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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Oct 23. 2017

이혼 일기

그녀는 이혼했고, 나는 아직 하지 않았다.

참, 오래 걸렸다.

 이렇게 오래 두고두고 한 문장을 곱씹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갈 수 밖에 없는 책은 참 오랜만이다. 나름 속독으로 정진한다고 생각했으나 이 책 한 권을 완주하기 까지 몇 주가 걸려버리고 말았다. 그만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을 때 내가 부딪혀야 했던 여러 집안 일, 회사일, 그 와중에 글까지 쓰고 있는 현실을 탓해보려다가, 마음탓으로 돌려본다. 사실은 이 책을 천천히 느리게 그리고 생각하며 읽어 내릴 수 밖에 없었던 건 마음 때문이라고 말이다. 생각하고 싶었으니깐. 이혼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그러니 그 모든 건 내 탓이라고.


이혼일기, 이서희, 아토포스, 2017. 08. 31. P. 360


오늘 이 문장

 사실 이 책 통째로 모든 문장을 외워버리고 싶지만, 그 중에 하나 오늘 꽂힌 걸 다시 적어 본다. 너무나도 공감하는, 그래서 아쉽고 슬픈.

모든 매력적인 남자가 진지한 관계의 상대가 될 이유가 없고 그럴 확률도 드물다.


그녀의 세 번째 책이다.

 관능적인 삶과 유혹의 학교를 읽었었다.

https://brunch.co.kr/@heaven/10


 두 번째 책을 읽었을 때 이미 난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아마 그 이후로 큰 사건(?) 이 없는 이상 그녀의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책들도 빠져들 수 밖에 없는 팬심으로 가득 무장한 독자로 지낼 것 같다.  사실 이혼일기를 읽어 내리면서도 내내 드는 생각은 사실 이 말 이었다.


“이거 소설이야?...."


 소설이 아닌 팩트각으로 무장한 헐리우드에 살고 있는 어떤 여자의 이야기다.

 다만 이혼을 했다는 설명이 하나 더 붙을 뿐. 그녀의 말투, 문체, 생각이 너무나도 현실적임과 동시에 그 현실을 덮어버릴 만큼 아름답고 때론 자극적이고 서정적인 단어와 문장으로 조합이 되다 보니, 이건 뭐 한편의 드라마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에게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인간 마음 깊숙하게 자리한 욕망의 목소리를 솔직하고 다소 쉬운 문체로 발설해 준다는 점에 있다. 이혼 전후로도 거침없이 ‘프랑스쌍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그녀가 그냥 좋다.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에 거침 없는 사람이 참 좋다. 그래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요즘이다 (그러니 나도 '쌍년'일거라고)


매력적이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는 거침없는 그 표현력과 솔직한 마음 때문일 지 모르겠다. 동시에 치부를 과감히 그러나 어느 누구도 상처 주지 않고 꽤 담담히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은 꽤 매력적이다. 타 매거진인 ‘행복보다 상처’에도 몇 자 적었었지만

https://brunch.co.kr/@heaven/65


 그런 면에서 그녀는 충분히 내게 매력적인 사람이다. 또한 글까지 잘 쓰고 그 나이에 꽤 아름답기 까지 하다. 더군다나 몇 권의 책을 통해서 느낀 그녀는 상처 덩어리의 시간이 있었을 지 언정, 꽤 담담히 아니 타인들의 시선으로 보기에 충분히 여전히 아름답고 매혹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어 보인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질투가 나지 않을 수 없다. 젠장


남들의 ‘그래보인다’는 것에 속지 않는 삶

 사람들은 타인의 삶을 ‘볼’ 뿐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말이다. 나라는 사람의 삶을 사는 건 오직 나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감정, 마음, 사건들 속에 휘말려져 있는 ‘나’라는 사람은 그저 나란 1인 밖엔 없다. 남들이 보는 삶은 진짜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장미를 그냥 장미로 볼 때도 좋지만 장미가 가진 다른 사연을 볼 수 있는 혜안을 기르고 싶다..(뭔..말이래)


 나는 결혼 후 몇 년은 그래 보이는 삶에 취해서 살았다. 사실 요즘도 가끔 취하곤 한다. 그래야 때론 살아지니깐. 행복해 보이고 부유해 보이고 꽤 잘 살아 보이는 ‘그래 보이는’ 것에 취해서 말이다. 허나 그 과정에서 몇 가지의 사건 사고들을 겪어 가면서 점점 마음은 피폐해져감을 동시에 느낀다.


