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Nov 27. 2018

아무래도 좋았었던 그때의 나에게도

'아침햇살'의 여자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불안한 기대감과 고독한 긴장감.
에드워드 호퍼의 '케이프 코드의 아침' 속,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그때의 나'와 어딘지 모르게 중첩된다. 그때의 나란 불안한 나였고 기댈 곳이 없던 나였고 그 무엇도 믿지 못하는 나였으며, 괜찮다고 혼자 미친년처럼 중얼거리면서도 결국 잠들 수 없는 밤이면 주방 구석에서 쭈그려 앉아 몇 시간을 그렇게 떨기 일쑤인 바보 같았던 나.. 였다.

이 그림을 보다가 그때가 생각이 나서 눈물이 어느새 고여 버렸다. 
살다 몇 번쯤의 커다란 눈물이 이승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려온다고 하던데. 그것은 때로 시간차를 두지 않고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하다. 어쩌면 기억에 의존하려는 나만이 가질 법한 악취미 덕분일지도 모르고.

2012년 2월. 첫째 아이를 잃었다.
결혼 후 반년도 채 흐르지 않았던, 어느 날의 사건이었다.

- 수술은 가급적 바로 하는 게 좋아요.
- 네...
- 언제로 잡을까요.
-... 다시 올게요... 가자..
- 혜원아...
-... 나 좀 데리고 나가. 여기서 제발.. 좀...

누구는 그것을 생명이라고 칭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그저 미세한 물체, 죽은 단백질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을 그것을 배에 지닌 채 나는 병원에서 나와 그렇게 일주일을 거의 누워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피폐한 시간을 지냈다. 죽은 송장처럼. 살아도 사는 게 아닌 것 같았던 시간들이었다. 가족들은 이런 미련스러우면서도 독기 어린 고집으로 가득 찬 나 때문에 힘들어했다. 그들도 나만큼 힘들어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때 나는 곁의 이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그럴 마음도 사실 생기지도 못했다.

그때 난, 초라하고 비참한 시간들을 겨우겨우 통과하고 있었다..

-... 너..
-....
-... 당신 때문이야.
- 그래... 그렇다고 치자.
-... 그렇다고 쳐. 그래 쳐. 돌려내... 당신 때문이야. 싸우지만 않았어도.. 스트레스받지만 않았어도..!
-.... 그게 왜 나 때문이니...
- 그래. 아니. 그래. 나 때문이야.
-.....
-... 건드리지 마.. 내 몸.. 내 새끼.. 돌려내.


미쳐있었다. 한동안.
사실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모든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마음의 짐 또한 덜어낼 방법도 내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모른 체하며 살고 싶었다. 그래야 겨우 살아졌으니까. 그를 향한 거침없는 비난과 동시에 밀려오는 우울감을 감당하지 못해서 딱 길을 잃어버렸던 그때. 그래도 겨우... 살아났었다. 울고 있는 나 때문에 다시 울고 있던 여자. 엄마가 눈에 들어왔으니까. 시간이 지나니 보이게도 되었다.


나로 인해 누군가 같이 울고 있다는 것을. 혼자가 아니었다는 것을.

물론 혼자 견뎌냈지만 결국 그 시간은 혼자만의 시간 또한 아니었다는 것을. 이를 꽉 물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살아내야 했고 사실 죽을 용기는 결국 없다는 걸 깨우쳤고.. 그래서 겨우 정신 차리고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다시 살아낼 준비를 어느새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뭔가에 정신이 홀린 듯 바쁘게 살아야 그나마 살아졌었다. 그래서 뭐든 일을 벌여냈다.
다수 속에 섞여 있을 때는 한없이 밝았지만 그럼에도 사실 혼자가 되는 시간에는 마음을 정화시키려고 혼자만 알 수 있을 법한 서툰 문장을 검열 없이 마구 써내거나, 다른 세상 다른 캐릭터들이 살고 있는 책으로 도망치다가도. 어느새 멍한 시선을 두곤 했다.

어쩌면 케이프 코드의 창밖을 바라보는 그녀처럼. 

어떤 곳을 끊임없이 바라보려 몸을 내밀어 창문 쪽을 바라보지만 그녀가 보고 있는 게 무엇인지 우린 볼 수가 없다.


