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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26. 2020

피해자는 없어야 하기에

나는 눈과 입을 침묵시킨다. 너희들을 위해... 

그것이 삶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 






우리가 말하는 '결혼'이라는 그 흔한 기혼 제도의 희비는 

어쩌면 배우자라는 상대방 그 온전한 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혹은 그녀를 둘러싼 주변인들과의 관계로 인해 기쁨인지 슬픔인지가 명확히 갈리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말해봤자 입만 아프고 심정을 토로해봤자 나만 '쌍년' 이 될 게 뻔한 이 싸움에서, 나는 언젠가부터 눈을 지그시 감든가 입을 다무는 버릇을 익혔다. 침묵. 그것은 신이 내게 주신 고귀한 선물이며 여전히 훈련처럼 다듬어야 하는 고된 수양 이리라. 



배우자를 '아직' 사랑한다고 믿고 있다만 

그것은 때로 '연민'이라는 감정으로 둘러싼 내가 믿고 싶어 하는 신실하면서도 어리석은 믿음 일지 모른다. 연민도 사랑이라면, 이것은 사랑이라는 바보 같은 믿음 말이다. 그가 아프면 약을 챙겨주고 건강 걱정을 생각해서 비타민이든 홍삼액이든, 먹지 않는다 해도 사 두고 챙겨주려 하는 편이니까.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의 평일 바깥 음식'만' 먹는 것이 이상하게 안쓰러워서 주말이면 되도록 '집밥'을 선호하는 편이니까. 하물며 맞벌이와 가정 경제를 지키려고 나름의 '안간힘'을 쓰는 나의 모든 행위들 또한. 눈으로 잘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일부러라도 상대방에게 생색내지 않으면 절대 드러나지도 않은 '사랑' 따위는 그에게 사랑이라고 느껴지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사소한 행동들과 신념은 때때로 고스란히 무너져버린다. 

명절증후군? 아니다.(아니, 일정 부분 맞을지도)  제사 음식? 설거지? 다 견디고 산 지 한참 오래다. (제사는..여전히 산 사람이 죽은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의 최악의 생산성이라고 본다) 몇 해 전부터는 그리 살았으니까. 언제나 늘. 나를 분노하게 만들며 제일 못살게 괴롭히는 '감정'의 고리는 다름 아닌 남편과 연결된 가족들의 행위 혹은 발언으로 인한 지옥 같은 과거의 소름 끼치는 장면의 회상. 그로 인해 다시금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 낸 또 다른 미움이라는 마음 때문이라는 걸, 지금 나는 안다... 




주변이 온통 깜깜했던 날들... 여전히 일정 부분 앞이 보이지 않아 어둠 같은 순간들... 어떤 관계들로부터 벗어나길 원하는 걸까. 



아들 타령하는 손 귀한 집에 동시에 둘을 '쌍'으로 낳고도 좋은 소리 하나 듣지 못한 '둘째' 며느리로 산다.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익숙하고 그들의 '베푼다'라고 하는 행위는 나로서는 도저히 당신들 기준에서'만'의 최소함을 고수했기에. 결혼 초기엔 적잖이 당혹스러웠지만 시간이 흐르니 그것마저 적응되더라. 그것은 마치 82년생 김지영의 그 장면, 시모에게 어딘가에서 받는 앞치마를 선물 받고도 '고맙습니다'라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여인의 모습과 내 모습이 다소 겹치곤 한다. 알뜰하게 살아오신 탓이라고. 단지 그뿐이라고. 무엇 하나 당신 지갑 먼저 여는 게 없으셨던 분들. 시부모님 뿐 아니라 모든 이들이 그러하다는 것을. 하물며 나의 아이들에게까지도...



시아주버님 댁의 수수께끼 같은 선물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쌍둥이들 돌잔치 때의 일이다. 재활용된 백화점 상품권 봉투 안에 도저히 의미를 알 수 없는 낡은 만원 짜리 7장. 형님과 조카들은 오지 않았다. 그 후로도 내내 나의 아이들은 시댁의 '어른'이라고 하는 이들로부터 어떤 '애정'을 받고 자라지 못했다는 생각을 할 때면 나는 알 수 없는 고통과 좌절, 말미에 일그러진 분노만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게 되니 결국 그 분노의 끝에서 '배우자' 탓을 하고 마는 지경에 이르곤 한다. 그럼에도 배우자를 선택한 건 결국 '나' 이기에, 되도록 미워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고 이제는 정말이지 한편으로 밉지 않지만.... 아니 사실은 거짓말...이다. 입에서는 쌍욕이 식도 앞까지 다가왔지만 나는 그걸 뱉지 못한 채 그저 내 눈에서 눈물을 흘려버릴 뿐이다. 서글픔이 밀려오다 이내 분노로 바뀐 건 다름 아닌 아이들을 대하는 그들의 어른 답지 못한 행위 때문에. 더군다나 자기 새끼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대접 받는 아이들은 뒷전인 듯한 불통의 아이콘, 속이 꽉 막힌 배우자 때문에. (남의 편은 정말 남의 편이던가) 



세뱃돈 때문이 아니다. 돈은 아쉽지 않다.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다만 '주려하는' 마음 그 자체가 없었다는 것을 다시금 선명히 깨닫게 되고 마니 그게 이 분노와 슬픔의 감정의 원인일 뿐. 이제 막 5살을 넘긴 아이들을 '처음' 보고도 정말이지 찬밥 신세 유령취급을 하며 TV와 핸드폰만 만지작 거렸던 시아주버님 댁 조카아이들. 같은 여자여도 자기 새끼 귀한 줄'만' 아시는 형님, 그녀의 가족들, 스무 살을 훨씬 지나 졸업을 앞두고 있을 여대생으로 훌쩍 커버린 그 조카 여자 아이들을 보며 나는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을뿐더러 그걸 두고도 당연하게 있었던 '남편' 때문에 뚜껑이 열릴 뻔했다. 당신의 '아내'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 일 보듯 하던 내가 선택한 그 남자 때문에. 



