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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Dec 12. 2019

삶의 그늘진 파편을 변론하는 사람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제도가 있어도 그 제도가 공정하게 운용돼도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걸 

부끄럽게도 그제야 알았다. 


-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 





책을 덮고 잠시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애꿎은 책 앞표지만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어딘지 모를 마음 한 편의 낮 뜨거운 반성 아닌 반성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너무나도 가진 것이 많은 나라는 것을, 태어난 환경 설정이 누군가에 비하면 이처럼 복에 겨웠음에 마땅한 것을, 나는 왜 '고통'이라는 감정에 휘둘려 노출된 환경 '탓'에 슬픔에 젖기 일쑤인가를 생각하니 정말이지 나는 일정 부분 여전히 어른이 아닌 채로 어른의 모습으로 사는 걸까 싶은 마음에, 아득함이 쌓여갈 뿐이었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정혜진, 미래의 창, 2019.12.06.



기자 출신 국선변호인의 이야기다. 

삶의 그늘진 파편 조각들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어서 쓰기 시작했다던 그녀의 문장을 접하면서 한편으론 다행이지 싶었다. 세상에는 자기'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지만, 반대로 그 나머지 소수 부류는 사회적 취약 계층과 외면받은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녀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라도 후자의 '어른' 같아 보여서, 그래서 이상하 안도를 내쉬고 만다. 결국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만드는 것은 그 소수의 후자들의 보이지 않는 피 땀 눈물과도 같은 노고와 수고가 있기에 가능한 것일 테니까... 




이 직업은 국가에서 월급을 받지만 국가가 아니라 국가의 상대로 서는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만 당사자로부터 돈을 받지 않는 덕분에 당사자에게 휘둘리지 않는 독특한 구조를 취했다. '이중적 독립성' 이 변론의 수준을 높인 핵심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선 변호인으로 일할 때는 객관적으로 유죄가 확실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받은 돈(수임료) 때문에 자백을 권유하기가 어렵고 의뢰인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할 때가 많았는데, 국선전담 변호사는 법률 전문가로서 냉정하게 수사 기록을 평가한 의견을 펴고 인에게 먼저 말해주고 그 의견을 기초로 재판 진행에 관해 논의할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었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뭐 이리 심각해질까 싶을 테지만 

반대로 진지하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없는 살림으로 인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며 수감인이 되고 마는 형편없는 현실은 비단 영화나 소설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니라, 현재,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현실 속 내러티브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영화 '재심'이라든지 '7번 방의 선물'과 같은 이야기가 그냥 누군가의 상상으로 인해 태어난 작품들이 아니지 않은가. 허구는 언제나 현실을 기반으로 '재탄생'된다. 




이 일을 하면서 보고 들은 범죄 안팎의 풍경은 너무나 작고 사소하고 조각난 것들이었다. 사건의 본질이 흐릿해질 즈음에 비로소 시작되는 아주 짧은 만남을 반복하면서 수면 아래 저 깊은 삶의 실체를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썼다. 지금까지 이런 이야기가 별로 전해지지 않아서였다. 기자라는 전 직업의 정체성을 다 잃진 않았는지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기도 했다. 신이 아닌 이상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직업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조각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테다. 



파도가 조용하게 보여도 실상 수면 밑에 드러난 휘몰아치는 파도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신문의 작은 사회면만 유심히 쳐다보고 있노라면 어렴풋이 느껴지곤 한다. 

부익부 빈익빈은 그 깊이가 더해지며 자본주의는 더욱 팽창해지고 안 좋다던 경제 상황은 반대로 기득권과 권력층, 소위 있는 이들에게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해가 아닌 득으로 교묘히 작동되고 만다는 것을. 그러니 공교육은 쓸데없는 교육(?) 이 아니라 최소한 살면서 정말이지 필요한 노동법, 경제 논리, 인권과 같은 것들을 더 가르쳐야 마땅할 텐데...라는 식의, 책 한 권으로 인해 나는 어딘지 모르게 점점 더 다른 생각의 수렁 속에 빠져들고 만다. 



하물며 이 국선변호인의 조각난 삶의 그늘들의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묶어 난 한 권의 책은

실상 숱한 현실의 비루하고 비정하고 가혹한 면들을 넌지시 우리에게 고하고 만다. 전과 기록 없이 단 한 번의 마약을 한 탓에 감옥에 들어갔지만, 실상을 따져보니 알코올 중독 아내의 폭력과 나아지지 않는 경제적 형편과 아이 둘을 홀로 기르고자 애썼던 아버지의 면이 있었다는 것. 조현병 환자를 가족으로 둔 가족들의 애통한 현실 등등




딸은 거의 매일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다. 엄마를 달래고 말리느라, 술 취한 엄마의 폭력으로부터 동생까지 지키느라 힘들 텐데 엄마 때문에 속상하다고만 하는 속 깊은 딸이었다. 엄마가 격리된 3일 동안 보낸 편지에는 빨리 돈을 벌어 아빠를 돕고 싶다는 이야기, 엄마가 병원에 보내졌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 사는 삼촌이 내려와서 햄버거를 사줬는데 정말 맛있었다는 이야기,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려고 하는데 스무 살 이상만 된다고 해 낙심한 이야기와 같은 평범한 일상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편지는 어느새 다시 고통으로 돌아와 있었다. 


