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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un 05. 2019

인스턴트 돌싱

...이라는 궁색한 제목밖에 딱히 생각나지 않는 지금.

글쎼요 나는 감히 예감했습니다. 아마도 먼 훗날 이 날을 기억하며 글을 쓰리라.

그것이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하나의 봉우리 같은 시간이었다고.


- 상처 없는 영혼 -





돌싱이란 무엇인가.

질문이 좀 우습다만, 사실 이 단어의 정의조차 사전에서 찾아보려 하지 않았던 나의 삶에서, 오늘 이렇게 글을 노골적으로 써 보는 이유를 가만 살펴보니 다시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한 나를 애써 외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라는 식의 구구절절한 문장도 이제는 가끔 지겹다만)



대한민국 자타 공인 검색 포털에서 정의하는 '돌싱'의 의미는 이렇다고 한다.

사별이나 이혼 따위로 다시 혼자가 된 사람, 돌아온 싱글을 줄여서 쓰는 말, 싱글로 돌아와 생활하는 사람. 그 사전적 의미에 약간의 분노(?)와 딴지를 걸고 있던 중, 그에게 보낸 메시지의 답장이 몇 시간이 지나서야 울린다.  



어제저녁 때문이라고.

또 같잖은 핑계를 대는 나는 '어제' 조금 더 힘들어서 쓸데없는 생각 끝에 대화를 꺼내버리고 말았다고. 이 미련 맞은 생각은 곧 그칠 것이라고 애써 다독인다. 어린이집에서 소아과, 그리고 다시 집으로 유모차를 질질 끌며 몸을 거의 그 육중한 무게에 기댄 채 내가 유모차를 끄는지, 유모차와 아이들의 해맑은 목소리가 나를 이끄는지 모를 경지에 이르러서 집에 도착 후 '먹놀잠'을 정신없이 해결하고 보니 이미 몸은 죽사발이 다 되어 버렸다. 우울감이 찾아오고 그걸 넘어선 어떤 분노가 스멀스멀 찾아오려 할 때, 일부러 애써 마음과 감정을 차단해 버리는 연습이 이젠 익숙하다만. 대신에 어떤 굉장히 노골적인 현실 상상이 마음에 부유하듯 둥둥...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 덕분(?)에 그이와의 그런 지루한 대화도 가능했으리라.




- 둥이들 스무 살까지, 지금부터 딱 20년까지만 살고 나 자기랑 이혼할 거야.

- 헐. 안돼.

- 일하면서 아이 혼자 돌보는 내 처지는 돌싱이나 다를 바 없어. 돌싱은 편하게 연애라도 하지.

- 하여튼 말을 해도 꼭. 할 말이 없다.

- 근데 그거 알아? 돌싱의 의미도 좀 이상해. 왜 꼭 죽어서나 혹은 법적인 이혼을 해야 돌싱이라고 정의해? 이렇게 안 죽고 법적으로 묶여 있어도 돌싱처럼 사는 사람도 있을 텐데. 어디 나뿐이겠어?

- 진정하시라.

- 진정할 거야.  곧 진정할 건데, 이렇게라도 지랄을 오늘은 해야겠어. 아니, 난 내일도 할 거야. 해서 진정될 수 있다면. 그게 내 최선이니까. 그래야 살아지니까. 그래야 아이들 돌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돈.. 그래 그놈의 돈. 난 계속 벌 거야. 절대 포기 못해. 돈을 번다는 게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 당신은 몰라.

- 알아... 그래서 고마워. 돈. 같이 벌어줘서. 요즘 같아선 나도 때려치우고 싶은데. 위로가 된다.

- 미안한데 그 위로, 인스턴트 돌싱 선물해 준 당신에게 1도 못 받고 있다.

- 미안하다.

- 건강이나 챙겨. 아프면 끝이야. 우리 둘 다.

- 생각해줘서 고맙네.

- 말이라도. 이래야 되지 않겠어. 인스턴트 말고 진짜 돌싱 되고 싶지 않으면. 이게 내 최선이야..




그 후, 대화를 연결하려 하지 않았다. 그게 남겨진 시간, 우리 두 사람의 최선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다만 한 사람은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고, 한 사람은 아는 걸 이렇게 곧이곧대로 어리석게 표현하는 나는, 차오르는 어떤 마음들을 이렇게 남길뿐이다. 대한민국 결혼 제도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1처 1부로 규정된 제도권에 속한, 욕망과 에고로 무장한 인간들에게 이 제도가 얼마나 잔인하고 또 고통을 안겨 주는지를. 또한 그렇게 묶인 관계 속에서 양육의 세계로 발들여 놓는다는 것은, 법적인 두 사람이 앞으로 얼마나 위대하고도 지리멸렬한 최고의 종합예술 노동을 함께 겪어야 겨우 버틸 수 있는 것인지를.



