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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19. 2017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처음부터 끝까지 '시선 집중'

첫 문장에서 ‘뻑 갔다’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든 책 이었다. 어딘가를 향하고 있는 빨강머리 앤의 두 시선의 말똥거림에 자극 받은, 겉 표지였다. 그렇게 집어 든 책의 첫 단락 첫 페이지에서 안되겠다 싶어서 급기야 서점에서 데리고 와 버렸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arte, 2016. 07, 15. p. 336

 

오늘 이 문장   

인간 관계에 실패했고 소설가가 되겠다는 오랜 꿈에서 멀어졌고 결국 회사에 사표를 냈다.
버튼 하나 누를 힘이 없었지만 빨강머리 앤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봤다.     

 

 보통 누군가의 에세이는 하루 이틀 아니 짧게는 단 몇 시간이면 훅 읽어 버리는 습관 탓에 도서관에서 빌리던가 혹은 도서관에 없는 책은 희망도서를 신청하는 편이다. 그런 내가 참 몇 년만의 에세이 구매라니....!


슬픔에 빠진 사람을 결국 더 깊게 성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슬픔은 삶을 통찰하게 하고 우리에게 누가 진짜 친구인지를 가늠하게 한다. 

 

 버릇대로 뒷장을 훓어본 결과. 역시나였다. 25쇄의 기록. 가히 ‘백영옥’ 작가님 스러운 파워에 우선 박수를. 이미 마음은 첫 단락의 문장들에서 뻇겨 버렸으니, 난 이미 그 순간붜 이 책을 다 읽고 난 이후의 글을 쓸 나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빨강머리 앤 처럼.    


 사실 책 곳곳에 위의 '작가의 목소리'가 아닌 앤 셜리를 비롯한 매튜 아저씨, 마릴라 아주머니의 주옥 같은 명대사가 담겨 있다. 그럼에도 신기하게 나는 앤을 다시 바라본 작가의 문장들이 더 공감이 갔다. 역시 힘을 빼고 나오는 담담한 어투의 공감이 주는 힘은 꽤 위대하다. 나와 같은 독자들이 많았기에 아마 25쇄까지도 찍어졌을테니깐...!


서가에 고르란히 세워져 있는 책들 중 감히 5쇄 이상 된 책들을 찾기가 쉽지 않은 걸 잘 안다....! 초판 및 1쇄로 절판해 버린 소중한 경험은 나를 더 성장 시킨다...ㅎㅎㅎ

 

빨강 머리 앤을 TV 에서 봤었던 때가 언제였더라. 

 책을 읽으면서 나와 앤과의 만남을 회상하려 애썼으나, 사실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 나는 건 그저 빨강 머리 앤의 주제가 정도.   


 책이란 그래서 참 위대한 힘이 있나 싶다. 


잊혀진 나의 기억이 되살아 난다.
그리고 타인이라는 또 다른 누군가의 글과 메시지를 통해서
다시 내게 전달되는 순간,
그건 고스란히 나의 ‘지금 이 장소, 이 시간’에 재해석 된다.


 예전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시간이 흐른 뒤의 지금에 이르러 새로운 감동과 기쁨, 설레임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떠오르는 달이, 지나가는 길이, 우리가 사는 지구가, 삶을 살면서 종종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게 삶이다.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을 다시 읽기 시작하는 지금의 나는, 몇 년 만에 글을 다시 써 보기로 맘 먹고 몇 가지의 생각해 둔 소설 공모전에 동그라미를 치고 있었던 나였다. 그래서였을 지 모르겠다. 백영옥 작가의 허심탄회한 그간의 일상의 문장들이, 그녀 또한 바랐었던 소설을 쓰는 사람을 향한 꿈이, 10년 이상 다닌 직장에서 사표를 썼을 때의 이야기들이. 곳곳에 앤과 함께 내게 찾아와 주었으니깐.   


