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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28. 2020

욕망, 숨겨진 여성적 자아에 대해

나는 침대 위에서 이따금 우울해진다 

우리 여성들은 관능적인 쾌락을 추구하고 때론 성적 만족을 위해 아주 큰 위험을 감수하기도 한다. 

우리의 몸은 죄를 짓기 좋게 되어 있으며, 심지어 정신은 그렇지 않을 때조차 몸은 쾌락을 추구한다. 


- 나는 침대 위에서 이따금 우울해진다 - 





'섹스가 끝나면 모든 동물은 슬프다'라는 말을 했던 그리스의 의학자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한때 그 말을 우연히 접했을 때 무릎을 '탁' 하고 쳤었던 기억이 난다. 모든 영장류 포유류는 통상 신경생리학적 메커니즘에 따라 교미 후 일정 부분의 우울감을 느낀다고 하던데, 그럼 내가 기혼녀가 된 이후에 '침대' 위에서 짧게 혹은 길게(?) 주고받았던 몸의 교감 이후에 느끼는 미혼 시절일 때 대비 이상하리만치 커다란 공허감 혹은 허탈감은 그저 내 탓이 아니라 단지 유전학적(?)으로 그리 생겨 먹었기에 그런 걸지 모른다고, 애써 '인지부조화'를 하곤 했었다고, 감히 고백을 해 본다. 



어떤 '자유'의 박탈감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일부일처제라는 기혼 제도 속에서 법적으로 '한 사람'에게 온몸과 마음(?)과 일상의 시간들을 모두 함께 한다는 나름의 법률적으로 정해 놓은 '결혼'으로 묶인 건강한 속박... 과도 같은 것이랄까. 정말이지 엉뚱한 의문이 아닐 수 없지만 나는 가끔 (아니 종종) 생각하곤 한다. 도대체 왜 결혼 제도는 일부일처제여야 하는가, 폴리아모리나 비 일부일처제 혹은 조금 더 자극적일 수 있다만 스와핑을 서로 간의 합위된 상태 하에서 추구하는 사람들은 정말 저주받아 마땅한 상스러운 부류일까? 정말 그럴까라고.. 



나는 침대 위에서 이따금 우울해진다, 웬즈데이 마틴,판쌤앤파커스, 2020.01.29.



책은 단순히 작가의 감정(?)과 분노에 의존하는 책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참고 문헌과 여러 학술 자료 및 심리, 인류학자들의 과학적 근거에 의해 비 일부일처제 라든지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한 일부일처 안에 종속되어 그 유전적 욕망을 처참히 박탈당한 여성들의 은밀한 속내에 대해 나름의 분석을 해낸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역시 개인 관심사 중 하나인 '다자 간 자유연애'를 추구하는 '폴리아모리'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공감하고 또 공감했던 이야기였다. '모노가미'가 정말 자연스러운가를. 자연스럽다고 태어날 때 부터 생각했기 때문에 으례껏 그렇게 살아왔던 건 아닐까를.. 한편으로는 이런 소재로 누군가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은 거의 없었기에, 조금은 책에서 이상한 위로(?)를 받기까지 하고 말았다.. (는 것은 아직도 나름의 의문을 품고 있는 게 아닐까 싶고.)  




폴리아모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강요된 양자관계는 구시대적인 것으로, 많은 고통과 불만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강요된 양자관계가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며, 우리는 두 사람만 관계를 갖도록 진화되었고, 그래서 성적 배타성을 거부하는 건 죄악이거나 사회에 해를 끼치는 행위이며, 우리 문화의 근간을 훼손하는 약물 같은 것이라는 편협 하면서도 낡은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폴리아모리와 합의된 비 일부일처제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왠지 공격 대상이 돼 방어해야 하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실제 그런 삶을 살까 싶었다. 특히 폴리아모리를 따르는 사람들을 존경하게 됐다. 전혀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찾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도 존경스러웠지만, 워낙 급진적인 그들의 관점 또한 존경스러웠다. 섹스 및 친밀감, 관계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와 양자관계가 그들에겐 고대 유물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북극성을 거부하고 있다. 



여성에게 정숙함을 따지거나 논하는 것이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의한 불리하게 만들어진 사회적 속박은 아니었을까.



사랑의 기준은 누구나 다르다. 함부로 판단하고 돌을 던질 수 없다고 본다. 

설령 이성애와 동성애, 양성애라는 구분을 지을지언정 그 안에서 다만 인권과 생명의 소중함을 기본으로 양자 간 합의된 관계를 서로 간에 건강한 기준에 의해 주고받는 '사랑'이라면 '형태' 쯤이야 어떠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만. 서구권 문화에서조차 폴리아모리니 합의된 스와핑이니 비 일부일처에 대한 발언 조차 죄로 여겨져 기존 사회적 제도에 대한 불만(?) 속에 나름의 해결책으로 각자의 은밀한 '사랑'을 저지르고 마는 사람들, 특히 '여성'이라는 젠더에게는 더더욱 '잡년' 취급당하고 말며 반대로 '남성'이라면 바깥일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차이는 여전히도 동서양 막론하고 '여성'에게 조금 더 과하게 부여되는 것은 여전하지 싶다. 



