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우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랑을 제대로 할 용기...
나에게 자유를 허락한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 소냐, 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
맙소사. 허를 찔려버리고 말았다.
'소냐'가 나인지 '프랭크'가 나인지, 아니면 그 '둘'의 모습을 적절히(?) 섞여 둔 모습이 바로 '나'라는 사람 안에 들어 있는 또 달리 숨겨둔 억눌린 자아인지. 들켜 버린 것만 같아서. 시종일관 침묵하며 읽는 내내 미간을 찡그리게 되는 순간이 잦았다. 상처라는 키워드나 사랑, 행복이라는 키워드만을 단순하게 생각하고 '그런 상담 이야기겠거니' 했던 알량하고 못된 허세 가득한 생각은 한 페이지의 단순한 넘김으로 시작하여 무거운 반성과 한숨, 그리고 어떤 깊은 사색으로 꼬리를 물어가며 어느덧 약 300 페이지를 넘기는 완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음이 무겁다. 이 책 후기를 쓰는 내내... 생각이 끝없이 차오르기에.
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베르벨 바르데츠키, 다산초당, 2019. 05. 27, p. 336
사랑이란 무엇인지.
이 얼마나 진부하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많은 사색 거리들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이던가. 사랑은 누군가에게 기쁨과 행복, 너무 당연하고 또 바라는 것일 수 있지만 반대로 구속이고 집착이며 지나친 자기애의 광기적인 인정 욕구로 결국 타인에게 상처를 입혀 버리고 마는 '나르시시즘적' 사랑을 가장한 폭력일 수도 있다는 것을. 표현이 쉽지 않지만 이 책은 '사랑'을 하는 이들 중에 그 사랑의 관계라고 믿었던 것이 산산조각 나 버렸을 때 '아픔'과 '상처'를 결국 극복해내는 '심리' 과정을 다루고 있다.
가상의 인물로 내세우는 '소냐'와 '프랭크'는 사실상 가상이 아닌 실존하는 인물일지 모른다.
아니 이미 실존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요 근래, 동시대의 대한민국의 사건사고만 보아도 데이트 폭력, 성폭행, 미투 등등의 사회 이슈들을 종종 접하다 보면 (물론 이런 키워드라고 해서 이 책이 '페미니스트가 쓴 책'이라고 단정 짓지 마시기를. 부디.) 분명 현시대는 '사랑'으로 이어진 '관계'로 인한 '상처' 들이 여전하니까.
"연인에게 상처 받은 사람들은 상대방에게도 상처 주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 잡힌다.
그러나 복수는 고통만 가중시킬 뿐이다."
가독성이 쉬웠던 건 한 편의 남녀 간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우리들의 현실 같아서.
심리책 치고는 상당히 드라마틱하게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소냐'라는 여주인공의 '고백' 기를 통해 그 이야기를 객관적인 저자의 상담 사례와 의견이 들어가 있어서 이건 마치 한 편의 상담 수기를 읽는 느낌과 동시에 '사랑'과 '관계'와 '삶'에 대한 진지한 개인의 해석마저도 해낼 수 있게 만드니.
소냐라는 인물 설정에서 몇 가지의 '나'의 한때의 감정 선과 중첩됨을 엿보고 말았다.
중년의 아이를 키우는 기혼, 기댈 곳 없는 사랑받고 싶은 심리, 여자로서의 욕망, 탈출하고 싶은 현실 등등. 그래서일까. 격한 공감과 동시에 안쓰러움, 씁쓸함.... 그러다가 그녀의 도발적 결심으로 인해 이혼을 감행하고 한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욕망 어린 선택을 함에 있어서 선택한 한 남자 '프랭크'로 닿기까지.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삶을 흘러가는지 왠지 이해가 되었기에 더 문장 하나하나가 쓰렸던 것 같기도 하다.
"전 아이들의 모든 면을 사랑했고 그림 같은 집도 있었지만, 오래전부터 뭔가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이 삶을,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헤르베르트 곁에서 보내야 하는 삶을 오래전부터 끝내고 싶었던 거죠. 우리 사이는 너무 멀어졌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라는 점이 분명해졌어요. "
'프랭크'를 그렇다고 단적인 '쓰레기' 남자로 취급하기엔 아직 섣부르다.
이는 젠더 불문이며 다만 '나르시시즘 - 자기 자신에게 애착하는 일' 이 광기적인 인물이 어떻게 사랑에 접근하고 쟁취해서 결국 그/그녀라는 상대편의 삶을 망가뜨리고 파괴시키며 결국 서로가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는지를. 그리하여 진정한 '사랑' 이란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를.
"나르시시스트 중에는 일부러 상대가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는 유형도 있다. 이들은 상대방의 눈에 들어 자기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마치 배우처럼 연기한다. "
비틀어진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 책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고한다.
악순환의 늪에서 나오기에 늦은 때란 없다고. '아니다'라고 생각이 되는 순간에는 자신을 위한 선택이 필요하다고. 진정한 '자기애'는 존귀한 존재인 '나'를 외면하지 않는 강한 용기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두 사람의 관계를 목도하며 우리는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결국 남는 건 사랑, 그러나 그 사랑은 귀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진정한 사랑이란... 스스로부터 귀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자신을 귀하게 여기며 타인을 귀하게 여겨야 진정한 사랑으로 자리할 수 있다고. 사랑을 주고받기를 바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은 결국 삶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게 아니던가. 아파도 사랑이라지만 너무 아픈 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는 것도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이라는 걸. (덧,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허해서는 안된다. 어떤 경우에서라도... 자신을 향하든 타인을 향하든)
"쉽게 자책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응원이 필요하다. 누군가가 호감을 느끼고 다가와 함께 앞날을 걱정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자존감은 높아진다."
고백하건대 내 안에는 여리고 감정적이고 순종적인 소냐의 모습도 있고,
동시에 타인을 파괴시킬 수 있는 프랭크의 지독한 나르시시즘도 살아 있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깨닫고 말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모습을 책으로 목도하면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돌이켜본다. 내 주변의 사랑의 대상들을. 그들을 아프게 만들었었던 과거의 내 모습을, 그리고 현재의 사랑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있는지, 지켜내고는 있는지. 나의 그를, 나의 그녀를, 나의 그들을 얼마나 사려 깊고 세심하게 보듬아주고 있는지.
나아가 반문한다. 여전히 나는. 얼마나 건강한 '사랑'을 하고 있는지를.
깨질 것 같은 유리 벽 같은 사랑의 표현일지라도 그 안에 혹시라도 날카로운 상처를 입히고자 했던 파괴적인 감정이 담겨있지는 않았는지. 뜨끔했지만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여본다. 아직 살아있는 한 기회는 남아 있으니까.
사랑을 지켜낼 기회가. 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않을 시간이. 아직 남아있으니.
'사랑'에 여전히 용기 있는 당신과 나라면 괜찮다고. '나에게도 자유를 허락한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라고 되물으며... 5월의 마지막 책을 덮는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며 응원하는 성숙한 사랑을 향해 나아간다.. 좀 더 있는 힘껏 사랑하는 찬란한 유월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