누가 그랬다. 가진 것만큼 외로움도 따라오기 마련이라고.


 이혼일기는 다분히 이서희 작가의 세 번째 책이 궁금하다는 겉으로 정의한 독자적인 이유와, 동시에 사실은, 가끔 찾아오는 내 피폐한 마음 속에 아주 희미하게 자리하고 있던 ‘이혼’이라는 화두에 대해 풀고 싶었었다. 다른 이는 어떻게 그 마음을, 그 과정을, 풀어 내고 있는지 누군가의 시선에서의 타인의 이야기가 궁금했었다.


더 솔직히 까발려볼까

 사실 이혼을 몰래 준했던 몇 년 전의 나를 여전히 기억한다. 그 이후? 나는 현재 이혼하지 않았고, 지금은 꽤 잘 살고 있다. 그래. 정말 진심으로 잘 살고 있다. 꽤 말이다. 다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들은 어느 새 조금씩 커 가 주고 있는 고맙고도 사치스러운 요즘의 현실 덕분일테다.


차 한잔을 마실 여유가 있는 삶이 얼마나 사치스럽고 대단한 건지, 차 한잔 먹을 땐 모른다. 잃어봐야 안다..


 물론 손목과 허리는 나간지 오래이며 육아라는 전쟁속에 이미 신체적 건강은 여기저기 적신호지만, 그럼에도 마음은 꽤 건강해 진 덕분에 난 충분히 달라졌다. 글쓰기로 마음챙김을 실천한 덕분인 걸까? 여하튼 함께 하는 그가 달라 보이고 나 또한 아직 우리 둘은 한 울타리에서 오늘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잠시 궁금해 진다.


 먼저 이혼 해 본 이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마음으로 그 과정을 겪었을지 알고 싶었다. 왜 알고 싶었냐고 누가 묻는다면, 굳이 세세히 마음을 밝히진 않겠지만, 사실 결혼한 부부들의 마음 속엔 수 많은 삶의 사건들과 서사들이 공존해 있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이혼’을 결심하거나 혹은 결심하지 못해도 가끔 상상 혹은 생각을 하고 한 이불 덮고 자는 게 바로 우리들의 현실일 수 있다.


현실은 '팩폭'이다. 소설과는 괴리가 있다.

 앞서 이야기 한 대로 이 책이 한 편의 소설 같다고 생각한 이유는 정말 ‘소설’같아서다. 현실이 아닌 허구인 소설 말이다. 그녀의 문장들 속에 녹여진 현실이라는 그 삶과,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내가 보아왔고 경험해 본 바로는, 팩트각으로 무장한 치열한 현실은 또 다른 느낌이었으니깐 말이다.


 좀 쉽게 말해보자면, 그녀가 소위 엄친녀로까지 보였다. 돈이 있고 능력 있고 외모마저도 그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기 까지 하다. 이혼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는가! 하지 않는 게 이상해 보인다. 너무나도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야 마땅한 그녀라면 말이다. (작가님 들으시면 기분 나쁠 법 하지만, 죄송해도 이런 말 절대 쉽진 않았던 걸로...!)


 헐리우드라는 미국에 살고, S대라는 명문대 법학과 졸업 후 이제는 에세이스트로, 작가로, 아이의 엄마로의 새 삶을 살고 있다. 그런 그녀가 이혼을 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결심은 아닌 걸로 감히 보인다. 왜냐면 내 주변에 정말 현실적으로 이혼을 해야 하는 아주 극과 극의 삶을 달리는 부부들 중 여자들 조차도 감히 이혼을 할 수 없는 슬픈 현실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삶이기 때문이다.


