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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08. 2019

데리러 가

라는 참 좋은 말, 고마운 말. 여전히 설레는...목소리. 

이젠 설렘 같은 건 별거 아니라고

그것도 한때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철이 들만도 한데

나는 또 다시 어리석게, 가슴이 뛴다.


-그들이 사는 세상 - 





아이들을 재우고 나니 어느새 밤 10시가 훌쩍 넘겨진 시간.  

양쪽에 널브러지듯 누워있는 아이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누워있으려는 마음보다 일어나려는, 기어코 애쓰는 마음의 완승에 쾌감이 밀려왔으나, 그것도 잠시. 그대로 소파로 직행해서 핸드폰을 열어 수 백개의 읽지 못한 톡을 하나씩 '따라잡기' 하고 있던 중이었다. 빨래 돌아가는 소리만이 들리는 거실에 있다가 알림음 하나가 들렸다. 발신인으로 저장된 그녀의 이름을 보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설레었다는 걸 상대방은 모른다. 나만 알 수 있는 심장의 진동일 테다. 



누군가에게 설렘이나 두근거림의 대상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것만큼 어려운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여기서 어려움의 상세 버전이라 함은 설렘이나 두근거림의 대상으로의 존재를 '유지'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소함 혹은 새로움은 대부분 설렘이겠다. 흔한 연인들의 시작이 그러하듯. 그러나 그것들이 시간과 만나 익숙함으로 변한다. 그리고 설렘 수치는 조금씩 감소한다. 



유지의 노력에도 한계는 있다. 드러내지도, 드러나지도 않을 뿐. 

익숙함에 패배하게 되면 남는 건 허망함, 혹은 건조함 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대단한 건 익숙하다 생각되는 관계에서도 설렐 수 있는 것. 이게 과연 가능한가. 나는 그 밤중에 엉뚱한 문자 하나에서 이런 허무맹랑하고 무의미한 생각들을 순식간에 해댔었다. 그만큼 설레는 문자여서였던 걸까. 아니면 그리운 대상으로부터의 소식이어서 그랬던가. 아니면... 뭐 때문이었을까. 듣고 있던 노래 때문이었을지도. (이 노래, 더 들으면 안 되겠다) 




아니면, 지나가는 시간이 조금은 아쉬워서. 였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시간이 아쉽다.. 



서툰 문장과 너무 솔직해서 탈인, '말썽꾸러기' 글쟁이의 이야기를, 사랑해준 이가 있다. 

그녀 덕분에 원고 연재를 하면서 정말이지 혼자가 아닌 느낌이었다. 라이터라면 누구나가 공감하실지도 모르겠다만, 소위 '댓글' 이 주는 응원과 한마디들이, 지금도 수많은 문하생들, 지망생들, 글쟁이들, 작가와 저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막강한 용기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되도록 댓글을 달려 노력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은 요즘이 아쉽다) 어제 문자의 그녀는 그 장본인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연재를 마치고 어느새 조용해진 그녀의 목소리가 내심 그리웠나 보다.   



장거리에 거주하는 그녀가 말했다. '데리러 갈게요.'라고.. 

일반적인 한 문장에서 울컥했던지. 아마도 이제는 '데리러 가는' 입장이 많다 보니 누군가가 나를 위해 선뜻 '데리러 갈게'라는 말을 듣는 시간이 워낙 희소하다 보니, 리미티드 한 대사에 순간 고마움이 흘러넘쳐서. 그래서 울컥했었나 보다. 고마워서. 누군가가 나를 데리러 주는 시간, 에너지, 마음이 너무 근사해서. 그리고... 반대로 그는 알까. 내가 이 말을 내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다림의 대상과 요 근래 연결이 이어지고 있다. 

7년 만에 만난 직장 동료는 프랑스에서 너무나도 멋진 커리어를 펼치고 있었다. 여전한 그녀와 짧은 만남이 예견되었던 터라 준비한 편지와 작은 선물만 전달한 채 그렇게 보내고 다시 하원을 시키러 버스를 타야 했다. 잠시 소원해졌던 벗과도 다시 마음을 열고 말을 먼저 트니, 그제야 우리는 서로 웃으며 일상을 다시 공유하게 되었다. (온라인의 폐해를 다시금 느끼게 되었던, 역시 연결은 '오프'다) 



그리고... 어떤 어둠이 저 멀리서 나를 덥치려 할 즈음, '데리러 갈게' 라는 말로 구원을 선물해 준.

그녀 덕분에, 적잖이 얕은 요즘의 알 수 없는 우울감은 두근거림으로 변했다. (아이 같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면이 여전히 살아있는 것을 보면) 그리고 고마워서... 나는 그녀에게 줄 종합 선물세트를 어느새 구상하고 이미 마음속으로 포장을 마친 상태다. (역시나 이 어처구니없는 생각은 지속된다.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마음은 이렇게 밤을 앞지른다. 그리고 동이 트면서 그렇게 밤은 지나간다

동이 트고 뜬 눈으로 다음날을 맞이하며 나는 이 두서없이 흘러가는 마음을 기억하고자 늘 그렇듯 텍스트로 시간을 남긴다. 이유 하나 댈 것 없이, 그냥 '데리러 가'라는 그 마음에 고마운 시간을, 그리고 그 마음 이어받아서 나 또한 누군가를 데리러 갈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보는 시간을, 그러다 나에게 말한다. 



데리러 가. 너도. 네가 바라던 그곳으로. 

인내란 좋은 일이 생길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라는 말을 기억하기에. 




밝아진 머리색은, 마음을 밝게. 그렇게 조금 더 밝을 오월을 바라며..


#오랜만에_점심_아무 말_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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