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괜찮은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어떤 '이상주의자'의 단상
정직한 두 사람이 만났다.
정직하지 못한 게 있다면 바로 스스로의 마음을 애써 감추어내는 것들이었을지 모른다. 처음부터 그러했던 건 아니었을 테니까. 두 사람이 누군가들의 '아빠'와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는 딱 하나 정직하지 못했던 건 정작 어느순간부터 '자신'들을 대하는 마음이었을지도.
과거를 묻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이미 지나간 것을 묻는 일만큼 어리석은 질문이 있을까. 그렇지만 나는 그 어리석음을 또 반복해 버렸다. 주말에 찾아간 집에서 최근 남동생을 잃고 다소 실의에 빠진 엄마를 위로하다 사려 깊지 못한 말을 내뱉어 버렸다. 그러나 다행이지 싶었다. 엄마는 억누르지 않고 감정을 표출해 내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감추지 않고 이젠 드러내 주기도 해서. 그래서 고맙기도 했다.
- 엄마. 원래 사람이 한번 태어나면 한번 죽고 그러잖아.
- 모진 년..
-.... 솔직해서 미안
대화를 나누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삼촌이 오랜 기간 동안 기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마지막 유품과 통장 내역을 보다가 알게 되었다고 했다. 유니세프에 매달 3만 원씩 정기 후원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누나였던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가려진 면의 삼촌을 뒤늦게야 알고서 엄마는 또 한 번 울었다고 했다.
- 나쁜 놈.. 너무 정직하게 살아서 그래.. 바보 같이 그래서 남한테 속기나 하고. 속은 착했는데...
-... 남매가 정직한 건 닮았네 뭐.. 그래도 난 정직한 게 좋더라.. 바보 같지.
- 응. 바보야.
- 그래도 걱정마요. 나. 적당히 정직하기도 할께.
적당히 정직하다는 말을 하고 나선, 그 적당하다는 기준은 얼마쯤 되는 건지, 나는 가늠할 수 없었다. 때론 감출 수 없는 마음 탓에, '적당' 하다는 것에 장담하지 못한 채 새치 혀만 나불대었을 뿐..
정직하게 사는 게 죄는 아니겠다만
다만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데 너무 정직해서만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일정 부분 '노련함' 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느리지만 아주 선명히 깨달아 가고 있는 요즘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정직'만 가지고는 잘 살아지지도 않는 것 같더라. 특히 사람 간의 '관계'를 유지하거나 맺고 끊어내는 어떤 '노련함'들이 필요한 것도 같다. 그건 순수하게 정직'만'을 가지고는 선순환시키기 힘든.... 말로 표현해내기 쉽지 않은 어떤 것들일 테다. 어렵다 참으로.
그럼에도 가끔... 정직함을 찾는다.
솔직함과 정직한, 투명한 어떤 것들을. 여전히 사람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다 보면 - 나이가 들 수록 그 관계 맺는 횟수가 줄어든다 하지만 - 그럼에도 사람을 대하는 것만큼은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들에게 더 끌리고 만다. 반대로 그렇다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데어, 이제는 지칠 대로 지쳐버리고 마는 시간이 쌓이다 보며 이런가 싶다. 가령 회사에서 마주하는 관계들 속 다수의. 이해관계를 접하다 보면 때론 정직함보단 노련함'만' 찾는 캐릭터들에 신물이 나기 시작한 걸지도 모를 일이고.
정직해서 이렇게 산다(?)는 부모님 말에.
나는 반대로 '나는 그럼에도 당신들이 정직해서 참 좋았다'라는 말을 웃프게 쏟아냈다. 또한 미처 쏟아내지 못한 말들도 마음에 품었다. 그들이 자신들에겐 정직하지 못했을지언정, 남동생과 나, 우리 둘을 대함과 그들이 세상을 대하는 정직함 덕분에 당신들의 아이들은 여기까지 왔다고.. 그러니 괜찮다고..
두 사람의 정직함을 배웠고 그로 인한 두 사람의 정직한 '그릿'을 깨달았으며 그런 당신들의 사람과 삶을 대하는 정직한 태도 덕분에.. 한 사람은 교수가 되었고 한 사람은 어쨌든 바라던 대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당신들 덕분에, 우리는 정직한 노력이라는 걸 하면서 불편함 없는 경제력을 가지기 위한 치열하게 살았고 여전히 그렇게 살아보고 있다고. 또한 거기에 더하여 정직하면서도 노련한 '생산자'가 되려 공부를 여전히 하고 있다고...
그러니 살면서 정직함은 나쁜 게 아니라고.
혼내줄 나쁜 게 있다면 그런 정직함을 이용해 먹으려는 이해타산'만' 따지는 불순한 관계와 그 관계를 끊어내지 못한 자신의 의지에 있다는 것을... 마음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말들을 이렇게 글로 없어지기 전에 정직하게 이곳에 남겨 두며, 문득 생각에 빠져버린다.
'글'과 '사람' 이라는 울타리에서만큼은 있는 힘껏 정직하게 살고 싶다고..
그러나 잠시 의심했다. '정직함'만 가지고는 사실 그걸 지켜내는 것이 어렵다는 걸 은연중에 깨달아서일까. 쓰고 싶은 글과 팔리는 글 사이의 경계 속에서 허우적 대면서, 어떤 면에서는 너무 정직하고 솔직한 탓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마는 것을 생각하며 은연중에 개인의 행동과 언사 모두에 원치 않은 검열을 하고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또 생각하자니.. 나쁜 것은 아니다만 뭐랄까 애석해진다.
정직하게 삶을 대하는 게 가끔 참 어렵지만
그래도 두 사람처럼, 되도록 정직하게 시간을 흘러가 보려 한다. 답 없이 그저 이 마음 하나 건지며 다시 일주일을 시작해 보는 지금. 내가 아끼고 싶은 이들에게는 되도록 '정직' 하게, 가지고 있는 것을 줄 수 있는 순수한 정직이 아직 마음에 남아 있기를. 그로 인해 때론 스스로, 있는 대로 잘해 주곤 상처 받는다 할지언정.
괜찮을 거라고.. 그것이 결국 죽음의 문턱 앞에서, 우리들에게 남는 인생 아니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