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그래서 좋아했고, 또 좋아합니다. 여전히...
누군가 사랑하면 외로워져, 그녀는 생각했다.
아무에게도, 이제는 셉티머스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 댈러웨이 부인, 버지니아 울프 -
이름을 좀 더 알아줄 걸 그랬다. 그토록 이름을 불리기를 좋아했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 조차 제대로 알려하지 않았었다니. 레너드 울프와 결혼하기 전 그의 이름은 '아델린 버지니아 스티븐'이었다고 한다. 그토록 '팬'이었다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 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니. 미안했다. 그녀에게. 그래서 더 열심히 읽었던 걸지도 모른다. 더 알고 싶었으니까.
버지니아 울프 북클럽, 이택광, 휴머니스트, 2019, p. 264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는 누군가의 해석 하에, 해체되어 다가왔을 때.
미처 몰랐던 부분과 편협한 시선으로'만' 바라봤던 단편적인 팬심은 결국 확장된다. 그렇게 또 다른 그녀의 모습을 알게 되었을 때. 또 다른 '자기만의 방' 이 열린 듯해서, 이제라도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렇게 빠져 들듯, 여전히 이 글을 쓰면서도.. 어떤 생각들은 꼬리를 물고 나를 찾아온다.
쉬고 싶었던, 기대고 싶었던, 그리고 꿈꾸고 싶었던 모든 시간들이 담겨 있는 그녀의 '글'.. 을.
사랑했지만, 여전히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건, 행복을 쓰는 자이자 동시에 현실의 숱한 상처로 고통스러워했단 사람의 글쓰기라서. 또 다른 나... 같아서, 아니 나 대신 써 주는 것 같아서 (라는 이 터무니없는...)
그래서 좋아한다. 여전히도. 좋아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용기 있었던 당대의 사상가이자, 감각을 사랑했던 글쓰기를 거침없이 행했던 사람. 이 용기,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난 그녀를 어쩌면 닮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니 철저히 닮고 싶었다. 그래서 따라 썼고 베껴 썼고 비슷하게 써 내려갔던 이십 대의 나를.. 여전히 이렇게 마음에 품고 산다. 어리석지만 그 시간은 갔고 나는 변했고 나의 글쓰기도 변했지만. 그러하지만.. 언제나 그리워한다는 걸 나는 또 안다..
사랑과 증오는 하나라는 걸 인정하는 라이터 같아서.
내면의 의식을 드러내는 자전적 소설을 썼다 하는 그녀의 소설을 그래서 사랑한다. 특히 댈러웨이 부인과 등대로 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거의 울프의 경험에 기초해 있다고 책은 말한다. 삶이라는 날 재료를 취급해서 거기서 여성의 일상을, 익명으로 취급당했던 역사 속의 여성을 가감 없이 끄집어 내려했던 이. 그래서 더 의미심장한 스스로의 실험을 주저 없이 글 안에서 표현하려 했던 사람... 닮고 싶은 사람..
쉽지 않은 일이고 또 쉬운 일도 아니지만
철저히 재정적인 문제 또한 다루며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던 그녀는 '자기만의 방' 이 여성에게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500 파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재의 재화 가치로 따지자면 이는 한화로 약 한 달 200만 원 수준의 2800만 원의 돈이 최소한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소리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건 바로 이런 그녀의 생각들 때문일지 모르겠다. 현실의 삶을 외면하지 않은 그녀의 감각이 살아있는 자유로운 글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돈' 이 중요하다는 걸 그녀는 가감 없이 말하지 않은가.. 생존이다. 생존... 중요하다.
결국 글쓰기든 돈이든, 그녀에게는 삶을 사랑하는 '생존' 이 문제는 아니었을까.
내게도, 이제는 그건 '생존'의 가치 수준의 것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요즘인 듯싶다. 결국 내가 글을 여전히도 악착같이 고집하고, 꾸준히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도 손가락을 부단히 움직이려 하며 감각을 통쨰로 열어서 나만의 문장,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창작' 하려 하는 이유도.
그녀처럼 나 또한, 쓰기 위해 살고 쓰기를 통해 살고자 하기에.
약간의 비장미를 더해 표현하자면 그렇다. 쓰기 위해 살다가 결국 사는 건 쓰기로 통해 다시 살아지는 것... 그냥 아직까진 그래 보는 편을 택하고, 오늘을 살아보고 있다.
책은 그녀를 소설 못지않게 탁월한 에세이를 쓰는 동시에 비평가로 표현한다.
일기가 그녀의 소설과 에세이를 위한 원재료였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녀의 모든 소설 작품은 어쩌면 '자전소설' 은 아니었을까. 분명 그랬을 거다. 댈러웨이 부인의 클라리스가 런던 거리를 산책하는 것을 즐겼던 것과, 버지니아 울프가 템스강 곳곳을 산책했던 것, 무엇이 다르겠는가.
진실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야기를 쓰는 라이터가 되기를 소원하는 나는
오늘 첫 꽃구경과 동시에... 귀가하는 버스 안에서 문득 한번 더 자조하듯 고백했다.
당신을 좋아했고, 그래서 여전히 좋아한다고.
이렇게 서투르게 글을 마무리하는 바보 같은 나는, 여전히 이렇게 살아보고 있다.
#One_find_Today_my_dear_moon_Thank_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