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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15. 2020

상처 받지 말지어니

당신은 어느 한 사람에 대해 잘 알 수가 없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고 걸어보기 전 까지는. 


- 하퍼 리 -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블라인드'에 달린 악플들을 뒤늦게야 '보고'만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작년 말, 그이의 이직 뉴스가 사내에 퍼져 그것이 공식적인 전파가 될 무렵. 작지 않은 포지션에 있던 나름의 '관리자' 였기에 그의 이동은 누군가에게는 충격, 누군가에게는 사내 분위기(?) 상 너무나도 당연한 자연스러움, 누군가에게는 이도 저도 아닌 '남 일'로 비쳤으리라. 



소위 그이를 '까대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밑에 직원들 다 버려두고 '도망'친다는 등, 관리자'새끼'라는 등, 익명이라는 방패막이 안에서 누가 뭐래도 그이를 대상 삼는 원색적인 조롱과 비난, 공격성 댓글들. 나는 분노했다. 참지 못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가족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당돌한 짓을 일삼아 버렸다. 익명의 게시판에 당차게 '실명'을 선언하고 글 하나를 올렸다. 비난을 멈춰 달라고. 익명을 가장하여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비난할 자격이 '당신' 에게 있냐고. 그땐 알지 못했다. 후폭풍이 얼마나 거센지를, 그것을 감당해 낼 각오를 하지 않고 섣불리 무모한 '용기'를 저지른 나였다는 것을. 



그 후 며칠이 지나 어느새 신년

요 근래 알 수 없는 적잖은 불안감에 우울해하고 있다가 겨우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려하며 애써 웃으며 지내려 마음을 고쳐먹었건만. 하루가 지날 새 없이 어제, 나는 기어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고 만 것이다. 혹시나 싶어서 묘한 어떤 끌림에 의해 그 '블라인드'를 다시 들어가 봤다. 화근이라는 것도 모른 채. 차마 입에 담고 싶지 않은 더 한 원초적이고 원색적인 공격 댓글들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함부로 토해내는 목소리는 누군가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나는... 단두대에 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공인도 아닌, 전혀 유명하지도 않은 일반인에 불과한 이런 나 조차도 몇 개의 엄청난 악플들을... 읽고 있자니 몸이 부르르 떨렸다.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비난받는 가족을 위하여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텍스트를 휘갈겨버린 나의 오만방자함이 원인이라면. 그래 그것이 죄라면 죄겠다만. 한편으론 다시금 여실히 깨달았다. 누군가의 단편만을 보고 우리는 누군가를 함부로 '까댈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인간의 숨겨진 이면이라는 것을. 인간이 사악할 수 있는 건 바로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을 때 처참히 짓밟는 행위를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은 누군가를 죽음으로까지 내몰 수 있는 '말'을 우리는 참 함부로 서로 주고받고 있음을... 



후폭풍이 밀려왔다. 

조금 잠잠해지기 시작하려는 우울과 고통이 다시 급습하기 시작했다. 그이가 이름을 불러줬을 때 나는 기어코 눈물이 툭 하고 흐를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있는 힘껏 참았다. 울면 그가 걱정할 거라는 것을 이제는 잘 아니까... 그래서는 안되니까. 



- 요새 회사에 별 일은 없어?

- 응... 별 일 없어. 

- 이젠 평일에 못 도와줘서 미안해

- 아냐... 자기가 아이들. 나. 생각 많이 하는 거 이젠 알아... 

- 무슨 일 있구나. 

- 내가.... 당신 생각해서 한 행동이, 내 발등 찍은 거 같아. 여보. 나 회사 사람들이 무서워. 

- 왜

- 그냥. 댓글이 달렸는데... 나... 미친년 이상한 년 주제 파악 못하는 년 돼버렸어.

- 그러게 블라인드에 왜 댓글은 실명으로 달고 그랬어. 거긴 익명이니까 별소리 다 하잖아. 

-... 당신 욕을 하잖아.... 당신이 회사에서 한 건 '일'인데 사람들은 뒤에서 욕을 하잖아. 못됐잖아. 형편없잖아...

- 그러려니 해야지 어쩌겠어. 

- 아무튼... 여전히 자신은 없어지지만. 이골 날 정도로 겉으로 웃고 뒤에서 욕하는 회사 인간들. 이제는 닳고 닳았다고 생각해도 여전히 치가 떨리지만. 그래도 그냥 지내보려고. 도망치면 더 안될 것도 같고. 

- 그래. 찌질이들 상대하지 말고. 그러다 병나. 



병은 이미 마음속에서 피어났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마음의 병을 조성하는 현실 속 환경조차도 기어코 긍정하려 한다면, 지금의 나를 둘러싼 이 모든 환경설정값들은 모두 스스로 자초한 것이고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고 그로 인한 고통과 자책과 반성을 거쳐 기어코 다시금 '성장' 하려는 계기들이 될 것이라고. 계기가 된다는 것은 반대로 이겨냈을 때 어울리는 말이리라.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단단해지라고... 



대놓곤 한 마디도 하지 못하면서 

익명으로 숨어서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원초적인 조롱과 비난과 비판을 일삼는 익명의 이들을 사실은 여전히 저주한다. 한편으론 부디 그들이 '부모'의 위치에 있는 어른이 아니기를 오지랖 넓게 바라기도 했다. 함부로 타인의 삶에 옳고 그른 잘 살고 못 사는 기준을 짓고, 자신이 보고 싶고 해석하고 싶은 대로만 단편적으로 누군가의 정체성과 삶을 함부로 정의하고 마는. 익명에 숨어서 냄새나는 권력을 휘두르는 그들이 부디 부모가 아니기를 바랐던 거다. 그/그녀들의 아이들은 과연 무엇을 보고 배울까 싶어서 말이다... 그러다가 괜스레 나의 아이들 생각에 또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냥 한없이 내가 못난 엄마 같았기에... 이 험한 세상에서 아이들을 지켜낼 힘이 내게 남아 있는지 스스로 의심되었기에. 



그이와의 대화를 마치고, 안방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천사 같이 평온한 두 얼굴을 보고 간절히 기원했다.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기를. 누군가가 토해 놓은 오물 같은 문장들에 마음이 얼룩져 가뜩이나 고단한 일상을 스스로 더 고되게 만들지는 말자고. 아울러... 괜한 각오마저 엉뚱하지만 마음에 단단히 새겨지고 있었다. 이 아이들이 건강하다면 그 어떤 것도 이겨내야 할 것임을. 아이들이 현재 크게 아프지 않고 평범히 잘 성장해준다면... 이젠 그 어떤 고통스러움도 나는 견딜 각오를, 버텨낼 자신을 내야 한다고. 그렇게 다시금 살아보자고 말이다. 




봄을...기다리고 있다. 얼어 붙은 체온, 마음, 이 겨울 같은 시간이 잠시라도 끝나기를 바라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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