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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01. 2017

13. 완벽한 혼자의 날

5년 만에 다시 도전해 본 고마운 날을 기념하며


제출이 완료되었습니다.   

어제, 요 몇 달 준비한 문학 공모전에 응모를 마쳤다. 5년 만에 다시 부활한 무모한 도전이었다.   


글 마무리 잘 하고 와. 오늘 둥이들은 내가 하원 시킬게


 있는 힘껏 잡고 있던 줄들 중 한 개가 탁 하고 풀리는 느낌이었다.

고마웠다. 한데 고마움만 느끼고 말았으면 참 좋을 텐데 왜 감정이란, 하필 그런 고마운 순간에 고마움을 순수히 못 느끼는지. 고마우면 그걸로 됐지 싶어도 사실 마음 한편엔 알게 모를 엄마의 끝이 없는 죄책감과 아내로서 늦게 들어가는 미안함, 동시에 완벽히 혼자였을 때의 몇 년 만의 성취감으로 인한 기쁨이라는 감정이 마구 뒤섞여 밀려왔다.

   

 완벽히 혼자가 되는 시간엔 무엇을 하며 이 소중한 시간을 사용할까라는 생각을 하며 손은 어느새 가방을 싸 들고 발은 또 어느새 회사 밖을 유유히 나가고 있었다.   


 순간, 아.... 하고 숨을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3주 만에 들이켜 마신 그 시간의 저녁 밤바람이었으니깐. 어느새 공기가 이렇게 선선해지다 못해 차가운 기운이 섞여 들어오는 계절로 바뀌었는지. 사뭇 놀랐다. 칼퇴근을 하자마자 어린이집으로 후다닥 달려가서 유모차를 끌고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가는 20분 여의 시간은, 그야말로 땀범벅이기 때문에 나의 시간은 요 몇 달간 계속 찌는듯한 더운 여름에 정지된 채 있었었는데.   


지하철을 타보고 싶었다. 

 요 몇 년간 거의 타보지 못했었던, 예전에는 참 친근하고 지긋지긋하기도 했던 공간. 문득 그리워서 그렇게 개찰구로 발걸음을 향했다. 지하철 안의 사람들 중 10명이면 9명은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아….. 하고 또 숨을 들이켰다. 나는 핸드폰을 처다 보지 않고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관찰했다. 혼자든 혹은 둘 아니면 무리 지어 있었음에도 완벽히 혼자가 된 시간에 사람들은 핸드폰과 한 몸이 되어 있었다. 사실 어느새 책이 사라지고 사람과의 대화가 사라져 버린 버스와 지하철은 흔하디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상의 모습이니깐. 크게 놀라지 않았으나 마음은 이상하게도 씁쓸했다.   


 역에서 나와서 그렇게 계속 걸었다. 

 그러다 발견한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 가지고 마시면서 계속 걷고 또 걸었다. 빌어먹을 초 가을의 밤바람은 왜 그리도 선선하고 기분 좋은지. 데이트라도 해야 할 판에 완벽히 혼자가 되어 있었던 나는, 몇몇에게 전화를 걸다 바로 끊기를 반복하다 전화 걸기를 결국 그만둬버렸다.   


걷기 참 좋은 계절이 어느새 되어 버린 걸 알았다. 아...계절은 그럼에도 지나가고 새로운 바람은 다시 또 분다.


 이왕 혼자라면 철저히 혼자 놀이를 즐겨보자는 심보였을까. 

 혼 술도 마다하지 않고 도전해 보려던 찰나 뜻밖에 걸려온 전화 덕에 신기하게 만나게 된 지인 덕분에 혼자의 시간은 실패, 아니 구제(?) 받았다.   


 생각지도 않던 꽤 모던하고 깔끔한 인테리어의 수제 맥주집에 가서 감튀를 앞에 두고 에일 500ml를 그렇게 스트레이트로 4잔, 들이켜 마시다시피 하며 시시콜콜한 서로의 일상을 오랜만에 공유했다.   


 타인의 삶을 듣게 되는 순간은 항상 기분이 좋고 설렌다.


 남들은 어떻게 지내며 살까 가끔 궁금해하는 이 알 수 없는 오지랖 아니 어쩌면 내가 살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를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 아니 어쩌면 쓸데없는 가끔 불쑥 튀어나오는 호기심 어린 삶들을 향한 관음증? 뭐가 되었든 어쨌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내겐 정말 신나고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편안하게 아무말대잔치?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만이던지....


 아니, 최소한 어제는 그랬던 것 같다. 몇 달간 진지하고 설레며 울먹이고 화내가면도 모든 마음읙이성과 감성을 다 뽑아내 써 내려간 A4 88장의 글을 몇 년 만에 다시 써 내려갔다는 나름의 자뻑 감과 성취감에 취해버렸으니깐. 꽤 독한 수제 맥주 몇 잔을 마셔도 그런 취기는 내게 쥐어질 수 없는 것이었으니깐 말이다. 

