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븐 Jan 31. 2020

쫄지 마, 무엇이든

지난 몇 년간, 내 삶의 뼈대가 되어 온 엄연한 진실은, 

내 삶을 구해 준 것은 왕자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 




겉으로 '센 척'을 했지만 사실은 불안함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파트장이 넌지시 건네준 '김 책임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던 나는 그에게 말을 건넸다.



- 먼저 애기해 주시고 챙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문장 외에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 어떤 궁금증도, 약간의 상황적 분노와 동시에 떠오르는 자괴감마저도. 그에게 '따질' 필요가 없었기에. 오히려 일'만' 하고 있었던 나에게 일 '외'의 것들을 알려 준 고마운 동료였기에.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고마웠다. 나의 '일'에 대한 '태도' 만큼은 알아주는 누군가가 한 명쯤은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 상황이 그런 거지 김 책임 일 잘하는 거 내가 아니까. 누가 될지 아직 아무도 모르는 거고. 원래 그래. 직장이라는 게. 별 게 없어. 남자도 버티기 힘든데 10년 이상 버틴 김 책임은 대단한 거야. 외국어도 잘하잖아. 


- 네. 알아요. 저 괜찮습니다. 그냥 오늘 할 '일'을 할 뿐이에요. 정규직이지만... 계약직 마음으로 내일은 없다는 생각으로 '일'만 했으니까. 저를 반성해 보는 거죠. 이 기회에... 아무튼 고맙습니다. 말씀 먼저 해 주셔서. 



센 척을 했지만 사실은...마음이 조금 삭막해졌었다는 걸, 나는 스스로에게는 감추지 못하고 만다. 





희망퇴직 프로그램이 '다시' 시행될 거라는 소식이었다. 

작년, 내가 소속된 이 회사는 업의 특성(?) 상 산업군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흐름을 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키우려는 건지 축소시키려는 건지를. 기존의 매출 발생 사업군을 대폭 축소시키고 조금 더 공격적으로 '단타'로 연명하듯 단기 매출 발생에 집중하기 위한 일환으로 회사는 '고정 인건비 축소'를 먼저 시행했다. 사람을 먼저 건드렸다. 사업부들의 분사와 매각 등의 소문은 사실화되었다. 많은 변화가 있었고 여전히 변화가 진행 중이다. 



많은 사람이 나갔고 불만과 불안이 속출되었다. 

'희망퇴직'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거기서부터 '경영'의 틀은 이미 바뀌었다고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사업 확대가 아니라 축소와 변화 도모를 위한 '혁신'이라고 그들이 암묵적으로 선택한 결정 사항들에 대해 일정 부분 피를 봐야 하는 '직원' 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고. 입장에 따라 상황에 대한 해석은 다를 테니 한편으로 오너나 경영진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다만... 뭐랄까, 그들의 입장을 고려할 만큼의 여유는 일개미나 다를 바 없는 '직원' 들에게 없을 뿐. 나 또한 그저 부속품에 불과한 '일개미'에 속했기에 그저 '내 사정' 만을 생각하고 계산기를 두드릴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그래도 내심 다행이지 싶었던 건 '큰' 흔들림은 없없기에.

아주 조금은 단단해진 것 같은 '나' 때문일까 싶었다. 커다란 흔들림 없이 그저 '흐르는 대로' 인정하려는 나를 발견했다는 것은, 반대로 이 회사에서 어떤 성장의 기회를 찾는 것이 자의든 타의든 일정 부분 없어진 지 오래였기에. 가임기와 출산을 거쳐 강제 발령으로 복직하고 나서 중요하다고 거론되는 일에서 '배려한다'는 취지에서 배제되었던 나는 그 이후로 스스로 일종의 '노련한 일개미' 로서의 훈련을 해내기 시작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직장을 다니면서도 정말이지 열심히 했고 (회사에 소문 다 났으려나, 알게 뭔가 싶다만) '개인 경쟁력'에 대한 고민을 늘 달고 살았다. 안주하려 하지 않았고 여전히 악착같이 관심 분야의 공부를 유지하려 했다. 그로 인해 작지만 금전적인, 개인 성장적인 면에서의 성과를 얻기도 했다.  