모르겠다. 그녀들도 (앤과 작가 두 여성 모두) 지금의 나와 같았을까 싶다.   

 마음에서 바라는 무언가가 있다고 하자. 앤에게는 가족, 그리고 사랑, 그리고 꿈을 향한 상상 정도라고 한다면 백영옥 작가에게는 소설을 쓰는 사람의 자유로운 삶 정도일 지 모르겠다. (하 적고보니 모두 대단한 것들이다)   

 그녀들도 나처럼, 이것저것 재진 않았을 거다. 

다만 그냥 움직였을 뿐 일테다. 앤에게는 그것이 불모지에서도 터무니 없는 상상을 할 수 있는 잠재된 힘으로, 결국에 성공한 케이스로 보일 지 모르고. 혹은 백영옥 작가는 사표를 던지고 나와서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어 보겠다고, 수 없이 물먹는 등단의 고난 속에서, 급기야 어떤 영감(?) 덕분에 이주일 만에 탄생된 소설 ‘스타일’이 대 히트를 치는 기적을 이루어 내기도 하였으니깐.     


물론 그런 행운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았다 라고 말하는 작가는 소설과 시간은 비례하지 않는다고 해 주시니, 그것은 내게 있어서도 참 다행(?) 스러운 일일 지 모르겠다. 난 아직 그런 행운을 맞이한 적이 없으니...! (이제 곧 오고 있다는 것 쯤으로 믿어본다...하아-)


 부단히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 나름의 안간힘도 일상에서 써 오는데. 뭔가에 부딪혀서 쉽게 나아가지 않을 때 그럼에도 이 두 여자는 해냈다.


자 이제 중요한 건 나는? 그게 중요하잖아...! 뭣이 중헌디. 

 어제도 아기를 재우고 핸드폰 메모장을 켜 두고 손가락으로 단어와 문장을 까딱 대다가 깜박 졸았던 나는 말이다. 어제 또 무리하게 마음에 힘이 들어가 버렸다. 힘 빼려고 노력했는데 그럴수록 더 들어가버리는 힘 탓에 한 문장도 써 내려가지 못한 채 그렇게 소중한 육아 퇴근 이후의 밤시간을 날려버렸다 (젠장)   


그런 내게 앤도, 그리고 작가님도 고맙게도 이 두 여자는 다시 말해줬다.   


‘실망하는 것 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한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이다.   


이 얼마나 친절하고 귀여운 멘트인지. 옆에 있어 주었다면 바로 안아 버렸을 지 모르겠다. 그냥 그 따뜻함과 상냥함에 고마워서 말이다.   


  

커다란 하늘에 비하면 보기 좋게 작을 수 있는 존재이나, 하늘에 닿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결국 움직이게 되나니..(뭘 지껄이고 싶은게야 ㅠ)


책 중간에 ‘고백의 여왕’ 이라는 챕터가 나온다.   

 그냥 그 단어가 참 좋아서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또 읽었다. 그래서 오늘도 새삼 ‘고백하는 오늘’이 되어 보고자 한다. 나란 여자란 참, 내가 생각해도 희귀종인걸까. (아니면 이 책이 내게 건네 준 힘? 정도로 해 두자)   


 누구 말마따나, 애 엄마가 (그것도 다둥이 워킹맘이) 출퇴근에 집안 살림에 워킹맘이 무슨 여유와 시간이 있다고 그리고 그게 도대체가 삶을 사는데 어떤 의미가 있냐고, 그딴 시답잖은 말을 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힘껏 사랑하고 주저 없이 고백’ 하는 삶? 옛다, 엿이나 먹으라고 현실에 돌 맞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말하고 싶다.   


써도 돼. 읽어도 돼. 아름다워져도 좋아. 사랑하고 고백해도 괜찮아.  

 

인생은 B와 D 사이의 C 라고 했고, 그 C는 내가 만드는 거니깐.
그니깐 할 수 있을 때 다 해봐.
지금 마음이 시키는 그 아름다운 유치 찬란한 짓을 맘껏 펼쳐봐

움직이는 순간 ‘짓’이 아니라
‘위대한 가치’로 어느새 변하고 있을 테니깐.   


