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Nov 06. 2017

어른의 이별

여전히 아프고 싶지 않아. 이게 진심인 걸  

10년도 더 지났을 지 모르겠다.

 ‘그남자 그 여자’ 라는 책이 시리즈로 나왔었을 때.

 당시엔 어른이 아니었었다. (지금도 여전히 아닐 지 모르겠지만)  그 때 읽었던 사랑의 여러 형태들은 솔직히 그렇게 와 닿지 않았었다. 남들의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들에 그칠 뿐이었다. 


내 사랑이 제일 아팠으니깐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다만, 고마웠던 건 다른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사랑의 모습들을 간접 체험해 보면서 위로가 되어줬을 뿐. 딱 거기 까지만 이었다. 더군다나 해를 먹어갈 수록 우리의 삶은 사랑으로만 가득할 수 없는 현실을 살고 있다는 걸 알기에.


‘어른의 이별’도 ‘그 남자 그 여자’와 흡사한, 오밤중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들이 한 작가의 필체를 통해서 담담하게 적혀 내려간 아주 짧은 사랑의 단편들이 담겨져 있다.


어른의 이별, 박동숙, 심플라이프, 2017. 09. 22. P. 248


 그러나 이젠 제법 다른 느낌이다.

 위로를 건너서, 생각을 해 보면서 느린 호흡으로 읽어내려갔다.

책 이란, 역시 같은 같은 이야기지만 언제 어떤 모습의 나로 읽느냐에 따라서 참 달라지는 것 같다. 어린왕자를 어렸을 땐 읽으며 미처 몰랐던 부분을 어른이 되고 나서야 다시 알게되는 것 처럼. '그 남자 그 여자'를 읽었던 그 때와 '어른의 이별'을 읽고 있던 지금의 나는 변했으니깐.


 10년 전의 사랑과, 시간이 흐른 이후 다시 읽는 사랑은, 역시 달랐다.
그 사랑을 하는 내가 달라진 걸까.


 제법 사랑을 해 봤고, 아파봤으며 이별을 경험하고 다시 사랑을 해서 결혼을 했고 아이도 가진 엄마로 살고 있는 여자여서 일 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런 류의 책을 읽고 있으면 생각에 잠긴다. 다 주고있었던 한 사람이 생각 나고, 내가 다 줘 봤던 한 사람도 생각나서.물론 현재 세 남자와 부대껴가며 사랑을 유지하고 있음에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아픔과 설렘의 모든 사랑의 단편들 또한 스쳐 지나가듯 생각이 난다.


오늘 이 문장.


이 순간을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마 짐작도 못할 거야.
내가 정말그리워 한 게 네가 아니라는 사실. 그냥 이런 순간을 원하고 그리워했던 거야.


내가 정말 사랑에 빠진 건, 어쩜 '사랑에 빠진 나'였을 지 모르겠어.
 그 마음을 받고 있었던 '그'가 아니라...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내 기억의 나는 그랬었던 것 같다. 지금 되돌리기엔 감히 잡을 수 없을 만큼, 여전히 예쁘고 순수해서. 지금 다시 그 모습으로 살고 싶어서 꽤나 부단히 이 나이가 되었음에도 나이는 숫자야! 라는 오기 어린 핑계를 대어 가며, 여전히 순수한 마음을 되도록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욕심 많은 여자가 여전히 '나'인 걸까.


떨어져 버린 꽃잎도 이젠 한번 더 바라보게 된 여유인걸까 혹은 그걸 다시 되새길 수 있는 순수함이 작게나마 남아있는 걸까..


어른의 이별이라는 제목도 퍽이나 마음에 든다.

 어른과 어린애의 경계가 없다고 믿고 있는 나로서는, 사랑을 할 땐 여전히 어린애로, 사람을 놓아줘야 하고 마음을 감춰야 하는 순간을 경험할 때는 숨길 줄 알아야 하는 어른으로 살아보고 있다.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것이,
이별과 상실의 기로에서 어떻게 덜 아플 수 있을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부류의 책을 읽고 있는내 자신은, 아직까지 사랑에 대한, 생에 대한, 사람에 대한, 뜨겁고 순수한 감각과 감정이 살아있음을. 한 문장을 읽어 내려감에 깊은 생각에 빠져 들고, 한 단어를 읽다가 눈물을 아직도 흘리고 있는 내가 말이다.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이 흘러 넘쳐서, 그래서 여리고 나약하고 지치고 다친다 하더라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나라는 것을 자각하게 만들어 준 책임에는 분명하다.



작은 상처 얕잡아 보다간 순식간에 병을 키우게 될 지 모르겠다.

 일상을 지나감에 여러 형태의 사랑을 경험하며 우리는 살고 있을 지 모르겠다. 사랑의 모습은 이성부터 시작해서 친구, 가족, 동료, 연인, 일, 자식, 그리고 나 자신 등등. 수 많은 형태가 있을 수 있음에. 어른의 이별을 읽으면서 비단 남녀 사이의 (그것도 미혼으로 추정되는) 뻔하고 뻔한 사랑이야기가 영롱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서술되어 있지만, 나는그 속에서 그저 이건 비단 사랑의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잠시 생각해 봤다.


이별도 결국 삶의 일이다.

 그러니 이 책은 그저 사랑에 빠진 아프고 또 다시 사랑을 하려 하는 용기 있는 우리들의 오늘일 수 있겠다.

오늘, 긴 시간 쏟아 부었던 지극했던 내 마음에 다시 한번 고맙다는말을 하며 일주일의 시작을 열고 싶다.


 아이를 등원 시키고 부산스럽게 걸어가는 출근길의 하늘이,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하늘색과 주황색의 아침 노을이 시작되는 장면을 보았다. 잠깐 하늘을 쳐다볼 수 있었던 나도, 그리고 그 장면도, 그리고 내 곁에 같이 걸어가고 있었던 그도. 내 마음 속의 모든 사랑들도. 모두 감사하게 흘러가고 있는 오늘.


이별과 상실의 감정이 다가온다 해도 이제는 좀 덜 아플 듯도 싶다.
어른이 되어가는 중일 지 모르겠다.
아픔을 '인내'해 내는 용기 있는 어른 말이다.


 그래도 사실은 여전히 한결같다. 이젠 아프지 않았음 좋겠어. 그렇게 좀 더 사랑하고 싶어라는 마음..


아프지 마. 사랑해. 결국엔 나에게로 잘 될 우리.



매거진의 이전글 이혼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