 

 누군가의 험담 지나간 옛사람들과 사랑 이야기, 요즘 사는 시간들 등 그렇게 깔깔거리다 보니 어느새 시계는 10시를 가르치고 있었다. 뭔가 아차 하는 느낌에 부랴부랴 맥락 전혀 없이 마시던 맥주를 홀짝 다 들이켜 마시고 집으로 가기 위해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조심해서 들어가고 다음에 또 봐


 다음이란 또 언제가 될는지

 알 수 없는 기약이긴 했지만, 우연히 (아니 내가 걸다 만 부재중 통화를 보고 했으렷다) 만나게 된 지인 덕분에 완벽한 혼자의 날은 반은 실패한 날이었다.


 그래서 그랬나? 돌아가던 귀갓길에 문득 눈물이 흘렀다. 왜 눈물이 나왔는지는 여전히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완벽히 혼자가 된 날을 같이 지내준 사람, 아니 그 혼자가 된 날을 만들어 준 고마운 나의 그이, 그리고 집에서 엄마 기다리다가 잠에 든 쌍둥이들이 생각나 서렸다. 아니 어쩌면  완벽히 혼자가 되어 하루 2시간을 매일같이 써 내려간 시간들과 그것이 일단락 지어진 날이라서?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눈물’이라는 걸로 내게 하루의 마지막을 장식해 줬던 걸까. 아 모르겠다. 그래도 그 눈물이 싫지 않았다. 웃으며 나도 모르게 흘러버린 눈물이었으니깐.   


수 많은 불빛 중에 내 불빛만 없어지는 느낌을 가끔 받거든, 그런데 다시 불을 탁-키는 느낌이었어. 나 다시...도전했다고!


는 얼마나 조르바가 될 수 있을까.  

 가방 속에 읽다 만 ‘그리스인 조르바’가 도서관 반납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늦게 귀가한 덕분에 도서관엔 가지 못한 채 가방 안에 고스란히 책이 남겨져 있었다. 조금 더 두고두고 읽고 싶어서 일부러 반납하지 않았던 내 마음을 나는 잘 안다.


 삶을 사랑하는 주인공 조르바는 억눌린 성격의 영국계 청년 바실과 해변에 앉아있다. 바실은 조그만 사업을 해보려고 그리스 섬으로 왔다. 조르바는 바실을 위해 수송 장치를 만들지만 처음 가동하자마자 고장 나 버린다. 두 사람의 사업 계획이 시작도 해보기 전에 완전히 망가진 것이다. 상심에 빠져 허탈해하는 바실에게 조르바가 말한다.  


난 당신을 좋아하니까 꼭 말해야겠어요
당신은 한 가지만 빼고는 다 갖췄어요.

광기.
사람이라면 약간의 광기가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감히 자신의 밧줄을 잘라내
자유로워질 엄두조차 내지 못하죠.

  

 난 얼마나 자유로워질 엄두를 내고 싶은 걸까. 아니 낼 용기가 남아 있기는 한 걸까.

책 속의 바실은 자리에서 일어나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조르바에게 춤을 가르쳐달라고 한다. 열정적으로 인생을 살고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현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하지 않는 다면 인생에 몹쓸 죄악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을.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흐르는 삶이 참 좋다. 그러나 그 흐름에 맞추어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 대로 날아오르는 건 더 좋은 일이고!


 조르바의 말은 좋은 삶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메시지다. 

 우리는 대부분 억압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니깐. 밧줄을 잘라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 완벽히 혼자가 되었을 때 가끔 튀어나오는 솔직한 마음이나 용기가 선뜻 나지 않고 그래선 안 된다는 것도 안다.   


 다만 어제처럼, 내면에 자리한 광기를 향해 그저 오늘도 움직일 뿐이다.

 5년 만에 도전한 공모전, 그리고 앞으로도 작은 행동일 지라도 이렇게 쭉쭉, 마음이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 둘 실천해 내고 싶다. 아직 그러고 싶다. 아직 그럼에도 젊다는 착각은 자유와 같은, 스스로 해내고자 하는 변화 하고자 하는 안주하고 싶지 않은 열정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캐나다 오지 마을 옐로나이프의 오로라 빌리지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보는, 완벽히 혼자가 된 날, 나는 참 행복했고, 앞으로도 행복했음 한다.     


함께 하자. 오로라빌리지 언젠가....나의 사랑하는 아가들아
오늘의 글은 가뜩이나 그랬지만 더욱 두서가 없이 산만해요
읽어 주시는 감사한 분들에게는 약간의 죄송한 마음 담아내어 발행합니다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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