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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26. 2017

19. 권태기      

로맨스가 필요해요?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뭐해?"  


 사랑을 하고 있는 여자 언어 번역기에 의하자면, "너의 '지금' 상태가 궁금해, 내 생각해?" 정도로 해 두자.  

누군가의 일상, 지금 어떤 순간을 맞이하는지가 궁금해지다가 급기야 미쳐버릴 것 같은, 누군가를 향한 순도 100%의 고통까지도 철저히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그게 바로 나에겐 ‘사랑’의 시작이었다.   


입을 맞추었던 그 뜨거움이 꽤 오래 지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입술에 온열팩이라도 붙이고 살아야 하나 젠장 ㅋ) 


(아쉽게도) 다섯 손가락에 꼽는 몇 안 되었던 연애 시기를 거치면서, 내가 사랑에 빠져 버려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보통 ‘나의 치부를 드러내 버리고 싶은 욕망’에 휩싸였을 때였다. 모든 걸 맡겨도 좋을 만큼의 사람이라고 인정한 사람은 ‘언제나’였다. 그러다 이별을 경험하고부터 쉽게 나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방어태세를 갖춘 내 사랑이 어른스럽게 변하는 시기였다. 감출 줄 알고 떠나보낼 줄 아는 그럴싸한 변명과 함께.  


시작은 사랑, 그 후에 권태기   

‘처음처럼’은 소주 이름에나 어울릴 법 하지,
우리 마음이 24시간 365일 매일매일 처음 같지 않은 게, 마음이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몇 년의 (혹은 몇십 년의) 시간을 겪고 나다가 어느 순간 이런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면?   


“나, (네가) 지루해졌어...”


 권태기는 순식간에 나도 모르게 내 곁에 찾아와 우리를 조용히 갉아먹을 준비 태세를 갖추고야 만다. 오랜 연애를 지속하다 보면 자연스레 찾아오는 설렘 없는 가족 같은 편안한(?) 안주하는 시간들, 혹은 결혼 후 달콤 살벌한 신혼을 거쳐 꽤 오랜 기간 결혼생활을 유지하며 아이를 낳고 사는 부부들에게서 찾아오는 암묵적인 이벤트. 바로 권태기가 아닐까 싶다.


세상 귀찮.... 아니 무관심...아니 그건 뭐 돌연 '뻗어버리고' 싶은 열폭? 형태가 다양하다.

  

결혼, 사랑의 중간 쉼표?  

 사실 부부의 권태기를 생각해 보는 요즘의 나는 사랑의 결말이 ‘결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나 스스로가 타 들어갈 정도의 뜨거운 사랑을 하는 사람과는 절대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 사람의 삶이 너무나도 좋아 나라는 사람의 삶이 먹혀버릴 것 같아서.   


 결혼을 한 나로서 지금의 삶과 그 삶 속의 사랑을 감히 정의 내리기 힘들다. 아니 사실은 ‘사랑’을 말하는 게 사치 같고 엉뚱하다는 생각이 드는 시기다.


 ‘육아’가 공존해 있음에 그렇다. 결혼 하기 전과 후, 그리고 자녀가 있음과 없음은 겉보기엔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으나, 체감적으로 느껴본 사람들은 안다. 그건 천지개벽 까진 아니더라도 그 정도의 어마 무시한 스케일이라는 것을....!


둘의 삶이 아닌 '셋, 넷'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하아!


 물론 사람마다 노출된 상황마다 사랑이 지속되는 형태는 다르다. 

 사랑은 지속될 수 있다. 아니 지속되어야만 한다. 사랑하니깐. 같이 있자고 스스로 결정했다면 ‘책임’이라는 것이 따르니깐.


 사랑한다. 그러니 너의 삶도 함께 섞어 살아 보겠다는, 그 마음의 책임에 따라 둘이 약속하는 형태가 결혼이라면, 그 결혼은 어쩌면 사랑의 중간 ‘쉼표’ 격인 존재만 같다. 최소한 내게는 그랬다.   


 불안하지 않고 위태롭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함으로써 편안하고 싶어서 선택한 ‘결혼’이었지, 더 뜨겁게 불타 올라서 그 사랑에 잡아 먹힐 만큼의 열정이 있는 건 사실 아니었으니깐.   


하... 이렇게 말하면 나의 그이가 서운해할지 모르겠다. 그래. 꽤나 많은 나이 차이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선택한 그 순간만큼은 어마 무시한 열정이 있었다. 왜 그랬을까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미스터리인 것으로!

  

 언제나 사랑의 문제는 나와 상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것이 되었든 나의 모든 마음이 온전히 향하고자 하는 대상이 바뀌는 순간
‘권태기’는 자연스럽게 씨앗을 싹 틔운다.   