일부일처제가 그리 지키기 힘들고 우리에게 그리 잘 맞지도 않는다면, 대체 우리는 왜 그걸 지켜야 하는 걸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냉정히 오랜 기간 이 문제를 연구한 인류학자들은 일부일처제 결혼은 우리 피 속에도 없고 DNS 속에도 없다고 말한다. 일보일 처제는 비교적 근래에 생겨난 것이고, 불완전하며, 현재의 생태학적 환경 안에서 동반자를 찾고 아이들을 양육하기에 좋은 방식일 뿐이다. 


여성은 가짜 오르가슴을 흉내 내면서까지 위안과 안전을 더 원한다는 말에 동의하는가? 성욕 문제에 관한 한 여성들은 그간 사기당해온 것이나 다름없다. 




시스템을 바꾸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그 시스템에 내가 '변화' 하면 모를까. 

다만 '쟁기를 사용하는 농경사회' 때문에 우리 여성들은 조금 더 엄격한 이분법적 '잣대'를 가지게 된 것. 즉 '여성'이라는 젠더에 부여된 역할극, 이른바 집 안에서 자식 양육과 음식 준비와 같은 생산 활동을 맡게 되는 것이 '타고난 역할'이라고 여기게 되었다는 것.  그렇기에 여성은 늘 집 안에 있어야 하며, 당연히 엄마가 자녀 양육을 전담해야 하고, 여성의 노동은 남성의 노동에 비해 생계와 수입에 덜 중요하다는 인식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쌓이고 또 쌓여왔던 것이다. 위계질서는 그렇게 탄생되었고 계층화는 자본주의와 여성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어쩌면 여성을 더 옥죄어 왔던 건 아니었을까... 




집안 식구들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이 아닌 한, 돈은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는 이데올로기와 여성의 성적 자주성의 결과로 맞게 될 위협으로부터 여성을 지켜줄 수 있다. 또한 경제적 지원 철회나 폭력 같은 남성의 보복으로부터도 여성을 지켜줄 수 있다. 자신에게 모든 걸 의존하고 있는 여성을 상대로 손찌검을 하는 건 비교적 쉬울지 몰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소유주로 식료품 저장실에 먹을 것까지 다 채워 넣어주는 여성을 상대로 손찌검하는 건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보이지 않게 '아직도 여전한' 것들은 실로 많은 듯싶다...




여성도 성적 자기 결정권과 주체적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이미 일정 부분 많이 그러한 시대적 주류를 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것은 개인적 주장(?) 혹은 말이 그리 쉬울 뿐... 사실상 미혼이든 기혼 제도에 들어간 여성이든 혹은 심지어 남성에게조차도 일부일처제라는 문화는 어쩌면 일정 부분 혹독(?) 한 제도는 아닐까 싶다. 위험한 발언일 수 있다만 평생 한 사람을 바라봐야 하는 기혼 제도는 마치 종신형 보험과 같은 느낌인데 잘못(?) 들어서 해약환급금이 마이너스가 되고서도 쉽게 해약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맞닥뜨려 어찌할 바 모르는 지경에 처하고 마는 '우리들' 은 아닐지. (너무 표현이 웃겨나 싶지만) 



아울러 특히 여성에게 부여되는 '주홍 글씨'를 생각해보자면 성적인 자기 결정권과 '자유' 로움을 조금 더 추구(?) 해 보려 하는 마음을 먹는 것조차도 정서적 불륜이라는 개념 하에 죄의식을 부여하고 마니... 그래서 때때로 드라마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매스미디어 콘텐츠들이 여전힏 불티나게 돈을 긁어모으듯 성행하는 것은 아닐까 싶고. 




우리 여성들은 완전히 죄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아마 언젠가는 아무 생각 없이 우리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고 판단하진 않거나 아니면 적어도 우리 스스로 죄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딱히 방법은 없고(?) 다만 책도, 책을 읽는 독자들도 어떤 '생각'을 할 뿐이다. 

당연한 제도와 우리가 그동안 인식했던 '당연하다'라는 것들은, 실상 사회적으로 만들어 놓은 프레임 안에서 당연하다고 인식되어야 나름의 안전장치(?)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리 믿고 산다는 것, 가끔 그 당연한 것에 이 책의 작가나 나와 같은 '딴지'를 거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돌멩이 맞을 각오를 하고서도 발언을 해야 조금은 그 당연한 것들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들어 준다는 점...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침대 위에서 이따금 우울해질'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사실은 드러나지만 않을 뿐 그 수가 적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 것 같다. 그리고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진심은 어떠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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