달처럼..자꾸만 스스로 떠오르고 빛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어떤 고군분투함들의 유지를...악착같이 지켜내려는 건. 




솔직히 따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늘 '그런 프로그램'의 대상 1순위에 '워킹맘' 이 거론될 때마다 나는 생각하곤 했으니까. 일을 할 수 있는 이에게 일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일'만' 하는 사람이 바보라면 바보겠지만 일터에서는 일로 승부를 해야 하는 게 정당한 것이 아니냐고? 한편으로 업무 퍼포먼스의 상중하 기준을 도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나누는지? 차라리 시험이라도 보면 숫자적인 KPI 도달량을 볼 수도 있겠으나, 일터란 무릇 사내 정치, 개인 인맥, 일을 '안' 하면서 '하는' 것처럼 보이는 보이지 않는 사일로들이 존재함에도 일종의 리더들의 '개인 판단'이라 하는 것에는 객관적인 정량화된 기준이 있는지? 



회사의 경영을 '결정' 하는 이들의 '판단' 에는 인지 부조화, 확증 편향과 같은 '오류'가 일절 없는지 

일을 잘하고 못하고의 '정량적' 평가를 할 수 있는 기준이 여기서 언제 한번 확실했던 적이 있었는지? 잘하지 못해도 우연한 혹은 고의적인 '인맥'과 '개인의 호감도'에 따라 평가받는 행태가 적잖이 유지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안주하고 타성에 젖어도 밥그릇 잘 지키고 '하던 대로' 하니 불협화음 안 내면 일을 잘하는 것인지를? 그러하기에 소신발언을 일삼는 직원은 불협화음을 내는 트러블메이커이고 일을 정말이지 잘해도  '그 사람이랑은 일하기 불편하다'라고 '악소문' 하나에 누구 하나 찍어 내리는 것은 예삿일도 아닐 것이며 더더군다나 그 대상의 '젠더'가 '여성'이라면... 그녀에게 다가가는 무언의 압박을 형성하는 '기업 문화'는 어떤지? 



그럴 필요가 없겠지만 나는 약간의 순간적인 '분노'를 얼그레이 티 한잔으로 가라 앉히며 생각을 했다. 

'직주지'에 감사하자고. (중요하다 1) 월급 밀리지 않고 따박따박 잘 들어오는, 더군다나 양육을 일과 함께 병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가 통하는 환경에 끝까지 정말 많이 감사하자고. 아울러 아직 누군가 나에게 '공식적'인 통보를 하지 않았으니 그냥 흐름에 내맡겨 보자고. 가임기부터 출산 전후의 일을 하는 '여성' 에게 다가가게 되는, 남성들은 1도 느끼지 못할 수 있는 암묵적인 권력 행사가 다가올지언정, 상처 받을 일 없다고. 



언젠가 여성, 일터의 생존법..뭐 이런 책 한권 엮어봐도 좋을까 싶었다. 혼자만의 하찮은 상상들이...스치고도 지나갔다. 



왜냐면, 직장인의 커다란 착각에서 이미 어느 정도 벗어난 '나' 이기에.

대기업에 다닌다고 '나'라는 사람이 '클 태'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 수 있기에. 고 연봉과 고 위치가 한 사람의 인성과 삶의 평가 기준이 될 수 없기에. 물론 그만큼의 위치와 지위를 얻기 위한 '고군분투'는 있었을지언정, 그것이 정녕 영원한 것도 아니기에. 결국 허울만 좋은 대기업 브랜드 있는 회사 혹은 정규직 직장인이라는 프레임을 철저히 벗어나서, 소위 정글에 나가서 스스로 그 누구의 도움 하나 없이 단 돈 100만 원을 꾸준히 벌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직장인 연봉 6억 수준에 해당하는 '진짜 경쟁력'이나 다름없음에. 한편으로는 그걸 만들어 내기 위한 '씨앗'을 계속해서 뿌리고 성장시키려는 또 다른 모습의 '나'의 존재를 나는 알고 있기에. 아니 아는 게 아니라 어쩌면 '믿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순간의 힘'이 문득 떠올랐다. 