 폭언과 폭행을 하는 배우자 곁에 그럼에도 아이들이 있기에, 자식새끼들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가며 붙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세계가 우리 현실이란 말이다. 국경 초월하고 나이 불문이다. 가정 내 폭력이라는 건 미디어와 신문 기사들 속의 사건 사고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이미 숱하게 드러나는 끊이지 않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우린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정말 혼자가 되었을 때 그 혼자의 삶을 꿋꿋히 다시 재생시켜 나가는 게 얼마나 단단한 삶일지...겪어본 자들은 알겠다.


 대한민국만 봐 볼까? 나이 들고 아이들을 뿌리치고라도 도저히 살지못해서 황혼 이혼을 하는 게 이젠 대수롭지 않다. 돈 때문에 결혼하는 정략 결혼이 남 일도 아니다. 그리고 서로 세컨 부인과 세컨 남편을 지니고 산다. 불륜이니 아니니 남들 욕하기 전에 스스로를 생각해보라. 이미 현실에서건 상상 속 비현실에서건 도망치고 싶어서 도피하고 싶어서 자식새끼 버려두고 서로 두 집 살림 하는 이들은 세상에 넘쳐난다.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게 우리가 사는 비겁할 수 있는 현실의 또다른 이면이란 소리다. 그래서 드라마도 막장 드라마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우리 현실의 단편이 그렇게 변했기 때문은 아닐까? 더 이상 드라마와 영화는 허구의 세계가 아닐 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딴 데로 새 나갈(?) 듯 하여 잠시 다시 돌아와본다.



이혼은 어렵다. 쉽지 않은 도박일 지 모른다.

 돈 있고 빽 있고 비빌 구석 있는 집안을 가지고 있으면,
이혼하기 좀 '덜' 어려울 뿐이다.
절대 쉬운 게임은 아니란 소리다.


 그건 즉 반대로 돈 없고 내 뒤를 봐줄 뺵도 없고 더군다나 비빌 구석 있는 집안에서조차 태어나지 못한 흙수저중에서도 흙수저의 삶이라면, 결론은 뻔하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아이를 낳았고, 그런데 맞고 산다. 그 와중에 남편 / 혹은 아내 돈은 많은데, 자기 스스로는 경제적 자립심은 ZERO 다. 비빌 구석 있는 친정 혹은 나 좋다고 달려드는 괜찮은 놈 하나 없다면 그냥 닥치고 살아야 한다. (너무 거칠어져서 일단 이후 생략)


 이혼이란 절대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건 어쩌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시스템 및 구조적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이혼녀 이혼남 이라는 낙인이 여전히 찍힐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이혼을 결정한 이들에게는 그만큼의 대가가 어떻게 해서든 치러지는 것 같다.


 물론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미국이라는 나라의 자유분방함과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개개인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에 있어서는, 여전히 한국은 멀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혼일기의 그녀와 현실에서 이미 이혼일기를 쓰고 있는 대한민국의 여러 그녀/그들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이다. 내가 사는 이 나라는 말이다.


때론 빌어먹을 공자님의 그 유교사상이 철저히 뿌리 내린 민족이기에
그 태생적인 암묵적 분위기가 어디 가질 못한다.


 단지 겉보기에 소위 쿨해보이고 괜찮아 보이고 또 많이 안 좋은 답습에서 벗어났다고 느껴질 뿐. 사실 물론 많이 바뀌긴 했다. 우리 부모님 세대와 지금의 세대는. 황혼 이혼과 이혼율이 높아지는 이유도 어쩌면 그 결과물 중 하나일 지 모르고 말이다.


 좀 더 쉽게 두서 없이 그냥 말하자면 (그러고 싶다 오늘은 이유 없이) 말이다. 이혼을 하려 해도 할 수 없다 하고 하지 않는 이들의 마음은 돈과 아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아서는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예컨데 부모님이 서로가 죽고 못살아서 한 결혼임에도 때론 서로가 죽이지 못해서 안달 날 정도로 미워하면서도 지금까지 나름의 30년이 넘는 결혼생활을 유지해 오신 걸 보면 아마도 서로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데 최소한의 삶을 연명할 수 있게끔 돈이라는 것과, 살림이라는 것으로 그 둘이 부족한 점을 메꿔주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와 동생 때문에 이혼하지 못한다는 말은 그저 두 사람의 핑계일 뿐, 어쩌면 진짜 헤어지고 난 이후의 삶이 고통스럽고 무서워서, 혹은 감히 상상하지 못하고 그럴 엄두가 안 나서였던 건 아니었을까?


