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출근길, 그 어느 날의 단상
우리는 그녀의 슬픔이 평범한 슬픔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 디 아워스 –
새벽 6시. 일어나자마자 쌀을 씻는다. 이젠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생각을 앞선다.
흰쌀을 불리는 동안, 어제 아이들을 재우며 같이 잠들어 버린 탓에 미처 치우지 못한 장난감 가득한 거실을 치운다. 그리곤 냉장고를 열며 빠르게 식재료들을 살피며 눈동자를 굴린다. 퇴근 후 하원 시키며 둥이들을 먹일 아기 반찬 메뉴를 떠올려 본다. 어느새 손은 분주하다. 보통 비슷한 반찬의 순환이라고 남편은 툴툴거리지만, 냉동 레토르트 식품 사 먹이지 않고 손수 갓 지은 밥과 반찬을 웬만해선 해 주는 것에 스스로 큰 의미를 둔다. 그렇게 누군가의 잔소리는 시원하게 한 귀로 흘려버린다.
오전 7시. 1분 먼저 태어난 첫째 둥이가 일어난다.
그리고 삼십 분쯤 지났을까. 그제야 일어나는 둘째 둥이의 기상이 시작되면 본격적인 아침 전투태세는 거진 갖춰진다. 이제 막 배변 훈련을 통과하는 중인 아이들의 기상시간에 맞춰 눈이 마주했을 때 껴안으며 인사를 한다. 첫 소변을 제대로 해내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오버 칭찬과 동시에,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카랑카랑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의 데시벨은 어느새 커져 있다.
남편은 기상하고 거의 고양이 샤워나 다름없이 10분 만에 샤워를 끝낸다. 그리곤 미리 차려 놓은 아침을 아이들에게 먹이는 동안 나 또한 씻고 입고 대충 얼굴에 비비크림과 립글로스 정도를 바르고 옷을 입는다.
20분. 이 모든 게 20분 만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이라니.
미혼이나 아이 없는 기혼 시절에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은 결국 당연한 시간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양육의 시간을 통과하며 세상의 여러 새로움 들을 깨닫는 중이다.
오전 8시. 결국 올 것이 오고 만다.
출근 시간은 다가오고 안 가겠다고 버티면서 악을 쓰고 울어대는 요즘의 첫째 둥이를 설득해 가까스로 집 문 앞을 나선다. 그러나 어린이집 앞에서의 실랑이는 여전하다. 죄책감을 부여잡고 일단 등원을 성공시킨다. 승용차가 서 있는 주차장으로 걸어가 남편과 함께 승용차에 타자마자 결국 눈물은 터져 나온다.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겨우 떼어 보내고 난 이후 찾아오는 후폭풍이다. 그럼에도 출근길이… 설레고 기다려지고 그토록 바라던 시간이라는 걸 사실은 내가 알아서... 그래서 눈물은 쉽게 멈춰지지 않는다.
내 안의 ‘엄마’와 ‘나’의 감정이 서로 마주하며 찾아온 눈물 일지도 모르겠다.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계절도 시간도 요일조차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만큼 집에서 아이들만 보며 매달려야 했다. 육아에 출퇴근은 없었다. 24시간이 고됐다. 자는 시간이 특별히 없을 정도로 수시로 일어나야 했다. 연속으로 2시간을 자 본 기억은 없다...
나는 탈출할 수 없었다.
안 자는 아들 쌍둥이 신생아 육아는 벗어나고 싶어도 마주하는 도돌이표 같았다. 반복 또 반복이었고 탈출해서도 안 된다는 강박마저도 가득했다. 철창만 없는 감옥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테다. 자유라는 가치에 뜨거운 애가 탈 정도의 어떤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때마다 출근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었다. 그만큼 복직을 바라고 또 바랐다. 그리고 결국 출근을 다시 시작해냈다. 돌 갓 지난 아들 쌍둥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면서 시작되는 하루는 그야말로 또 다른 전쟁터나 다름없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 역할'만' 주어지는 그 엄청나고 과다한 몫들이 무겁고 또 싫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여전히 출근길을 고집하는 걸 보면..
엄마로만 살았던 나는, 사실 나 같지는 않다고 생각해서일까.
사랑하는 아이들이라 해도, 잠시라도 떨어져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과 공간은 다름 아닌 일터에서 모두 주어지기 때문에. 출근길에 흘리는 눈물은 이제는 나에게 고유한 슬픔이 되어 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아직 어린아이들의 양육을 일삼으며 출근길을 고집하는 지금의 내가 감당해야 할 평범한 슬픔이겠다.
오전 9시. 흐르던 눈물을 그제야 닦아본다.
다행히 집과 어린이집, 그리고 사내커플 부부인 우리 두 사람을 태운 차량이 회사 지하 4층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평일 아침, 늘 비슷한 출근길의 반복 속에서 가끔 마음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결국 나를 엄습하는 이 평범한 슬픔은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마자 잠시 멈춘다.
6층 버튼을 누르고 어느새 사무실에 도착할 즈음, 책상이 있는 자리로 가지 않고 도중에 언제나 화장실을 먼저 간다. 가방 안에서 화장품 파우치를 꺼내 들려할 때 집에서 읽다 만 책을 잠깐 쳐다본다. 오늘은 다 읽을 수 있을까... 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결국 거울을 쳐다본다. 그리곤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괜찮다. 오늘도. 넌 잘하고 있다’라고.
그리고 깨닫는다. 비로소 하루가 시작되었다고.
#일하는_엄마_출근길_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