 어디서 나오는 지 모를 이 신박한 뜨거운 열정이 사실은 앤 에게도 있었고 나에게도 있고,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에게도 조용히 잠들어 있을 것이다.


내 안에 반짝이는 건... 아직 모르겠고, 그저 목에 걸고 있는 유일한 나의 장신구, 진주 목걸이...ㅎㅎ (진주가 되자 흙진주!)

 

 어른이 된 작가의 시선에서 ‘누군가를 깊이 사랑한다는 건 그토록 두려운 일’이라고 말했지만, 흥미로운건 역시 앤이든, 그리고 그 앤을 다시 재 해석해 버린 작가님이든, 실제 일상과 삶에 대한 고백 이후에 삶이 변해버렸다는 사실이다.   


 제대로 쓰고자 하는 바람에 결국 사표까지 내던져버린 작가는 (사실 사표까지 써야 했나 싶지만, 난 아직 사표를 쓰고 글에만 매진할 만큼 용기도 없을 뿐더러 속물이다. 그래서 최대한 어딘가에서 즐겁게 버티면서 써 내려가고 싶다만) 소설을 매진해 보겠다고 스스로 한 고백에 결국엔 다작과 쓰면서도 먹고 사는 걱정이 ‘덜 한’ 나름 성공한 작가의 반열에 들었으니깐. 그 정도면 꽤 변한 건 사실이지 않을까.   


 앤도, 아니 앤의 케이스는 좀 다를 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앤의 삶은 그 자체가 ‘삶을 사랑하는 고백’으로 이루어진 듯 보인다. 그녀가 삶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관점을 바꿔 세상을 바라보는 엄청난 긍정 에너지를 상상으로 쏟아 부을 수는 없었을 테니깐 말이다.   


 흥미롭다. 매력적이다. 이 두 여자의 삶


그리고 한 여자 더 추가해 보자면 여기 지금 이 순간의 나.
사랑스럽다. 그래서 나는 사랑한다..  


 유일한 자유 시간인 점심 시간에 클렌징 주스를 사가지고 올라와서 사무실 내 오픈 된 귀엽고 작은 원형 테이블 위에서, 노트북으로 ‘탁탁’소리를 내며 줄기차게 손가락을 부단히 움직이고 있는 어떤 한 여자 말이다. 귀에는 무한 반복되는 딱 한 곡의 노래를 들은 채, 먹지도 않은 클렌징 주스는 사실은 사와서 한번도 쳐다보지 않고 그렇게 점심시간 50분이 거의 다 지나가 버려도 아랑곳 자리를 뜨고 싶지 않아 하는, 머릿속의 퐁퐁 튀어오르는 단어와 문장을 잡기에 벅차 오른 한 여자, '나' 말이다.  


야근 하는 밤에, 불 (이 아직도 다 켜진!) 좋아하는 사무실 공간을 찍어 보았다. 내려다 본 샷이 영롱하도다....! 여기서 줄기차게 쓰고 읽고 일하고 먹고 (잠은 집에서~)

 

 나도 가고 싶다. 빨강 머리앤의 원작 저자인 루시 몽고메리의 고향인 프린스 에드워드 섬. 그곳으로 언젠가 떠나보고 싶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한번 이 책을, 그리고 빨강머리 앤을 읽어 보고 싶다. 그떄의 나는 어떻게 변했을까를 상상해 보는 지금이다. 부디 딱 한편이라도 그때는 이루었기를 바라며....!

 

하아. 이상하게 길게 한숨이 쉬어 지는 오늘이네요. 그럼에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어요. '사랑하는 삶' 말입니다. (자기고백 하게 되어 버린 우스꽝 스러운 오늘의 글은 너그러운 이해로 배려해 주시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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