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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Dec 11. 2019

인정머리 없는, 나에게

Follow your bliss.... Heaven....

너의 행복을 가장 잘 판단하는 사람은, 너 자신인 거야 


- 제인 오스틴의 말들 - 






결혼은 책략이 필요한 일종의 거래라 했던 

몇 주 전, 책갈피를 해 둔 페이지 속 문장만이 일순간 머릿속에 부유하기 시작했다. 안경을 집어던지며 폭언을 일삼기 시작한 그를 상대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 방침은 이런 것들뿐이었다. 화를 참아내지 못하는 상대를 넌지시 바라보며 눈을 지그시 감는 것.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스스로 떨리는 마음을 애써 위로하듯 문장에 붙잡아두는 것.  왜 하필 선명하게도 그 문장이 떠올랐던 걸까. 쓸데없는 것을 잘도 기억해내는 나를 탓하며 그렇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입술을 떼어 문장을 건넸다. 




- 혼자 있고 싶으니, 내가 나갈게. 



사실은 그 문장이 아니었음을. 

나는 미처 정정하지 못했다. '혼자 있고 싶어'하는 당신 같아서' 내가 자리를 피해 줄게' 였음에... 아뿔싸. 현실은 A4 용지가 아닌 것을. 나는 왜 이토록 어리석게도 뒤늦게 깨닫고 백스페이스를 누르려했단 말인가. 대명사가 빠진 문장을  다시 정정할 수 있는 기회 따윈 현실 어디에도 없다. 말은 그렇게 문장과 다르다는 걸 다시 한번 통감할 뿐이다. 



그에게 '인정머리 없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일순간...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몇 방울을 흘려내더니 이윽고 이상하게 차가운 이성이 눈물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어떤 장면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에 두서없이 다가오더니 이윽고 문장들로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분노하는 그에겐 차마 건네지도, 들려주고도 싶지 않은 말들은 그렇게 둥둥 마음속에 떠다니다가 나에게 전달돼 다가올 뿐이었다. 



오늘은 아마 어제보다 조금 더 반신욕을 하며 나를 끌어안아야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서 오늘 하루가 지나가길 바랐다..




'아버님의 병환을 내가 챙기지 않으려 하는 건 아니었다'라고. 

'신변의 큰 변화가 올 당신의 환경설정에 최대한의 '내조'라는 걸 해내기 위해 나는 어떤 '각오' 마저도 하고 있다'라고

'꿈이 있어서 졸라 미안한데 포기도 쉽지 않은 이런 내가 미친년이라서 그냥 그거 하나가 미안하다'라고 

'맞벌이 양육을 위한 각종 관계들의 브리지 타워로 사는 '워킹맘'이라 때로 감정보다 이성으로 대처해야 한다'라고 

'아이의 치과 치료의 상황까지 만든 것을 누구 탓하진 않았지만 인정머리 없다는 말로 분노를 토해내는 당신은, 당신 아내의 심정과 상황을 아냐'라고.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내가 철저히 이성의 영역이 되어야만, 버티고 또 살 수 있는 '여성의 영역'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라는 걸 해내고 있냐'라고. 




어떤 장면들이 순식간에 휘몰아치듯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몇 주 전부터 바로 어제, 아니 오전 11시에서 11시 40분까지의 소아치과에서 있었던 일들까지도. 겨우 주차를 마친 그는 여전히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뒷좌석에서 그이를 넌지시 바라보며 나는 한 마디를 남긴 채 차 문을 열어 나왔다.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당신에게 혼자 있을 시간을 주겠다던 말은 이상하게 꼬인 채로. 동시에 어리석은 감정들 덕분에 차올랐던 눈물은 이내 또르릉 하고 울리는 핸드폰 문자 덕분에 다행히 찬물이 끼얹고 못난 감정에서 잠시 탈피할 수 있었다. 다행이지 싶었다. 문자 한 통을 보며 한 번 더 나의 '비빌 구석'의 현존에 대한 알 수 없는 감사와 함께 그렇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답장을 보냈다. 



- 내가 내일 둥이들 봐주러 갈게. 사돈어른 어떠시냐? 가셨어? 

-... 미안해 엄마. 있다가 전화드릴게. 



시간이 약이라 했죠 엄마. 보름달이 차오르고 다시 초승달이 되고 반달이 되는 그 반복되는 시간들... 말입니다.... 엄마...



그리곤 생각했다. 그래. 나는 인정머리 없는 인간이 맞는다고. 

그의 말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합리화인 걸까.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그의 입장에서는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절대 '나'를 포기하지 못하는 나는.... 인정머리 없는 경우가 많았을 테니까. 때론 차갑고 냉정한 사람. 나만 아는 못돼 처먹은 년. 출간 전후'만' 할 수 있는 것들, 포기하지 못하는 일정들, 책과 글 쓰는 시간, 알아야 해낼 수 있는 어떤 공부들과 실천, 투자, 각종 액션 아이템과 계획들마저도. 그 안에 '나'를 위함이 '아이'라든지 '며느리'라든지 '아내'의 기준에서 조금은 벗어나는 것들로 '보일 테니.' 나는 정말 인정머리가 없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스스로 인정머리 없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고 마니

이렇게 못내 서운함이 눈물이라는 것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리라. 여전히 책무와 역할이 무겁지만 사실 그 무거움을 이젠 그이 앞에서 쉬이 드러내지 않는다. 드러내고 싶어도 그이 앞에서는 철저히 감춰야 또 나름의 '내조'라는 것이 가능한 것이라면, 나는 힘든 내색을 조금 더 하지 않아야 하는 새해를 맞이할 각오라는 걸 더 훈련시켜야 할 필요성을 잠시 느꼈다. 이런 성정에 이런 성격에 꿈을 어떻게 해서든 이루려는 인간으로 사는 가족 구성원을 둔 당신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이를 악다무는 것뿐. 

내가 선택한 '그'에게 최선의 것은 나의 '침묵'인 것 같아서. 그이가 처한 좋지 않은 회사 현실, 신변의 변화, 아버님의 병환, 아이의 아픔, 그 연속들을 겪어내며 나마저 소음을 낸다면 아마 우리는 금방이라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누군가에게  마른 장미가 되고 싶지 않다는 걸, 이제 그 마음조차 쉬이 들키지 않으려 한다.



감정의 스위치를 딱 하나를 남긴 채 잠시 꺼 두기로 했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늘 먼저 건네고 마는 나는.... 사실 미안한 게 없지만 미안하면서 살아야 또 견디고 살아지는 '상황'이라는 기혼의 생활에 대해서 이제는 순순히 인정하게 '변한' 걸까 싶다. 그리곤 나는 나에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너는 인정머리 없지 않다. 너는 그 누구보다도.. 너는........ 인정이 많다. 넌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눈물이 그치다가 다시 떨어지려 한다. 나는 키보드를 두드린다. 

쓰는 나는 불행하면서도 불행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나의 행복을 판단할 수 있는 나'를 지키려 한다. 그리하여 내가 해낼 수 있는 최선을 한다. '이혼 대신 글쓰기'가 시작된다. 새롭게 다시, 오늘도 어김없이... 






새 매거진을 연재하려 합니다. 

때로의 못난 글들이 그 언젠가의 '책'으로 다시 재탄생된다면, 여전히 그 책 또한 그에겐 그저 읽히지 않을 책임에 분명할 테지만, 저는 그럼에도 쓰려합니다.... 신에게 오늘은 물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정말 괜찮은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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