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Apr 07. 2019

어떤 휴가

원치 않은 듯 사실은 원했던... 

한순간 나는 지금 이 순간처럼 세상에 또 다른 인간에게 이토록 강렬하게 연결된 느낌을 

다시는 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 미 비포 유 - 




완벽히 '혼자'가 된 지 어느새 13시간이 지나, 요일이 바뀌려 한다. 주말에서 평일로.  

전개는 급작스러웠다. 물론 사실 그리 순간적인 충동으로 일궈낸 연출 작품만도 아니었다. 다만 그의 대처와 수순에 자연스럽게 따랐을 뿐. 급작스레 해외 출장을 떠나게 된 남편과, 혼자 아이 둘을 등 하원 시키는 게, 아니 그전에 요즘의 저녁 독박 육아에 미안했던 모양이었는지, 그이는 미리 시댁에 부탁을 해 두었다고 했다. 잠시 아이들의 보살핌을 맡긴다고 했다. 고민해 보겠다고 했지만 결국 나는 그렇다고 뚜렷한 저항이나 대책 하나 없이 그리 시간을 하루 이틀 뭉개고 있던 찰나.



시간은 흐르고 결국 오늘에 다다라서 결국 마지못해 짐가방 챙기기 시작했다. 겉으론 고민했으나 사실상은 무의식 중에 남겨진 '보내버리고 싶은' 충동이 좀 더 이겨 버린 셈이나 다름없었다. 무려 다섯 개 이상의 쌍둥이들의 의복과 배변기, 기타 이동 중 간식 거리과 신랑의 옷가지 등이 들어있는 짐들을 트렁크에 담았다. 



- 안가, 나. 엄마랑 도서관 갈 거야. 

- 정음아. 미안해. 그런데 너 안 가면 형이 혼자 가야 하니까.. 가기 싫어? 가지 말까?

- 가자. 정음아. 됐어. 사탕 주면 또 괜찮아.  

- 보내도 되는 걸까..

- 원했잖아. 

- 뭘. 

- 그냥. 요즘 시간 필요한 거 아니었어?

- 나 좋자고 애들 보내버리고 싶은 건 아니었어..

- 빈 말 말고. 그냥 갈게. 어머니 뵌 지 꽤 됐고, 나 혼자 다녀올게 걱정 마

-... 미안해. 잘 다녀와 

- 휴가 잘 보내. 



그렇다. 휴가...

나는 그가 준 '휴가'라는 선물과 동시에 미안하다는 말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왜 미안했냐면, 사실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 좋자고 애들 보내버리고 싶은 건 아니었다'라는 건 사실 반은 거짓말이었다. 요 근래 퇴근하고 나면 부리나케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련의 육아 출근 이후의 수순들, 다시 지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더군다나 해내야 하는 개인 일들도 산재해 있던 도중이었던 지라, 예민함과 피로함이 급격하게 몰려오는 순간이면 나는 간절히 때때로 바랐다. 어디론가 혼자 사라지고 싶다는... 가끔 타임리프 된다든가 증발해 버릴 수 있는 초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늘 마음에서만 맴도는 불순한 생각...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품고 지내는 못난 양육자로 산다.  


그러던 중, 그렇게 우리 집 남자 세 명을 엉겁결에 보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철저히 '혼자' 다. 

그렇게 혼자만의 휴가를 선물 받았다. 오늘부터 3일간.  그리고 그 혼자가 되어 버린 첫날부터 나는 의도치 않은 눈물을 결국 흘려버리고 말았다. 여전히 이렇게 울어 버리고 만다. 어떤 장면들이 철저히 혼자가 되어버린 나를 습격하는 순간이면. 



그 기억이 마음속 깊은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착각' 하며 살았던 걸까. 

그것은 마치 안갯속을 떠도는 유령처럼,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그리하여 이제는 전혀 기억 조차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잔흔은 언제나처럼 완벽히 '혼자'로,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순간이면 심연 그 깊은 곳 어디에서부터 영원히 그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는 듯, 무언의 목소리는 그렇게 나를 찾아 흘러 들어왔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를 찾는 목소리...



의자에 앉아서 음악이 들리자 그렇게 울어 버렸다. 울 준비가 되어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있다는 건 축복..일테다. 






