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Dec 08. 2019

이야기가 깃든, 도시 이야기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도시는 모쪼록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이야기가 되면 우리는 더 알게 되고, 더 알고 싶어 지고, 무엇보다 더 좋아하게 된다. 


-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 






'한 번은 독해져라'와 '여자의 독서'를 읽었던 터라 작가님의 신간 소식에 주저 없이 책을 펼쳐 들자마자

'역시' 했었다. 문장과 사유의 깊이, 관찰력과 허를 찌르는 역습을 당한 듯한 도발적인 질문들, 그 안에서 작가님만의 통찰력 있는 삶과 도시, 인간상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뭐 하나 두루두루 필사하지 못하고서야 못 배기게 만드는 문장들의 향연 속에서, 잠시 심취된 듯 요 며칠 이 책을 붙잡고 있었다. 내가 통과했던 도시들을 생각하면서.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김진애, 다산초당, 2019.11.18.




복잡하고 어렵게 접근할 수 있는 '도시공학' 마저도 작가님의 '인문학적' 사고와 접근법을 통해서 

다소 친근하나 그럼에도 난해하면서도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질문들과 접하고 말면, 읽던 페이지에서 그대로 스톱, 생각에 빠지고 마는 터라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이토록 깊숙한 '도시 이야기'는 처음 접했기에. 남은 2권의 시리즈 신간들도 사뭇 기대하게 만든다. 하물며 이 이야기가 도시 시리즈의 첫 번째를 담았을 뿐인데 맙소사... 또 얼마만큼의 이야기를 깊숙하게 쏟아내주실까 싶어서 무릇 읽는 사람뿐 아니라 쓰는 사람으로서도 이 대단한 쓰는 선배님의 삶에 경탄을 머금지 못하고 만다. 




인생이 여행이듯 도시도 여행이다. 인간이 생로병사 하듯 도시도 흥망성쇠 한다. 인간이 그러하듯 도시 역시 끊임없이 그 안에서 생의 에너지를 찾아내고 새로워지고 자라고 변화하며 진화해나가는 존재다. 그래서 흥미진진하다. 도시를 새삼 발견해보자. 도시에서 살고 일하고 거닐고 노니는 삶의 의미를 발견해보자 도시 이야기에 끝은 없다. 




도심의 야경... 그 화려하고 분주함 속 공허함-




사실 '도시'라는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나는 단언컨대 '부동산'을 자연스레 떠올렸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동시대의 내가 태어나고 자라는 이 '대한민국' 은 소위 아파트 공화국이 된 지 아주 오래이기에. 누군가들에게는 최고의 히트 상품이 자 '머니 게임의 공간' 이 바로 '도시' 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다소 씁쓸한 몇 가지 도시의 그늘진 자화상을 생각하면서 잠시 어설프게 바랐었다. 소위 '투자자'라고 하는 이들에게 얼마만큼의 '부의 인문학'과 '부동산'과 '인간'을 대하는 인문학적 사고와 교양이 담겨 있을는지. 실로 오지랖이 아닐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잠시 바랐었다. 도시와 사람을 대하는 교양 있는 태도의 '투자자'가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묘한... 바람을. 




겉모습만이 아니라 속을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도시 속 다양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총동원되었을 수많은 인간 군상들의 스토리는 그 자체로 흥미롭다. 권력자의 욕망, 시민들의 바람, 기획자의 고충, 설계자의 고민, 공정에 참여한 수많은 작업자들의 땀과 때로는 피까지도 얽히고설킨다. 





12가지 도시적 콘셉트를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내는 저자의 통찰력은 실로 대단하다. 

익명성, 권력과 권위, 기억과 기록, 알므로 예찬, 대비로 통찰, 스토리텔링, 코딩과 디코딩, 욕망 와 탐욕, 부패에의 유혹, 이상해하는 능력, 돈과 표, 진화와 돌연변이. 이런 콘셉트를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 나갈 수 있다는 건 반대로 '도시'를 바라보는 작가님의 경륜과 연륜 없이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것들이다. 서평을 쓰기 굉장히 힘들었던 건 감히 요약을 할 수 없는 그 진득한 이야기들 앞에서... 그저 읽고 '느꼈던' 그 감정들을 서술하는 것만으로도 뭐랄까 벅찬 느낌인지라, 인상 깊었던 문장을 이렇게 필사로 남기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양서 앞에서는 특히나 서평을 쓰는 것 자체가 어딘지 죄스럽기도 하다. 감히 평할 수 있는 것일까 싶어서..) 




