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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븐 Feb 02. 2020

두 엄마

모두들 모든 것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간다. 


- 아침의 피아노 - 






며칠 전 기어코 엄마가 집에 오셨다. 

'나 왔다'는 짧은 카톡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뻔히 짐작되고 잠시 안타까웠다. 몇 가지의 후회스러운 감정의 실마리들을 기어코 그녀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던 '나' 였기에. 오른쪽 팔목의 시큰거림과 잦은 목쉼 상태, 등 하원 길의 잦은 택시 거부, 설 이후의 배우자와의 잠시 동안의 냉전 등.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하나뿐인 큰 딸 목소리와 몇 개의 문장만으로도 귀신같은 추리를 해내고 마는 친정 엄마는 비록 다시 고요한 평온을 되찾아갈 무렵이라고 반박을 했어도, 아마 왔을 것이다. 늘 그러했던 것처럼. 



퇴근 후 집에 도착해보니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계셨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일찍 하원 시킨 후 저녁도 일찍, 그리고 듬뿍 먹이셨을 거라는 걸, 아이들의 볼록 튀어나온 튼실한 배를 만지며 앉아주자마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곤 엄마의 등을 쳐다보았다. 유난히 펑퍼짐한 그녀의 등을 보자마자 이상한 안도감이 들기 시작했다. 



- 와서 앉아. 고기 먹자. 

- 응? 

- 너 주려고 한우 한 팩 사 왔어. 피골이 상접해 너. 도대체 몇 키로야.

- 걱정마요. 옷으로 튼실한 살 가리고 있어

- 퍽이나. 와서 앉아 이것아 




꽃 같은 당신은, 언제나 내겐 풍성한 안도감 그 자체입니다... 난 참 복이 많은 데 그 복을 가끔 잊고 사네요. 엄마.. 




고기를 구워 주느라 먹지도 못하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의 생은 왜 늘 주기만 하는 걸까, 받는 데 익숙한 사람들 속에서 주는 데 익숙한 '팔자'로 태어난 것이 바로 '엄마'라는 존재이던가. 그런데 그 '엄마' 들 중에서도 나의 엄마는 너무 많은 걸 주었고 여전히 쌍둥이 손주들의 양육노에동과 보살핌 유일한 서포터이자 지지자라서, 아직도 주기만 하는 그녀의 삶이 이상하게 안쓰러웠다. 내 존재가, 이 환경이 이상하게 또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래서 나는 눈시울을 붉혔을 테다. 미안해서. 받기만 해서. 



- 엄마, 어련히 내가 필요할 때 SOS 칠 텐데 뭐하러 오셨어.

- 너랑 둥이들 먹이려고 왔지, 내가 못 올 데 왔냐 

- 그런 건 아닌데.. 힘들잖아... 나도 혼자 보는 거, 익숙해져야 하니까 이제 괜찮아요. 미안하잖아.

- 미안한 거 알면 네가 애초에 이 결혼을 한 걸 미안해해 

- 엄마도 참...

- 미련 맞게 혼자 참지 말고

- 미안... 미안해요 

- 먹어. 어서. 다 먹어야 돼. 

- 응. 다 먹을게. 고기... 안 그래도 먹고 싶었는데 역시 엄마는 귀신 같이 날 너무 잘 알아 

- 지 위해서 고기 하나 제대로 사 먹을 줄 모르잖아. 너. 돈 모을 줄만 알았지. 미련한 것아. 

- 그러게. 나 미련하게 사네 (근데 엄마 나 원체 먹는 데는 관심이 없.....) 



앞은 모른다. 뒤가 그 앞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뒤' 가 있기에 '앞' 이 있다는 사실을. 




고맙다는 말 대신 미안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 

내가 가진 무언가를 (보통은 '입금' 밖엔 딱히 방법이 없다만) 주면서도 미안하고, 반대로 그녀가 가진 시간과 심신의 온 에너지를 받는 것에 또 미안해지고. 그렇게 나는 어쩔 도리 없이 엄마에게는 평생 미안한 죄인으로 살아갈 팔자인가 싶었다.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쌍둥이들의 존재를 이제는 감사하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이 환경으로 인해 처음부터 적잖이 몸 고생 마음고생 그로 인해 물리적인 몸은 계속해서 고장 나기 일쑤인 그녀였기에. 고기를 구워 접시에 놓으며 계속 말을 거는 씩씩한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그저 앉은자리에서 맛있게 다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내키지 않은 식욕 상태도 엄마 앞에서는 왕성한 식욕의 소유자로 애써 둔갑한 채로. 



그것이, 그녀가 보고 싶어 했던 모습일 것이리라 믿었기에. 

언젠가 엄마가 구워주는 고기를 먹지 못하는 시간이 분명 올 것이기에... 그 생각을 하니 절대 고기를 남길 수가 없었다.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엄마와의 식탁 만찬은 둥이들의 '엄마~할머니!' 하는 목소리로 그새 짧게 막을 내렸지만, 나는 생각했다. 



우리 둘의 식탁은 이렇게 살아 있기에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그리고 속으로 다시금 어떤 미안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나의 어리석은 소원은 아직도 유효하다는 생각 때문에. 여전히 어떤 순간엔 당신보다 하루 덜 살기를 바라는 못난 딸이라 미안하기에. 다만 애써 이 감정을 숨긴 채 나는 달려와 앉기는 쌍둥이들을 꼭 앉아주면서 씩씩하게 말을 건넸다. 



- 두 엄마를 둔 우리 둥이들은 복덩이네. 사랑한다...



그리곤 갑자기 어떤 마음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꽃을 선물해야겠다고. 

할 수 있을 때, 더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그녀가 좋아하는 꽃을 떠올리며 어서 봄이 되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의 세 사람..... 사랑해. 눈물이 그냥 흐를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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