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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Nov 13. 2017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살아만 있어요. 그렇게 우리가 살아만 있다면...괜찮습니다. 

 책장 정리를 했다

 그러던 중 12년 전에 읽었던 책 속에 끼어져 있었던 편지 3장을 발견했다. 22살의 내가 썼던 편지였다. 아마 첫사랑에게 이 소설책을 선물했었던 듯 하다. 비록 편지는 전해주지 못했지만 말이다. 다시 펴 들었던 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그 우연 덕분에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를 잠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푸른숲, 2005. 04. 18, p. 315


 사람과 사람이 연결될 수 있는 건 바로 그 둘 간의 '이야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믿는 편이다. 

 윤수와 유정도 현실에서는 연결되기 쉽지 않은 각자의 세계를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둘은 '죽음과 생' 중간에서 만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그 둘의 만남으로 인해 서로가 사는 세계가 조금씩 공유 되고 그렇게 둘 사이에는 꽤 커다란 이야기가 존재하기 시작한다. 


오늘 이 문장 

 참 많이 울었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편지 덕분에 다시 꺼내 든 책 안의 구절을 다시 읽어 보았다. 눈물은 나지 않지만, 다만 아련한 울림이 전해진다. 생과 사에 대한 울림...


 미워하면서 살려구 했어. 엄마 아프든 말든 나 엄마 용서 안하려고 했어. 아니 용서하기 싫었어!
정민석이라는 그 인간보다도 엄마가 더 미웠는데, 지금 이렇게 용서해보려고 온거야.그 사람을 위해서!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혹시 하느님이 계시면 엄마를 용서하는게 나한테는 죽기보다 싫은 일이라는 걸 아실테니까. 나도 이렇게 희생을 하나 바치면 무슨 기적이라도 주실까봐.그 사람 죽지 않게 해주실까봐!

죽지 말란 말이야. 날 욕하고 계속 괴롭혀도 좋으니까...살아만 있으란 말야.


 인권과 사형제도에 대해 다룬 책이다. 

 어린 시절에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가족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금수저로 태어났지만 냉소적인 삶을 살아가며 여러 번 자살 기도를 한 서른 살의 대학교수 유정이 있다. 그리고 반대로 흙수저 중에서도 지극한 흙수저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세상의 밑바닥으로 떠돌다가 세 명의 여자를 어쩔 수 없는 아이러니한 현실 탓에 살해한 죄로 억울하게 사형 선고를 받은 스물 일곱의 윤수가 존재한다. 그 둘은 처음 만남부터 정말 다른 세상을 살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자신을 보는 듯 닮아있는 서로의 모습을 알아본다. 


금수저로 살든 흙수저로 살든, 치열하게 살든 편안히 살든, 사랑을 하든 하지 않든, 꽃은 변함없이 똑같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런게 삶이겠지.. 


  2년만에 150쇄 이상의 책이 재 인쇄 되었고 출판 이후 다음해엔 이나영과 강동원 주연의 영화로도 개봉되었다. 당시엔 '올해의 책'으로도 선정이 되었다. 그만큼의 영향력이 담겨 있는 책이다. 


 사형수에 대한 이야기. 죽음에 대한 이야기.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차가운 우리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고 억울하게 죽어 나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현실은 차갑다. 

 절대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답지 않다. 잔인하고 추악한 장면들도 숨겨져 있다. 다만 드러나지 않을 뿐. 그렇게 차가운 현실도 말이다. 그럼에도 사랑하며 우리가 악착같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어쩌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말 없이 보이지 않게 오고 가는 사랑의 감정과 감각, 살아 있음에 대한 무언의 경건함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럴 만한 가치가, 이야기가, 생각이, 삶이, 철학이 충분히 담겨져 있는 책이다. 유정과 윤수의 이야기를 통해서 풀어나가는 이 책은, 소설이지만 단지 허구의 소설에 치우치기에는 너무 아쉽다. 그래서 영화로도 나왔고 그래서 그 나왔을 당시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준 이야기였고, 10년도 더 된 앳된 대학생이었던 나 또한, 이 책 덕분에 아득히 멀어져 가고 있는 첫사랑에 대한 당시의 아픔 탓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할 만큼의 쓰라림도 묵묵히 견뎌낼 수 있었던 듯 하다. 


 비교에서 오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 책 안의 윤수와 유정의 삶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나의 아픔은 절대 큰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공지영 작가를 좋아한다

  이 소설책 덕분에 더더욱 12년 전부터 그렇게 되었다. 그 이후 그래서 그녀의 책은 하나하나 다 읽어 보는 편이다. 특히 '우행시'는 몇 번을 그렇게 읽어 내렸던 책이었다. 작가의 작품에 대한 진정성은 항상 그렇듯 책을 통해서 충분히 전해졌기에. 이 책을 쓰셨을 당시에도 구치소 들어가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취재를 했다고 들었다. 신문에 나온 그녀의 인터뷰 내용이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간간히 생각나는 건 그 진정성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ㅇ몇 번이나 읽었던 해도 겨울이었어.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찾아오는 겨울, 다시 읽어봐야겠다. 윤수와 유정의 블루노트들의 담겨져 있는 생의 메시지들... 소름이 끼칠만큼의 감동


 사람이 살다 보면 정신적으로나 여러 가지 면에서 상당히 절망적인 상황이 오기 마련이다. 작가님도 그랬고, 나 또한 그런 적이 있었던 것 처럼. 


 작가는 구치소 가서 사형수들을 만나면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책을 쓰고 나서 1달 후까지 많이 울었다고. 그 기간 동안 많은 치유들이 반대로 기적적으로 일어났다고. 사람이 간사해서 남들의 절망을 깨닫고 한없이 통탄하며 또 반대로 나의 세계를 바라봄에, 그 속의 인간관계의 절망감들을 맛보며 동시에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내가 책을 통해서 느꼈던 치유도, 아마 작가님과 깊이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치유의 느낌은 같은 것이었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결국 사랑일까 
 사람은 정말 사랑으로 결국 살게 되는 걸 지도 모르겠다. 그게 참 또 너무 바보 같기만 하고 지극히 상투적일지언정 말이다. 사랑. 결국 그 사랑만이 차갑고 냉혹한 현실조차 그럼에도 살아있게 살고 싶게 만드는 것은 사랑때문이 아닐까. 


 거꾸로 말하면 내 현실, 그리고 저 사람들의 현실은 말할 수 없이 힘들지언정 말이다. 그 시간 속에서 사랑을 찾고 그 안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을 짧든 길든 느낀다면, 그 느낌의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바로 '행복'을 만드는 걸지도 모를테고 말이다. 


살아만 있다면 괜찮다. 살아만 있다면.. 
못할 것도 결국 살아만 있다면 할 수도 있게 된다.



살아있는 나는 월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이 책을 생각하며 다시 10년전 처럼 글을 쓰기로 결심힌 지금 이 순간, 마음에서 전해지는 울림이 나를 이끈다. 살아있음에 참 감사하고 소중하고 그래서 애뜻해서 미련이 남고 아프고 슬픈 삶일지언정, 그 살아있는 오늘에 이제는 진실된 사랑으로 가득한, 솔직한 사랑으로 가득하려 한다. 


 살아 있는 오늘, 그래서 죽어 있지 않은 마음으로 최대한 살아 있는 생생한 마음으로 그렇게 매 순간을 진짜 나로 살아 보고 싶은 '단 하루의 오늘'이다. 


나를 속이지 않는 살아있는 오늘
고마워. 사랑해...결국 나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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