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축사 하나가 나를 흔들어놓았다.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갈 겁니다.
격하게 분노하고,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 방시혁 -
놀라웠다. 그의 서울대 졸업 축사 전문을 읽어내렸을 때.
어쩌다 법대 대신 미학과를 택했던 사람. 또한 어쩌다 프로듀서가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던 그의 메시지는 참으로 강렬했다. 허무하게 뭔가에 홀린 듯 음악을 시작했다던 그의 '홀리다'라는 동사에서 잠시 멈칫했다. '방탄소년단'이라는 소위 외신에서는 유튜브 계의 비틀스 급이라 거론되는 어마 무시한 초인기 아티스트 반열에 드는 그룹이 탄생하기까지. 어쩌면 그 홀리는 끌림에 내맡길 줄 아는 그들의 용기 어린 실행력이 지금을 이루어낸 건 아니었을까.
대단한 에피소드나 거창한 결단은 없다고 했다.
아무리 돌이켜봐도 그런 결정적인 순간은 없었다고. 다만 흘러가다 자연스럽게 음악을 하고 사업 또한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생각나지 않을 만큼 그래도 치열하게 시간을 보냈으니 가능했겠다 싶다가도 왠지 그 말속에 숨겨진 마음을 감히 알 것도 같았다. 그는 '내맡김'을 아는 사람 같았다.
인생에서 중요한, 나만의 의미 심장해 보이는 순간들이 사실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때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단다. 사실 정말 그렇다. 그의 말처럼 막상 우리는 그렇게까지 거창하거나 대단하게 소원하는 꿈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닐지 모른다. 그저 사소한 행복, 불안하지 않은 감정 상태로 지금을 잘 살고 싶을 뿐.. 어쩌면 '꿈'이라는 단어 조차 굳이 꼭 꿈이 있어야 될 것처럼 쫓기듯 사는 것도 어딘지 모르게 행복해 보이진 않는다. 꿈이라는 단어가 주는 아이러니한 결핍감... 도 있을 테니까.
원대하지도, 구체적이지도 않았던 꿈. 그러나 그는 주저 않는 실행력은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매번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에 따라 선택했다던 그는 사실 '불만'과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표현한다. 무릎을 탁 칠 정도로 나는 그의 말에 공감했다. 불만이 있는 사람은 반대로 자신이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순정한 어떤 것들 안에서 불합리와 부조리, 비상식적인 것들과 마주할 때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는다.
현실과 맞선다.
그냥 적당한 선에서 끝내려는 무언의 관습과 관행에 화를 낼 줄 아는 사람. 그랬기에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정말이지 '빅히트' 했던 건 아닐까. 그의 분노가, 뜯어고치려는 뜨거움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개선과 변화를 이끌어 내려는 그야말로 '피, 땀, 눈물' 이. 그와 그의 팀을 여기까지 이끌어 냈던 건 아닐까 싶다.
알지 못하는 미래보다 지금 주어진 납득할 수 없는 문제를 개선해 나가겠다는 그의 말에서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나는 축사 전문을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읊조리고 있었다. 이 글 아래 녹음본을 올려놓을 정도로.. 왠지 목소리로 남겨 놓고 싶었던 만큼 따라 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조금은.. 좀 더 '내맡길 줄 아는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것 같아서. (지금도 충분히 내맡기며 제멋대로(?) 살아보고 있다만...)
그의 전문을 보자마자 바로 동생에게 링크를 보냈다.
어른의 몸을 하고 있지만 내면엔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는 어떤 무언의 '열망' 이 잠재되어 있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걸 우린 서로가 알기에. 비록 일상을 흘러가다 지치고 허무함이 온몸을 감싸는 순간이 올 지언정 지금 나름 열심 에너지로 정신승리하며 하루를 채워 나가는 너와 나의 움직임들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결국 눈덩이처럼 뭔가가 커져있지도 모를 일이라며. 그냥 좀 더 파이팅 응원을 해 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부조리와 불합리,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현실과 맞서는 사람이 사실 과연 몇이나 될까.
최소한 관습과 악행을 어떻게 하면 파괴할 수 있을지, 그 파괴에서 그치지 않고 좋게 선순환시킬 줄 알며 상생의 미학을 일상에서 이뤄내려 하는 사람도 몇이나 될까 싶다만.... 별 힘없는 나는 그럼에도 바라나 보다. 어쩌면 순응에 익숙하게끔 만드는 시스템 안에서 그 프레임을 깨 내려 고군분투하는 사람. 그런 태도로 시간을 채워나가보고 싶어 진다고..
죽어있는 시간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간을. 붙음 보다는 내맡길 줄 아는 사람을..
알을 깨 부수고 나올 줄 아는 용기... (데미안이 생각나서)
집착 같은 붙든 보다는 그냥 유영하듯 흘러가며 그때의 선택에 과감히 나를 던져서 내맡길 줄 아는 용기가... 나에겐 얼마나 남아 있는가. 글썽일 만큼 내면의 메아리에 얼마나 집중할 줄 아는가.
내게 되묻게 되었던 이 강렬한 메시지를
나와 세상을, 낯선 사람들의 소중한 연결이 이루어지는 이 소중한 공간에도 남겨둬 본다. 걸음을 재촉하듯. 끌리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