여자들의 공간, 그 속의 삶들   

 결혼을 하고 제법 25년 이상이나 살아온 동네를 벗어나서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결혼이라는 또 다른 세상, 그리고 새로운 동네에서의 새 출발. 모든 게 설렜다. 그리고 아이를 갖기 전후부터 소위 ‘지역 엄마 커뮤니티’를 통해 우리 동네의 모든 온갖 알짜 정보와 삶의 소소한 일상을 ‘여자, 엄마’의 시선으로 공유하곤 한다.


 별에 별 이야기가 다 올라오는 나의 힐링 공간 중에 하나인 그 커뮤니티에 어제, 글 하나가 올라왔다. 바로 ‘권태기’에 대한 ‘그녀의 속마음’이었다.   


연애 5년, 결혼 6년, 작년부터 뭔가 권태기 같다고 느끼고 있어요. 막 남편이 싫은 건 아닌데, 좋지도 않아요. 엄청 착하고 배려 잘해주는 아빠 같은 매력이 뿜 뿜 해서 결혼했죠.
진짜 전생에 아빠와 딸이었나 싶을 정도로....
그런데 몇 년 지나면서 정말 요즘은 그 마음이 다 없어졌어요   

남편은 권태감이 크지 않은 것 같은데 문제는 저예요.
그가 크게 잘못하는 게 없는데도 평소와 같은데도 밥 먹을 때, 잠잘 때 등 잔소리만 하고 싶어 져요
싫은 점만 눈에 보여요. 그래서 자주 싸우게 되네요.   


가랑비에 옷 젖듯 이미 멀어지고 있는 사이   

 솔직히 내가 가입하여 활동하는 그 ‘동네 엄마 커뮤니티’는 작은 동네 일상 정보부터 시작해서 육아, 일, 사랑, 돈, 아이, 세상 물정 등등 온갖 것들에 대한 마음들을 서로 까발릴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대부분 조회수가 1시간 만에 1천 이상으로 순식간에 오르는 글들은 소위 ‘이런 삶의 글’들이다.   


 여하튼, 권태기에 대한 그녀의 고민 글이 조회수를 순식간에 넘는 건, 어쩌면 ‘댓글’들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그 원문보다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작은 글씨를 한 땀 한 땀 읽게 만든 ‘훌륭한 댓글들’을 읽느라 클릭하고 또 클릭해 보았으니깐.   


‘저도 5년 지났는데 사실 2년 차부터 설렘이란 버렸어요. 그게 뭔가요 먹는 건가요 ㅋㅋ’  
‘JTBC 의 드라마를 추천합니다. ‘오늘 아내가 바람을 피웁니다’ 정말 캐 공감이었어요. 한번 보세요   
‘20년 차예요. 그것도 금세 지나가요. 그냥 오늘 맛있는 거 사 먹고 쇼핑도 하고 그래 보세요. 권태기라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랑이 남아서 그러는 거예요 아무 감정 없게 되면 게임 끝입니다 ㅋ’   
‘아 저는 축복받았을까요 아직도 남편이 좋네요.
근데 문제는 남편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거. 바람피우면 어쩌죠 내 눈에도 멋진 남자라 ㅠㅠ  



꽤 많이 달린 댓글들이 오늘 아침 나를 빵 터지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사랑’에 대하 다시금 진지하게 잠시 생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꽤 긴 댓글을 달았다.

  

사실 권태기를 느끼는 것 자체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
사랑을 상대에게 확인받고 싶은 또 다른 사랑의 마음일 수 있으니깐요.

한편으론 위의 20년 차 '냥이 조아'님의 말에 격공 합니다 ㅋㅋ
결혼생활의 그 무게감과, 권태기를 대하는 쿨함에 박수를 보내며...!

그럼에도 좀 슬프긴 합니다.
일상에 찌들 대로 찌들어 대화 1도 공감 하나 없이 살아가는 게 부부의 현실이라면 말이죠..
(그런 의미로 저도 오늘 다시 신랑에게 ‘툴툴’ 거려 볼 기세라며)




역시나 내가 지금 느끼는 고민과 아픔이,
내 옆의 누군가와 다르지 않다는 반증이겠다.     


그래, 변하나 보다.   

 나도 때론 ‘사랑’을 갈구한다. 그래서 그에게 한 두 번씩, 뜬금없는 미친놈 기질을 발휘한다. 덕분에 오늘은 아침에 톡을 보냈다.  

 

‘여보 나 사랑해?   
‘갑자기 또 왜 물어’  
‘아니 그냥… 갑자기 외로워서’  
‘또 또 그런다. 여기 둥이들 사진이나 보슈’   


 그래. 사실 그의 말을 빌려 ‘또또’ 그래 버렸다. 젠장. 그래도 어쩌냐.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게 여자의 심정, 아니 모든 여자가 그러지 않겠지만 최소한 나란 여자는 그러한 것을. 어린 마음이라는 것을 암에도 내 사랑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어서 일지도.   