그가 나를 '꽃'처럼 대하지 않는다는 걸, 귀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나는 왜 자꾸 잊고 마는 걸까. 





윗사람이 먼저 인사를 건넸음에도 고개 하나 끄덕이지 않았던

오히려 바로 밥을 달라거나 자기들 하던 대화를 마저 하는 그 조카들의 인성이 심히 의심스러웠다. (그래. 난 꼰대다.) 아무리 좋지 않은 과거의 사건 때문에 숙모가 '무서워서' 그런다 쳐도, 반대로 상대의 '입장'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던 그들의 과거의 행동들이 또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100일도 안 된 쌍둥이들의 신생아 시절, 손 하나가 모자랐고 1시간을 채 자지 못해서 거지같이 지냈던 그 시절, 기어코 남편은 나와 아이들을 버리고 술에 취한 조카의 서울 대학살이 뒷바라지를, 아울러 강남역에 밥을 먹으러 간다 했던 그이를... 



아직까지도 나는 선명히 기억한다. 그 사건들이 나를 일순간 돌게 만들었던 화근임은

그들이 내게 만든 원인제공자라는 그 맥락 자체는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행위는 반성하지 못하고 그저 '무섭게 문자를 보냈다는 숙모 탓'만 일삼는 그들의 그 행위들은 시간이 흘러서도 계속해서 고스란히 나의 아이들에게도 전이되고 말 때... (하물며 무서움을 느끼는 그 아이의 감정까지 내가 달래야 하는가? 그 감정의 주인은 너지 내가 아닌데? 나는 쌍둥이 키우며 살아내기도 모자랄 판인 것을!) 



나는 시댁이 때때로 별나라인가 싶다...

시댁에서 '어른'이라고 하는 누구 하나 그 조카들의, 나와 우리 아이들을 '유령' 취급하는 그 행위는 그들로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울 뿐이다. 쌍둥이들이 보고 있던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을 바로 자신들의 드라마 대화를 주고받으며 리모컨을 누르며 순식간에 아이들을 적잖이 당황스럽게 만든 것 또한. (뚜껑이 또 열리려 한다.) 다섯 살 아이들이 참아야 하고 스무 살이 넘은 여대생 조카들의 배려 없는 행위가 너무나도 당연한 이 곳은 별나라...... 나의 다섯 살 쌍둥이들은 멀뚱하니 누나들을 쳐다보다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아이들은 안다. 누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가지 않는 아이들이기에. 둥이들은 내 곁에서, 그리고 그나마 같은 '쌍둥이'를 낳고 길러본 시누에게로 가서 놀뿐이었다. 




하루는 다시 시작되고 새벽은 찾아오는데.... 가끔 그 새벽도 새벽 같지 않다. 끝이 없는 것 같아서. 내내 반복되기에. 



설날은 끝났다. 그러나 나의 서글픈 분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 표정이 좋을 리 만무하였으나 (몸 상태도 좋지 않았을뿐더러)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던 나의 퉁퉁한 표정'탓'을 하는 그의 존재에서 나는 다시금 '남의 편'을 느끼고 말았다. 괜스레 짜증 섞이고 거친 운전으로 화를 대변했던 이 모자란 남자로 인해 나는 2차 공격을 받고야 말았으니까. 



그를 선택한 건 결국 나니까. 

이 모든 업보는 다 내가 짊어져야 하는 걸 알고 있지만. 계속적으로 매해 반복되는 이 지루하고 끈적이는 감정싸움에 신물이 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나갈 감정이지만, 그렇다고 뿌리 뽑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기에. 어떤 '끝냄'을 상상하다가도 결국 나는 이 문장 하나를 마음에 품고 그저 눈과 입을 침묵시킨 채, 그럴 때마다 말없이 아이들을 바라볼 뿐이다. 



피해자는 없어야 한다고. 

내가 선택한 결혼으로 인해, 비록 상대편으로 하여금 상처 입고 좌절을 느끼고 분노를 일삼는 매 순간이 찾아와도. 나는 이제 나의 아이들을 지켜내야 하는 귀한 책무가 생겼기에. 그러하니 어떤 보상도 기대도 없이 그저 아이들로부터 받는 지극히 순수한 사랑만을 생각하며. 그 사랑을 아이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것에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스려도 쉬이 미운 마음은 가시지 않지만. 또한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무뎌질 것을 기대할 뿐이었지만, 솔직히 한편으로 신께 말을 걸며 나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도대체 제가 얼마나 무뎌져야 되는 것입니까,라고. 

자신만 아는 이들을 어디까지 인내해야 되는 겁니까 라고. '이것이 삶이니 좋아 다시 한번'이라고 말하셨던 그 긍정이 제게는 왜 그들을 대할 때마다 자꾸만 힘이 약해지는지를. 여전히 한편으로 지금 떠오르는 그들을 저주하지만 몫은 온전히 제가 지겠으니 다만 아이들을 더 이상 피해자로 만들지 말아 달라고... 나는 어리석은 기도를 하는 나를 발견하고 만다. 명절은 지나가고 있으나 내 감정은 쉬이 지나가지 않을 것만 같은, 이 밤은 남겨진 두 사람의 냉전과 함께 지나가고 있다.  




신께 또 빌고 말았다. 제발... 그만 울게 해 달라고... 제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지었냐고... 열심히 사는 것도 죄...입니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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