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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16. 2018

마음아, 천천히 걸어라..

내 영혼이 나를 따라올 수 있도록. 

일본어 중에 '이키가이(生きがい)'라는 단어가 있다. 

살다는 동사 (生きる,이키루)  와 보람 (効, 카이) 이라는 명사가 만난 합성명사를 뜻하는데, 여느 때처럼 아침 출근 후 다이어리에 오늘의 하고 싶은 것들을 - 해내야 할 것들도 - 적어내다가 문득 '천천히 살아있기'라는 의지가 다분히 묻어나는 동사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뿔싸. 손가락에 마음을 들켰다. 요즘 안달이 나 있었던 나를. 뭐든 '붙잡고 싶어지는 어떤 빠른 마음' 이 생겨버린 나를 손가락이 알아채 주었던 걸까.. 


그럴지도 혹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현실적이고도 이성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사랑'에 빠졌다. 

말장난일 수 있지만 다시 한번 정확히 고백하자면 나는 '다시 사랑'에 빠져가는 중이다. 아니 그런 중인 것 같다. (라고 여지를 좀 남겨둔다. 나도 이 빠른 감정의 정체를 잘 모르겠으니까) 


시간 말이다.

내게 좋은 에너지를 불어 일으켜 주는 사람들과의 기쁜 시간, 자체적인 치유의 글을 제멋대로 토해내 보는 시간, 읽으며 마음을 챙겨보는 시간, 생계를 위한 업이 있음에 감사하지만 그 현장에서 루즈하고 지겨워져서 스스로 정의롭지 못한 시간에 애써 대들어보기도 하는 시간,  그리고 무엇보다도..붙잡을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간직한 채 흘러가기만 하여 애달픈 어떤 얄궂은 시간들마저도.


한데 큰일이다. 그 시간들에 최선을 다해 에너지를 들이붓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시간보다 앞서 나간다. 방향을 잃고 속도를 헤매다 그렇게 휘청거린다. 흔들리며 살아있는 삶. 그럼에도 붙들어 매고 흘러가보는 오늘.. 이렇게 살아있어도 괜찮은 걸까 반문하다 '우울'에 잠식되는 나를 발견한다. 


우울한 건 여전하다. 하긴 인간은 우울할 수밖에 없는 동물이라고,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고 하던데. 어설픈 비유지만 에너지를 한껏 쏟고 난 이후의 인간의 허탈한 감정을 보여주는 최고의 문장이지 싶다. 정말로..  


너도 그랬고 나도 그랬을 어떤 모습들.. 



그렇지만 나에게 이키가이는 늘 '사랑'을 하고 있는 시간이었는걸. 

생각해보니 그랬단 말이다. 꿈이든 사람이든, 사랑이든 돈이든 마음이든 뭐든. 내면에서 샘솟는 어떤 에너지를 현실에서 움직임으로 쏟아낼 만큼의 어떤 뜨거운 설렘에 빠져있는 걸 '중독'처럼 좋아했고 즐겼었던 나는 쉽게 내 행동 패턴에서 벗어나기 쉽지도 않은걸. 여전히 나는 뭔가에 '중독' 되어 있는 듯 그렇게 빠져들 때가 잦다. 


사랑에 빠져 있는 시간. 그 시간이 결국 나만의 살아있음, 이키가이를 만들어 낸다는 걸 아니까. 

실패와 상처가 쌓이고 그 아픔이 쌓일수록 경험과 성장이 된다는 것도 아는 어른이 되었다. 아니 되어 가는 중이다. 그렇지만... 어딘가  여전히 '우울' 하다. 그래. 그 기쁨과 비례하듯 우울이라는 감정도 함께 쌓이는 것 같다. 그 우울증 일부분이 바로 '불안' 일지도 모를 테고. 


나만의 기쁨이나 설렘이라는 이키가이를 갖고 있음은 분명 살면서 감사한 선물일 테지만, 반대로 그 이키가이를 내가 바라는 대로만 곧이곧대로 완성하려고 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건 결국 '강박'으로 다가오게 되어 겨우 평탄하게 다시 흘러가기 시작한 지금의 내 삶을 위협하려 할지도 모를 테니까. 불안이라는 위협, 우울이라는 슬픔, 고통이라는 강박.. 


좋은 순간일수록, 불안하니까. 금방 빼앗겨버릴 것 같아서. 흐르는 시간에. 없어지는 마음에. 


마음 챙김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 무엇도 소유하지 못하는 게 결국 삶이라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유아스러운 이 마음을 어쩔 도리가 없다. 




근에 함께 점심을 먹으며 지인과 이런 대화를 나눴었다.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아이도 키우고. 글도 쓰고. 아무튼 하는 테스크가 너무 많아요. 참 대단해. 

- 저 같은 사람 사실 많아요. 하고 싶으니까 그냥 하는 거예요. 후회 덜 하고 싶어서... 

- 좀 천천히 해요. 

- ... 아쉬워요 요샌 시간 지나가는 게. 붙잡고 싶어지나 봐요. 



헤어진 뒤 몇 시간 후 그가 사진 몇 장을 보내 주었다. 그 사진 안엔 이런 문구가 적혀져 있었다. 



디레디레 잘 레 만느. 
마음아 천천히 천천히 걸어라. 
모든 것은 인연의 때가 되면 이루어져 갈 것이니..



나를 살아있게 느끼게 만드는 것들은 결국 내 영혼에 불을 지피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영혼에 불을 지피는 뜨거운 이키가이들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해 볼 뿐이다. 물론 '디레디레'가 쉽진 않지만 최대한 내 영혼의 속도가 나를 따라올 수 있도록. 다만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떤 것들을 생각해 내며 중얼거린다. 

마음아. 좀 천천히 걸어라... 

그래야 살아있는 오늘의 내가 좀 더 잘 흘러갈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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