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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09. 2020

엄마, 울어?

아이가 말했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엄마, 울어?


다섯 살. 첫째 아이의 그 목소리는 

나로 하여금 힘껏 잡고 있던 끈 하나를 기어코 놓게 만들어 버렸다. 아니면 이미 놓아 버린 지 한참인데 이제야 미련스럽게 자각을 했던 건지. 입고 있던 코트를 벗고 그대로 집에 있고 싶었던 걸까. 무엇이 그리도 무섭고 불안하여 나는 그새 순식간에 토끼눈이 되어버린 채 금방이라도 흐를 것만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억지로 눈에 힘을 쥐고 쓴웃음으로 첫째 아이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인가. 아이는 말했다. 엄마 다녀와 라고.... 



친정 엄마의 목소리가 그제야 다시 들렸다. 

그냥 빨리 애들 놔두고 가라는 그녀의 다그치는 목소리... 안다. 그 다그침은 사랑이라는 것을. 독감이 지나가니 2차 후유증이 찾아왔다. 이미 결절된 성대가 다시 부어 올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요 며칠. 귀신 같이 딸의 상태를 알아본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갔었다. 그랬다가 다시 등원을 시키기 위해 데리러 와 주신 상황. 그런데 밤새 거실에 울려 퍼진 기침 소리와 끙끙 앓는 소리로 그제야 나는 자각할 수 있었다. 그녀의 건강도 심상치 않다는 것을. 나는 이로서 여전히 평생 그녀에게는 죄인으로 살아야 하는 팔자라는 것을. 



나는 엄마에게 이제 더 이상 손을 벌리고 싶지가 않다. 

혼자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시간은 흐르고 아이들은 자라면 해결되는 것들이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그랬었는데. 작년의 그 강한 각오는 다 어디로 가 버린 걸까. 배우자의 육아 동참률이 현저히 낮아진 상태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에서도 나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같았다'는 예상에는 다부진 오기와 의지가 들어 있다. 12년 동안 유지했던 별 거 아닌 커리어를 기어코 놓고 싶지 않다는 어떤 강한 집념 혹은 고집 이리라. 



정신을 차리고 현재의 상황을 되돌아보니 형편없는 '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오늘따라 출근길에 눈물이 연신 흘러내리고 마니 화장실은 다시 내 친구가 되어 버렸다. 체력은 바닥, 업무 생산성은 최악, 복직 사실 원치 않은 업무의 연속인지라 생산성을 기대하기란 캐릭터에 애초에 무리라는 알고 있었다. 재미없게 일은 해도 최소한 민폐는 끼치지 않고 일을 해야 한다는 오기 하에 나는 버텼다. 그렇게 워킹맘 삼 년, 나쁘지 않았었는데. 그랬는데.... 



무엇이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휩싸이고 말다 보니 

어지러움증을 동반한 구토 기운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불안한 걸까. 혼자 등 하원 시켜가며 회사에서 이 업무를 유지할 자신이. 갑자기 떨어지고 만 걸까. 노력이라는 것을 최대한 다 했다고 볼 수 있는가. 스스로 나는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답하지 못하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나 자신이 보였다. 



이른 아침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다그치면서까지 

내가 회사에 다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나는 사실 '그 이유'를 갑자기 잃어버리고 만 걸까... 경단녀 방지? 고작 경력 단절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순간 스스로 부끄러울 정도로 문득 코웃음이 쳐졌다. 별 거 아닌 이 커리어가 내 배 갈라 낳은 아이들보다 중요하진 않을... 텐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붙잡고 있는 걸까. 내면에선 계속 두 개의 다른 자아들이 대화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 대학 악착같이 알바 달고 다니면서 일하고 돈 모으고 장학금 받고 공부하고. 뭘 위해서 그렇게 살았어?

- 진작에 시부모님 말대로 손 많이 갈 때 애나 잘 보는 게 더 남는 장사라는 말은 진짜 일지도 모른다...

- 자신 있다면서? 말로만 자신 있었지 실상 약해 빠진 소리 감추고 살뿐이면서. 

- 할 데 까지 해 보고 지금 그렇게 무서워하는 거야? 집안일도 직장일도 개인일도 사실 뭐 하나 제대로 하고 있는 건 없어 보이는데. 



정신이 혼탁해질 무렵 

다행이지 불행인지 혼자 있을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오고, 혼자의 짧은 고민의 시간은 그제야 끝난다. 그제야 내면의 목소리들은 없어진다. 그리고 일상의 반복, 그 속에서 다시 '인내' 하는 나를 발견한다. 한데 나는.... 오늘만큼은 쉬이 인내가 되지 않는다. 나는. 



자신이 없다. 

경단녀가 될 자신도. 반대로 아이들을 기르며 이 회사에서 이 일을 유지하는 것도. 전업 작가가 되어 책이라는 걸 만드는 과업을 유지하는 것 또한. 여태껏 '운'에 의존한 채 흘러왔던 것 같기만 하다. 뭐 하나 내 능력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그저 흐르는 '운'에 닿아 '출간 작가'라는 딱지 하나 달았을 뿐. 단지 그것뿐. 



사실은 능력 자격 둘 다 미달인 것만 같다. 

엄마라는 역할도, 아내와 며느리, 직장 동료로서의 책무도. 그 어느 포지션 하나에서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마는 '나'를 발견한 것만 같은 오늘. 이 몸서리 쳐지는 혼란스러움은 조금씩 선명해져 간다. 답이 없는 게임에 나는 답 하나를 기어코 억지로 만들어 나가는 것만 같다. 



그만둘까.

그런데 무엇을 그만둘까. 그만둬야 하는 것과 그만둬선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무엇을 고민하는 걸까. 질문은 반복된다. 그러다 견디지 힘든 회의 시간을 겨우 거치고 나면 퇴근 시간이 찾아오리라.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보면 또 이내 나도 조용히 웃고 말 것이고. 늦은 퇴근 후 바로 잠에 든 그이에게 나는 이제 이 답답함마저 감추며 그를 위로할 뿐이라는 걸. 나 좋다고 억지로 다니다가 이번 생에 비빌구석인 친정엄마의 건강 다 망쳐놓고 뒤늦게 후회하고 있을 바에야.....그럴 바에야..... 이젠 아프지 않으면 천만 다행인 시댁에게 그 어떤 기대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다 알고 있으면서. 결국 혼자 다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혼자.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이미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아니, 정정.  나는 나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아직도 이렇게 방황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그러다 이내 변명을 일삼는다. 연초에 아파서 그런 것이라고. 아프다 보니 머리도 어떻게 모양이라고. 답지 않다고.... 답지 않다고.. 이건 나 답지 않은 쓸데 없는 걱정이리라. 그렇다고 믿어 본다. 아이의 목소리가 다시 떠오른다. 



엄마, 울어? 

대답하지 못했지만 오늘은 대답하리라. 아니, 안 울어. 안 울어... 라고. 



#워킹맘_점심_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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