 지금은 그 두 자식들이 번듯하게 보란듯이 잘 살고 있는 축에 속하니, 이제 남은 생은 두 분의 건강한 삶을 위해 집중하고 계시는 요즘이 더 보기 좋아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모르겠다. 답은 두 분 마음 속에 있을 뿐 :)


이혼은 어쩌면 돈의 문제도 아이들의 문제도 용기의 문제도 아닌 것 같다. 

 다만 이혼을 결정한 그 특정 타이밍 속, 마음의 문제일 듯 싶다. 그 마음의 의지가 아주 강하게 작용했을 때 어떻게 해서든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고, 그래서 이혼을 준비하고 실제로 하고 그 이후의 삶을 우리들은 살아간다. 모든 건 어쩌면 그래서 진부하나 마음에 달린 문제일 수도 있겠다.


미국으로 홀연 떠나버렸던 그 겨울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터무니 없고, 그래서 단 한번 뿐이었고, 그래서 참 소중했던 기억...고마운 추억이다.  


아직 나는 이혼하지 않았다.

 내 마음을 뒤 흔드는 설레는 남자가 아닌, 좋은 아빠를 선택한 나이기 때문에 나는 아직 이혼하지 않을 생각이다. 아니 '아직'이 아닌 '결코' 이혼하지 않을 생각이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설렘과 사랑의 대상이 아닌 가족으로서의 그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요즘의 솔직한 이 선택에 나는 덜 후회하고 싶다.


 솔직히 자신은 없다. 그럼에도 설레고 그립고 여전히 나를 격정적으로 사랑해 줄 사람이 나타나면 흔들릴 것 같아서. (젠장. 나 좋다고 고백하며 사랑한다고 달려들 초잘생긴 연하능력남 또라이가 아직까지 없음에 안타깝다. 난 여전히 매력적...인...데...)


 여전히 사랑을 그리워하는 여자인 나는 그러나 동시에 엄마인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아마 송두리째 삶을 뒤 흔드는 사건 사고가 우리 둘 사이에 없는 이상, 나는 지금 내 곁의 그와 이혼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가족으로서의 그는 꽤 퍼펙트한 남자이니깐 말이다. 못 벌지 않고 (꽤 잘 번다) 사람 구실하며 (좋은 어른이다) 무엇보다도 너무 좋은 아빠로서 (잘 도와준다. 때로 불충분해도 마음은) 충실한 삶을 꾸려나가고 있기 떄문에.


아직 나는 그를 포기할 수없다. 그래서 하지 않을 생각이다.
아직까지, 그 '이혼'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혼일기를 쓴 그녀를 만나러 갈 생각이다.

 다행히도 페친으로 연결되어 있는 덕분에 나는 그녀의 삶을 잠시 엿볼 수 있게 되었다. 미국에서 여전히 잘 살고 있는 그녀의 삶을 나는 응원하고 있다. 그녀도 때때로 라이킷을 해주시니 내 일상이 감사할 뿐이다. 곧 한국으로 잠시 그녀가 돌아오는 날, 나는 그녀의 강연회에 그녀를 만나러 갈 생각에 벌써부터 벅차오른다.


 그녀와의 만남을 상상하면서, 오늘 잠시 이혼 생각을 또 해 버린 나의 이 빌어먹을 여리고 나약한, 너무 초라한 잠시의 마음을 진정시켜 본다. 그러면서 우습지만 또 생각해 본다


 나는 이혼 일기 대신 결혼 일기를 써 보면 어떨까를 상상해 보는, 여전히 글을 쓰며 삶을 지속해 나감에 감사한 오늘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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