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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Sep 28. 2017

20. 늦기 전에

늦었다고 느끼면, 정말 늦은 걸지도 모른다.

직장 동료 이야기 

 회사 복직 이후 새로 옮긴 팀에서 재미있는(?) 분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사투리를 쓰고 이쪽 업계 경력 20년 차의 소위 베테랑이라고 했다. 반은 인정. 그 근거로는 은연중에 튀어나오는 그의 구수한 사투리 말 틈새 속에서 나오는 실무 스킬을 보아서 단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회사에서의 그는 꽤 알아주는 고수일지언정 가정, 집에서는 하수였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내에게는 ‘때론 쓰레기보다 못한 개자식 남편'이었다고. 오해는 마시고. 내 판단이 아닌 그분이 웃으며 담담히 자신의 가정사부터 시작해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게 그랬다.


하아...그래도 이런 정돈 아니실 거라며 (등골 오싹...)

 그는 여태껏 결혼생활 15년 차의 그동안 아내에게 나쁜 남편 나쁜 아빠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타인인 내게 쏟아내는 전라도 남 자였으니깐.


그런 ‘개자식 남편’이 어제, 아내를 위해 건강검진 신청을 했다고 하면서 내게 말을 걸어왔다. 


“김 책임, 내 16년 지기 상사이자 친구 같은 지인이 있는데, 큰일이 나 부었다네..
“네? (헉. 또 말 터지셨네. 이번엔 당최 뭔 집안 애기를 또 ㅋㅋ) 
“그 양반 와이프가 직장암인데 8cm라고 하네”
“아….”
“대기업 나와서 사업하겠다고 몇 번 말아 묵었지.
지금은 근근이 어디 대리점 하나 차려서 먹고살고 있고….
그 형수님 나도 잘 알고 있는데, 남편이 그리 막살고 돈도 안 갖다 줘도 내색 한번 안 하고 열심히 살더구먼”
“아…. 속은 썩어 문드러지셨을 거예요…(뜨아 돌직구였나) “
“내 말이 그 말이여”
“아이들은 몇 살인데요” 
“아직 한창이지 뭐. 딸만 둘인데 한 놈은 고등학생, 한 놈은 이제 초등학생이라고 했나. 과외 값도 못 내더구먼”
“아… 아직 한참 엄마 손 필요할 나이일 텐데. 안타깝네요 “
“그 형님 생전 울지 않는 양반인데 오열하더라고.
끊었던 담배를 단숨에 10 가피를 피워 부었다고…
 내 참 나도 그 소식 듣고 집사람 건강검진 신청 바로 했다니깐. 


 먹고살자고

 그리고 이왕이면 ‘잘’ 살자고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일과 개인의 삶이라는 경계가 뒤죽박죽 바뀌는 순간, 순식간에 주객이 전도됨을 경험하게 된다.


에너지를 바깥에서 다 쏟아붇고 집에 들어온다. 그리곤 다시 내일을 위해 그 에너지를 감춘다. 사랑하는 이에게 부을 에너지는 남아있지 않다...하아 안된다 안되
 삶을 흘러가면서, '무엇'이 '나'에게 중요한 지를
우리는 얼마나 무엇을 지켜내며 하루를 지내는 걸까.


문득 그런 이상적이고 철학적이며 다분히 쓸데없는 생각이 나를 또 한 번 감쌌다.


 따지고 보면 자본주의 사회가 ‘그런 생각은 쓸데없어. 그저 돈을 벌자. 먹고살자’라고 주지 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그저 살아온, 우리의 전 세대들. 아니 어쩌면 우리의 현세대 조차 삶의 가치에 대해서 한번쯤은 진지하게 되물어 봤을까 싶다.


그럴 만한 여유도 없고. 생각해 봤자 노답, 뭐 가끔 책이나 여타 타인들의 목소리를 빌려 얻어 오는 '감성에 젖어서 몇 번' 생각하고 다시 현재를 살아내는 것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어쩌면 거기서부터 나름의 답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살아내는 것' 일단 살아내는 것 말이다. 생을 견디든 즐기든, 살아내는 근력을 키워내는 것. 거기서부터 작고 큰 스스로의 소중한 가치들을 만들어 내는 것 그 존재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


딱 5분, 잠들기 5분, 고요한 밤에 진지모드 장착하고 '오늘'을 생각해 본다면.....

 

 그렇다면, 살아내는 시간에, 늦기 전에 전해야 한다. 

밑도 끝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말하며 살고 싶다. 표현하며 생을 지내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해요’라고 말이다. 이왕이면 되도록 있는 힘껏. 더 늦기 전에 말이다.


 늦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이른 거라고?


아니 어쩌면 늦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진짜 늦었을지도 모른다.
바로‘죽음’이라는 게 불현듯 내 곁에 와 있을 때.
더군다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라는 게
소름 끼치게 전해지는 상황을
직접 겪게 된다면 말이다. 


 직장암에 걸린 와이프를 둔 그 지인이라는 분은, 얼마나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오셨을까. 아마 사업하느라, 진 빛을 갚느라, 바깥에서 소위 ‘남자들의 영업’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내느라, 표현은커녕 그 마음을 전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리라고 감히 상상해 본다. 


'그'의 배터리는 집에 오면 늘상 방전되어 있다. 슬픈 현실이다.

