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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10. 2019

편지를 읽는 여인을 보는 시간

혼자 보는 미술관 

작품과 관계를 맺고 교류하다 보면 서로의 위치와 역할이 바뀌어서 

작품이 우리의 생각 혹은 삶 자체를 반영할 수도 있다. 


- 혼자 보는 미술관 - 





'아무도 없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게 미술이라는 작품일 수 있지만. 

반대로 그 작품세계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리라. 그만큼 어려우면서도 난해할 수 있는 게 또한 예술작품 이겠지만, '혼자 보는 미술관' 은 '타불라 라사'라는 10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그 난해할 법한 이미지적 작품을 접하는 데서부터 이해하고 해석해서 사유를 재해석하게끔 만드는, 예술이 주는 또 다른 삶의 묘미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우리에게 던져준다. 




혼자 보는 미술관, 오시안 워드, RHK, 2019.11.08.





사실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누군가가 그랬다. 나에게 쉽지 않은 독서야말로 '성장'을 이뤄내게 하는 것이라고. 

요 근래, 다양한 책을 열심히 '습' 하고 '해석' 해서 '나'의 것으로 만들어 사유하고 사색하는 짧고도 긴 여운의 시간들을 한껏 만들어 보고 있는 와중에, '줄리언 반스'의 미술 에세이에 이어서 '새벽 1시 45분, 나의 그림 산책'이라든가, '혼자 보는 미술과' 과같이 '미술'이라는 예술 세계와 텍스트가 접합된 책의 세계로 퐁당 빠져 버리는 시간들은 어딘지 모르게 일상이라는 삶을 고상하고 우아하게, 때로 질퍽하고 지루하며 갑갑한 시간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탄생하는 것만 같은 묘한 느낌마저 선물해준다. 마치 내가 뭐라도 된 것 마냥.... (정말 우습다만) 그렇지만 그만큼 한 우물에 갇혀 있는 시선이 아니라 어떤 시야로도 확장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변신' 도 가능한 게 아닐까 싶고. 



작품과 관계를 맺고 교류하다 보면 서로의 위치와 역할이 바뀌어서 작품이 우리의 생각 혹은 삶 자체를 반영할 수도 있다. 


어떤 그림이든 시야를 넓혀서 볼 때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그림 주위는 어떤 분위기인지, 어떻게 장식되어 있는지부터 그림이 어떤 건물에 걸려 있는지 등 작품을 전시하는 환경까지 살펴야 할 수도 있다. 우리가 관람하고 있는 바로 그 장소를 위해 그린 작품이거나, 보존을 위해 옮겨온 작품일 수도 있다. 




10개의 그림을 해석하는 키워드인 '타불라 라사'는 비단 미술 작품에만 통하는 건 아닌 듯싶다. 

따지고 보면 어떤 '현상'을 '나'라는 사람의 내면 안에서 재해석하는 건 개개인마다의 노출된 상황, 환경, 삶의 가치관, 우선순위, 기준 등에 따라 열이면 열 가지의 해석이 나올 수 있기에. 내가 처한 시간, 그 안에서 연결되는 관계, 마주하는 배경, 그로 인한 이해, 뒤틀어 보려 하는 열린 마음의 이해와 다시 보기, 그리고 스스로의 평가, 그 이후의 삶의 리듬에 맞춰 같은 것도 달리 비유하며 보는 구도와 분위기에 따라 그렇게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것들은 아닐까. 



시간 Time

관계 Association 

배경 Background 

이해 Understand 

다시 보기 Look Again

평가 Assess 

리듬 Rhythm

비유 Allegory 

구도 Structure 

분위기 Atmosphere 




dward Hopper │ Morning Sun │1952, 책을 읽다가 이 그림도 떠올랐었다. 이 장면 덕에 단편소설을 훅... 써 내려갈 수 있었던 시간이 상기되어서.  





인상 깊었던 페이지는 바로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였다. 

캔버스에 유채 된 이 유화를 해석하는 작가의 시선에 격공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세히 보니 정말이지 편지를 손에 '꽉' 쥐고 만 여인의 이 장면 하나에서도 숱한 이야깃거리들이 절로 상상이 되는 거다. 사실은,  누군가의 메시지 하나에 손에 땀을 쥐게 만들거나 심장이 바깥으로 내달음질 할 법한 순간을 경험했던 과거의 내가 중첩되듯 떠올랐기에, 그림 안 여인의 무덤덤한 표정 안에 가려진 마음은 어땠을까 싶은 마음에, 이상하게도 묘한 공감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다. 




아마도 멀리 있는 연인이 기다리던 소식을 보내온 것 같다. 우리가 모두 이 그림과 관계를 맺게 되는 순간이다. 우리 삶을 바꾸라고, 방향을 돌리거나 정신을 고양하라고 강력하게 권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중략) 창문에 비친 모습이나 주변 물건들은 모두 주인공에게 집중하도록 돕는다. 주인공을 돋보이도록 그림자 또한 같은 색감을 선택해 어둡게 칠했다. 앞쪽에 금단의 열매인 사과가 있는 것을 이유로 이 여성이 스캔들의 주인공이라고 주장하는 미술사 학자들도 있다. 그러든 아니든 우리는 그 여성에게 공감하면서 함께 아픔을 느낄 뿐이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  (편지를 든 여성의 손이 어딘지 모르게 힘이 꽉 들어가 있는 것만 같은... 건 내 눈에만 그런 걸까.)




넘치는 '상상' 이 과하면 해가 될 수 있다고는 하나, 나로선 여전히 그 '상상' 덕분에 하루가 빛날 수 있다. 

풍요로움의 근원이 바로 '상상'이라고 믿는 편이기에... 그리하여 그것이 삶에서 얼마나 위대한 힘으로 재탄생될 수 있는지를, 여전히 믿고 있기 때문인 걸까. 미술이 난해한 건 사실이지만, 그리 낯설지만은 않고 또 접하게 되는 순간들에서는 어떤 영감이나 상상을 새롭게 불러일으켜 주기에 이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어딘지 모르게 '용기'라는 것도 솟아나게 된다. 괴테의 이 문장을 책 안에서 건져냈을 때 '아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해냈던 나임을 발견했기에. 



풍요로운 생각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직접 경험해본 사람만이 우리 마음에서 어떤 열정이 용솟음치는지 이해할 것이다. - 요한 볼프강 본 괴테 - 




미술 전시회 티켓은 아직 주인을 기다린 채로 서랍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와 함께 가려했지만... 흐르는 시간을 마냥 지체할 수만은 없을뿐더러, 사실은 혼자 가도 괜찮겠지 싶었다. 혼자가 되는 순간이 적고 또 짧을지언정, 반드시 필요하기에. 또한 그 혼자가 되는 최고의 공간은 아마도 '미술관'이지 않을까 싶어서. 


나의 최애 작품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볼수록 뭉클한 건 이유를 여전히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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