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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Dec 11. 2019

친절하지 못한, 내가 나에게

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 

어떤 불편이든 결국은 마음의 약이 될 거예요. 


- 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 - 






맺음말의 문장을 보자마자 미친 듯이 마음이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몰아가듯 강박처럼 느껴지는 요 근래의 나를 둘러싼, 내가 속한 환경에서의 소박한 사건(?) 들을 겪어가면서, 나는 나에게 불친절하고 무례하고 강박처럼 몰아가기 쉬운 '나'를 발견했기 때문에. 그래서... 책 속의 다정다감한 문장들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순식간에 밀려오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결국 나는 이렇게 또 '책'으로 도망가고 '책'을 통해 위로받는 참 불쌍한 영혼이 아닐 수 없다는 걸 넌지시 깨닫고 만다. 아직 멀었구나 싶다. 




도망치다시피 일본을 떠나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 전 마음의 여유를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때는 일만 하는 삶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어요. 돌이켜보면 휴일에는 쉴 수 있었고 가족이나 친구와도 시간을 보냈으니 오로지 일만 하는 생활은 아니었는데도, 쉬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지쳐있었던 거죠. 




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 구보타 유키, RHK, 2019.11.15.



제일 먼저 떠올랐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이 작가는 '양육'을 하고 있을까라는 말을. 

어쩔 수가 없는 요즘의 나는 어떤 책을 읽든가 혹은 어떤 과업들을 해내는 이들 (주로 남성이 대다수 눈에 띄지만)을 보게 될 때면 마음속으로 어떤 질문을 해내곤 한다. 아이가 있는 걸까, 그 아이의 양육은 누가 전담하여 시간을 투여하고 있는 걸까, 저들의 책 쓰는 시간은 나와 비슷할까, 그 시간은 어떻게 만들어내는 걸까, 아이가 다 자란 걸까..... 등등등..... 작가가 도망치다시피 떠났다는 그 문장을 접하자마자, 도망을 칠 수 있다는 건 아이 없는 기혼 혹은 미혼의 사람인 걸까라는 아주 무례한 질문이 머릿속에 둥둥 떠오를 뿐...이었다. 



혼자의 시간이 쉽지 않은 누군가는 그렇게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만다...



여전히 이렇게 못난 나를 발견하고 만다. 

타인의 기준이 어찌 되었든 개의치 않으면 그만일 테지만, 나는 왜 '비교'라는 걸 자연스럽게 해내고 마는 건지. 이 대단히 담백하고도 예쁜 문장들에 한없이 푹 빠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시기를 느끼고 말았다. 그녀가 돌연 떠나다시피 했다던 그 독일의 이야기가, 떠날 수 있는 환경이었으니 가능한 게 아니었겠냐는.. 정말 어이없는 질문 끝에 다다르는 못난 감정... 말이다. 




다양한 사고방식을 알면 그만큼 넓은 시야로 자기 기준을 정할 수 있어요. 내 기준이 있으면 내 행동을 수긍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디서든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어요. 저는 그것이야말로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일본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일뿐인데, 베를린에 사는 동안 감사의 기준이 확 내려간 거죠. 아예 기대를 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에서 분노나 스트레스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실컷 화를 내고 난 다음에야 배우게 된 거예요. 


독일인은 모두 주어진 시간에 집중해서 일을 끝냅니다. 쓸데없다고 여기는 일은 최대한 피하기 때문에 중요도가 낮은 업무는 서로 맡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도 있어요. 




우선순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작가가 말했듯이 나 또한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끊임없는 충돌을 내면에서 겪어내어 결국 고통과 마주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 우선순위가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나 이외의 것들을 위한 사회적으로 결속된 것을 위한 우선순위라면, 애초에 우선순위라는 걸 메기는 기준과 환경 자체가 역설적인 건 아닐까 싶어서. 회사와 집안일, 육아와 개인의 커리어 성취 등. 이것들은 비교할 수가 없는, 그 어떤 것 하나도 우선순위를 잴 수가 없는 영역인데 말이다...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회사 업무도 집안일도 육아도 결국은 다른 영역의 행위입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는 무엇을 위해 하는지에 대한 본래 목적과, 다른 행위의 목적을 비교하여 어디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일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순위를 정해야 하죠. 꼭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누군가에게 맡기거나, 돈을 내고 의뢰하거나, 아예 안 하는 선택지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잠시 반문했다. 그 선택 조차 쉽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 문장은 무례하다고....




책의 문장들은 아기자기하고 섬세하다. 

적잖은 위로도 느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위로는 단지 위로일 뿐, 나는 어떤 현실적인 대안을 찾는 '요즘'에 이르러서 책을 덮자마자 갑자기 눈물이 샘솟기 시작했다. 작가가 이야기한 '마음을 충만하게 하는 감정' 은 결국 나 자신이 만들어 내는 마음 챙김에서 시작되는 것일 텐데, 아직까지 그렇다면 나는 나에게 불친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만 같아서. 원치 않은 시간, 순간, 대화와 대상을 억지로 억지로 대하면서 나는 그들에겐 친절하나 결국 그들을 피하지 못하고 마는 나에게는 철저히 불친절한 시간을... 여전히 보내고 있으며, 사실 보낼 '수밖에 없는' 환경을.... 이제는 그냥 말없이 바라본다. 마치 내가 아닌 '나'라는 사람을 먼 거리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한순간 한순간이 얼마나 마음을 충만하게 하는지 몰라요. 생활의 질이 높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지금은 이 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삶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한다지만, 여전히 갈피를 잃고 만다. 

충만한 마음, 평온한 감정 상태, 생활의 품격을 높이려면 그 두 가지가 필요한 것을, 나는 여전히 차오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나와 마주하기에, 아직은 스스로에게 친절하려면 한참은 멀었지 싶지만.... 이대로도 괜찮다고 잠시 속삭여 보았다. 타인에게 친절하다 보면 그 진심이 열이면 한 번 정도 나에게로 다가와, 결국 친절함은 전염되고 그렇다면 조금씩 느리지만 나은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오늘, 지금...이다. 




덧) 서평은 역시 제정신에서 써야 하나보다. 이렇듯 어떤 사건 덕분에 휘몰아치듯 써 버리고 말면... 잘 들켜 버리니까. 지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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