 

그러니 그의 오열이 사뭇 이해도 되었다. 

 후회되니깐.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을 테니깐. 막연한 불안감과 자기와 결혼해서 웃게 해주지는 못할 망정 눈에서 눈물 쏙 빼면서 뼈저린 아픔을 경험하게 해줬다는 자괴감과 자책감이 그를 울게 만들었을 테니깐 말이다. 

그 이야기를 전해준 동료 상사분께 나는 넌지시 감회도 한마디 해 버렸다. (이놈의 성격) 


“어쨌든 정 책임님은 타인일 뿐이니깐요.
냉정하지만 모든 인내와 아픔은 그 남편분과 가족들이 겪으실 거예요.
그저 곁에서 지켜보며 한 번씩 힘들 때 위로해 주는 수 밖에는, 타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죠.”
“나도 무서워 부었다니깐.
에효 그 얘기했더니 우리 마누라가 자기도 그런 증세라고 막 툴툴 거리더라고”
“아내분께 이제부터라도 잘해주시면 되죠.
정 책임님은 늦지 않으셨잖아요. 고백을 하세요 고백을...!”
“뭔 놈의 고백이여. 남사스럽게.
 잘해줘부러야지. 우리 마누라한테. 내가 예전에 정말 못할 짓 많이 해 부었지 나도..”


 전라도 남자의 그 알량한 자존심과 부끄러움 따위 개나 줘 버리시라고.

지금 으르렁 거리며 이혼 이야기도 서슴없이 하며 산다는 부부라고 거침없이 말씀하시는 그 동료분께 나는 감회도 말했다.  (돌 맞진 않았다. 대신 자기보다 10살이나 어린 유부녀가 눈 똥그랗게 뜨고 거침없이 그런 말을 하니 그저 재밌어서 웃으셨을 뿐ㅋ )


 그러니 사랑한다는 말을 이제라도 하시라고 말이다.

또한 이왕이면 있는 힘껏 줄기차게 에너지가 닿을 때까지 말이다. 


나의 기쁨의 대상이 다행히도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자체야말로 퍼펙트하지 않은가.


 때론 사랑하는 그 대상이 기쁨의 대상이 되지 않은 순간들은 상황에 따라 종종 찾아오기도 하니깐. 

 나의 기쁨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만약 지금 곁에 존재한다면 말이다. 작고 큰 마음들이 전해지고 또 받아들여지는 순간,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


귀로 들려지는 모든 '사랑'의 메시지는 큰 힘이 있고 그것이 기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 나의 귀에 들리는 크고 작은 내면의 고백들도 내겐 모두 기적이니깐...


 그리고 사랑은 선 순환되어 말도 안 되는 사건과 이벤트로 작동할 수도 있다고 본다. 결국 그 ‘사랑’은 나에게 있어서 합리적인 가치가 될 수 있다. 나의 삶을 지탱해 주는 유일하고도 진리일 수밖에 없는 신앙 같은 내면의 가치 말이다. 


개자식과 쌍년은 처음부터 없다.

 세상의 불특정 다수인 그와 그녀가 사랑을 했다고 치자. 하나 어느 순간 함께 살다 보니 어느새 서로가 서로에게 개자식과 쌍년이 되어 버렸다. (거친 말 죄송하나 세상을 날 선 눈으로 바라보며 허심탄회 이야기하자면 하아...ㅋ)


 사실 개자식과 쌍년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닌데 말이다. 

‘사랑’의 부재가 아니라 삶을 함께 살다가 그 ‘고통’이 소통 없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만들어지게 된 또 다른 내면일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에서라도 개자식과 쌍년이 되어 버리기 이전에,
내가 누군가의 ‘그대’ 일수 있을 때,
그리고 나의 ‘그대’들이 현존할 때.

늦기 전에 진심을 다해 서로가 서로에게
'오늘의 기쁨'이 되어 주면 좋겠다. 


 곧 연휴다. 

 피로 섞여 있는 겉모습 가족이든, 그렇지 않아도 진심을 알아주고 서로의 삶을 응원해주는 내면의 가족이든, 내 사람들인 그 ‘가족’들에게, 사랑하는 나의 그와 그녀에게. 오늘 ‘사랑’을 전해 보는 건 어떨까.

이왕이면 '지금 생각났을 때. 용기가 없다면? 마음에서 좀 끄집어 내주시는 걸로...!


 나의 당신 보고있다면. 오늘 내게 선물해 준 당신의 그 고마운 시간, 덕분에 나의 오늘은 기쁨 그 자체인거죠 (둥이케어감사)


 늦기 전에.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에 충분한 쉼과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랑의 연휴가 되기를. 아울러 오늘 나의 자유로운 밤은, 여느 때보다 더욱, 기쁨과 사랑 충만한 시간이 돼 봄을 상상한다.


 말은 이래 해 놓고 육아 빠들의 연휴는 뭐 늘 비슷하지만 그 비슷함 속에서도 ‘사랑’을 있는 힘껏 해 볼 랍니다. 긴긴 이 연휴, 아이들을 돌봄과 제사를 지내는 그 와중에도, 쓰고 읽는 삶을. 곁에 살아계시는 양가 어른들과 지인들에게 속삭이는 진심의 사랑을 말이죠.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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