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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24. 2019

완전한 인간, 그 속의 진실

기파 

사람들은 로봇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결코 인간을 뛰어넘을 수 없을 거라고 맹신하지. 

하지만 이언의 존재로 그들의 믿음은 박살이 날 거야. 

인간이 지구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미래에도 그럴 거라는 믿음 말이야. 


- 기파 - 





장르 소설엔 익숙지 않은 내게. 

'기파'가 다가왔을 때, 잠시 머뭇거렸다. 그렇게 의구심을 가지고 펼쳐 내려간 이 젊은 작가님의 SF 과학소설은 비단 장르 소설을 넘어서 어딘지 모르게 '왜곡' 되는 현실, 은폐되거나 조작되는 것들에 대한 끝없는 질문, 아울러 사회적 '약자'의 기준은 누가 만드는 것인지, 그 '약자' 들을 대하는 '현실'의 모습들 등등까지도. 한낱 허구에 불과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도 이런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건, 책을 다 읽고 난 이후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었다. 사회복지사로 일을 했다던  '작가' 님의 본업을 알았기 때문에 '아' 하는 목소리를 나도 모르게 내 버리고 말았으니까. 

  

기파, 박해울, 2019. 11.20 



'완전한 인간'이라든지 '사이보그가 아닌'이라는 표현은 생소했지만 

비단 아주 먼 미래의 일은 또 아닌 것 같았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기파'를 구출하려는 '충담'의 서사와 그 주변 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를 읽으면서도 계속 마음에 남는 몇 문장들을 통해서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들 마저도 풀어 내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계급사회' 임이 분명한 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비단 아직까지 로봇과 일상을 섞이며 살고 있지 않은 우리들일지라도, 그 언젠가 도래할 미래 시대에는 어쩌면 로봇을 '포함' 시켜서 더한 계급도 구분되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나는 로봇에게 시중 받지 않는다. 같은 인간에게 시중을 받고 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겠지. 오늘 집주인이 자기 집에 10명을 고용했다면서 7명 고용하는 집주인에게 으스대던데. 젊고, 아름답고, 사이보그가 아닌 순수한 인간을 보유하고 있다나. 로봇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건 자랑거리도 안 되나 봐. 보통 사람들하고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로봇을 보유하고 있지만 정작 자기 곁에는 두고 싶지 않은 모양이지. 



기계로 만든 인공 신체기관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만약 그녀가 손님이라면 저런 기계 의안이 아니라 생체 안구를 이식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승무원이라기에도 탐탁지 않은 구석이 있었다. 오르카호는 완벽한 인간 승무원을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완벽한 인간 승무원' 이란 최소한 겉으로 봤을 때 기계로 대체한 부분이 드러나지 않는 인간을 의미했다. 




완벽한 이라는 형용사가 인간에게 붙을 수 있는 것이긴 한가 싶고... (잠시 엉뚱한 생각마저도) 



문학을 되도록 일상 속에서 꾸준히 읽어 내려가는 이유는 바로 '현실'을 되짚어보려는 어떤 의지 때문이다. 

허구로 쓰여있기 때문이라, 더더욱 현실을 차갑게 풍자하듯 꼬집어 주는 문장들을 만날 때면 더더욱. 흔히 로맨스 소설을 통해 현실 도피(?)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대로 시대극이나 역사적 사건들, 혹은 현대 소설 속의 현대인의 자화상 등을 허심탄회하고 철저하게 재조명시킬 수 있는 장르는 다름 아닌 아닌 '문학' 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허구 속에서 언제나 진실을 발견하고 그로 인한 어떤 반성과 자각을 불러일으키고 마니, 그래서 문학은 그 어떤 독서 장르보다도 충분한 자기 계발서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기파'라고 내게는 다르지 않은 것처럼. 




아주 예전부터 인간들은 제 한 몸 편해지자고 신분을 나누고 노예를 만들었지. 그러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로봇을 부리기 시작했어. 로봇이 상용화되고 인간들이 힘든 일은 로봇이 도맡게 되자, 인간은 너 나 할 것 없이 편한 삶을 누릴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지. 로봇 산업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몸에 달 수 있는 기계 장기나 신체도 같이 발전했기 때문에 더욱 낙관적으로 전망했어. 



하지만 변화한 것은 신분 체계뿐이었어. 세밀히 나누어졌지. 맨 아래에는 로봇이 있지. 로봇이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야. 로봇 다음에는 사이보그화 된 인간들, 그다음에는 사이보그화 되지 않은 인간이지만 돈이 없는 사람들. 그 위에는? 사이보그화 되지 않은 인간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 인간이야. 



그들은 자기 자신을 '완벽하다'나 '온전하다'라는 말로 수식하지. 오르카호는 자신을 최상위 계층이라고 생각하는 부자들의 세계야. 나는 이 오르카 세계를 만들었으면서도 그들이 지불하는 돈을 좋아하면서도 그들을 좋아하진 않아. 솔직히 한심하다고 느껴. 





이야기 자체는 그리 흥미롭지 못했던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다만 한 가지, 전혀 엉뚱한 것들로부터 '기파'에 대한 충분한 응원과 애정을 보내고 싶은 이유는 다름 아닌 이 젊은 작가님 때문일지 모르겠다. 회사를 다니면서 계속해서 '항상 생각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는 작가 노트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어딘지 모르게 그녀의 뚝심과 의지, 글을 대하는 그 선하고 바른 마음에서 깊은 감동을 느꼈기에, 아마 이 작가님의 다음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는 내가 어느새 생긴 걸지도 모르겠다. 아울러 지치지 않고 몇 년간에 걸쳐 소설을 완성해 낸 이들에 대한 찬양과 동시에 나는 스스로를 향한 미안한 반성을 기어코 토해내 본다. 그것은, 넘지 못할 문학이라는 선을 요 근래 그저 읽기에 전념한 채 바라보고만 있는 나를 향한 시선이겠다.  



한편으론 생각해본다. 연민과 이타심이라는 감정이 배제된 인간이 로봇과 다를 게 무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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