청소를 있는 힘껏 해 대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떠나고 늘 주말이면 밀린 청소를 해 대었지만 이번 주는 좀 더 세심하고 깔끔하게 마치 집 전체를 들었다 놓는 것 마냥 집안 구석구석 오랜만에 냉장고에 옷장에 심지어는 소파 커퍼와 침대 이불 커버까지 싹 빨아 널곤 그렇게 몸을 쉬지 않고 굴렸다. 그래야 될 것 같았다. 청소를 다 마칠 즈음 이상한 갈증만 가득 차 올라 물을 벌컥벌컥 마시곤 그제야 집안일을 다 해냈다고 스스로 생각될 무렵, 슬금슬금 노트북이 놓인 식탁 위로 걸음을 옮겼다. 



원고를 쓰기 전에 언제나 그러하듯 음악을 듣는 버릇이 있다. 

나도 모르게 듣다 만 멜론의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귀에 머무는 그 멜로디와 가사 덕분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또다시 볼을 타고 흐를 것 같은 것을 겨우 눈에 힘주고 있다가 그제야 혼자인 걸 알아채곤 엉엉 울어 버렸다. 아이들도 보지 않으니 이젠 거실에서 혼자 엉엉 울 수 있다고. 그렇게 혼자만의 울기 좋은 공간이 생겨 버린 이 3일 동안, 나는 마치 그동안 하지 못한 것들을 하나 둘 해내려 작정한 사람처럼, 한퀴에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왜 울었을까 

미안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리워서였을까. 몇 시간도 떨어지지 않았으며 사실은 지루하고 지겨울 정도로 요즘 육아가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어서 오히려 지칠 때로 지쳐있었기 때문에 이런 홀가분한 '휴가'의 시간을 늘 바라지 않았던가.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줄 알았었는데. 

막상 아니었다는 걸 이내 알 수 있었다. '엄마랑 같이'라는 아이의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그 목소리에 선뜻 응하지 않고 기어코 결국 보내버리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보내버린 나 자신이 괴물 같아서... 때론 솔직히 식구들에게 아주 잠깐은 완벽하게 차단되어 혼자가 되어 조금은 자유(?) 롭고 싶은 여전히도 철저히 개인적인 욕망을 품고 있는, 나라서... 그랬던 걸까. 미안해서. 이 모든 불순함들이 그 아이에게 미안해서 말이다. 



창문을 하염없이 쳐다 보고 있었던 그 시간들도 결국 지나가지 않았던가. 그런데 하물며. 무엇을 그리도 여전히 바라는건지..





이대로 전혀 모르는 어딘가로 떠나 익숙한 일상과 세상에서 벗어나 사라져 버리고 싶었으니까.

사실 이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다는 걸 이제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때론 내가 누군지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신분으로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내가,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를 괜한 자격지심 하에 생각했었나 보다. 귓가에 울리는 그 가사가 그렇게 순간적으로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직성이 풀릴 때까지 울고 또 울게 만든 것도. 결국 그런 이유들 때문들이기도 할 것이라며. 



그렇게 잠시 동안 깊은 울음을 짓다 겨우 그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이미 계약금을 받아 버린 밀린 단행본 실용 원고를 써 내려가야 하기에 부단히 주어진 희소한 이 개인 시간 안에서 최대치를 뽑아내야 한다는 강한 일념 하에.. 부단히 손가락과 머리를 쥐어짜 내듯이 그렇게 한 문장 두 단락 한 챕터 두 꼭지 초고를 완성시켜 나갈 무렵,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 까, 그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도착했다고, 빵 말고 밥 챙겨 먹으라는 그이의 일상적인 그 안부 안에서 

우리는 또 다른 곳에서도 연결되어 있다는 새삼스런 생각에 문득 또 다른 '사랑'을 느낀다... 그건 어쩌면 이젠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 대신에 차지해 버린, (여전히 달갑진 않지만) 편안하고 익숙한 사랑만이 대신 우리 둘 사이에 자리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이 사랑은 한편으론 서글프고 또 한편으로는 또 다른 연민으로 조금 더 오래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렇게 나는 말을 이어 나갔다. 



고마워, 휴가 선물.. 잘 부탁해. 아이들. 그냥 미안해...

(난 여전히 미안해. 혼자가 됐을 때 슬프면서도 기쁠 때면.) 



나의 어떤 휴가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3일. 나는 어떤 휴가를 보내게 될까...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밤이다.




휴가 첫날, 오후부터 이 시간까지, 나는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게 그가 내게 준 휴가의 예의 같아서....


작가의 이전글 예뻐서 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