 내게 그녀는 '작가' 였고 여전히 작가다. 삶을 쓰고 사람을 쓰고 시대를 쓰며 특히 '여자'를 써 내는 튼튼한 필체를 가지신 분. 그래서였을까. 그녀의 이 말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생계로 쓴 글에 독자를 염두 해야 하는데 내 멋대로 살았다던, 그 말이 왜 이리도 오늘따라 큰 위로가 되는 건지..
내 멋대로 쓴다. 어리석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멋대로 살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걸 이제는 잘 알고. 알기 때문에 대신 글이라도 내 멋대로 쓴다. 생계를 위한 글이라면 어땠을까를 잠깐 생각해보지만, 그랬다면 이렇게 글을 꽤나 열심히 써 내지도 못했을 것만 같다. 성격상 그러지 못할 것만 같다. 그래서 현재의 읽고 쓰는 시간이 감사하다. 고마워서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건 여전한 것처럼. 되도록 자유롭게 여전히도 검열 없이 읽는 누군가의 심정이나 마음은 어떨까를 고민하기 이전에 일단은 내뱉어 버린다. 토해낼 때가 좀 더 많은 듯싶다. 어떤 날의 글들은 그렇게 전부 마음을 토해냈을 때 비로소 진짜 내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하더라.
사실은 이런 느낌이다.
내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이 나를 써 내려가는 것 같은 시간들..
이젠 이렇게 쓰며 살아보고 있다. '나'라는 사람의 서사를 만들어 내면서도, 별거 아닌 것들이 별거 같았을 땐 무작정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글이 나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더라..
그럼에도 늘 상상을 하곤 한다. 생계를 위한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 나의 글은 또 어떻게 변할까. 아니 이런 나만의 문체가 변해지기는 하는 걸까. 변하기를 바라다가도 기어코 나 답지 않은 글처럼 화려하기만 하거나 누군가에게 - 독자, 출판사 등 - 잘 보이기 위한 억지로 써낸 문장들을 써 내다보면 기어코 백스페이스를 마구 눌러 버리는 나를 발견하니.
아직은 안되겠다. 그냥 이대로 써 보는 수밖에.
그러다 보면 이런 제멋대로 문장도 좋아할 누군가가 생길지도 모를 일이니까......단 한 사람이라도. 내 이야기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계시다면. 써 내려갈 수 있다. 그 단 한 사람이 최후에는 '나' 로 여전히 쓰면서 살고자 한다면. 쓸 수 있다. 오늘도..
- 정희진, "작가는 지배하기 위해서 쓴다" 를 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