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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14. 2020

기대지 않을 용기

용기란 두려움에 대한 저항이고 두려움의 정복이다.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다.


- 마크 트웨인 -






'그' 에게 적잖은 의지를 했다는 것을.

존재의 부재가 있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아주 선명히. 사내커플이었던 '우리 부부'였다. 결혼 9년 차 사내 커플로 연결된 부부로 살기까지. 대내외 시선들로 인한 고충도 적잖았지만 사실 그것은 고단한 고충이 아니라 커다란 축복이었음을 어리석은 나는 비로소 그의 '부재'에서 뒤늦게 깨달았다. 표현할 만한 적당한 문장을 찾지 못했지만 내면은 숨길 수가 없었으니까.



알 수 없는 슬픔이 차오르고 있다는 것을 

온몸의 부작용들이 순식간에 둑 터지듯 밀려옴에 감당해 내느라 허덕이고 있는 현재의  '나'를 발견했다. 무엇이 나를 울게 만들었던 것인지를 생각해본다. 평일 독박 육아? 혼자가 된 상태에서의 등 하원 출퇴근길? 약한 저질 체력? 그 모든 것은 어쩌면 핑계일 수 있다는 건 동료의 뼈 때리는 한 마디 덕분에 겨우 알게 되었다.



- 본인도 모르게 사실 많이 의지 하고 있었던 거예요. 없어지니 이제 느끼는 거죠.



그가 일터에서 나의 보이지 않는 바람막이였다는 것을.

그가 이 곳에서 사라진 이후, 회사에서 나는 요상한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끼고 마는 터라 스스로도 당혹스러울 정도의 어떤 '우울'을 느끼고 말았고, 그런 나를 보고 친한 동료가 준 '의지'라는 단어 덕분에 뒤늦게  것이다. 그에게 의지를 많이 했었다는 것을. 의도하든 그렇지 않았든. 어떤 이유에서든 지칠 때, 고될 때. 일터에서 한껏 상처 받고 바닥을 기고 있을 때 조차도 내 '편'이었던 누군가가 사실은 보이지 않게 일터에서의 나약했던 나를 이만큼 버티게 만들어 준 장본인이었다는 사실을. 그만큼 내가 약한 존재였다는 것마저도... 알 수 있었다. 의지하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하는 약한 존재였다는 것을...  




당신이 날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을, 있을 땐 한번도 하지 못했다...그렇게 오만했다...




갑작스러운 이직, 새벽 출근 밤늦은 퇴근을 불사하고서도 떠나기로 결정해야 했던 그의 슬픔도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나 고민하고 고됬으면 생전 아프지 않은 그가 긴장이 풀어졌는지 아니면 몸으로 부작용이 나타나는지 그렇게 아팠을까 싶다. 연초, 우리 부부는 병마저도 닮아가는 것인지, 두 사람이 쌍으로 독감을 앓았었다. 함께 살면서 그렇게 둘이 동시에 아파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 와중에 긴급한 시부의 병환으로 수술은 결정되었고 동시에 이직을 결정하고 행해야 했던 그이의 고충. 정말이지 오죽했을까 싶다. 고통이라든지 슬픔이라든지 힘겨움과 같은 감정을 거의 내색하지 않는 남자였고 여전히 그렇게 사는 사람...



그래서 속상하고 아프다. 그의 여전한 어떤 '감춤' 들이.

아니면 감추는 게 아니라 정말 내색하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로 '강한' 사람인 걸까... 그 강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연륜? 경륜? 다행스럽게도 나의 그는 나이를 허투루 먹은 사람은 아닌 듯싶다. 그렇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내가 그에게 의지라는 걸 결국에 많이 했다는 걸 뒤늦게야 안 이후에 깨달은 교훈 같은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순식간에 인생의 적잖은 결정이라는 걸 해내는 선택의 기로 앞에서 그는 크게 흔들리지 않고 담담하다는 것. 주변 사람에게 - 가족조차도 - 걱정 끼치지 않는 어떤 침묵, 조용함과 같은 것들. 그러나 분명 '감춤' 은 있을 터. 그렇다면 그 감춤의 원인이 약한 '나' 때문이라면.