답을 아는 건 그녀뿐이다. 답을 아는 건 나뿐인 것처럼..


케이프 코드의 아침, 1950 Courtesy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Washington, D.C.





첫 번째 유산 이후 3년이 지났고 그 3년을 행복한 '척' 살았다.
뭐든지 열심히였던 나였다. 괜찮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에너지는 어디서 그렇게 다시 솟아나던지. 그런데 결국 다시 들켜버렸다. 사실은 괜찮지가 않았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아챘나 보다. 2015년. 4월. 회사에서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려갔다. 복부에 피가 차서 바로 피를 빼내야 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뱃속에 들어 있었다고 했다. 몰랐었다. 아이를 가졌었는지.... 그렇게 무뎠다. 무디게 살아야 살아지는 시간이었다.

요즘이야 대수롭지 않게 '한 번쯤은 다들 그러지 않나' 라고들 하겠지만, 겪어 내리는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독약이 될 수도 있다. 수술을 해낼 때마다 몸 망가지는 것보다 마음이 무너지기 일쑤였다. 단단하지도 독해 지지도 못하 다는걸, 여전히 유약하고 여리며 눈물만 먼저 흐르는 그런 심약한 보통의 인간이 바로 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아챘다. 겨우 일으켜 내면 또다시 무너지고 그게 반복되는 것 같아서 생이 지독하게도 내겐 지옥 같은 순간이 다시 쌓여 갔다.

그래도 사람이 정말 죽으리라는 법은 없다.
나의 몸은 어떤 생명이 착상할 수 있는 그렇게 건강한 몸이 아니라고 생각했었고 이젠 체념하듯 어떤 기대조차 바라지 않고 살았다. 다만 곁에 살아 있는 사람들을 나로 인해 다시 힘들게 만들고 싶지는 않아서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스스로의 몸과 마음, 심신 잘 건사하며 그저 남은 생을 흘러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좋았었던 그때의 나에게도 기적은 일어났었다.
그래. 그것은 기적이었다.. 바라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적. 다시 아이가 내 곁을 찾아와 주었다. 정확히는 아이 '둘' 이... 우리 부부가 지켜내지 못했던 그 시간의 아이 둘은, 시간이 흘러 결국 고스란히 한꺼번에 다시 "돌아왔다"..

겁이 나서 한동안 밤을 새웠었다.
쌍둥이 임신 소식이 사실 기쁘다기보단 어딘지 모르게 예전의 아이들이 생각이 나서 다시 무서워졌다. 그 아이들이 정말 다시 한꺼번에 찾아와 준 것만 같아서 눈물이 절로 흐를 만큼 감사했지만, 동시에 애가 탔고 또다시 사라질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한동안 또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러게 뜬 눈으로 밤을 새웠고 그렇게 '아침햇살'을 맞이했다.  



아침 햇살, 1952 Courtesy Columbus Museum of Art, Ohio



'아침 햇살' 속 그녀와 '케이프 코드의 아침'에서 보이는 인물에서 우리는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기다리듯 창밖을 바라보는 당신이 있고, 흐린 초점의 시야로 보이지만 사실 한 곳을 또렷하게 직시하고 있는 내가 있을 수 있다.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이라며 시린 날을 겪어 내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결국 시간도 지나가고 다시 아침은 찾아온다. 이 사실을 망각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찾아오더라도. 나는. 당신은. 그렇게 삶을 살아내려는 이들은 결국 괜찮을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나라는 사람을, 살아있는 시간을, 여전히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면.

오늘 아침 햇살은 유난히 길고도 짧게 느껴진다.
둘째 아이의 여전한 칭얼거림 덕분에. 그게 그렇게도 듣고 싶었던 고마운 목소리였다는 것을, 아이를 어린이집으로 보내놓고 뒤늦게 알아챈 후에야 나는 다시 있는 힘껏 사랑하려 한다. 여전히도 무언의 기적을 기다리는 서툰 누군가의 아침, 그림 하나에 잠깐 흘러간 시간을 상기해내며  배부른 단상을 낙서처럼 그려내 보면서..

작가의 이전글 부재중 전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