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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May 21. 2019

후회는 덜 하고 싶다며  

아직까지 잘 참아내고 있는 것은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아직도 떨리고 있는 

그 마지막 현 때문이다. 

 

- 고등어 - 






무슨 심보로 '제출'을 충동적으로 했는지는 알 턱이 없지만.

아니 있다 한들 적당한 단어와 문장으로 매끈하게 정리되진 않을 것이다. 그저 철 아직도 덜 든 어른이의 허무맹랑한 돌진 정신이 앞서서? 아니면 이성적인 어른의 표정으로 회사라는 공간에서 아웃룩 속 고객님들과의 이메일 교신을 하며 드라이하고 무미건조한 시간을 주고받다가 갑자기 신물이 나서? 아니면 통장 잔고와 자산을 확인해 보니 문득 이 정도는 몇 년 정도는 버티고(?) 괜찮을 것 같은 잔액을 오늘의 가계부에서 확인해서? 적금과 예금 만기가 돌아옴과 동시에 운이 좋게도 오늘의 보유 주식 중 한 주가 점상을 찍어주신 덕분에 시퍼런 주가들 속에 빨간 신호등이 켜지며 동시에 굵직한 수익률을 맛 보여 주었다는 그저 운 100% 가 나에게 근거 1도 없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주었기에? (설마...)  



아니면... 그저... 그저 말이다. 

어젯밤에 시청했던 TV 속에 스치고 나왔던 파란 바다가 배경이 되어 드넓게 자유롭게 아무 거침없이 펼쳐진 그 광야 같은 '그곳'에 가고 싶어서. 좀 더 보란 듯이, 꽤 어른스러운 이유로 '그곳'에 찾아간다면 조금은 더 나에게 명분이 설 것만 같아서? 



아니면.... 오후에 짧게 주고받은 몇 개의 톡에서 한껏 나를 반성하고 또한 그를 연민하며 동시에 잠시 분노했던 나를 다그치면서 후회함과 창피함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에 정말이지 조금 더 멀리 떠나버리고만 싶어서? 그러다 합격 소식이라도 손에 쥐어지게 될 때가 정말이지 찾아온다면 그제야 지금 이 곳의 다소 안정된 자리와 고연봉을 박차고 나온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할지도 모르겠다만... (어떻게 지켜낸 12년인데 라면서 울지도 모를 일이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후자의 이유가 조금은 더 강할지도 모른다. 

나는. 방금, 어떤 곳의 지원서를 제출해 버렸다. 생각 같아서는 거주지만 좀 더 확실(?) 하게 구해진다면 나는 그곳으로 내려가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을 심정이었다. 충동적인 것 같으면서도 꽤 오랜 시간... 비록 깊숙하지도 철저히 튼튼한 이성으로 모든 플랜들로 무장한 건 아닌 얕은 생각이 기반이 되었지만. 그래도 '생각'이라는 것은 내내 하고 있었다. 마치 행복하면서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그 행복에 무의식이 '이래야지'라고 대비하는 것 마냥. 



물론 현실적인 고민은 몇 가지가 주어진다. 

가령 제일 큰 고민인 아이들. 그리고 돈. 그리고 다시금 주말부부의 연속. 그러나 이 모든 고민들은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가까운 미래의 '상상' 들로 남겨 두기로 했다. 그도 웃으면서 동의해 주었지만 그 목소리에서 그는 나의 결단이 얼마나 진지함을 머금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귀국 하루 전, 그와의 통화는 산뜻하고 간단했다. 보이스톡이 울렸다. 



- 나. 그때 말한 거기. 지원했어. 밑져야 본전이지 싶어서. 되면 서프라이즈고 안되면 마는 거고. 

- 잘했어. 근데 나는 어쩌고. 

- 나 농담 아냐. 진지해.. 자기는 자기대로, 나는 나대로. 돌파구 찾는 거야. 멍청이 같은 행동이라고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안될 것 같아.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 그때랑 비슷하네. 

- 응?

- 그때. 혼자 미국 가겠다고 하자마자 하루 만에 비행기 티켓 끊었다고 했을 때. 

-.....



속으로 뜨끔했지만.. 그때의 이유와 지금의 이유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그에겐 차마 말할 수 없었다. 



- 다시 살아나는 거 같아서 보기는 좋다. 젊어서 그래. 나는 늙었네.. 출장도 이젠 힘들다. 

-... 조심해서 와. 오면 얘기해요.

- 목은 좀 괜찮아? 성대 결절이라며. 

- 됐어. 내가 가수도 아니고. 그깟 대수도 아닌 거. 좀 불편하면 그만이야. 이것도 익숙해져. 

- 미안하네. 나 때문에 장모님도 당신도 아픈 거 같아서. 




미안한 건 사실 나라는 걸. 다 나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언제나 이 말만큼 남에게는 잘하면서도 나의 사람에게는 쉽게 하지 못하는 말을. 오늘은 아낌없이 건네주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언제나 제멋대로에 결단이 한번 앞서면 감정이 더 용솟음쳐서 그대로 실천을 일삼아 버리는 여전히 멍청이 같은 추진력의 나는...



어느새 유월을 기다려 본다. 

유월... 찬란함을 바랐지만 비교적 참담함들이 가득했던 오월을 뒤로하고 다시 찾아올 유월의 새로운 시간들을. 이 저녁. 아마 이 결심의 마음을 여실 없이 남겨 보는 이 저녁, 여덟 시 남짓한 시간 이후에 나는 집으로 걸어가는 약 삼사십 분 여의 시간 동안 또 어떤 결심들로 마음을 다잡을까. 



모든 건 어제 읽은 '결단' 때문이라는 핑계를 벗 삼아. 오늘의 여러 언사들, 행동들에 나는 여전히 후회 하고 싶진 않다며. 후회는 덜 하고 싶다고 중얼거리며 밤을 맞이한다. 



뭐든, 어떤 것이든. 절대. 절대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기로 한다.  구름 친구와 함께. 



#BGM_Salv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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