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사람' 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책임을 아는 것이다
- 생텍쥐페리 -
지난주, 1월생인 쌍둥이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생일 선물을 받아 왔다.
태어난 지 이제 꽉 찬 4년을 지나며 그야말로 폭풍 성장 중인 아이들은 이제 제법 사물에 대한 인지를 어느 정도 하는 것 같았다. 크레파스와 연필, 스케치북과 망원경, 양말과 물감 등. 각종 물건들에 대한 '기능적' 역할에 대해서 잘 감지하여 그것들을 그야말로 '놀이' 삼아 거실 바닥에 포장지를 북북 찢어 놀이터로 만들어 놓았기에.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웃음이 나왔고 한편으론 그러면서도 스스로 잠시 놀랐었다. 내가 변했기에. 이토록 변한 내가 새삼스러워서. 약간의 청소 강박증(?) 이 있는 내가 한 때 아이들의 존재로 인해 짊어야 하는 양육의 고단함과 피곤함으로 우울이라는 감정이 하루 지나 생기곤 했던, 그런 나약한 나를 자책했었는데.
확실히 변한 나를 요 근래 느낀다.
아이들을 대하는 '나'는 정말이지 확실히 변했다고. 무엇이 변하게 만든 트리거일까를 잠시 고민하다가 엉뚱한 이유를 떠올렸다. '엄마'의 책무를 성실히 '더' 해 보겠다는 어떤 연초의 어떤 의지 때문이리라고. 그것은 다름 아닌 '책임' 감. 회사에서도 직책이 '책임'이라는 우스운 이유도 잠시 덧붙여 보면서. 이왕 하는 것이라면 '되도록 즐기자'는 오기와 뚝심이 더 진해졌기에.
아이들이 소속된 어린이집 친구들에게 줄 답례 선물을 가내 수공업으로 준비하면서
나는 그 시간의 '나' 에게 요상스러운 감동을 느끼고 말았다. 신기하게도 표현은 되지 않는 감정이지만 단편적으로 토끼 포장지를 하나하나 접어 가며 그 안에 양말이며 간식거리를 집어넣고 손편지를 적어 내려가는 그 시간 동안의 내가 정말이지 뿌듯했다. 소정의 준비를 다 했음에도 포장지가 남는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떠올랐던 친구들의 선물도 잠시 만들어 보며 문득 선명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너희 둘이 있었기에 가능한 시간들, 이 일상을 지켜내겠다고. 되도록 열심히. 되도록 잘...
아마 혼자의 삶만 책임지는 삶이었다면
나는 이 정도로 열심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삶이라는 것은 결국 책무에 수반되는 업의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것, 그래서 일상을 '지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것인데 반대로 그 일상을 지켜내려는 이들의 고통과 인내는 얼마나 위대한가를. 생각하다 보니 일상을 지킨다는 것만큼 대단한 게 없지 싶다. 갑자기 불현듯 한 사고로 신체 불수자가 되었을 때, 일상에 커다란 균열이 생기고 위기가 다가온다. 그 이후의 일상은 360도 완벽히 달라진다. '현재'를 지켜낸다는 것은, 그래서 얼마나 대단하던가... 우리 삶은 예측 불허하기에 결국 '지금' 이 그래서 소중하다고 사람들은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겨우 토끼 귀를 접어가며 혼자서 밤 11시의 개똥철학을 펼쳐내다가
잠든 아이들의 존재가 너무나도 고맙고 귀해서, 한편으론 과거에 우울했던 내가 떠올라 소스라치듯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지나간 시간이기에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반성을 하면서 결국 '일상'을 지켜내려는 이 다짐에는 결국 '태도'와 '마음가짐' '생각'의 힘이 결코 무시하지 못하는 엄청난 영역임을 다시금 느끼고 만다.
일상 속 나의 하찮은 말, 언어, 행동, 이 모든 일상 속 선택도
아무 조건 없이 '엄마 사랑해' 하면서 앉고 앉히려 다가오는 이 아이 둘의 존재에 나는 요즘 커다란 위안과 어떤 용기마저 느끼곤 한다. 그런 감정이 찾아오면 나는 아무 말 없이 아이들을 바라보며 '사랑해, 고마워' 라며 같이 껴안아준다.
결국 우리가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 중 하나 또한 누군가를 껴안고 싶을 때.
앉기고 앉을 수 있는 현재의 일상을 지키고 있는 것, 아울러 지키려 하는 것, 이 두 마음 모두 외롭고 지친 우리들을 버티게 만들 수 있는 것들 이리라. 와락. 너희 둘을 아무 이유 없이 아무런 기대와 망설임도 없이 그저 가만히 앉아줄 수 있는 그런 '나'이고 그런 '엄마'로 나도 너희 둘과 함께 성장하기를....
나는 지금 비로소 '사람' 이 되어 가고 있다고.
토끼들을 만들며 생각 했다. 그렇게 깊은 밤은 지났고 여전히 우리들의 일상은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어제처럼 오늘도. 무탈한 우리들의 현실에 고마움을 느끼며...
#너희라는_선물을_이제서야_아는_나는
#비로소_사람이_되어가나_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