피고인의 아들은 아버지에게 가진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 누구에게도 털어놓고 말할 수 없는 애증의 감정과 맞닿아 있었다. 아버지의 무기징역을 원했다고 해서 아무도 당신을 비난할 수 없다고, 당신이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그때 당신을 괴롭혀온 악령의 그림자와 화해해도 된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었다. 아들은 끝내 연락이 없었다. 내가 그 아버지의 변호인이었기에 하지 못했고 할 수도 없었던 말은 끝내 내 마음속에 묻어야 했다. 


조현병 증상을 가진 이가 환청이나 망상에 사로잡혀 저지른 끔찍한 범죄 소식이 잇따랐다. 사람들은 저렇게 위험한 환자를 왜 사회에 방치하느냐고, 강제입원을 시켜서 사회에 나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 비용을 누가 감당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어둠 속에서도 사는 건 살아야 한다. 꽃은 어둠 안에서도 피어야 하고 피어진다. 피어난다.



죄는 누군가의 단편만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나, 그 전후에 숨겨진 이야기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는다. 

심각하게 진지해지고 하물며 '나'를 돌이켜 삶을 성찰할 수밖에 없었던 건,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방식, 바라보는 관점이 여전히 편협한 '나' 만을 위한 이기적인 시선을 가진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은 아닐까라는 질문과 의문이 숱하게 밀려왔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얼마나 소외된 취약 계층에 관심을 들이며 살던가. 아마도 대부분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아픈 게 가장 아픈 것이니 옆에서 누가 억울하게 죽어 나가도 내 알 바 아니라는 매정한 시선, 그러나 그 매정함과 가혹함이 더 잔인해지는 건 바로 '척하는 있는 사람들'의 관심이 있는 '척' 하는 위선적인 양면이 드러날 때 일지도 모르겠다... 선거철이나 권력의 흐름을 바꿀 때가 되면 '척' 하는 인간들이 나오는 것처럼. 




국가의 형벌이 한 가족에게, 특히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 사건 전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일개 국선변호인에 불과한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너무 거대한 화두였다. 절절하게 안타까웠던 당시의 마음도 밀려드는 사건에 묻혀 기억에서 서서히 잊혔다. 


아저씨 청각장애인은 똘똘하고 헌신적인 딸이 없었다면 세상에 자신의 뜻을 전할 수 없었다. 변호인이 피고인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으니 피고인을 제대로 변호하는 건 불가능했다. 제도가 있어도 그 제도가 공정하게 운용돼도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걸 부끄럽게도 그제야 알았다. 




한편으로 잠시 '책'과 '글'에 대한 진지한 생각마저도 하게 만드는 '책'이었음에

나는 더할 나위 없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책이야말로 '베스트셀러' 딱지가 붙어서 더 많이 읽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펭수라든지 곰돌이 푸라든지 갬성이라든지 감성이라든지 위로라든지 역사 혹은 지식과 같은 정보라든지, 다 좋은데. 최소한 '진짜 책'을 만들고 '진짜 글'을 쓰는, 출판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업'과 '노동'을 일삼는 (집필 노동이든 출판 기획 편집 노동이든) 이들이라면 열이면 한 명 정도는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어떤 강박에 휩싸이고....말았다. 책이나 글로 '돈'을 만드는 것도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사실은 그 책과 글이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이런 책과 글에 조금 더 관심을 보이고 뜨거운 응원을 비춰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베스트셀러가 붙는 책들을 가만 쳐다보고 있자면 때로는 '가관'이라서 말이다...) 




국선전담 변호사는 형사 재판에서 변호인이 꼭 필요한 사건이지만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피고인들을 만난다. 돈이 없어도 형사 법정에 선 피고인은 변호인의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헌법의 정언은 준엄한데, 잘못한 개인에 대한 당연한 처벌 그 너머 취약 계층의 변하지 않는 현실은 여전히 가혹하다. 저자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이들의 말을 듣고, 그를 둘러싼 가족과 소외된 이웃과 우리 사회를 본다. 그리고 오늘도 법정에 선다. 




아무리 어두워도 피어날 수가 있다. 또렷하게, 제대로. 그렇게 내 옆의 사람들을 챙겨나가면... 어두워도 피어날 수 있다.



심각함에서 빠져나와 잠시 현실의 제자리로 다시 돌아온 나는 

양육자의 시선으로 조금 더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앞으로 아이들에게 어떻게 삶과 사회와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태도'와 '관점'을 만들어 주는 '엄마'가 돼야 하는가에 대한... 답 없는 고민에 빠지고 만다. 한편으로 다행이지 싶었다. 최소한 읽고 쓰며 고통과 불행을 드러내고 마는 이런 모지리 같은 캐릭터라서. 역설적이지만... 늘 생각하곤 하니까. 누군가를 인도하는 이의 시선이 '바른 마음' 이어야 한다는 것을. 



책이 진정으로 그 영향과 가치로 움직여지는 건 바로 읽는 이의 의식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때이다. 

독자로 하여금 '앎'과 '깨달음'을 통해 '행동과 의식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진짜 좋은 책...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라는 인간은 아직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스스로 늘 질문을 구하다 고통에 빠지고 그러다 결국 책을 파고드는 이 모지리 같은 습관 덕분에. 나는 아직 괜찮다고. 인정머리 없는 형편없는 양육자는 아닐 것이라고.... 



못난 한 때마저도 기록으로 남기려는 이유는.. 결국 기록의 힘을 믿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 아이들에게..



#국가란__법이란_무엇인가

#진정한_교육이란_무엇인가

#인권이란_무엇인가

#질문과_생각을_하게_만드는_책_양서란_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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