 

사실 권태기를 느낄 세조 차 없는 요즘 역할극 속에 내 삶을 사느라 정신없는 나다. 

 그럼에도 나와 살 맞대며 사는 그이에 대한 나의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때론 궁금해지기도 하니깐. 어쩌면 예전에 으르렁 대고 싸우던 시절에도, 지금의 꽤 안정적이고 편안한 마음의 요즘에도, 워킹맘 주제에 하고 싶은 건 왜 또 그리 많은지 기어코 하나라도 더 해보겠다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매 순간에도, 내 마음에 ‘사랑’은 존재하고 있을 테다.


 사랑 이후의 결혼, 그 삶이 20년간 지속된다고 치자. 20년 차 부부가 10년 이상을 서로 바라볼 때마다 설레고 눈에 하트 뿅뿅 대면서, 얼마 전에 종영된 ‘쌈마이 웨이’의 “애라는 슬퍼. 똥만이 가 그러는 거 너무나 싫어’라는 오글거리는 애교를 아무렇지 않게 내 남자에게 자연스레 날릴 수 있을까?


 나는 글쎼올시다다. 사람과 상황마다 다르니, 노코멘트하겠다만 10명이면 1 커플, 아니 나오는 게 불가사의 아닐까 싶다.   


 내게 요즘의 사랑이란 ‘각자 따로 또 같이’의 시간들이어서 그럴지 모르겠다. 

 결혼 6년 차, 다음 달이면 꽉 찬 6년이 되어가고, 육아 2년 차, 한창 아이들과의 평일 워킹대디 워킹맘으로 치열한 일상을 지내며 주말엔 온전한 전투 육아와 집안 일로 역할 분담 속에서 각자의 일상을 지내다가 합쳐지다가의 반복인지라, 그 와중에 시간이 지나가다 보니, ‘사랑’을 논하는 것이 때론 사치이자 그럴만한 여유가 없어져 버린 일상이니깐.   


'효리네 민박'에서 오는 사랑과 낭만, 삶의 여유로움은
1도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팩트 현실'이다.


사랑, 이후 가족이 되었다.   

 사랑은 비단 남녀 사이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겠다. 가족. 그 보다 더 진하고, 끊어내기 힘든 사랑의 형태가 있을까 싶다. 최소한 빌어먹을 유교 사상이 지대하게 깔린 대한민국에서 가족이라는 연대로 묶여버린 사람들의 연대는 꽤 질기고 끊기고 싶다 해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그 연대가 부디 사랑으로 가득 차다면 큰 문제없겠지만 반대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건 그렇지 않을 때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 느끼기 시작할 때, 무관심의 시작이 제일 위험한 것 같다. 

 그 순간부터 일상의 많은 부분을 공유해야 한다면 억지로 쥐어 짜내듯 그렇게 노력하는 나를 어느새 부정하고 말 테니깐.   


 그러니 그분께 댓글을 한번 더 달아보고 싶다. 권태기를 이야기하며 불안해하는 것조차도 사실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꽃 피우는 사랑의 일종이라고.   


 말은 이래 해 놓고 솔직히 씁쓸하기는 하다.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그게 이미 기한을 다 차 버려서, 그러나 폐기처분할 수도 환불할 수도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다.


 한 침대를 사용하며 같은 공간에 있음에도
 '함께'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순간, 우리는 적잖이 당황스러울 수 있겠지만.


 

꺠끗하게 정돈된 침실에 들어가지만 어느새부터 '공허'함이 느껴진다. 권태의 시작일까 (가 아니라 침실이 깨끗했던 걸로..ㅠ) 


새로운 사랑을 찾기엔 위험한 도전(?) 일 수도 있고. 다만 그 사랑의 에너지를 나라는 자신의 내면 스스로를 좀 더 가꾸는 데 시간을 쏟아 보자고. 결론은 이렇게 허무하게, 미지근하게, 그러나 다른 대안 없이 맺어 본다. 


그것도 사랑이라고. 

 그 마음조차도 인정하고 받아들여 보며,
내 앞의 사람과 오늘 마주한 시간들을 새롭게 보는
'나 스스로부터'의 노력을 해 보자고..

 어떤 형태든 응원해요....'사랑'!


 빠른 시일 내의 대안(?)이라면 '세상 로맨스'를 모두 섭렵해 봅니다. 드라마. 영화. 만화. 소설책.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범위는 꽤 넓으니깐요.
하... 사실 어쩌면 제가 다시 소설을 쓰는 이유도, 언젠가부터 간혹 불쑥 찾아오는 이놈의 '권태기'라는 걸 향한 긍정적 자기 극복법 일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에요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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