작년에 읽은 히스 형제의 책에서도 거론되듯 '어떤 결정적 순간은 그중 가장 오래 살아남아 기억된다' 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내 삶에서 또 하나의 결정적 순간을 맞이할 '기회'를 얻었을지도 모른다고. 나를 조금 더 부단하고 치열하게 성장시킬 기회를, '나'라는 사람의 경쟁력을 '객관화' 시켜서 반성과 성찰을 거쳐 '나아가는' 나로 다시 만들려는 트리거를... 



모든 변화가 그렇듯 내 속에서도 변화하지 않으려는 것들과 변화하고자 하는 것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구조조정 대상 1순위 워킹맘' 은 내 탓이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내 탓 같기도 해서. 상처들이 욱신거리면서 아파오기 시작했고, 한편으로는 무언가 중대한 것이 내게 다가올 것 같은 예감마저 들었지만. 



흐름에 맡긴 채 바라보기, 순간을 살기. 지금 집중하고 싶은 것, 해야할 것들..




나는 중얼거렸다. '별거 아니야'라고. 

아이들이 아프지 않은 현재, 배우자와의 마찰이 다시금 가라앉은 채 평온해지기 시작한 댁 내, 시부의 무사한 수술, 친정엄마의 존재, 지금 곁에서 날 도와주려 하는 친정 식구들, 읽고 쓸 수 있는 시간, 통장 잔고... (중요하다 2) 가진 것들을 생각하니 무릇 감사함이 밀려오면서 '상황'에 대한 나쁜 예상들로부터 잠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솔직히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불안하지 않다고, 괜찮다고는 말하지 않고 싶다. 

다만 한 발자국 물러서서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니 한편으로는 맥락 없는 무일푼 용기와 자신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정말 아이러니 하지만. 뭣도 없지만, 한편으로 다 가졌다고도 느껴질 정도의 어떤 근자감이...



내가 지금 느끼는 이 애석함과 불안함과 슬픔은 어쩌면 시간이 흘러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것이라고.

그러니 괜한 서러움에 울 일은 더더욱 아닐뿐더러 그저 산다는 것은 여러 바보 같은 짓거리들의 반복도 포함되는 것을 '아는' 것일 뿐이라고. 그러니 좋지 않은 감정에서 단 한 발자국만 나와서 다시금 '나아가면' 되는 것이라고. 그럼에도 사실은 적잖이 슬픔이 밀려왔다. 왜 슬픈 걸까를 근원적으로 이성적으로 어떤 원인을 찾지 못한 채. 그러나... 한편으로 또 어떤 생각이 선명히 가슴에 박일 뿐이었다. 



밖을 향해서, 쫄지마. 무엇이든. 

지금의 세계에서 조금 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밖을 향할 준비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왜냐하면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기에. 여전히 커리어를 지키려는 누군가에 대한 외압이 '여러모로' 있을지언정 '나'라는 사람의 진정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고 그것을 성장시켜냄에 있어서 계속해서 움직이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기에.... 오늘은 이렇듯 '놀 팔자는 못 되는 성격 탓' 을 해 본다. 몇 시간 후면 곧 만날 쌍둥이들을 떠올리며... 



이 겨울도 시간이 지나면 봄이 되고, 추운 바람에도 꽃은 핀다고 생각하면, 별 게 없지 싶다... 사는 건 한편으로 별 게 없다고. 

    

작가의 이전글 오늘의 '괜찮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