나는 기댈 수 있는 배우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것이 내가 그를 선택하면서 스스로 약속한 각오였지만

되려 여태껏 나는 그에게 기대고만 있었던 약한 배우자라는 걸, 스스로의 각오는 처음부터 실천 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고 나니 이렇게 우울하고 슬픈 걸까 싶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도 꿋꿋이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지낼 수 있는 용기가 있다고 '착각' 했던 나라는 것을. 최근에 급속도로 우울해하는 나를 목전에 두고 넌지시 말을 건넨 동료 덕분에 나는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오만함을. 사실은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버텨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혼자서도 우뚝 설 줄 알아야, 진정 괜찮은 가족구성원이라는 걸, 당신은 실천을 하고 있는데 나는 그래주지 못했네..미안하다.



무엇이 이토록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걸까.

다시 질문을 해 보자니 이제는 형편 없어진 회사 상태 '탓' 만을 하고 있기엔 사실 부끄럽다. 개인 경쟁력을 생각해보는 요즘이다. 더욱 절실하게. 경단녀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만 '같다'는 예상치 못한 스스로 만들어 버린 마음속 감옥(감정) 때문에? 그림자 노동과도 같은 평일 살림과 육아에 허덕이는 일상이 이미 시나리오화 된 비디오처럼 그려져서? 이도 저도 이유가 되지 못한다. 결국 내가 만들어 낸 걱정과 불안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이리라.



점심시간, '판단하지 않는 힘'이라는 책으로 틈새 독서를 해 보면서

잠깐 쉬고 있던 도중 다시 생각에 빠졌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그 잠시간 아주 냉정하고 깊이 있게. 그리고 어떤 결론을 내려 버렸다. 아니 결론이 아니라 어쩌면 '새로 고침'과 같은 마음을 다시 먹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리라.



'고통을 마주하는 위대함'을 만들어 보자고.

인간의 위대함이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큰돈을 벌지 못해도 말이다. 마치 반 고흐처럼 동생에게 물감 살 돈을 보내달라며 애끓는 편지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그 참혹한 고통 속에서조차 끝까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어떤 내면의 이상을 향해 조용히 전진하는 것이 인간의 위대함이라면.



나는 다시.....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이 불안이라는 감정 끝에서 찾으려 한다.

다시 원래의 '밝음'을 되돌려 놓으려고 작정한 듯. 아울러 불안이라는 감정에 '종료' 버튼을 누르기 위해 필수로 붙어야 하는 어떤 치트키를 말미에 생각했다. '기대지 않을 용기'라는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이에게도, 친정 부모님에게도. 아울러 '나'라는 스스로에게도.



징징거림은 멈춰야 할 때다.

냉수 마시고 정신 바짝 차려서 일상을 살아냄에도 모자라는 매 순간이라는 것을 다시 자각해본다. 진짜 '워킹맘' 은 이제야 시작되었다고. 나는 두 눈을 잠시 감았다 뜬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하원 길을 떠올린다. 아직도 매서운 영하 6도의 찬 겨울바람이 한참인 이 시간. 아이들을 제대로 키워내기에도 모자랄 일상, 2020년의 다이어리에 포부처럼 적힌 꿈들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려면.



기대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선명히 깨닫는다.

워킹맘으로 생존하려면, 최소한 그것은 필수라고. 그 누구에게도 의지 하지 않아도 살아낼 수 있는 '강함' 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 생각이 '행동' 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 채로. 아울러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건 '돈'이라는 엉뚱하지만 사뭇 진지한 생각도 잠시 스치고 나니 새삼 현재의 경제 활동들이 감사해진다. 어제, 아이들의 고금리 적금 만기의 문자에도, 출간 이후 신규 강의 의뢰 메일들에서도 사실 요 근래의 우울한 감정에 침잠돼있던 터라 전혀 기쁘지 않았던 나를 잠시 반성하면서. 나는 내가 많은 걸 가진 축복 받은 인간이라는 생각에 감사함만을 품은 채, 한번 더 어떤 각오를 떠올렸다.



진짜, 워킹맘의 시간이 시작되었다고.

이제는 그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홀로 당당히 설 줄 알아야 진짜 어른이다라는 생생한 깨달음을...



우리에게 찾아온 이 변화를. 각자의 평일 보이지 않더라도 따로 또 같이 잘...흘러가보자. 여보....나는.....잘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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