도시는 모쪼록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이야기가 되면 우리는 더 알게 되고, 더 알고 싶어 지고, 무엇보다 더 좋아하게 된다. 자기가 사는 도시를 아끼고, 도시를 탐험하는 즐거움에 빠지게 되고, 좋은 도시에 대한 바람도 키운다. '살아보고 싶다, 가보고 싶다, 거닐고 싶다, 보고 싶다, 들러보고 싶다' 등 '싶다' 리스트가 늘어난다. '싶다'가 많아질수록 삶은 더 흥미로워진다. 




도시가 모두에게 매력적일 수는 없다. 그 안에 깃든 이야기에 따라...



작가님만의 '문학적 감수성' 덕분에 읽는 재미는 더해진다. 

어떤 책이든 이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문장들이 다분히 도드라지는 책을 발견하면 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 결국에 사람과 시간을 대하는 순수성이 결여되지 않은 이들이야말로 '문학'을 대하고 또 계속 찾는 이들일 거라는 얄팍한 믿음 때문인 걸까... 도시 이야기도 마찬가지, 그 공간을 이루고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 이기에. 




모두의 것이자 누구의 것도 아닌 길, 우리가 잠시 쓰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주는 공간,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수시로 만나는 길, 그 길에서 모르는 당신과 잠깐이나마 스치고 싶다. 이름도 성도 모르고 얼굴을 모르더라도, 모르기에 더 자유로운 심정으로 당신과 만나고 싶다. 



보이지 않는 모퉁이 바깥의 길로 가고자 하는 호기심이 우리의 발을 이끈다.




기억에 남는 '도시'는 역시 나로서는 어린 시절 자랐던 친정 동네다. 

아직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결혼 후 정착한 현재의 '도시'는 친정의 그것보다는 덜 친숙한  느낌이 든다. 물론 일상의 숨 가쁜 업들을 해결하면서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지내고 또 지내는 동안 그 '친숙함'이라는 게 쌓이기는 할지 모르나, 그럼에도 어딘지 모르게 '평온'이라든가 '편안함'이라는 감정은 역시나 친정 부모님과 함께 했던 공간만 못하다. 슬픈 기억이 좀 더 많아서인 걸까...'부동산 공화국' 으로서의 입지적인 면으로는 최고인 지금의 이 동네가 가끔은 여전히 무의식적인 불편함을 내게 건네주는 건, 아마도 슬프고 아팠던 기억들이 그만큼 고스란히 베여있어 가끔 나를 찾아오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기억을 생생하게 만드는 힘' 은 결국 그 공간 안에 깃든 이야기 때문일 테다. 





공간에 남은 흔적은 세 가지 면에서 효과가 뚜렷하다. 기억을 생생하게 만드는 힘, 현장의 아우라에서 나오는 감동 그리고 나보다 더 오래 가리라는 믿음이다. 그 공간 안에 들어가면 상상력이 작동하면서 기존의 기억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찾아오고, 새로운 생각이 찾아들며 기억으로 새겨진다. 그 현장 안으로 들어가면 누구나 마치 탐정 셜록 홈스처럼 추리력을 발동하게 된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그 어떤 공간이 존재한다. 아픈 추억이든 즐거운 추억이든 놀라웠던 추억이든 그러한 추억이 담긴 공간을 품고 있는 사람은 속이 깊다. 마음이 출렁이는, 즉 감이 동하는 체험을 하면서 사람은 그윽해져 가는 것이다. 




나이 든 도시의 매력이 사람의 그것과 닮아있다면. 

결국 우리는 각자의 도시 안에서 각자의 시간을 통과하며 다채로운 이야기를 쌓아가는 중일 것이다. 오늘 아이들과 신나게 뛰고 놀았던 낯선 서울의 도시에서든, 귀가를 하고 저녁밥을 지어먹고 계속해서 큰 이변(?) 이 없다면 내일도 지내게 될 이 도시에서든, 마음이 지쳐서 바닥에 머무는 순간이면 으레 찾아가고 싶은 친정이 있는 그 도시에서든. 나의 도시에서의 시간들이 조금 더 생생한 그리움을 향해 '잘' 나이 들어가기를.... 또한 새로운 나만의 공간이 탄생될, 훗날의 도시를 향한 설레는 상상을 조금 더 보태본다. 



언제 만날까 싶은 깊숙한 기다림과 함께...



노년에 머무는 공간은 우리가 좀 더 웃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어야 한다. 그래야 잘 나이 들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의 기쁨, 더 나은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