혼자든 둘이든 셋이든 넷이든, 결국 외로움이나 고통은 '마음' 과 '생각' 때문일 지 모른다. 인간이란 참...



아이 둘을 혼자 키우면, 이런 느낌일까 싶다...

여전히 정의하기 힘들고 또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한다는 것 자체가 '죄악' 같아서) 일상생활 유지 자체에 전력투구를 하고도 모자랄 판이 될지 모른다. 또한 '돈'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경제력 유지를 어떻게 해서든 지켜내면서 아이 둘을 - 그것도 아들......- 적절히 케어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만 남는다. 정답은 없고 정답을 바라서도 안 되고 다만 어떤 상상을 진하게 해 내다가 나는 기어코 5년 전에 꺼내 들었던 이혼 서류를 썼던 그 알량하고 냄새나는 자존심은 정말 쓰레기였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돼 버리곤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한숨을 내뿜고 말았다. 그 시절, 그 정도의 힘듦(?) 은 지금과 비교하자면 정말이지 '별 게 아닌, 가소로운' 짓이었다는 것을. 이렇게 아이들 덕분에(?) 깨닫는 경지라니. 나 원 참...



속된 말로 누군가가 그랬다. 혼자 살고 외로울래 둘이 살고 고통스러울래 라고.

고통을 택한 나는 아이 없는 기혼일 때의 고통과는 사뭇 또 다르게 아이 있는 기혼의 생활로 접어들면서 가히 온갖 종합 노동 예술이나 다를 바 없는 이 양육의 짐을 요 근래 '혼자' 짊어지고 가면서 - 여기서 말하는 혼자란 '물리적'인 육체노동의 범위를 말한다. 또한 몸과 정신은 뗄 수 없는 유기적 관계라고 생각하기에 당연히 물리적인 혼자는 결국 정신적인 '혼자'의 경지에도 이른다-  돌싱의 연습(?) 이 이런 느낌일까 싶은.............. 누군가들에겐 염치없어서 미안한, 어떤 생각에 빠져 버리고 만다.



안개 속을 걷는 느낌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흥미진진하면서도 그래서 외롭고도 쓸쓸할.



돌싱이 되고 난 이후의, 어떤 현실 고민을 지레 생각하다 보니.

머릿속에 단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돈' 그리고 '아이들' 이 단박에 떠오를 뿐이다. 현실은 늘 그러하였듯 봐주는 거 없이 냉정하니까. 경제력과 먹고 사니즘. 이게 메인이다. 거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자라나는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노출된 사회 환경 속에서 '편부모'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세상과 타인들의 시선에 얼마나 '자유' 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환경 조성을 시켜줄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고 그저 '생활'을 어떻게 '유지'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여러 현실적 대안들 등등 등등... 쓸데없는 생각이 또 순식간에 밀려들고 말았다. 왜? 나는 지금 완벽한 혼자로 인스턴트 돌싱녀가 되어 버린 기분이라서.  (돌싱이 돼보지 않고서 감히 이런 문장을 잘도 짖걸이는 나는...... 역시 누가 말했듯이 또라이 맞는 것 같다...)



그러다 결국 종지부를 찍고 마는 상상의 끝에선 이 문장만이 남는다.

어떤 선택에서도 절대 '피해자'는 없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생각은 종료되고 다시 일상으로 천천히 돌아오는 과정을 거친다. 피해자는. 절대 없어야 한다. 이 생각은 변함없다. 그래서 나는, 그 피해자를 자청하지도, 그리고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아직은. 아직까지는.

왜냐하면... 아직은 괜찮은 것 같으니까. 이렇게 글로 조금은 떠들어 놓고 보면, 그리고 저장버튼을 누르고 나중에 읽으면 얼굴이 화끈거려서 지레 '자삭' 할지도 모를 이 글을.... 쓰고 보니,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인스턴트 돌싱도 아니고 진짜 돌싱도 아닌, 그저 이번 생을 후회 없이 잘 살고 싶은,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는 나를 둘러싼 그를 향한, 아이를 향한, 그들을 향한 사랑을 여전히 주고 싶은 '나'를 보았기에...


내일은 오늘보다 더 사랑할 것이다. 너희 둘을...이런 나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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