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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11. 2019

매 순간 정성스럽기를  

정성, 그것은 참된 진심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가급적 '정성' 스럽길 바랐던 것 같다. 

공들이고 정성 들이다 보면 바라고 그리는 마음속 장면들이 현실로 보일 것만 같아서...


- 오늘의 이름이 나였으면 좋겠어 - 




평일 오전 8시. 

어린이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리며 그이와 함께 각자 한 명씩 손을 잡고 등원을 시키던 도중이었다. 약속했던 시간에서 8분이 지나갔다는 것을 깨닫곤 아차 싶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핸드폰을 열어 '발행' 버튼을 누르고 다시 아이의 손을 잡고 등원을 완료시킨 후 주차된 차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숨 고르기를 할 때쯤이었다. 



이미 시선은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70세로 추정되는 느릿한 걸음의 할머니, 그리고 그 옆에서 그녀를 부축이고 걷는 할아버지였다. 두 사람은 정성스럽게 걷고 있었다. 천천히 한걸음 넘어지지 않도록.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기댄 채 그렇게 느릿한 발걸음을 옮겨내고 있었다. 



유독 느리게 걷고 계셔서 눈에 띄였던 걸까. 

아니면 할머니만큼 늙은 할아버지가 꽉 잡고 있던 그 주름살 진 두 손이 유독 시선에 맴돌았기 때문인 걸까. 갑자기 심장이 쿵 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눈에 보이는 어떤 장면들은 현재를 살며 전혀 관계없는 것 같으면서도 

과거의 시간은 쉽게 찾아오기도 한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전 생각이 나서 그런가 싶다. 할머니가 나 같았고 옆에서 그 손을 붙잡고 함께 천천히 걷고 있는 이는, 나보다 나이 많은 친정 아빠 같았어서. 두 사람의 느릿함에서 왠지 모르게 서로를 향한 세심한 정성이 보였다. 그건 예전에 내가 받았던 것과 결이 같았을테다.. 






한 때 병원에서 소변줄을 꽂고 수액이 걸려 있었던 링거대를 잡고 천천히 걸어야 했었다. 

그래도 땅겨오며 콕콕 짓누르는 고통을 어찌할 줄 몰라서 정말이지 있는 힘껏 힘을 빼고 천천히 걸으며 화장실 한번 가는 것조차 여간 힘이 들었다. 쌍둥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은 잠깐의 시간이 그랬다. 



멀리서 퇴근길에 나를 발견한 아빠는 그대로 달려와 천천히 걷는 나를 거들곤 했다. 

그때 아빠에겐 스킨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담배 냄새 보단 남성 화장품 특유의 냄새가 유독 강했던 시간들.. 담배 피웠어도 다시 세수하고 양치하고 스킨까지 고르게 바르며 애써 냄새를 풍기지 않기 위한 그 만의 굳은 의지를 나는 알고 있었다. 아빠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었다. (금연은 쉽진 않았기에) 

 


말이 없던 아빠가 그나마 말을 건넬 때 우리 남매에게 자주 사용하던 단어가 바로 '정성'이었다. 



- 뭐든 정성을 다하면 그걸로 됐다. 



아빠에게 정성이란 그런 것이었을 거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바른 것. 바른 진심과 같은 것.. 



참된 진심. 그것은 내가 바라는 오늘의 '정성'이 되었다. 

남이든 나에게든 매 순간순간 나와 마주한 모든 시간들에 정성스럽기를 여전히 바란다. 그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며 흐르는 시간을 대했을 때 결국 남는 게 무엇인지를. 무엇이 살면서 더 가치 있고 중요한 지를..이젠 알 것 같으니까.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작은 손을 좀 더 꽉 쥐게 되고 

마주하는 사람의 눈을 한번 더 웃으며 바라보게 되며 

아웃룩 하나에서 오고 가는 사소한 업무 메일 한 문장도 잘 쓰려 한다.


주고 받는 톡 메시지 하나에도 감사를 표하게 되고

넘기는 한 장의 책 문구가 아쉬워 한번 더 적어보게 되며 

화장실 거울 속 비치는 얼굴에 대고 미소 한번 짓게 된다... 



아버지는 그때 알았고, 나는 그때 몰랐지만 이젠 나도 그의 마음에 조금은 더 깊이 알 것 같다.

힘들게 걷는 딸 손을 붙잡고 차마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대신 나와의 걷는 그 짧은 시간에 정성스러웠음을. 그리하여 그 둘이 시간이 흘러 방긋방긋 웃는 재간둥이 쌍둥이 손주들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으면서 과자 값 하나 더 벌려고 여전히 노동을 행하심에도, 힘든 내색 하지 않을 수 있는 건, 바로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정성' 이 들어가고자 하는 자세가 한결같았기에.. 가능했으리라. 



정성이란 어쩌면 한결같은 선한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홀로 계속 자리를 지키는 나무 같은 그것..



오늘 아침에 마주한 노부부, 그리고 이제는 과거가 된 그 시절.

함께 병원 복도를 걸어 준 아빠 생각에 잠깐 하던 걸 멈추고 과거에 머무르려 할 무렵, 회사 동료와 차를 마시게 되었다. 그의 말이 떠올라서 그랬던 걸까. 마주한 상대의 눈을 되도록 바라보며 열심히 귀를 기울이며 우리는 대화를 섞어냈다. 



다행히도 정성이란, 받을 줄 아는 사람에게 통하는 법인데

상대가 그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기 철학이 분명한 사람이라 참 다행이지 싶었다. 각자 살아가는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던 그 짧은 시간 덕분에 문득 아침이 꽉 찬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이젠 조금은 더 밝고 씩씩해진 내가 보여서...사람과 마주하며 담담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 새삼 다행이지 싶어서. 



되도록 매 순간 정성스럽기를.. 여전히 바란다.

오늘이란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어제로 곧 변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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