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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Jan 29. 2020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글쓰기

선생님....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 주었다.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 






누구보다도 자신의 글을 엮고 또 읽어 주는 이들에게 '감사' 할 줄 아는 작가님 

박완서 선생님은 그런 분이시라는 걸 나는 뒤늦게 깨칠 수 있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작가의 '책'이라는 이야기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관문의 열쇠, 그리고 엔딩으로 가기 전의 마지막 마음이 담긴 '숨겨진 또 다른 작가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에. 그래서 보통 단행본 한 권을 읽어도 앞과 뒤 페이지를 조금 더 유심히 읽는 편이다. 소설은 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허구를 벗어난 진실적인 작가의 마음을 볼 수 있을뿐더러, 에세이에서도 어떤 결과 마음으로 이야기를 끌어내리기 시작하고 맺어가느냐에 대한 것들은 모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담겨있으리라.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박완서, 작가정신. 2020.01.21.



선생님의 모든 작품을 섭렵하지 못하는, 아직도 초보 독서가에 불과하지만 

한편으로 작가 연보와 선생님의 작품들 전작들을 볼 수 있어서, 이야기 속에 풍덩 빠지진 못했지만 발 정도는 담그고 어떤 동기부여를 얻었나 싶어서 내심 기뻤고 또 감사하리만치 했다. 이런 책을 엮어 주신 출판사에게도 더더욱. (어떻게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만을 엮을 생각을 하셨는지. 감동...!) 





나는 처녀작 '나목'을 사십 세에 썼지만, 거의 이십 세 미만의 젊고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썼다고 기억된다. 그래 그런지 그것을 썼을 당시가 6년 전 같지 않고 아득한 젊은 날 같다. 

결국 일이 어느 만큼 진행됨에 따라 용기를 내서 호흡을 끊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그대로 써 내려갔다. 

- 나목 - 




박완서 선생님의 존재는 언제나 나로 하여금 '전설' 같은 인물은 분명했다. 

주야장천 공모전에서 떨어졌을 이십 대의 어느 무렵 즈음, 그제야 박완서 선생님의 에세이 한 편으로 인해 나는 그녀의 문장과 세상을 바라보는 사려 깊지만 날카로운 관점에 매혹당할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도 그 시절에는 미처 공감하지 못했던 감정선을, 엄마가 된 이제야 나는..... 어떤 마음으로 문장을 적어 내리셨는지 알 법도 싶어서 이상하게도 가슴이 몹시 시렸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 시림과 온기가 동시에 가슴속에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아마 이 문장은 두고두고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은 이미 나의 24시간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어린애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집 밖에서의 일이 더 많이 있고, 그 일은 점점 확대되어 가는데, 나는 그들을 보살피고 기다리는 게 전부고 그 일이나마 하루하루 놓쳐가고 있다는 깨달음이 나를 비참하게 했다. 나도 뭔가 나만의 일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같이 열정적인 여자가 계속 그 일정을 가족에게만 쏟는다면 종당엔 가족관계를 지옥으로 만들 것이 뻔했다.  (창밖은 봄) 


그때 내가 미치지 않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로 그래, 언젠가는 이걸 소설로 쓰리라 이거야말로 나만의 경험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었다. 그건 집념하고는 달랐다. 


꿈 하고도 달랐다. 그 시기를 발광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정신의 숨구멍이었고 혼자만 본 자의 의무감이었다. 


- 목마른 계절 - 



가끔은 신간보다 오래된 고서나 고전이 그래서 참 좋다... 그것 특유의 '멋'과 '풍미'가 살아있기에. 괜히 오랜 책이 아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아직도 믿고 있나 보다. 기록의 힘에 대해서. 무언가를 꼭 성취하려 일부러 애쓰듯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이끌려 쓸 수밖에 없는 경지에 이르러 무엇이든지 토해내려 하는 그 '서사'의 힘을. 어쩌면 박완서 선생님이 마흔부터 시작하셨다는 꾸준한 작품 활동들 속에 드러나듯 드러나지 않은 마음은, 소설 속 한 문장을 통해, 에세이 속 과거 일상의 회한과 후회, 고통과 좌절을 넘어 결국 생을 향한 희비를 통해, 동화 속 순수의 열정이 담긴 단순한 문장들을 통해, 그렇게 하나 둘 펼쳐져 말미에 선생님 그 존재 자체가 되어 준 것은 아닐까. 결국 글 자체는 선생님 그녀 자신이었음을... 그렇게 관심과 사랑을 자신에게 북돋아 주며 끝까지 살아서 쓰고자 했음을.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 주었다. 또한 노후에 흙을 주무를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는 것도 큰 복이다.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




나는 몇 안 된 읽었던 작품들을 아련히 떠올리며, 재독의 결심을 하고 만다. 

그 의지와 용기와 날카로우면서도 따스한 세상살이의 혜안을 답습하기 위해서... 



선생님처럼 마흔에 시작하진 않았지만, 마흔 넘어서도 계속..쓰면서 살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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