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Nov 10. 2019

그런 사랑이 있다면

라스트 러브 

아쉽다는 건 다음이 없어서 생기는 마음이겠지. 

다음에 할 수 없는 말, 다음에 볼 수 없는 얼굴, 다음에 전할 수 없는 마음. 


- 라스트 러브 - 






가벼운 소설을 쓰고자 했었다. 라이트 노벨 같은. 

한때의 나는, 아니. 사실은 최근까지도. 그래서였을까. 소수지만 나의 '에세이'를 읽어 주신 독자분들은 가령 나에게 그런 말을 건네주신 적이 있다. 에세이가 분명한데 어딘지 모르게 감성적인 문학 같다고. 나로서는 너무 과한 칭찬을 주신 덕분에 슬며시 고백하듯 흘려서 이야기했다. 



한때 소설을 썼다고. 아니, 아직도 혼자서는 그러하다고. 

그 마음이, 아쉬움이, 어떤 바라는 결과들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온라인에 두고두고 낮은 조회 수에도 불과하고 조금씩 써 내려가고 있다는 것까지도. 어쩌면 '라스트 러브'의 작가님도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을까. 어떤 아쉬움의 마음 끝에서 끝내 쓸 수밖에 없는 그 '사랑'을 문장으로 빚어내고, 그녀가 품은 사랑의 대상들을 향한 어떤 고백들까지도 텍스트에 묻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라스트 러브, 조우리, 창비, 2019.10.30.




팬픽을 '본격적'으로 써 본 기억은 없지만 사실 끄적여본 적은 있었다. 

좋아하는 공인을 내 소설의 캐릭터 삼아서 이런저런 허구의 장면들을 내 멋대로 배열시켜 내다보면 알 수 없는 '희열' 이 느껴졌다. 쓰는 이들이란, 작가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으레 자신의 글에 '취하기' 마련이듯이. '라스트 러브'는 '제로 캐럿'이라는 5인조 여성 아이돌 그룹의 이야기와, 그들의 열성 팬인 '파인 캐럿'이 쓴 팬픽이 교차하는 방식의 독특한 경소설이다. 





이런 날이 오리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다들 그렇겠지. 어쩌면 짐작하고 있지 않을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렇게 모르는 척하고 있어도. 


아무도 모르게 끝은 올 것이다. '이제 기다리지 말아요' 다인은 그 말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그것뿐이라고. 




잡히지 않는 빛 같은 존재들과 '사랑'에 빠지는 한 때를 살다 보면, 그 현실은 때로 소설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미 '소설'이라는 형식의 무한한  자유로움을 서정적으로 담아낸

동시대 문학의 새로운 한 축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일단 북디자인에서부터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던 건 소설 안의 또 다른 소설 - 팬픽 - 이 담겨 있는 페이지를 무지갯빛 색깔로 담아내어 책을 받아 들었을 때 '와아' 하는 탄성을 불러일으켰기에. 문장도 일반적이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서정적인 가사 같았으며, 뭐랄까. 책 디자인 그 자체만으로도 어딘지 모르게 '사랑스러운' 책임엔 분명했으니까. 




노력과 재능 중에서 더 빛나는 건 어느 쪽일까. 


준은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열심히 하는 건 노력이고, 잘하는 건 재능이니까.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재능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배웠다. 


노래는 계속 이어졌다. 노랫말 사이에 팬들은 좋아하는 멤버의 이름을 넣어 부르곤 했다. (중략) 그렇게 외쳐야만 한다고 믿었던 사랑, 그런 사랑들. 




일상에서 있을 수 있는 '사랑'에 대한 것들. 

그 열렬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기에 이런 문장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작년에 부끄럽지만 에세이를 한 권의 단행본으로 만들어냈던 그 시간들은 사실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모든 문장들이 쌓이고 또 쌓여서 그렇게 내면에서 외부의 바깥세상으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던 '열렬한 시간'이었기에. 뭐랄까, 엉뚱하지만 알 수 있었다. '라스트 러브'를 만들어 낸 작가의 그 켜켜이 쌓인 그 시간들은, 그녀가 뜨겁게 사랑하지 않았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문장 들일 것이라고. 사랑을 해 본 사람만이, 다쳐본 사람만이, 상처로 얼룩져본 사람만이, 눈물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지경까지 처해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들이 있는 것처럼... 




네가 있다는 것만으로 나의 하루가 그전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너의 말 한마디와 눈빛 한 번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네가 어떤 때 스치듯 보여주었던 표정을 내가 얼마나 오래도록 곱씹으며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리기 위해 노력하는지, 사실은 너에게 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 그저 나를 위해서 하는 말들을. 수도 없이 적었다. 지치지도 않고 적었다. 그렇게 나의 말이 된 우리의 기억들은 가끔 지나치게 또렷해서 전부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열렬히 사랑해본 사람의 옆모습은... 슬프고도 아름답다.




잠시 멈춰있던 '나의 소설' 이 떠올랐다. 

그리곤 엉뚱하게도 '라스트 러브'를 다 읽자마자 나 또한 '라스트'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이어서 했다. 속절없이 써 내려갔던 올해 봄에 시작한 그 가벼움을 빙자한 무거운 이야기를 시작한 '나'의 책임을 다해야겠노라고. '라스트 러브' 만큼 서정적인 젊은 생기를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아직 '작가'를 기다리는 캐릭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애써 밀려왔던 만큼, 끝까지 해내 보자는 어떤 열망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다. 만들어낸 그 세계관 속 '라스트 러브'를 향해 달려가는 인물들을 상상하며. '제로 캐럿'과 '파인 캐럿'이라는 가상의 인물들이 만들어 낸 '사랑' 속 애틋한 마음이 어딘지 모르게 중첩되는 것만 같다. 




문학과 깊이 있는 에세이를 읽기에 참 좋은 계절이 조금씩 지나가고 있는 것만큼.

조금 더 열심히 읽고 쓰고 싶다는 마음만 남긴 채. 



'러시안룰렛'의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시 이어 내야 할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0년, 업그레이드 인간을 꿈꾸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